미국 주식 시장이 연말 연시 계절적 강세장 기대감을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만큼은 유독 약세를 이어가면서 온도차가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하를 미리 기대하고 미국 국채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들였던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움직임이다.
미국 주식 시장이 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과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법인세 감면 효과 기대감에 강세를 보이는 반면 국채 시장은 연방정부 재정 적자가 빠르게 불어나는 가운데 새해부터는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가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 탓에 좀처럼 매수세가 살아나지 못하는 분위기다.
2024년 11월 12일 일본 도쿄증시에서는 만기 20년 이상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엔화 헤지형 ETF 시세가 이날 기준 최근 5거래일간 2.5% 하락했다. 2024년 1월 이후 연중 12% 낙폭이다. 해당 종목은 같은 달 10일까지를 기준으로 한국인이 투자한 일본 주식 중 보관금액 1위(7억 6247만달러·약 1조 916억원)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투자자들의 희망과 달리 엔화 약세도 이어지면서 손실 위험만 커지는 모양새다. 한국 원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이 기준 금리 추가 인상을 자제할 것이라는 관측을 따라 엔화 가치 역시 떨어지는 중이다.
미국 뉴욕증시에서도 미국 국채 ETF는 유독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주가 지수를 따르는 SPDR S&P 500 ETF가 2024년 연중 29% 가까이 뛴 반면 아이셰어스 만기 20년 이상 장기국채 ETF(TLT) 는 같은 기간 6.2% 떨어졌다. 해당 종목은 만기 20년 이상 장기 국채에 3배 레버리지로 투자하는 ETF (TMF)에 이어 보관금액을 기준으로 한국 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ETF 각각 8위와 9위에 해당한다.
한편 만기가 비교적 짧은 국채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스 만기 7~10년 국채 ETF (IEF)는 2024년 1.7% 하락했고 아이셰어스 단기 미국채 ETF (SHV)는 0.13% 오르는 데 그쳤다. 주요 국채 가격은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첫째는 연준의 금리 인하가 새해부터는 느려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11월 중순 CME페드워치 집계를 보면 미국판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 전문 투자자들은 연준이 2025년 1월 금리 동결에 나설 가능성을 80%로 내다봤다. 앞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공개 발언을 통해 금리 추가 인하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서 신중론을 강조한 바 있다.
둘째로는 정부 재정 적자 급증이 국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미국 재무부는 11월 11일 발표한 월간 연방 정부 재정 수지 보고서를 통해 앞서 2024년 11월에는 재정적자가 3668억달러를 기록해 연간 17% 증가했으며, 2025회계연도 첫 두 달(10~11월) 적자 규모는 2024년 동기 대비 64%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1월 말 기준 미국 국
가 부채는 총 36조1000억달러일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2024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미국재정적자는 1년 전보다 8% 늘어 사상 최초로 1조8000억달러를 돌파했는데 2025회계연도(2024년10월~2025년 9월)에는 더 빠른 속도로 불어날 것이라는 월가 전망도 따른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고율 관세와 이민 제한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지면 금리 인하가 어렵고 이런 경우 정부의 부채 이자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 12일 재닛 옐런 미국재무부 장관도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의 고율 관세 정책은 우리가 인플레이션에서 이룬 진전에서 탈선하고, 성장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 모든 수입품에 대한 보편관세 10~20%, 대(對)중국 관세 60% 부과를 공약한 데 이어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힌 데 대한 의견이다.
이어 옐런 장관은 미국의 연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6%에 달하는 것과 관련해 “우리는 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고 더 많은 진전을 이루지 못해 유감”이라고 토로했다.
미국 비영리기구인 ‘책임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는 2024년 미국 대선 후보자들의 연설과 공약집,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토대로 분석을 진행한 결과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라 앞으로 10년간 연방정부 부채가 최소 7조5000억달러에서 최대 15조2000억달러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일각에서는 이견도 있다. 국내외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돈나무 선생님’으로 인기를 끌었던 캐시 우드 아크 인베스트먼트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2기 정부가 펼 고율 관세 정책이 세수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관세 인상으로 연방 정부의 세금 수입이 늘어난다면 법인세 등 세금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를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드 CEO는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전례 없는 유동성 장세에서 테슬라를 비롯한 기술 기업 일일 투자 내역을 공개하고 높은 수익률을 내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인물이다.
다만 미국 정부 부채와 적자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는 다수 전망 속에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인 핌코의 마크 세이드너 전략 최고투자책임자(CIO)와 프라몰 다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채권자경단의 생각’이라는 메모를 통해 “우리는 이미 미국의 (재정) 적자 증가에 대응해 점진적 조정을 하고 있다”면서 미국 장기 국채 비중을 줄인다고 밝혔다.
채권자경단(Bond Vigilantes)이란 채권 발행자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채권을 팔거나 매도 포지션을 취하는 거래자들을 말한다. 주요 채권 투자자들이 재정 적자가 비대한 국가에 대해 보유 비중을 줄여 국채 가격 하락을 촉발하는 식이다. 채권 매도는 채권 가격을 떨어뜨림으로서 발행자에게 추가 발행 부담을 주게 된다. 국채로 따지만 재정적자가 과대한 국가에 대해서는 채권 투자자들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함으로써 재정 규율을 강요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당 용어는 ‘월가 강세론자’로 유명한 경제학자 에드워드 야데니가 1984년 처음 사용한 후 월가에서 널리 쓰이는 시장 용어다.
핌코의 세이드너 CIO와 다완 매니저는 “우리는 구체적으로 수익률곡선의 장기 구간에서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줄 의향이 줄었으며, 다른 곳에서 기회를 찾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재정적자에 더 민감한 장기국채는 피하고 싶다는 의미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특정한 채권 가격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행동할 준비가 된 조직화한 자경단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도 “시장에서 말하는 채권자경단 활동 가능성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면, 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큰 채권 투자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경고 섞인 언급을 냈다. 2조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 중인 핌코가 미국 장기 국채 비중을 줄이는 식으로 자산 배분을 바꾸고 있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이들은 또 “우리는 미국 국채 가격이 재정 적자 악화 영향을 부분적으로 받아 가파르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국채중 에서는 투자자들이 더 큰 금리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매력적인 수익률을 찾을 수 있는 단기 및 중기를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핌코 측은 “미국 달러화는 글로벌 기축 통화이고 미국 국채는 글로벌 준비 자산이기 때문에 미국은 여전히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봤다. 이어 “하지만 어느 시점에, 당신이 너무 많이 대출을 한 경우 대출기관은 상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며 미국 정부라고 해서 마냥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경고 섞인 메시지를 냈다.
핌코는 영국과 호주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면서 두 나라의 재정 상태가 미국보다 낫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 채권시장에서 국채 수익률과 회사채 수익률 간 차이를 나타내는 ‘스프레드’가 급격히 작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제신용평가사인 S&P는 2024년 11월 15일 기준으로 미국 국채와 투자 등급 회사채 간 금리 차가 78bp(1bp=0.01%포인트)로,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하이일드(고수익·고위험) 채권의 경우 스프레드는 최근 2007년 수준까지 작아졌다가 15일에 다시 266bp로 벌어졌다.
국채를 비롯한 채권은 가격과 수익률이 반대로 움직인다. 채권은 발행할 때 일정한 금리에 따라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린다는 증서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금리가 정해져 있는 셈이다. 다만 채권 수요가 줄어 가격이 떨어지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더 적은 돈을 주고 채권을 사서 미리 정해진 금리에 따라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다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채권시장에서는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국채에 비해 회사채 수익률이 더 높다. 국채는 국가가 발행하기 때문에 일반 기업에 비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나올 확률이 매우 적은 반면 회사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고위험·고수익’인 셈이다.
따라서 우량 기업(투자등급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는 비우량 기업 회사채(하이일드 채권)에 비해서는 국채 수익률과의 차이가 크지 않다. S&P의 닉 크래머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미국 기준금리가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고, 새해 금리인하 전망이 불확실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스프레드는 매우 낮은 수준이라면서 기업들의 신용 버블을 경고했다. 그는 “회사채 수익률이 국채 수익률과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회사채 가격이 국채에 비해 그만큼 높다는 의미이며 이는 ‘버블’ 징후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보고서는 “회사채 값이 상대적으로 높긴(=금리 차가 작긴) 하지만 여러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전혀 근거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새해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각종 관세 인상 계획은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기준 금리 인하를 늦추는 ‘잠재적 장애물’이 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국채와 회사채 간 스프레드가 ‘급격히’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고 내다봤다.
[김인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