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2025년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정상급 축구팀들의 대항전인 ‘FIFA(국제축구연맹) 클럽 월드컵’의 독점 중계권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내년 미국에서 열리는 ‘FIFA 클럽 월드컵’ 중계권 계약 체결이 임박했다. 계약금은 10억달러 안팎으로 예상됐다. 내년 6월 15일부터 약 한 달간 열리는 FIFA 클럽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과 달리 클럽 간 대결로 진행된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며 32개 클럽이 출전하는 것으로 형식이 개편된 이후 첫 대회다. 글로벌 축구 팬들이 주목하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다.
특히 애플과 FIFA의 중계권 계약에는 ‘무료 방송권(Free to air·FTA)’이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무료 방송권은 중계권을 확보한 업체가 콘텐츠를 다른 공중파 채널이나 업체에 재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즉 애플 플랫폼으로만 대회를 시청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계약이 최종 성사될 경우, FIFA가 단일 회사에 주요 경기의 글로벌 독점 중계 애플이 FIFA 클럽 월드컵 중계권을확보하게 되면 애플TV+ 구독자가 증가하고 광고 수익도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재 구독자 수 기준 글로벌 10위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애플TV+가 단숨에 경쟁자들을 따라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대회 전체가 애플TV+ 가입자에게만 제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스포츠 스트리밍(중계)이 포화 상태인 OTT 업계에서 ‘킬러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구독자 감소 등 정체에 빠진 OTT 업계는 혼합현실(MR) 기술과 결합할 경우 시너지가 예상되는 스포츠 콘텐츠를 성장동력으로 주목하는 분위기다.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독점 중계권을 확보하는 등 ‘스포츠 중계권’ 확보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OTT 업계에서는 자체 제작한 콘텐츠만으로는 구독자를 늘리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OTT 공룡들은 ‘이용자 록인(Lock-in) 효과’를 기대하며 스포츠 콘텐츠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애플은 25억달러를 들여 미국 프로 축구(MLS) 경기를 2023년부터 2032년까지 10년간 독점 중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애플의 OTT인 애플TV+는 월드스타 리오넬 메시가 미국 팀으로 이적하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메시가 MLS에서 공식 데뷔전을 치른 지난해 7월 21일에만 애플TV+의 ‘MLS 시즌 패스’시청권을 구매한 구독자가 11만 명 넘게 늘기도 했다. 애플은 축구 경기 독점 중계에 35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프라임은 미국프로풋볼리그(NFL), 남자프로테니스(ATP) 등의 중계권을 획득하며 관련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NBC유니버설이 운영하는 ‘피콕’은 지난해 NFL 플레이오프 경기를 독점 중계했는데, 2300만 명의 시청자가 몰리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1위 OTT인 넷플릭스의 행보에도 주목하고 있다. 포브스 등 주요 외신들은 넷플릭스가 스포츠 콘텐츠 비중을 늘려나가면서 스포츠 중계 서비스를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한다. 넷플릭스는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의 주간 프로그램인 ‘러(RAW)’를 내년부터 미국·캐나다·영국·중남미 등에서 10년간 독점 중계하기 위해 50억달러를 투입했다. 닐슨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TV 프로그램 100개 중 96개가 스포츠 생중계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스포츠 생중계 TV 광고 비용이 높아졌고 애플TV나 아마존프라임 등 미국 빅테크들이 운영하는 스트리밍 플랫폼이 직접 스포츠 생중계권을 사들이는 경우도 늘었다.
스포츠 콘텐츠 투자에 열을 올리는 것은 국내 OTT 업계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OTT는 쿠팡플레이다. K리그 흥행의 원동력 중 하나가 쿠팡플레이의 중계라고 꼽힐 만큼 만족도가 높다. K리그 팬들이 ‘갓팡’이라고 부를 정도다.
쿠팡플레이는 2020년 12월 OTT 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후발주자다. 하지만 공격적으로 스포츠 중계권을 사들여 이용자를 끌어모아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쿠팡플레이의 중계 포트폴리오는 한국 K리그·스페인 라리가·프랑스 리그1·독일 분데스리가 등 축구 경기를 비롯해 데이비스 컵(테니스), 포뮬러 원(F1·자동차 경주대회)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아우른다. 최근에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중계와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2024 예매에 따른 영향으로 쿠팡플레이 가입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스포츠 이벤트 개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쿠팡플레이는 2022년 7월부터 ‘쿠팡플레이 시리즈’란 이름으로 해외 유명 축구 구단을 국내에 초청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쿠팡플레이는 F1과 북미하키리그(NHL) 등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종목까지 중계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에는 ‘제58회 슈퍼볼’을 생중계했다. 슈퍼볼은 NFL의 최강팀을 가리는 시즌 결승전으로, 매년 단일 경기 시청자 수 1위를 기록하는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다. 티빙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KBO리그 유무선 중계권 계약을 1350억원에 체결했다. 지상파 3사의 중계와 별도로 올해부터 2026년까지 3년간 KBO리그 전 경기와 주요행사를 모바일로 독점 생중계 및 재판매할 수 있게 됐다.국내 대표 스포츠 OTT인 ‘스포티비 나우(SPOTV NOW)’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미국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OTT가 등장 초기에 TV와 극장 중심의 드라마·영화 산업 파이를 가져왔다면, 이제는 TV의 마지막 보루인 라이브 스트리밍(스포츠 중계·뉴스 등)에서도 변화가 이뤄질 조짐이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스포츠의 경우 한 시즌이 수개월에 걸쳐 진행돼 충성도가 높아 오랜 시간 머무는 시청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TV 중계와 비교해 OTT만의 강점은 시간과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고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경기를 볼 수 있는 만큼 매년 OTT를 구독하는 스포츠 팬이 늘고 있다. OTT를 통해 볼 수 있는 종목도 다양하다. 한국 프로축구 K리그와 EPL,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 A,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NBA, MLB 등을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광고조사업체 메조미디어가 지난 3월 만 20세 이상∼59세 성인 48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OTT 구독자 2명 중 1명(53%)은 ‘실시간 스포츠 중계가 OTT 구독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이는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27%)’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일주일에 1회 이상 OTT로 스포츠 중계를 시청한다고 답한 비율도 47%로 나타났다.
다만 스포츠를 TV에서 무료로 시청해 온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에서도 매년 TV 대신 OTT로 스포츠를 보는 사람들이 늘면서 앞서 올해 2월 디즈니 ESPN, 폭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등 전통 TV 방송 3개 사가 향후 모든 스포츠 생중계를 통합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청률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미국 스포츠 케이블TV 방송사들이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 셈이다. 비용을 절감하면서 프로그램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들 회사는 선택에 따라 개별 서비스의 유료 구독을 유지하면서도 통합 플랫폼을 함께 판매하는 방식 또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슈퍼 스포츠 플랫폼 가격은 기존 월 100달러에 달했던 일부 스포츠 케이블 구독료보다 저렴하게 책정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미국 스포츠 케이블 방송사들은 시청자 감소로 실적 부진 위기에 빠진 바 있다. 고객이 이탈하는 와중에 세계적인 스포츠 리그 중계권 가격은 계속 상승하면서 악순환이 이어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디어 기업의 연합은 스포츠 중계권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스포츠 등 OTT가 다양한 분야에서 각종 콘텐츠를 쏟아내면서 시청자들은 여러 OTT를 쓰고 자주 갈아타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한국인 스마트폰 사용자를 표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OTT 앱 사용자의 1인당 평균 OTT 사용 개수가 2.3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OTT 앱 사용자들이 평균 2개 이상의 앱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평균 1개꼴에 불과했던 수치는 최근 5년간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킬러 콘텐츠’에 따라 앱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OTT 유목민’이 더욱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 OTT 사용자들은 관심 있는 콘텐츠가 생기면 구독과 해지를 반복하는 특징을 보인다”며 “반면 스포츠 중계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이용자를 묶어두는 한편 신규 가입자까지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황순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