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이 불붙인 RWA(Real World Asset) 코인 바람이 거세다. RWA코인은 부동산, 그림, 주식, 채권 등 현실 세계(Real World)의 자산(Asset)을 블록체인상에서 거래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AI코인의 바통을 이어받아 코인 시장에서 참여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RWA 코인은 우리 금융권에서 시행 중인 조각 투자로 알려진 토큰 증권과 유사한 개념이다. 조각 투자는 부동산, 주식, 채권, 미술품 등 실물 투자 자산을 잘게 쪼개서 소액으로도 투자를 가능케 한 것인데, RWA도 실물자산을 코인화한다는 점에서 성격은 비슷하다. 하지만 RWA 코인은 블록체인과 실물자산을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증권형 토큰은 엄밀히 말해 블록체인과는 무관한, 그냥 실물 투자대상을 나눈 것일 뿐이다. 이번 RWA 코인 열풍은 블랙록이 비들(BUIDL·BlackRock USD Institutional Digital Liquidity Fund)이란 이름의 RWA 펀드를 조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촉발됐다. 시장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이끌어낸 블랙록의 다음 행보를 예의주시해 왔는데, 블랙록의 선택은 가상화폐 중에서 2번째로 덩치가 큰 이더리움이 아닌 RWA 코인을 활용한 상품을 내놓았다.
이 같은 블랙록의 행보에 시장은 다소 의아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블랙록이 ‘찜했다’는 점에서 RAW 코인들은 최근 한 달간 단연 화제였다.
블랙록이 움직인 이후 RWA 코인으로 분류되는 코인들은 단기간에 크게 올랐다. 업비트에 상장된 폴리매쉬는 블랙록의 비들 펀드 출시 사실이 알려진 후 3배 가까이 상승했고, 코인원에 상장된 온도파이낸스 역시 3배 정도 단기 급등세를 나타냈다.
지난 3월 20일 출시된 비들은 미국 국채와 환매조건부채권 등에 투자하는 토큰화 펀드다. 매달 배당금이 토큰 형태로 지급되도록 설계됐다. 비들은 토큰당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며, 토큰은 언제든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 블랙록의 비들 출시는 관련 시장의 성장세에 탄력을 붙이고 있는데, 미국의 블록체인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는 토큰화된 미 국채 규모만 해도 곧 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미 국채 등 채권의 토큰화 움직임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유독 블랙록의 움직임에 더 이목이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경원을 굴리는 글로벌 1위 블록랙이란 기관의 공신력 때문이라는 평이다. 제도권 금융의 대장 격인 블랙록이 가상화폐 관련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여겨졌던 관련 시장에 ‘신뢰’를 불어넣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잡코인으로 외면받았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외의 코인들을 다수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그동안 가상화폐의 숙원이던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블록체인의 실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그동안 가상자산은 게임 등에 일부 사용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거리가 멀다. 워낙 시세 급등락이 심해 불신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투자를 하는 상품의 토큰화가 광범위하게 일어난다면, 이는 블록체인의 확장성 측면에서 긍정적임은 틀림이 없다.
블랙록의 RWA 펀드 이름이 비들인 것도 예사롭지 않다는 평이다. 비들(BUIDL)은 ‘빌드(BUILD)’의 오타로 블록체인 업계에서 개발을 의미하는 신조어로 주로 쓰이는데, 이를 차용해 블랙록이 발음상 똑같은 이름의 펀드 작명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블랙록이 RWA 시장 육성에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블랙록이 RWA 시장에 뛰어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가 계속 시장을 향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사를 표명해 왔지만, 시장이 이를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래리 핑크 CEO는 지난 1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당시 “다음 단계는 금융자산의 토큰화”라며 “자산 토큰화가 향후 시장의 미래”라고 한 바 있다. 이 같은 언급에 비춰볼 때 블랙록의 RWA 시장 진입은 일회성이 아닐 수 있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RWA 시장에 대한 성장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은 RWA 시장이 2030년까지 약 16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바이낸스 리서치도 실물자산 토큰화 시장 분석 보고서를 통해 비슷한 분석을 했다. RWA에 대해 커진 관심은 반감기 이후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상화폐 강세장을 이끌 주요 ‘메타’로 계속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청 판게아 펀드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RWA 토큰화가 강세장을 이끄는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RWA 코인의 대표주자 격은 체인링크다. 탈중앙화 오라클 네트워크인 체인링크는 RWA의 핵심인 오라클과 관련해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한다. 오라클은 현실 세계에 있는 데이터를 블록체인상으로 옮기는 기술로, RWA를 구현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된다. 또 여러 블록체인들을 연결할 수 있는 CCIP(Cross-chain Interoperability Protocol, 크로스체인 상호운용성 프로토콜)란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은행 간의 국제 금융거래를 중개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가 CCIP를 이용해 국제 송금 테스트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르게이 나자로프 체인링크 공동 창업자는 “제도권 금융이 블록체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체인링크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체인링크 랩스의 아시아 태평양 및 중동 지역 비즈니스 개발 책임자인 니키 아리야싱헤는 “세계 주요 은행이 실물자산의 토큰화 작업에 속속 돌입하고 있다”며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HSBC 등 거대 금융 기업을 포함한 전 세계 40개 이상의 기관이 체인링크랩스와 협력해 토큰화 플랫폼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폴리매쉬는 증권이란 실물자산을 아예 타깃으로 만들어진 블록체인이다. 국내에서 시행 중인 증권형 토큰이 블록체인을 도입하지 않고 중앙화된 시스템을 통해서만 거래를 하도록 시스템이 추진되고 있어 아직 실상용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레이븐은 2019년 디지털 증권 자산을 전송하는 기술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아발란체도 RWA 코인으로 분류된다. 씨티은행 등 여러 금융사들과 함께 사모펀드 토큰화를 위한 공동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스텔라는 미 자산운용사인 프랭클린 템플턴 인베스트먼츠가 미 국채를 토큰화하면서 사용한 블록체인 플랫폼으로서의 이력이 있다.
RWA 분야에서 새롭게 두각을 나타내는 신규 프로젝트들도 있다. 온도파이낸스가 대표적으로 블랙록의 RWA 펀드인 비들로 9500만달러 규모의 자산 이전을 성공시켜 최근 관심을 끌어모았다. 이는 블랙록의 토큰화 펀드를 활용한 암호화폐 프로토콜의 첫 번째 사례로, 단기 미국채 상장지수펀드(ETF)를 토큰화한 OUSG의 실시간 결제 서비스 지원을 위해서 시도됐다. 온도파이낸스는 미국 국채와 은행 예금으로 담보되는 토큰화 어음도 세계 최초로 선보이고 있다.
드디어 비트코인 4차 반감기가 시작되면서 시장 방향성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커지고 있다. 과거 반감기 패턴을 보면 보통 반감기 직전 하락하다가 이후 상승하는 패턴을 보였는데, 이번 4차 반감기 때도 과거 패턴을 답습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일단 현재 가상자산 시장 상황은 조정국면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비트코인 ETF 승인에 따른 시장 강세 효과가 일찌감치 나타나면서 상승한 폭이 꽤 컸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반감기 전 이미 전 고점을 넘어 신고가를 경신한 상태다.
이 탓인지 가상자산 시장은 호재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4월 비트코인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홍콩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소식이 들려왔지만, 시장은 무덤덤한 반응이다. 홍콩은 비트코인은 물론 이더리움 현물ETF까지 승인을 내주었다.
그렇다고 갑작스러운 외부 변수에도 호들갑스럽게 반응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직접적인 충돌에 따른 중동전쟁의 확 전 우려에 출렁인 비트코인의 움직임이 그 예다. 외환거래처럼 글로벌로 실시간 움직이는 비트코인은 그동안 지정학적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하지만 이번 양측의 충돌 후 비트코인은 예전처럼 단기 급락세를 보였지만, 빠른 회복 탄력성을 보였다. 비트코인 가격은 여전히 전고점을 돌파한 수준인 9000만~1억원 사이에서 머물고 있다.
다만 예정된 미국의 금리 인하 움직임이 연기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시장이 잔뜩 더 움츠리긴 했지만, 그래도 고점 대비 조정폭을 고려하면 아직은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비트코인은 고점 대비 15% 수준에서, 알트코인들은 40% 정도 하락한 상태다.
이에 시장에서는 조심스럽게 지난 반감기 때와 다른 양상의 흐름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시장 관계자는 “만일 현 수준에서 바닥을 다져준다면 가상자산 시장이 지난 반감기처럼 크게 급락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홍콩 당국의 비트코인 ETF 승인 건은 간단치 않은 이슈”라면서 “당장 시장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할지라도 중국인들의 비트코인 매수 열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보이고 그렇게 되면 시장의 외부 충격을 막는 버팀목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콩의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과 관련해서도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이다. 여기에는 가상자산에 대해 여전히 폐쇄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의 정책적 변화 조짐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가상자산 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중국이 관할권을 쥐고 있는 홍콩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현물 ETF 승인을 내주었다는 것은 본토에서도 가상자산 거래와 관련해 상황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홍콩 당국으로부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을 얻은 곳이 중국 최대 자산운용사 화샤기금과 보세라자산운용이라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게 한다.
싱가포르 소재 암호화폐 거래 업체 QCP캐피털은 홍콩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통해 아시아가 암호화폐 거래를 원하는 기관투자자들의 또 다른 글로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