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기 전부터 특별해요. 독특한 손잡이나 딸깍이는 문소리, 스페어 휠까지 어느 것 하나 미래지향적인 건 없지만 싫지 않거든.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랄까. 게다가 누구도 그걸 촌스럽다고 하지 않아요. 헤리티지나 럭셔리하다고 하지.”
10년 전 G-클래스를 구입해 금지옥엽, 애지중지 모시고(?) 있는 자동차 애호가 K의 설명이다. 수입사 대표이기도 한 그는 독일 출장에 나섰다가 현지 바이어가 타는 G-클래스를 보고 매료됐다고 한다. K는 “당시 그 바이어는 뭐 하나 특별하게 편하진 않지만 가치를 지키는 파수꾼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이 있다고 했다”며 “출시된 지40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각 잡힌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이라고 설명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오프로더 ‘G-클래스’가 인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대적인 마케팅이나 특별한 프로모션이 있는 것도 아닌데 꾸준히 팔린다”며 “벤츠의 라인업 중 진정 소리 없이 강한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이 말, 괜한 칭찬이 아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가 집계한 지난해 국내 판매량을 살펴보면 G-클래스의 누적판매량은 2169대나 된다. 벤츠의 마이바흐 S-클래스(1609대)나 GLS(844대), 테슬라의 모델X(1400대), 포르쉐의 파나메라(1826대)보다 높은 수치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
올해로 생산된 지 45주년이 된 G-클래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보디 온 프레임 타입 사륜구동 중형 SUV다. 1970년대 초 군용차로 주문받아 개발된 이 SUV는 1979년 민간용 차량이 출시되며 주목받기 시작한다.(지금도 세계 60여 개국에서 군용차량으로 쓰이고 있다.) G-클래스의 G는 독일어로 땅을 의미하는 겔렌데(Gelände).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주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담긴 제품명이다. 흔히 ‘G바겐(G-Wagen)’으로 불리며 오프로드 주행 마니아들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건 사실 할리우드 배우 등 이른바 셀러브리티들의 영향력이 컸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아널드 슈워제네거, 저스틴 비버는 이미 유명한 G바겐 오너. 최근엔 BTS의 멤버 정국의 차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부와 명성을 거머쥔 이들이 타고 등장하는 자동차에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 게다가 스타들의 일상이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자 의도치 않게 TV에 등장하는 횟수도 늘었다. 자연스레 판매량도 우상향했다.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은 4만 3450대. 전년 대비 16.5%나 성장한 수치다. 지난해 5월에는 글로벌 누적 생산 50만 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벤츠 측에선 “G-클래스는 S-클래스, E-클래스와 함께 메르세데스-벤츠 라인업 중 가장 긴 역사를 지닌 모델로 벤츠 SUV의 시작”이라고 소개한다. G-클래스는 첫 출시 이후 지금까지 각진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다. 견고한 외장 보호 스트립, 뒷문에 노출형으로 장착된 스페어 타이어, 보닛 모서리에 볼록 솟은 방향 지시등도 이 SUV를 상징하는 특별한 디자인 요소다. 현재 G-클래스의 디자인은 2018년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처음 공개된 3세대 모델. G-클래스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거친 모델로 당시 벤츠는 최첨단 보조시스템을 더해 보다 현대적인 오프로더를 완성했다. 경사로나 내리막길에서도 주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오프로드 감속 기어(Off-Road Reduction Gear), 네 바퀴 가운데 하나만의 접지력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3개의 100% 디퍼렌셜 록(Differential Lock) 등은 G-클래스의 주행성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기능이다.
그렇다면 과연 국내 시장에서 G-클래스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뭘까. 벤츠 측에서 보내온 답은 “고유한 디자인, 메르세데스-벤츠의 오랜 헤리티지, 최고의 주행성능과 안전성을 갖춘 모델로 오프로더의 정체성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골고루 갖춘 점이 오랜 시간 동안 탄탄한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은 이유”라는 것. 다소 교과서적인 답변에 살짝 실망했다면 G-클래스가 선보인 협업의 결과물을 살펴보자.
꽤 효과적인 마케팅 포인트가 된 다양한 예술 작품을 찾아볼 수 있는데, 우선 2020년에 디자인 총괄인고든 바그너가 루이 비통의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였던 고(故) 버질 아블로와 협업한 프로젝트 겔렌데바겐(Project Geländewagen)은 화려한 럭셔리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준 결과물이었다. 두 디자이너는 차의 실루엣을 도드라지게 보이기 위해 사이드 미러와 범퍼를 들어낸 채 외관 전체를 화이트 컬러로 완성시켰다. 스페어 타이어를 포함한 5개의 커다란 타이어에는 옐로 컬러로 ‘MERCEDES-BENZ’와 ‘GELANDEWAGEN’ 문구를 새겨 주목도를 높였다. 실내 역시 화려하다. 스티어링 휠은 포뮬러 원에서 사용되는 디자인과 비슷한 사각형으로 완성됐고, 다양한 컬러의 버튼이 탑재됐다. 버질 아블로는 당시 프로젝트 겔렌데바겐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메르세데스-벤츠는 럭셔리와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상징하는 브랜드”라며 “이는 미래가 어떻게 스타일리시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현대 아티스트들의 생각을 주입할 수 있는 완벽한 뼈대”라고 극찬했다.
지난해 2월 런던 패션위크에선 패션 브랜드 몽클레르와 협업한 쇼카 ‘프로젝트 몬도 G(Project MONDO G)’가 공개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기도 한 이 차량은 G-클래스에 몽클레르의 패딩을 입혀 각진 디자인과 직물 특유의 부드러운 라인을 극명하게 대조시켰다. 관람객의 가장 인기 높은 포토존이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예술작업에 마케팅을 접목한 성공사례다.
그런가 하면 국내 시장에선 한국 고객만을 위한 에디션도 출시됐다. G-클래스가 국내에 진출한 건 2012년. 벤츠코리아는 그동안 국내 G-클래스 마니아를 위해 고성능 버전인 AMG의 DNA를 반영한 ‘메르세데스-AMG G 63’의 에디션 모델들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2년에 새로운 G 마누팍투어(G manufaktur) 내·외장 컬러와 소재를 적용해 ‘메르세데스-AMG G 63 마그노 히어로 에디션’과 메르세데스-AMG 55주년을 기념하는 ‘메르세데스-AMG G 63 에디션 55’를 각각 115대와 85대만 한정 판매했다. 지난해에는 벤츠코리아 20주년을 기념해 ‘메르세데스-AMG G 63 K-에디션 20’을 단 50대만 한정판으로 공개했다.
국내에 출시된 모델은 2019년에 첫선을 보인 ‘메르세데스-AMG G 63’과 2021년에 선보인 ‘메르세데스-벤츠G 400 d’. 우선 메르세데스-AMG G 63은 메르세데스-AMG와의 협업을 통해 전륜 더블 위시본과 후륜 일체형 차축이 결합된 새로운 독립식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이전 모델 대비 10㎝ 향상된 70㎝의 도하 능력에 35°의 경사각에서도 주행이 가능하다. 메르세데스-벤츠 G 400 d는 3ℓ 직렬 6기통 OM656 디젤 엔진을 탑재해 최고 출력 330마력, 최대 토크 71.4㎏f·m의 성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자동차 애호가 K의 말을 빌리면 “요즘 최첨단의 편리한 기능들이 모두 탑재된 차들도 1억원이면 살 수 있는데, 1억원 후반부터 2억원 중반에 이르는 가격이 첫 번째 부담”이라는 것. K는 “그런데 메르세데스-AMG G 63의 연비가 5.6㎞/ℓ에 불과한 것이나 여전히 디젤 엔진에 기대고 있는 건 불만”이라고 전했다. 좀 더 그의 말을 전하면 “보디 온 프레임 차량이 내구성과 안전성이 좋고 오프로드 주행에 강력한 건 실제로 G-클래스를 통해 알 수 있는데, 반대로 무겁고 승차감이 만족스럽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불만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는지 올해 메르세데스-벤츠는 G-클래스의 순수 전기차 출시를 예고했다. 콘셉트 모델인 ‘콘셉트 EQG’는 지난 2021년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 바 있다. 아직 자세한 제원이 공개되진 않았는데,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4개의 전기모터를 탑재해 출력을 높였고,차체는 보디 온 프레임을 유지한다고 알려졌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