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증권가 스몰캡 애널리스트들이 애니메이션·게임 행사에 자주 갑니다. 애니플러스라는 기업을 좋게 보고 있거든요.”
최근 들어 콘텐츠업계와 증권가의 이목이 쏠리는 기업이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콘텐츠 수입·배급을 주력으로 하는 ‘애니플러스’다.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시장을 휩쓰는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 때문이다. ‘귀멸의 칼날’ ‘체인소 맨’ ‘스즈메의 문단속’ 등 새로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 안방과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애니플러스는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신작 애니메이션의 약 70%를 수입해온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단순한 수입 업체가 아니다. 확보한 판권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OTT 서비스와 굿즈 사업까지 벌인다. 수익 파이프라인이 탄탄하다는 의미다. 올해 4월에는 국내 2위 애니메이션 사업자인 애니맥스코리아까지 인수하며 외형을 키웠다. 업계 관계자들은 애니플러스가 독보적인 애니메이션 콘텐츠 기업이 될 것이라 입을 모은다.
일본 현지와 동시 방영으로 주목
애니맥스코리아 인수로 ‘최강자’ 등극
애니플러스 역사는 비교적 짧다. 본래 C&그룹 산하의 경제 채널이었던 생활경제TV로 시작했다. 이후 모기업의 유동성 위기로 인해 C&그룹이 해체되면서 변화를 겪었다. 제이제이미디어웍스(現 애니플러스 방송국 대주주)가 생활경제TV를 인수하며 장르를 애니메이션 채널로 전환했다. 이후 2009년 12월 7일 애니플러스라는 이름으로 개국했다.
후발 주자였던 애니플러스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전략은 ‘마니아물’과 ‘동시 방영’이었다.
당시 애니메이션 수입 시장은 CJ E&M의 투니버스와 대원미디어의 챔프 등이 압도적으로 앞서 있었다. 시장에서 인지도 높고, 인기 작품 판권을 다량으로 보유한 이들과의 정면승부는 무리였다. 애니플러스는 우회 공략을 택했다. 마니아는 많지만, 국내 정서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수입이 잘 되지 않던 애니메이션을 적극 수입했다. 이후 입소문을 타며 시청자가 대폭 늘었다.
일본에서 방영된 작품을 시간이 지나서 들여오던 업계 관행도 뒤집었다. 2010년대만 해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한 후 ‘더빙(한국 성우의 목소리를 입히는 것)’해 내보내는 게 원칙이었다. 더빙에 시간이 걸리다 보니 일본 현지에서는 이미 방영된 작품을 수입해 들여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애니플러스는 이런 원칙을 깼다. 일본 현지 성우 목소리에 자막만 빠르게 입혀 ‘동시 방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본에서 갓 나온 신작을 한국에서도 바로 볼 수 있다는 소식에 시청자가 몰렸다. 차츰 시장점유율을 높여갔다. 2020년대 들어 애니플러스는 일본 신작 애니메이션 수입·유통 물량의 70%를 배급하는 거대 콘텐츠사로 도약했다.
반일 감정이 사그라들고 일본 애니메이션 인기가 높아지면서 애니플러스 실적은 급증했다. ‘진격의 거인’ ‘주술회전’ ‘스파이 패밀리’ 등 애니플러스가 수입하는 TV 시리즈가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들 작품의 활약에 힘입어 애니플러스는 지난해 매출액 581억원, 영업이익 96억원을 기록했다.
외형도 적극 확장 중이다. 지난해 11월 애니메이션 전문 OTT 업체인 ‘라프텔’을 351억원에 인수했다. 라프텔은 약 5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내 애니메이션 전문 OTT 플랫폼이다. 최근 3년간 매년 100%가 넘는 매출 성장세와 함께 국내 OTT업계에서는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해왔다. 2022년 매출은 약 2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스트리밍 서비스인 라프텔까지 품으면서 애니플러스는 애니메이션 VOD(비디오) 시장에서 압도적인 강자로 올라섰다. 올해 4월에는 업계 2위인 ‘애니맥스코리아’까지 품에 안았다. 애니맥스코리아는 ‘귀멸의 칼날’ ‘체인소 맨’ 등 현시점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애니메이션 판권을 보유한 회사다. 현재 대략 일본 신작 애니메이션의 20% 가까이를 수입·유통한다. 두 기업 물량을 합치면 90%에 달하는 점유율이다. 김아람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애니플러스·애니맥스가 전체 일본 신작의 80~90%를 수입한다. (두 기업의 합병은) 구매력 상승에 따른 단가 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귀멸의 칼날’ ‘하이큐’ 등 인기 IP를 확보, 굿즈·콜라보 카페 사업도 본격화하면 시너지가 더 커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외형이 커지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계속되는 만큼 실적이 더 오르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2023년 애니플러스 실적에는 2022년 인수한 라프텔과 로운컴퍼니의 실적이 반영된다. 증권가는 올해 애니플러스가 매출 700억~1100억원, 영업이익 189억~231억원 수준을 거둘 것이라고 내다본다.
日 콘텐츠 수입으로는 한계 있어
종합 콘텐츠社로 도약 나선다
애니플러스가 일본 애니메이션 수혜를 ‘톡톡히’ 봤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일본 콘텐츠는 양날의 칼이다. 잘나갈 때는 탄탄한 수익을 보장해주지만, 일본에 대한 국민 감정이 험악해지는 순간 바로 매출이 떨어진다. 노노재팬 운동 기간 수입사들은 고난의 행군을 했다. 일본 콘텐츠에만 매달리면 위기가 찾아왔을 때, 회사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애니플러스는 ‘노노재팬’ 운동이 한창이던 2018~2020년 최악의 실적을 거뒀다.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에 그쳤다. 2020년 매출은 160억원,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애니플러스는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일본 콘텐츠’ 편중에 벗어난다는 계획이다. 콘텐츠 수입·배급에만 의존하던 모습에서 변화를 꾀한다.
우선 확보한 판권을 활용해 캐릭터 상품 판매, 콜라보 카페 사업에 적극 나선다. 캐릭터 상품 제작 판매는 자회사인 로운컴퍼니가 담당한다. 인형과 피규어, 컵 등 상품을 제작해 판매한다. 콜라보 카페는 카페에 ‘애니메이션 캐릭터’ 콘셉트를 입힌 매장이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음식과 음료를 팔거나, 매장 전체 인테리어를 애니메이션 풍으로 꾸민 카페다.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게는 ‘필수 방문 코스’로 유명하다. 이들 사업을 활용,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팬덤’의 소비력을 적극 끌어온다는 복안이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물 드라마 제작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자회사 ‘위매드’가 드라마를 만든다. 사업은 순항 중이다. 2021~2022년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옷소매 붉은 끝동’이 대표작이다. 올해는 2PM 출신 배우 옥택연을 주연으로 내세운 ‘가슴이 뛴다’가 방영된다. 드라마 제작 사업이 안착하면 회사의 주요 수익원으로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 시장까지 개척하는 게 목표다. 국내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동남아 시장이 첫 번째 타깃이다. OTT 서비스인 라프텔을 앞세워 동남아시아 7개국에 진출할 계획이다. 동남아 자체 OTT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사업을 병행한다. 자회사 플러스미디어네트웍스아시아(PMNA)가 콘텐츠를 동남아시아 시장에 공급한다. PMNA는 지난해 3분기 자회사 매출액 26억원, 영업이익률 40%를 달성하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바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8호 (2023.05.10~2023.05.16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