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그룹 등 유통 3사가 ‘오프라인 확대’에 방점을 찍고 쩐의 전쟁을 벌이기 위한 담금질 중이다. 3사가 향후 5년간 오프라인 확대에 쏟아붓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금액만 최소 20조원이 넘는다. 코로나19 사태는 당장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리오프닝 분위기와 함께 새 정부가 들어섰고 사회 전반적으로 유통 업황 회복이 가시화됐다는 판단이다.
특히 국내 백화점들의 오프라인 경쟁력은 단순히 ‘상품의 다양화’를 넘어 고객의 경험을 재설계하는 ‘체험형 콘텐츠 강화’가 핵심으로 꼽힌다. 따라서 각 지역의 기존 점포 리뉴얼과 대형 복합몰 건설 등이 필수적인 사업 비전으로 제시되는 모습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1층에 위치한 국내 최대 화장품 전문관.
▶롯데, 지점 리뉴얼·복합몰 건설에 8조원 투자
롯데그룹은 지난 5월 발표한 5개년 투자 계획안에서 8조1000억원을 유통사업군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의 대대적 리뉴얼과 함께 롯데마트의 특화매장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게다가 최근 오프라인 시장이 오락·쇼핑·숙박을 동시에 즐기는 체류형 복합공간으로 변하는 트렌드를 반영해 대규모 복합몰 개발도 추진 중이다.
먼저 롯데는 오는 2024년까지 백화점에만 총 2조3791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올해는 백화점 사업에 5467억원을 투자해 전면 재단장에 나선다. 2019년부터 시작한 소공동 본점 전관 리뉴얼 작업을 올해 내로 마무리하고, 잠실점과 강남점도 차례로 리뉴얼을 진행한다. 본점 1층과 2층, 지하 1층 명품 매장 등은 세계적 건축가로 국내에서는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설계한 건축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컨설팅까지 받아 재단장 중이다. 그동안 ‘프리미엄’보다는 ‘대중적’이라는 이미지에 익숙한 롯데백화점의 이미지 전환에 무게를 두는 것이다.
롯데마트는 점포 리뉴얼에만 1조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점포를 늘리는 것보다 기존 점포의 리뉴얼이 매출 상승효과가 있다는 것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재작년 12개 점포를 폐점하는 등 규모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가 지난해 리뉴얼로 방향을 틀었고, 앞으로 이같은 기조를 더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말 서울 잠실의 롯데마트 잠실점을 재단장해 선보인 ‘제타플렉스’와 경남 창원에 문을 연 창고형 할인점 ‘맥스’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제타플렉스는 1층 영업면적의 70%에 달하는 주류전문매장 보틀벙커 등 마련에 힘입어 올해 1~5월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20% 넘게 증가했다.
롯데는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는 대규모 복합 쇼핑몰 개장에도 수조원을 들일 예정이다. 위치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부지와 인천 송도 지역이다. 상암 복합몰은 ‘서울 서북상권 최대 쇼핑몰’, 롯데몰 송도점은 ‘도심 속 리조트형 쇼핑몰’을 목표로 내걸었으나 십 년 넘게 사업이 표류해왔다.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잠실점.
서울 상암 복합몰 개발은 롯데그룹의 대표적인 숙원사업으로 꼽힌다. 2013년 롯데가 서울시의 복합쇼핑몰 특별계획구역인 상암DMC 2만644㎡ 부지를 1972억원에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서울시가 골목상권 상생 방안을 수차례 요구하면서 난항을 겪어왔다. 지난해에서야 비로서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서 착공이 가능해졌다. 송도 롯데몰 개발은 복합쇼핑몰과 오피스텔을 2019년까지 동시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는 오피스텔만 조성돼있다.
롯데는 복합몰이 조성되면 인근 상권 매출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동반성장의 키워드도 함께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유통학회는 스타필드시티 위례가 문을 연 지 1년 만에 반경 5㎞ 내 상권 매출이 이전보다 6.3%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신세계, 백화점 신설과 보완에 11조원
신세계는 향후 5년간 백화점 재단장에 3조9000억원, 이마트 트레이더스 출점과 리뉴얼 등에 1조원, 스타필드 신규 출점에 2조2000억원 등 1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신세계는 올해 4월 IFC몰 인수전에서는 실패했으나, 인수 대금만 4조원을 제시하면서 오프라인 확대를 위한 투자 기조를 명확히 했다. 이미 신세계는 오프라인 매장 리뉴얼로 프리미엄 이미지 강화와 함께 매출 증대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2016년 강남점 본관 증축과 전관 리뉴얼 공사를 거쳤고, 서울 최대 규모 백화점으로 재탄생했다. 지난해 신세계 강남점은 매출 2조5000억원에 육박한 실적을 내면서 3년 연속 매출 2조원을 돌파하고, 5년 연속 백화점 매출 1위에 올랐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신세계는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통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백화점 사업에 총 1조1331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목표를 내걸기도 했다. 백화점 사업에 쓰이는 3조9000억원은 대규모 점포 신설과 기존 점포 리뉴얼에 쓴다. 대부분의 자금은 2027년 수서역 환승센터에 위치하는 신설 점포 개발에 쓰일 예정이다.
신세계 강남점.
수서역 환승센터 사업은 SRT 수서 역세권 내 11만5927㎡ 부지에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업무 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로, 사업 규모만 약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영업면적만 약 8만3000여㎡(약 2만5000평)로 신세계 점포 중 최대 규모인 강남점(영업면적 8만6500㎡)에 이어 매머드급 점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 측은 “수서역 환승센터는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 땅’으로 꼽히는 곳으로,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동남부의 핵심 상권이 될 만한 잠재력이 매우 큰 입지적 장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마트에 들이는 1조원은 몰 타입, 그로서리 강화 매장 등 고객 니즈에 맞춘 리뉴얼 투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리뉴얼 전략은 실제로 매출 증대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년 전 리뉴얼을 마치고 재오픈한 월계점은 올해 4월 매출이 리뉴얼 직전인 2020년 4월보다 약 114% 늘었다. 리뉴얼 이전 월계점의 매출은 이마트 전체 점포 중 5위권 안팎이었으나, 리뉴얼을 마친 뒤에는 전국 점포 중 매출 1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이 밖에도 신세계 프라퍼티가 진행 중인 스타필드 수원·창원·청라 출점 등에 2조2000억원이 투입된다. 자산개발 목적인 화성 테마파크 사업과 복합개발사업에도 4조원을 배정했다.
▶‘더현대’로 오프라인 투자 과실 거두는 현대百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서울 여의도에 ‘더현대 서울’로 오프라인 승부수를 띄웠던 현대백화점은 매출 증대의 결과를 손에 쥐었다. 더현대 서울은 지난해 2월 문을 연 뒤 1년 동안 8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연매출 1조원 달성을 코앞에 뒀다. 특히 상대적으로 온라인이 약하다고 평가받았던 현대백화점은 경쟁사들이 온라인에 사활을 건 상황에서도 나 홀로 오프라인 투자를 진행해 결과에 눈길이 쏠렸다.
더현대 서울은 상품 판매 공간을 의미하는 ‘매장 면적’을 줄이는 대신, 고객들이 편히 휴식하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고객 동선도 넓혔다. 규모가 비슷한 현대백화점 판교점과 비교해도 매장의 70% 수준만 채우고, 나머지 30%는 실내 조경이나 고객 휴식 공간 등으로 구성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조경 공간의 면적은 의류 매장 170개를 입점시킬 수 있는 크기와 같은데, 서울지역 현대백화점 의류 매장 한 곳당 연매출이 평균 10억원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연간 1700억원의 매출을 포기한 것”이라며 “하지만 이를 통해 고객이 직접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더 많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고객들이 방문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전략에 기인해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현대 서울에 방문해왔고, 올해 들어 리오프닝 분위기가 펼쳐지자 ‘핫플레이스’로 완벽하게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현대백화점은 광주광역시에 ‘더현대 서울’과 같은 문화복합몰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광주에는 현재 스타필드와 같은 대기업 복합 쇼핑몰이 없고, 올해 1월 롯데쇼핑이 개장한 창고형 할인점 맥스가 유일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복합몰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광주시에 복합몰 건립은 사회이슈가 되기도 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7월 부동산 개발 기업인 휴먼스홀딩스 제1차PFV와 함께 광주 북구 일대 옛 전남방직·일신방직 공장부지 약 31만㎡(약 9만 평)에 미래형 문화복합몰 ‘더현대 광주(가칭)’를 열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형 문화복합몰에 대해 “백화점, 대형마트 등 유통 소매점을 중심으로 결합된 지금의 복합쇼핑몰과는 구분되는 개념”이라며 “쇼핑과 더불어 여가, 휴식,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문화체험이 접목되는 새로운 업태로, ‘더현대 광주’가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휴먼스홀딩스 제1차PFV는 ‘더현대 광주’ 인근에 엔터테인먼트형 쇼핑몰, 국제 규모의 특급호텔, 프리미엄 영화관 등을 추가 유치하고 인근의 기아타이거즈 홈구장인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와 연계해 ‘야구인의 거리’를 만들 예정이다. 또 방직산업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공원’도 조성해 이 일대를 쇼핑과 문화, 레저, 엔터테인먼트를 접목한 테마파크형 복합쇼핑몰로 개발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더현대 광주’를 중심으로 하는 테마파크형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 150만 명 인구의 대도시임에도 문화·유통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광주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약 2만20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윤 대통령의 공약 제시 이전부터 ‘더현대 광주’ 건립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신규 복합몰 조성에 1조원가량의 예산이 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더현대 서울’의 실내 정원 ‘사운드 포레스트’ 전경.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서울의 성공 방정식을 기반으로 광주 복합몰을 성공시키는 한편 대구점에도 적용해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대구점은 오는 12월 더현대 대구로의 전환을 앞두고 개편 작업이 진행 중이다. 대구에서는 2016년 세운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이 지난해 연 매출 1조원(1조1939억원)을 돌파하며 지역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더현대 대구는 젊은 고객들을 위한 체험형 백화점으로 전환해 지역 MZ세대를 공략할 계획이다. 올해 5월 지하 1~2층에 위치한 젊은 층 특화 매장 유플렉스를 리뉴얼했고, 6월엔 식품관을 개편했다. 스페인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과 함께 식당가가 위치한 8~9층도 새단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