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1일 막을 내린 제33회 파리올림픽은 ‘마케팅 올림픽’이라 불릴 만큼 글로벌 기업들의 장외전이 치열했다. 파리 시내 곳곳의 빌딩과 지하철역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브랜드들의 커다란 광고판이 즐비했다. 그 중 내로라하는 스포츠 스타가 등장하는 ‘나이키(NIKE)’ 광고도 시선을 끌었다. 최근 수년간 실적 부진의 굴레에 빠진 나이키는 파리올림픽 이후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승자의 자리’에 복귀를 꿈꾸고 있다. 파리올림픽 전 나이키가 공개한 ‘Winning Isn’t For Everyone’이란 캠페인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과연 나이키는 그들의 바람대로 다시 승자가 될 수 있을까.
나이키의 역사는 1957년 미국 오리건 대학의 운동선수 필 나이트와 코치 빌 바우어만의 만남에서 출발한다. 러닝화에 대한 관심이 유별났던 두 사람은 1964년 의기투합하며 블루리본 스포츠(BRS)를 설립했다. 초창기엔 아식스의 신발 브랜드 오니츠카타이거를 유통했지만 1971년 자체 신발 생산 라인을 구축하며 사명을 승리의 여신 ‘니케’의 영어식 발음, 나이키로 바꿨다. 스우시(Swoosh) 로고가 탄생한 것도 이 시기다. 이후 나이키는 당시 업계 선두였던 아디다스를 넘어서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970년대 미국에 조깅 붐이 일자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뒷짐지고 있던 아디다스와 달리 발 빠르게 조깅화를 출시한 일화나 마이클 조던의 미래에 베팅하며 마침내 아디다스를 넘어선 사건은 지난해 맷 데이먼과 벤 에플렉이 출연한 영화 ‘에어’로 제작되며 회자되기도 했다. 그것만? 스포츠용품 브랜드로 시작한 나이키의 위상은 이후 성장을 거듭하며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한다. 엘리트 선수 중심의 스포츠용품 시장을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인 시장으로 넓힌 것도 나이키였다. 국산 스포츠 브랜드의 한 마케팅 담당자는 “나이키의 에어쿠션 같은 기술이 아디다스나 푸마, 리복에 비해 압도적인 게 아닌 상황에서 글로벌 1위에 오른 건 대중을 사로잡는 나이키 문화 때문이었다”며 “나이키를 신고 입으면 남과 다르다는 우월감이 브랜드 성장을 견인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1988년에 처음 등장한 캠페인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은 1980년대 미국의 경제적 난관을 극복할 문구로 부상하며 지금까지도 친근한 문화코드가 됐다”고 덧붙였다.
36년이 지난 현재,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의 성과는 어떨까. 노출 횟수만 놓고 보면 일단 합격선이다. 파리올림픽 폐막 이후 소셜 동영상 분석 플랫폼 ‘튜블러(Tubular)’가 발표한 ‘올림픽 관련 콘텐츠를 올린 글로벌 기업 톱 5’의 유튜브 조회수를 살펴보면 나이키의 광고가 다섯 번째로 집계됐다. 올림픽 개회 전부터 90일간 올림픽을 주제로 한 글로벌 브랜드의 캠페인과 올림픽 관련 콘텐츠의 조회수는 총 2억 2900만 건. 나이키의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승자의 자리’ 캠페인은 2250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오메가, 비자, 구글, 삼성에 이어 스포츠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순위에 올랐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러닝화에 집중하며 신제품 개발에도 전력을 다했다. 올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나이키 온 에어(Nike On Air)’ 행사에선 총 13가지 제품으로 구성된 블루프린트팩을 공개했다. 마틴 로터 나이키 최고 디자인 책임자는 “파리올림픽을 위해 나이키가 이뤄낸 것은 선수들을 위한 혁신뿐만 아니라 현재 나이키가 새로운 여정의 시작점에 있다는 것”이라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국내 유통업계의 한 임원은 “올림픽에서의 선전으로 그 동안의 위기를 반전시키겠다는 의미”라며 “그 만큼 나이키의 위기가 쉽지 않다는 상황이라는 방증”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의 월가에선 나이키의 실적 부진을 2020년에 선임된 존 도나호 CEO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베이 출신인 도나호는 부임 이후 백화점, 스포츠 편집매장, 이커머스 등 도소매상과의 계약을 줄이고 자사몰과 직매장을 중심으로 판매에 나섰다. 브랜드가 직접 판매에 나서 수익을 높이고 소비자의 데이터도 오롯이 확보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획기적이라 생각했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나 줄었고, 소비자 불만도 속출했다. 유통업계 일각에선 “누구나 그렇게 하면 매출이 껑충 뛸 거라 생각하지만 여러 제품을 비교하고 구입하는 소비자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판매방식”이란 말도 나왔다. 2021년 한때 160달러대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70달러대까지 추락하더니 8월 중순 현재 8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나이키의 실적은 제자리걸음이란 말도 나온다. 지난해 연간 매출은 513억 6200만달러, 당기순이익은 57억 달러였다. 전년 대비 각각 0.3%, 12.4% 늘었다. 2021년 순이익은 60억 4600만달러. 이듬해인 2022년엔 50억 7000만달러로 16.1%나 감소했다. 실적이 신통치 않으니 주가도 부실하다. 지난 6월 28일엔 전날 대비 19.98%(18.82달러)나 급락한 75.37달러로 거래를 마친 후 장외시장에서 10%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2024년 회계연도 4분기(3~5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한 126억달러에 그쳤다는 실적 발표가 몰고 온 파장이었다. 나이키는 2025년 회계연도 1분기(6~8월) 매출 전망도 약 10% 하락할 거라 발표하며 실적 쇼크를 부채질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나이키가 한정판 운동화 등에 주력하며 러닝화 부문에서 경쟁 업체에 입지를 내줬다”고 지적했고, 로이터통신은 “경쟁 업체인 아디다스에 밀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나이키의 현 상황에 대해 “무엇 하나 좋은 게 없다”고 평가한다. 특히 신발, 의류, 액세서리 등 세 가지 사업 부문 중 약 70%의 비중을 차지하는 신발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 아디다스가 레트로 트렌드를 이끌며 ‘가젤’ ‘삼바’ 등 과거 제품을 복기하는 동안 이렇다 할 히트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하락 요인이란 설명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WSJ은 “나이키가 신생기업들에 시장점유율을 내주며 침체되고 있다”며 “러닝 문화의 붐을 놓쳤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호카, 온러닝 등 규모는 작지만 전문적인 브랜드들이 러닝 시장에서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나이키는 2022년 베스트셀러인 ‘덩크 로우’를 출시한 이후 이렇다 할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시즌마다 내놓는 히트아이템이 ‘한정판’으로 인식되며 리셀러들의 표적이 되고, 그들에게 웃돈을 주고서라도 꼭 사야 할 아이템이란 공식은 다소 희미해졌다. 결국 “소비자의 니즈를 놓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앞서 언급한 아디다스, 호카, 온러닝 등의 선전도 나이키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호카는 러너들에게 이미 친숙한 브랜드다. 편안한 착화감이 강점. 기술력에 대한 신뢰가 대중에게 전파되며 시장에 안착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온러닝의 공동 창업자 올리비에 베른하르트는 철인 3종 경기 선수 출신이다. 관절에 무리가 없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러닝화를 고민하다 ‘클라우드’란 제품이 인기를 얻으며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나이키는 어떻게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이키가 쌓아온 인기 요인을 살펴보면 첫째, 힙한 브랜드 이미지와 라이프스타일, 둘째,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 셋째, 꾸준한 히트상품으로 요약된다. 과연 반전은 가능할까. 최근 로이터통신은 웹 트래픽 모니터업체 시밀러웹의 조사에 기반해 “나이키가 올림픽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밀러웹에 따르면 올림픽 첫 주인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1일까지 주요 스포츠 브랜드의 웹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나이키와 푸마는 방문자 수가 증가한 반면 아디다스와 호카, 온러닝은 전주 대비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 미국 올림픽팀과 패럴림픽팀의 공식 후원사인 나이키의 방문자 수는 미국 여자체조팀의 시몬 바일스가 7번째 메달을 딴 7월 31일 200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 중 8만6000여 명이 직접 제품까지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8호 (2024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