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스타일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는 온라인상에서 ‘릴레이 베이커리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다. 푸딩 맛집으로 알려진 ‘코코로카라’와 광주의 유명 디저트 브랜드 ‘코코로나인’이 참여한 이 온라인 팝업은 매일 100% 완판을 기록하며 SNS상에 ‘온라인 디저트 성지’로 알려졌다. 행사기간 에이블리의 푸드 거래액은 전월 동기 대비 무려 45%나 늘었다. 이 플랫폼에서 먹을거리를 처음 구매한 고객도 20%가량 증가했다. 주고객층은 2030연령층이 90%를 차지했다. 코코로나인 관계자는 “1시간 만에 3일치 준비 물량을 완판했다”며 “단기간에 양질의 리뷰를 1000개 이상 확보해 고객 반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성과였다”고 전했다.
# 지난 4월 말, 페라리를 수입하는 FMK가 부산 해운대의 더베이101에서 ‘페라리 데이’를 진행했다. 럭셔리카의 대명사라 불리는 페라리의 인증 중고차를 전시하는 팝업 스토어에 부산과 경남지역 고객 약 100여 명이 참석해 ‘812GTS’ ‘SF90 스파이더’ ‘SF90 스트라달레’ ‘F8 트리뷰토’ ‘296 GTB’ ‘포르토피노 M’ ‘488 스파이더’ 등 대표 차종을 직접 확인하고 전문 인스트럭터와 함께 시승했다. 부산지역 딜러사의 한 임원은 “수도권 외 지역의 젊은 부유층이 100명이나 한자리에 모였다는 게 놀라웠다”며 “반짝 차려진 특별한 팝업이 MZ고객의 눈길을 끌었고 브랜드의 관심이 더해지며 모객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 올 초 루이 비통은 4번째 팝업 레스토랑 ‘우리 루이 비통’을 운영했다. 한식의 대모라 불리는 조희숙 셰프를 비롯해 ‘온지음’의 조은희·박성배 셰프,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리제’의 이은지 셰프 등 국내 최정상 셰프들이 참여해 코스 구성뿐만 아니라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각 메뉴를 함께 개발했다. 조희숙 셰프는 “셰프들 각각의 색채를 드러내기보다 서로의 결을 맞추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메뉴를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예약제로 진행된 팝업 레스토랑은 서울 청담동에 자리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진행됐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한식의 거장이라 평가받는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인 게 우선 화제였지만 사실 그 음식을 즐기기 위해 루이 비통을 찾아야 한다는 게 포인트”라고 전했다.
말 그대로 반짝 들어서고 후딱 사라지는 팝업스토어가 여전히 인기다. 다양한 모양새와 형식의 팝업이 서울의 핫플레이스인 성수, 홍대, 강남, 도산, 가로수길, 연남 등지에 매일 새롭게 등장하고 사라진다. 몫 좋은 동네는 이미 수 개월치 예약이 꽉 차 있다. 백화점 내 팝업스토어도 사정은 마찬가지. 실제로 팝업의 성지라 불리는 서울 성수동의 연무장길에선 월 평균 100개 이상의 팝업스토어가 열린다. 덕분(?)에 2019년 ㎡당 10만원이던 대관료는 최근 25~30만원대로 껑충 올랐다. 뚝섬역 주변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3층 규모에 마당이 있는 건물에서 팝업스토어를 열려면 하루 2500만원 이상의 임대료를 감당해야 하는데 하겠다는 브랜드가 줄 서 있다”고 귀띔했다.
줄서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 매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출에 있다. 일례로 백화점에 입점한 최상위 패션브랜드의 월 매출은 3억∼4억원대. 더현대서울의 인기 팝업스토어의 경우 1~2주 운영 기간에 매출 10억원을 넘기기도 했다. 여기에 오픈런과 입소문이 뒤따른다.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브랜드가 패션, 푸드, 문화를 넘어 금융 분야까지 확대되는 이유다.
팝업스토어는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의미의 ‘팝업(Pop-Up)’과 가게나 매장을 뜻하는 ‘스토어(Store)’의 합성어다. 200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다. 당시엔 브랜드를 시장에 내놓기 전 임시 매장을 세워 소비자의 반응을 관찰하는 역할을 했다. 초기 팝업스토어는 최소한의 인테리어만 한 채 가판대 위에서 제품을 팔았기 때문에 투박하고 초라했다. 그러던 임시매장에 패션이 접목되며 화려함이 더해진다. 그리고 그 화려함에 소비자의 시선이 멈추자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첫 팝업스토어는 패션브랜드였다. 2009년 제일모직의 ‘구호(KUHO)’가 선두주자였다. 트렌드에 민감한 브랜드들은 팝업스토어란 공간에 주목한다. 짧은 시간에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대중적인 브랜드부터 럭셔리 끝판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로 브랜드를 무장한 후 팝업스토어에 데뷔했다. 루이 비통은 한식을,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 대신 고즈넉한 정원에서의 휴식을 내세워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팝업스토어는 벽에 설치된 수화기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결과는 완판으로 돌아왔다. 일부 팝업스토어는 럭셔리 매장에서나 볼 수 있던 오픈런까지 생겼다. 그런가하면 침대가 주상품인 시몬스는 침대 대신 ‘삼겹살 모양 수세미’ ‘햄버거 모양 포스트잇’ ‘이천 쌀 패키지’ ‘형형색색 농구공’ 등 이색적인 굿즈를 판매했다. 부산에선 로컬 수제 햄버거 가게 ‘버거샵’과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발란사’, 호텔 세리토스, 케즈 등과 협업해 감각적인 공간을 구성했다. 이른바 ‘침대 없는’ 시몬스의 팝업스토어는 색다른 경험과 신선한 재미를 중요시하는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팝업스토어 기간 중 누적 방문객 수는 20만 명. 최저 1000원대인 굿즈의 매출은 약 11억원에 이르렀다. 김성준 시몬스 브랜드전략부문 부사장은 “매트리스(침대)는 매일 소비하는 게 아니라 구매 주기가 긴 가구인 만큼 수시로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브랜드와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나아가 팬덤까지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젊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계속 상기시키며 팬이자 고객으로 전환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전했다. 마케팅 컨설팅업체 디트리스의 조명광 대표는 관련 저서에서 “팝업스토어가 최근 더 이슈가 된 건 온라인 상점 발달의 반작용”이라며 “온라인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과 감정을 오프라인 팝업스토어에서 느낄 수 있도록 시도하는 브랜드들이 생겨났고 이에 호응하는 소비자들이 팝업스토어에 몰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물론 모든 기업이나 브랜드의 팝업스토어가 성공하거나 회자되지는 않는다”며 “MZ세대와 잘파(Zalpha)세대의 마음을 잡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K-팝업의 위상은 해외에서도 기세를 올리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지난 5월 일본 도쿄 파르코백화점 시부야점에 개설한 ‘더 현대 글로벌’ 팝업스토어는 단 한 달만에 매출 13억원을 넘어섰다. 당초 목표를 50%나 넘어선 수치다. 파르코백화점 팝업스토어 중 매출 기준으로 역대 1위 기록이다.
현대백화점 측은 “다양한 체험 콘텐츠를 앞세운 운영 노하우와 일본 내 K-콘텐츠 열풍이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올 초 더현대 서울은 태국의 리테일 그룹 시암 피왓과 업무협약을 맺고 오프라인 매장 기획과 운영 방식 등을 전수하고 있다. 시암 피왓이 이색적인 팝업스토어와 매장 구성 등 개장 2년 9개월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넘어선 더현대 서울의 성공 공식에 주목했다는 후문이다. 롯데쇼핑이 선보인 베트남 최대 쇼핑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에서도 한국식 팝업스토어가 인기다. 잠실 롯데월드몰의 팝업 DNA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826㎡(250평) 규모의 실내 아트리움 광장과 1653㎡(500평)대의 야외 분수광장에서 현지 최초로 초대형 팝업스토어를 선보이며 ‘팝업=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라는 공식을 각인시켰다.
팝업 누적 방문객만 100만 명, 팝업 1회당 평균 방문객은 3만 명이 넘는다. 최고 방문객을 기록했던 지난해 연말 샤넬 뷰티 팝업에는 약 10만 명의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롯데쇼핑 측은 “팝업에 복합 쇼핑 경험을 제공한 게 주효했다”며 “상품뿐만 아니라 메이크업쇼, 포토존, 기프트 제공 등 체험형 콘텐츠를 접목한 것이 발길을 끌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개장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올 1월 누적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6월엔 2000억원을 넘어섰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꼽는 팝업스토어의 장점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 형성.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바이럴(입소문) 마케팅까지 유도한다는 것이다. 둘째, 낮은 비용으로 시장 진입 가능성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2개월가량 운영해 고정적인 매장보다 적은 비용으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제품 출시 전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의 소비행태를 마케팅에 반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공을 위한 첫 단계는 무엇일까. 명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데믹 이후엔 온라인 시장의 한계를 보완하고 오프라인 시장의 강점을 살려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대세였다”며 “하지만 올 들어 높아진 팝업스토어의 임대료에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에서의 팝업스토어도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소비자가 직접 상품을 경험해보고 구매할 수 있는 방식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인데, 우선 그 부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유명 브랜드나 아이돌들의 굿즈 관련 온라인 팝업스토어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배일현 협성대 유통경영학과 교수는 “주 소비층인 MZ세대는 자신의 취향이나 주관이 확고하고, 소비 측면에서도 뚜렷한 소비 기준을 보이며 그에 따라 브랜드를 선택한다”며 “MZ세대와 얼마나 친밀하게 소통하고, 그들의 취향을 반영하느냐에 따라 미래 브랜드의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