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뙤약볕에 해수욕? 그건 아빠가 네 나이 때나 하던 일이지. 그게 벌써 30여 년 전이다.”
“다를 게 뭐 있어요. 원래 해수욕이 그런거잖아.”
“그때는 지금처럼 40도 어쩌고 하지 않았거든. 습하지도 않았고. 요즘은 해수욕보다 이렇게 바닷가를 거니는 게 바캉스 트렌드라던데?”
“잉, 아빠가 나보다 더 트렌디하다고? 음… 휴가비는 아빠가 다 냈으니 인정. 오늘 저녁도 쏜다면 완전 인정!”
저녁 7시를 넘긴 시각. 해운대 해수욕장주변을 산책하던 중년부부와 20대 딸의 수다 중 한 대목이다. 그런데 잠깐. 해수욕보다 바닷가를 거니는 게 트렌드라고? 글쎄…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통계나 논리적인 설명은 부족하지만 한 여름 부산 해운대의 피서법 중 하나는 밤 바닷가 산책이 맞다. 실제로 저녁 7시 반 무렵 해가 뉘엿뉘엿 수평선으로 사라지면 해운대 이벤트 광장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들이 훌쩍 불어난다.
반은 해운대에 즐비한 맛집을 찾아 나선 이들이요, 또 반은 밤바다를 즐기러 나온 마실족이다. 어느 쪽이든 해운대에 도착하면 우선 바다로 나선다. 후끈하던 한낮의 바람은 신기하리만치 시원하다. 그래서인지 동백섬 초입의 둑 위에는 하나둘 낚시꾼들이 모여든다. 그 모습이 정겨워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일렁이던 바다가 형형색색으로 물들어있다. 이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밤 산책의 묘미 중 하나. 한국을 대표하는 마천루 마린시티의 야경이 바다에 출렁이면 낭만은 깊어지고 감흥은 배가된다. 그러니 어찌 아니 나설 수 있을까.
해운대에서 출발해 동백섬을 지나 마린시티로 들어서는 길은 갈맷길 2-1 구간의 하이라이트다. 가장 많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볼거리, 먹을거리도 가장 많다. 프랑스의 어느 영화감독이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어쩌면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일지도. 우선 해운대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동백섬은 부산 야경의 1번지다. 주변의 높고 낮은 빌딩과 누리마루, 광안대교가 연출하는 광경은 백이면 백, 지나는 이들의 휴대전화에 담긴다. 이곳만이 아니다. 더베이101을 지나 시작되는 ‘영화의 거리’로 들어서면 누구랄 것도 없이 포즈를 취하거나 휴대전화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춘다. 눈앞에 펼쳐진 광안대교 전경이 만들어낸 이채로운 현상이다. 영화의 거리에는 부산에서 촬영했던 영화의 포스터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촬영장면을 재현한 조형물과 배우들의 핸드프린팅도 자리했다. 야간 조명이 켜지면 좀 더 그윽한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광안대교에서 반짝이는 조명이 바다에 비치면 거리가 살짝 보랏빛으로 물든다. 이 모든 광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마린시티 주상복합 건물에 자리한 레스토랑과 카페다. 1층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해외 명승지가 부럽지 않다.
해안도로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러닝을 즐기는 이들이 여럿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간편한 복장에 러닝화를 신고 뛴다. 해운대에서 마린시티를 거쳐 수영만 요트경기장으로 이어지는 약 4㎞의 길은 주말이면 산책과 러닝을 즐기는 이들로 붐빈다. 특히 수영만 요트경기장은 운동을즐기는 이들이 많다. 농구장 주변을 잘파세대가 점령(?)했다면 그 옆 공터에는 뛰기 전 몸 풀기 운동에 나선 직장인 크루들이 종종 눈에 띈다. 물론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도 여럿인데, 온라인으로 광안리 야경투어를 신청한 이들의 줄도 길게 이어진다.
여기서 잠깐, 부산의 야경이 이처럼 다채로운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요트경기장에서 만난 부산 토박이 할아버지는 이렇게 정의했다.
“부산은 산이 40%, 해안 평지가 30%, 들판이 30%야. 산에 아파트 짓고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바닷가에서 바라보면 그게 야경인거지. 여긴 그나마 평지인데, 1986년 아시안 게임 때 수영만이 조성됐고, 마린시티는 2019년에 완공됐으니 야경 정도는 고려했겠지. 안 그렇겠어?”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7호 (2024년 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