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대명사.’ 20세기 소니(SONY)의 수식어는 화려했다. ‘놀라운 기술’ ‘간결한 디자인’ ‘풍부한 사용자 경험’ 등 현재에도 유효한 혁신 요소가 모두 소니의 제품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워크맨이 이끈 트렌드의 아이콘은 과거의 영광이 됐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니의 성공을 의심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자사의 전자제품을 서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을 때에도 우려보단 부러움의 목소리가 컸다.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는 소리 없이 찾아왔다. 이후 10여 년간 TV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워크맨이 주도하던 카세트 플레이어는 MP3에 이은 스마트폰의 등장에 고꾸라졌다. 2010년 이후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스마트폰 영역에서 소니는 희미했다. 절치부심(切齒腐心)은 디지털이미징사업부에서 시작됐다. 카메라와 이미지센서 기술로 다시금 혁신의 대명사가 되기 위해 이를 갈았다. 2000년대 중반, 소니는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에 뛰어든다.
늘 시장을 선도했던 소니는 이번엔 한참 뒤처진 후발주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소니가 성공할 거란 예측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저만치 앞서 있는 캐논과 니콘, 양대 산맥의 높이가 어마어마했다. 당시 양 사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약 70%. 무한도전이란 말이 어울렸다. 그런데 이후 10년간 또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2010년 미러리스 카메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소니는 2014년에 DSLR을 포함한 국내 풀프레임 렌즈교환식 시장에서 캐논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린다. 특히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4년간 순위에서 굳건히 1위를 수성하고 있다. 다시금 트렌드가 된 소니. 그 이유가 뭘까.
사실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상용화해 출시한 건 소니였다. 1997년 출시한 소니의 디지털카메라를 보고 캐논과 니콘, 올림푸스, 삼성전자까지 뛰어들며 시장이 형성됐다. 새로운 시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이 또한 스마트폰의 등장에 고꾸라진다. 이 시점에 소니는 1985년 세계 최초로 35㎜ AF SLR 카메라 ‘알파 시스템’을 개발한 미놀타를 인수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세계 최고의 렌즈 전문 기업인 독일의 칼자이스와 기술 제휴도 성사시켰다. 미놀타의 렌즈교환식 카메라에 칼자이스의 렌즈, 여기에 디지털 기술을 더한 소니의 뒷심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DSLR 시장에서 캐논과 니콘의 아성은 막강했다. ‘인물은 캐논’ ‘풍경은 니콘’이란 말이 공식처럼 안착된 시장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미러리스’였다. 소니는 말 그대로 ‘미러’를 제거한 카메라, ‘미러리스 카메라’를 개발하며 승부수를 띄운다. 소니는 이 분야에 자신이 있었다. ‘작고’ ‘가볍고’ ‘고급스러운’ 제품은 소니가 하던 방식이었다. 여기에 ‘렌즈도 갈아 끼울 수 있는’ 기능을 더했다. 2009년 6월 올림푸스가, 2010년 1월 삼성전자가 먼저 자체 기술로 개발한 미러리스 카메라를 선보였지만 2010년 6월 출시한 소니의 카메라에는 DSLR 수준의 센서가 내장돼 있었다. 미러만 없을 뿐 DSLR과 다르지 않다는 입소문에 젊은 층의 시선이 몰렸다. 그리고 소니의 질주가 시작된다.
2010년대 초반 소니는 캐논, 니콘과 함께 글로벌 카메라 시장의 삼강체제를 구축한다. 2013년 10월에는 미러리스 브랜드 NEX를 기존 DSLR 브랜드인 알파(α)로 통합하며 미러리스 최초로 풀프레임 센서를 장착한 α7과 α7R을 출시했다. 당시 광고 문구는 ‘미러리스의 추월’. 2014년 12월, 소니는 국내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에서 처음으로 캐논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소니는 국내 시장에 렌즈교환식 카메라 알파(α), 브이로그 카메라 ZV 라인, 시네마 라인 등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2006년 출시된 ‘알파(α)’는 전문가를 위한 성능과 조작성을 갖춘 고급기부터 사진애호가를 위한 중급기, 일반 사용자의 촬영 패턴에 맞춘 보급기 등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특히 2022년 국내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52%(금액 기준)를 기록하며 1위를 기록했다. ‘ZV’는 이름처럼 Z세대를 위한 브이로그 카메라다. 영상 콘텐츠를 통해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요즘 세대를 겨냥했다.
콤팩트한 사이즈에 브이로그를 위한 다양한 촬영 모드를 제공하며, 2020년 ‘ZV-1’을 시작으로 2021년 APS-C타입 렌즈교환식 카메라 ‘ZV-E10’, 2022년 20㎜의 넓은 화각을 탑재한 ‘ZV-1F’, 2023년 첫 번째 풀프레임 브이로그 카메라 ‘ZV-E1’, 올인원 브이로그 카메라 ‘ZV-1M2’까지 다양한 제품군으로, 또 브이로그 시장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시네마 라인’은 풀프레임 이미지센서와 놀라운 감도로 편리한 휴대성과 성능을 제공한다. 전문 유튜버가 사용하는 카메라로 알려지기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과 영상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기념하는 게 일상인 시대. 소니는 바로 이 포토프레스(Photo-Press) 세대에 초점을 맞췄다. 포토프레스는 ‘사진(Photo)’과 ‘표현하다(Express)’의 합성어로 사진 촬영 과정 자체를 경험으로 여기며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MZ세대다. 업계 관계자들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성장세가 꺾였던 카메라 시장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은 건 이들 포토프레스 세대의 SNS 활동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니의 브이로그 카메라인 ZV 라인은 오롯이 이들을 겨냥한 전략적 포석이다. 작고 가벼운 데다 피부를 매끄럽게 표현해주는 ‘소프트스킨’, 제품에 포커스를 맞추는 ‘제품리뷰모드’, 뒷배경을 흐리게 처리해주는 ‘보케버튼’ 등 브이로그 촬영에 특화된 기능을 갖췄다. 소니코리아 측은 “실제로 ZV 라인업의 전체 구매 고객 중 76%가 브이로그 촬영을 즐기는 2030세대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소니는 최근 국내 시장에 원핸드 콤팩트 풀프레임 카메라 ‘A7C2(Alpha 7C Ⅱ)’와 초고화질 콤팩트 풀프레임 카메라 ‘A7CR(Alpha 7CR)’을 출시했다. 작고 가볍지만 영상과 사진의 질은 충분히 최고 수준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고사양 버전이다. A7C2는 2020년 출시한 A7C의 2세대 모델이다. 한손에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에 약 3300만 화소의 풀프레임 이미지센서로 영상과 사진의 질을 높였다. 배터리와 메모리카드를 포함해도 약 514g의 가벼운 무게에 가로 길이 124㎜, 높이 71.1㎜에 불과해 이동하며 촬영하기에 최적화됐다. A7CR은 A7R5(Alpha 7R V)와 동일한 약 6100만 화소의 이면조사형 이미지센서를 탑재해 해상력을 최고로 높였다. A7R5 대비 부피는 약 49% 감소한 초고화질 카메라다. 배터리와 메모리 카드를 포함해도 약 515g으로 가볍고 인물, 풍경, 야생 등 폭넓은 주제의 이미지를 6100만 화소의 고해상도로 촬영할 수 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소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