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국내 백화점 업계는 그야말로 축포를 터뜨렸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매출이 2조8500억원(추정),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2조4000억원(추정),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곳도 전국에 11곳이나 됐다. 특히 신세계 강남점의 매출은 프랑스 파리의 갤러리 라파예트, 일본 도교의 이세탄 신주쿠, 영국 런던의 해러즈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전 세계 주요 백화점 매출을 훌쩍 뛰어넘은 결과였다. 과연 매출 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의 힘이 큰 축”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 3대 명품 브랜드로 럭셔리 경쟁력을 강화했고, 자연스레 VIP 모객 효과를 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세계 백화점의 전체 매출 중 명품 비중은 2019년 16% 수준에서 2021년 25%까지 커졌다. 2022년엔 26%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른바 명품의 힘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 외 지역은 에·루·샤 중 단 한 브랜드만 유치해도 매출에 영향을 크다”며 “그중 명품의 가격 인상을 주도하고 있는 샤넬의 움직임에 관계자들이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브랜드 가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브랜드 가치 컨설팅사 인터브랜드의 ‘2022년 글로벌 100대 브랜드’를 살펴보면 샤넬(CHANEL)의 브랜드 가치는 전년 대비 32%나 상승하며 22위에 이름을 올렸다. 루이비통(14위), 에르메스(23위), 구찌(30위) 등이 차례로 순위에 오르며 명품과 패션 부문에서 4강 체제를 유지했다.
글로벌 리셀(Resell·재판매) 플랫폼 ‘리백’의 명품 평가지수 ‘2022 클레어(Clair) 리포트’에서도 샤넬은 에르메스, 루이비통에 이어 3위에 이름을 올리며 리셀 가치를 증명했다. 1위 에르메스가 103%, 2위 루이비통이 전년보다 12% 오른 92%, 샤넬은 전년도 75%에서 12% 올라 원래 가격의 87% 가치를 유지했다. 클레어 리포트는 매년 분야별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 평가, 럭셔리 시장의 변화, 리세일 마켓 전망 등을 통해 한 해 동안 중고 가치가 가장 높은 브랜드를 선정한다. 명품 브랜드의 한 매니저는 “샤넬은 재고 관리가 엄격한 브랜드”라며 “전략적으로 돈 있어도 못 사는 브랜드란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샤넬은 일부 지역에서 인기 제품에 대해 1인당 구매량 제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국내에선 2021년 10월부터 시행 중인데, 인기 제품인 ‘클래식 플랩백’과 ‘코코핸들 핸드백’은 고객당 1년에 1개씩만 살 수 있다. 명품 브랜드의 희소성을 높이기 위한 나름의 방책인데, 2022년 5월엔 이러한 정책의 확대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당시 필리프 블론디오 샤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외신을 통해 “샤넬에는 인기 제품이 많아 해당 정책은 현재 가장 인기인 플랩백뿐만 아니라 수요가 많은 일부 제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높은 브랜드 가치에 비해 국내 시장에선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나올 만큼 빈번한 가격 정책에 늘 호불호가 갈린다. 샤넬은 지난 11월 2일 국내 매장 내 모든 제품의 가격을 3~11% 인상했다. 8월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가격을 올린 것이다. 이로써 2022년에만 총 4번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2021년에도 4차례에 걸쳐 가격을 올린 바 있다. 가방류의 경우 5~8% 인상했다. 대표 인기 제품인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은 1239만원에서 1316만원으로 6% 올랐다. 2021년 11월 1124만원이던 이 제품은 2022년 3월 1180만원, 8월 1239만원, 11월에 1300만원대가 됐다. 고작 1년 만에 200만원가량 가격이 올랐다. 사이즈별로 미니는 594만원에서 637만원, 스몰은 1160만원에서 1237만원, 라지는 1335만원에서 1420만원으로 인상됐다. 샤넬 매장 관계자는 “클래식·WOC·호보백 등 제품의 경우 최근 인상된 금액 중 가장 높은 인상률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신발류는 6∼7%, 지갑류는 약 12%나 올랐다.
샤넬은 2022년 초 코코핸들 등 일부 제품 가격을 올렸고, 3월엔 클래식 라인 등 일부 제품 가격을 5% 안팎으로 인상했다. 8월에도 클래식 라인 제품을 비롯해 일부 제품에 대해 5% 정도 올린 바 있다. 명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팬데믹 당시만 해도 보복소비 등에 힘입어 가격이 오를 때마다 오픈런이 일어나곤 했는데, 최근엔 소비자들의 눈총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가격 인상 주기가 짧아지면서 리셀 시장을 노리는 이른바 ‘노숙런(매장 앞에서 밤새 대기하다 구매하는 오픈런)’이 희소성을 떨어뜨리며 점차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2022년 9월 무렵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의 리셀 가격은 공식 판매가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 명품 시계 브랜드 매니저는 “2021년 주식과 코인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하며 명품 시장에 유입된 MZ세대 등 새로운 소비층이 2022년 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시장에서 빠져나가며 생긴 현상”이라며 “샤넬의 경우 국내에서 ‘5초백’(거리에서 5초마다 한 번씩 보인다는 의미)이란 말이 돌 만큼 희소성이 옅어지며 반발 심리도 작용했다”고 전했다.
샤넬은 제작비, 원재료 변화와 환율 변동을 고려해 정기적으로 가격을 조정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2년 초 “샤넬이 급증하는 수요를 이용해 더 높은 등급으로 브랜드 리포지셔닝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업계에선 에르메스를 따라잡기 위해 초럭셔리로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샤넬은 슈퍼리치를 위한 ‘프라이빗 부티크’를 예고하기도 했다. 명품업계에 따르면 2023년 내 초대받은 이들만 입장할 수 있는 이른바 ‘VIP숍’을 연다는 것이다. 장소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성장세가 여전한 아시아, 그중에서도 중국이나 한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샤넬 매장은 모두 다 입장할 수 있어 오픈런, 노숙런의 표적이 됐다”며 “VVIP만을 위한 매장 오픈으로 명품 위의 명품이란 이미지를 굳히려는 비책이자 에르메스를 따라잡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샤넬의 가격 인상을 놓고 논란이 많았는데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며 “초고가 명품 전략의 성공 여부에 시선이 모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샤넬코리아의 2021년 매출은 1조2237억원으로 전년(9295억원) 대비 31.6%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489억원으로 전년(1491억원)보다 66.9% 늘었고, 순이익도 1793억원으로 전년(1068억원)보다 67.8% 뛰었다.
■ 미래의 일부가 되기 위한 샤넬의 선택은 ‘예술’
명품과 예술은 어쩌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명품은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하고 그럼으로 얻게 된 수익을 후원으로 되돌려준다. 헤리티지를 내세우는 명품 브랜드가 꾸준히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이유다. 특히 전통과 장인정신이 남다른 브랜드일수록 꾸준히 예술 후원에 나서고 있다. 샤넬도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다.
샤넬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일부가 되라”는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의 바람에 따라 지난 100년간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꾸준히 후원해왔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2022년 4월 샤넬은 부산국제영화제(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와 손잡고 미래 영화인 양성에 나섰다. 아시아영화아카데미는 전도유망한 영화인들이 포부를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 교육 프로그램이다. 2022년에는 35개국 407명의 지원자가 몰려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사상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고, 이들이 18일간의 교육기간을 통해 제작한 단편영화는 부산영화제 기간에 공식 상영됐다.
현대미술의 발전과 대중화에도 적극적인 후원이 진행되고 있다. 샤넬은 2022년에 서울에 상륙한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와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 미술 작가들을 조명했다. 프리즈는 미술학자, 감정가, 컬렉터, 미술애호가를 위한 플랫폼이자 만남의 장으로 프리즈 런던, 프리즈 마스터스, 프리즈 뉴욕, 프리즈 로스앤젤레스, 프리즈 서울까지 5개 국제 아트페어를 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샤넬은 재단법인 예올과 손잡고 2022년 올해의 장인에 금박장 박수영(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을, 올해의 젊은 공예인에 옻칠공예가 유남권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샤넬의 다양한 예술 후원 사업은 글로벌 프로그램 ‘샤넬문화기금(CHANEL Culture Fund)’으로 이어진다. 혁신적 예술가들을 후원해 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는 게 목표다.
이 기금으로 시상되는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는 예술가의 도전정신을 독려하기 위한 상으로 음악, 춤, 시각예술 등에서 자신만의 분야를 확립한 신진 예술가들을 선정해 10만유로(약 1억4000만원)를 지원한다. 배우 틸다 스윈턴,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 경을 비롯해 국립초상화갤러리, 퐁피두센터, 언더그라운드뮤지엄 인사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선정된 첫 수상자는 한국 음악인 정재일을 비롯해 케이켄, 루알 마옌, 마를렌 몬테이로 프레이타스, 룬가노 니오니, 프레셔스 오코요몬, 마리 슐리프, 보티스 세바, 왕빙, 에두아르도 윌리엄스 등 10인이다.
[안재형 기자 사진 매경DB]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8호 (2023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