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 년 동안 빔프로젝터는 사무실이나 영화관에서만 어울리는 기기였다. 누구나 한 번쯤 집안에 빔프로젝터를 두고 영화를 보는 낭만을 꿈꾸지만 이런 장면은 영화에서만 등장할 뿐 현실 세계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빔프로젝터에게 거실이 허락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공간이 부족해서다. 빔프로젝터를 놓으려면 스크린과 빔 사이에 최소 1~2m 이상의 공간을 비워둬야 했다. 대화면일 경우는 3m 이상의 거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특히 주거공간이 좁은 대한민국 거실에서 이 같은 공간을 온전히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프로젝터가 크고 예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거실 한복판 빔프로젝터를 위한 공간을 겨우 마련했다 치더라도, 투박하고 소음까지 큰 기기를 인테리어 오브제로 여길 수 있는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
▶삼성 ‘더 프리미어’
美 프리미엄 프로젝터 1위 등극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크기와 소음을 대폭 줄이고 인테리어적 요소를 업그레이드한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빔과 스크린 사이 필요 거리가 대폭 줄어들면서 거실 TV를 대체하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PMA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홈 프로젝터는 2020년 13억달러 수준에서 2024년에는 22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가 시장을 떠나있던 지난 9년 동안 LG전자를 중심으로 엡손이나 뷰소닉 등이 시장을 점하면서 전체 시장 규모도 조금씩 키워왔다.
가정용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터 시장으로 다시 돌아온 삼성전자는 2020년 프리미엄 가정용 프로젝터 ‘더 프리미어’를 출시했다. 2011년에 프로젝터 사업을 거의 접다시피 했던 삼성전자가 9년 만에 내놓은 신제품 프로젝터여서 업계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더 프리미어9은 초단초점(UST) 프로젝터다. UST 프로젝터는 화면이 투사될 스크린 가까이에 두고도 100인치 이상 크기의 화면을 구현할 수 있으며, 설치 공간 제약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렌즈에서 나온 광원이 프로젝터 내부 거울을 거쳐 투사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더 프리미어는 실제로 프로젝터로부터 23㎝ 거리에 스크린을 설치해도 화면 크기를 최대 330㎝까지 확장할 수 있다. 프로젝터를 설치하려고 가구를 이동하거나 천장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 최대 120형과 130형까지 확장 가능한 두 가지 모델로 출시된 이 제품은 고급형 모델 기준으로 ‘트리플 레이저’ 방식을 채택해 TV와 동일한 4K 화질을 구현할 정도로 TV에 버금간다. 최대 밝기는 2800안시루멘(ANSI lumen)으로 실내조명이 개입해도 영상 감상에 무리가 없다.
다양한 스마트TV 기능을 탑재해 넷플릭스·유튜브·디즈니플러스 등 영상 콘텐츠를 인터넷 연결 없이 즐길 수도 있다. 트리플 레이저(Triple laser)를 적용한 더 프리미어 고급형 모델은 749만원, 싱글 레이저를 적용한 보급형 모델은 449만원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NPD가 발표한 자료에서 삼성 ‘더 프리미어’는 3000달러 이상 프로젝터 시장에서 2021년 10월까지 금액 기준 누적 점유율 27.8%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자사 뉴스룸을 통해 ‘더 프리미어’ 디자인의 뒷이야기를 소개했다.
방성일 디자이너는 “시장에는 다양한 가격대와 성능을 갖춘 프로젝터 제품들이 많다”라며 “단순한 프로젝터 그 이상의 제품을 구현하기 위해 최초 디자인 기획 단계에서부터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접근은 사용자 공간에 대한 이해와 연구부터 시작됐다. 사용자들의 생활환경을 자세히 탐구하고, 그 이상의 경험을 줄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를 위해선 가끔 꺼내 사용하는 제품이 아니라 거실 가구처럼 늘 가까이에 둘 수 있는 디자인과 기능을 갖춰야 했다.
방 디자이너는 “일상의 가구나 주변 물건들과 아름답게 조화되고, 새로운 기술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라며 “이 과정에서 관찰했던 공간, 가구, 오브제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주변 환경과 인테리어에 조화롭게 녹아들 수 있도록 실루엣에도 공을 들였다. 이를 위해 군더더기 없는 둥근 라인과 슬림한 라인으로 투박하지 않고 부드러운 디자인이 채택됐다. 김지광 디자이너는 “함께 위치하는 테이블, 화병 등 구성 요소와도 조화롭게 섞이며 간결한 인테리어 오브제의 역할도 충분히 해낸다”라고 강조했다.
음질과 편의성을 고려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김 디자이너는 “어쿠스틱 빔스피커를 내장해 별도의 스피커 설치 없이도 풍부한 공간감을 갖춘 3D 입체 음향을 경험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용자의 일상 환경에 녹아드는 생활감을 내기 위해 고급스러운 소재도 활용했다. 디자인 팀은 ‘프리미엄 패브릭’ 원단을 제품에 입혔다. 색 표현이 풍부하고 직조감이 고급스러워 프리미엄 브랜드의 소파, 의자에 주로 쓰이는 제품이다. 다만 가구용이기 때문에 프로젝터 제품에 채택하기까진 어려움도 있었다.
김준표 디자이너는 “일반 원단보다 직조 구조가 촘촘해 스피커에 씌우면 음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개발 과정에 제약이 많았지만, 특유의 따뜻하면서 단단해 보이는 직조감을 포기할 수 없었다”라면서 “개구율을 높여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음질을 구현해내는 직조 구조 원단을 만들었고, 초기 디자인 의도를 이어갈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구 회사 리바트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더 프리미어’ 전용 장식장도 인테리어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사용자의 취향에 맞춰 집 안의 풍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성일경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부사장은 “개인 취향을 반영해 집에서 여가를 즐기려는 소비자가 더 프리미어를 선택하고 있다”며 “초대형 스크린 선호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을 지속해서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캠핑족 잡은 ‘LG 시네빔’… “고화질·휴대성 갖춰”
프로젝터 시장에서 선두주자였던 LG전자는 프로젝터의 활용 영역을 넓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등 사회적 거리두리 지침에 따라 캠핑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차에서 잠을 자며 캠핑을 즐기는 ‘차박’까지 함께 큰 인기를 얻고 있다. LG전자는 초경량 빔프로젝터를 앞세워 캠핑 등 야외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프로젝터 ‘LG 시네빔’ 신제품을 출시했다. 풀HD 해상도를 갖추고 화면을 최대 120인치까지 투영할 수 있는 신제품은 야외에서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LG 시네빔은 깔끔한 화이트 디자인으로 어느 공간에서나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콤팩트한 크기로 작은 테이블 위에서 사용이 간단하며 휴대용 프로젝터로 사용하기에도 제격이다. LG전자는 본체 무게 1.7㎏으로 휴대성을 확보하고, 화면 모양 왜곡을 손쉽게 보정하거나 iOS(12 이상)·안드로이드(6.0 이상)를 탑재한 기기와 편리하게 화면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렌즈는 프로젝터 안쪽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에 휴대하기에 좋고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에도 적절하다. 일반적으로 테이블 위에 설치해 놓지만 바닥면에는 삼각대 마운트가 있어 테이블이 없는 환경에서 단독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며 거치형 프로젝터로도 활용할 수 있다. 바닥면에는 고무지지대가 있어 테이블 위에서 안정감을 더했다.
신제품에는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인 웹OS (webOS) 5.0이 탑재돼 유·무선 네트워크 연결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촛불 1000개를 동시에 켰을 때와 유사한 1000안시루멘 수준의 밝기, 15만 대 1 명암비 등을 통해 화질 측면에서도 우수성을 확보했다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콤팩트한 크기지만 뒷면 입력단자를 살펴보면 거치형 프로젝터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무려 두 개의 HDMI 단자를 지원해 활용도를 높였다. PC나 셋톱박스, 콘솔 게임기와 유선으로 연결할 수 있다. HDMI ARC를 지원하기 때문에 사운드바 등을 연결할 수도 있다. 화면 크기는 최대 60형부터 최대 120형을 지원한다. 3.18m의 거리만 있으면 최대 120형(305㎝) 초대형 화면을 띄울 수 있다. 2.65m의 거리면 100형(254㎝)의 화면을 만들어낸다.
김선형 LG전자 한국HE마케팅담당은 “신제품은 고화질에 휴대성까지 갖춘 제품으로 집 안에서는 물론 캠핑장에서도 사용하기 제격”이라며 “고객 니즈에 맞춘 다양한 LG 시네빔 제품을 선보여 빔프로젝터 시장 리더십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가 프로젝터 시장으로 공들이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스크린골프다. 코로나19 이후 대세로 거듭나고 있는 골프 시장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LG전자는 스크린골프 시뮬레이터 제작 전문기업 케이골프(KGOLF)와 손잡고 스크린골프 시장 공략에 나서기로 했다. LG전자와 케이골프는 이를 위해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케이골프클럽 방배본점(직영)에서 업무협약(MOU)식을 열었다.
이번 협약은 LG전자의 빔프로젝터, PC 등 하드웨어 기술력과 케이골프의 골프 시뮬레이터 소프트웨어를 접목해 고객에게 실감나는 스크린골프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양사는 해외 스크린골프 시장에서 공동마케팅을 통한 신규 사업기회 발굴, 케이골프 프랜차이즈 매장에 LG프로빔 프로젝터 도입 등을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최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골프의 인기가 늘어나며 관련 사업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골프 산업 규모가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의 경우, 2020년 스크린골프, 인도어연습장 등 골프장 밖에서 골프를 경험한 고객이 약 2500만 명에 달한다.
특히 미국, 호주 등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시장에서는 주택 내 여유 공간에 스크린골프 전용 공간을 마련하는 경우도 늘고 있어 관련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LG전자가 케이골프 스크린골프 매장에 도입하는 LG 프로빔(SGU510N)은 최대 300형(대각선 길이 762㎝) 크기 화면에 4K UHD(3840X2160) 해상도를 갖춘 데다, 촛불 5000개를 동시에 켰을 때 밝기와 유사한 5000안시루멘 수준으로 실감나는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또 일반 램프 광원보다 5배 긴 약 2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레이저 광원을 탑재해 내구성도 좋다. 케이골프 최석웅 대표이사는 “세계 최고의 IT 제조 기술과 글로벌 판매망을 갖춘 LG전자와의 업무협약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시장으로 골프 시뮬레이터를 확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며 “향후 스크린골프뿐만 아니라 모바일골프게임 등 골프에 특화된 게임사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IT사업부장 장익환 전무는 �캪G전자가 프로젝터 시장에서 쌓아온 혁신 기술과 노하우가 케이골프의 소프트웨어와 만나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며 �캪G 프로빔을 앞세워 프리미엄 프로젝터 시장을 지속 공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륙의 기적 ‘엑스지미’도 한국 진출
국내 프로젝터 시장이 커지면서 가성비 좋은 외국 제품들도 국내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2018년부터 3년 연속 중국 빔프로젝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엑스지미(XGIMI)가 12월 정식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2013년 창립한 엑스지미는 중국 현지 자체 공장과 연구소를 갖추고 중국 현지에서만 300여 개 매장을 소유하는 등 중국 빔프로젝터 시장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중국 외에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해 현재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11개 국가에 진출한 엑스지미는 이를 발판으로 삼아 국내에서 제품을 선보여나갈 예정이다.
2019년 세계 최초 1080P 안드로이드 TV 휴대용 빔프로젝터를 출시했던 엑스지미는 전 모델에 하만카돈 스피커와 휴대용 빔배터리를 내장해 휴대성을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MZ세대에 발맞춰 블랙박스 기술까지 적용함으로써 차박, 캠핑족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엑스지미 빔프로젝터는 현재 총 20여 개의 모델로 글로벌 시장에 8가지 최신 모델이 출시되고 있다. 휴대성을 강조한 빔프로젝터 외에도 뛰어난 사양과 기술로 회의, 게임 용도는 물론 홈시어터로서의 기능도 충실히 해낼 수 있다.
엑스지미 관계자는 “R&D 엔지니어팀과 마케팅팀으로 구성된 엑스지미는 37혁신&디자인 어워즈에서 4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라며 “이번 국내 론칭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더 혁신적으로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