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수놓인 드레스를 입은 ‘사브리나’, 블랙 드레스가 매력적인 ‘홀리’…. 1950년대에 시작된 오드리 헵번의 이른바 ‘헵번 스타일’은 한 사람의 창의력에서 시작됐다.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 클래식하지만 세련된 ‘지방시(Givenchy)’의 스타일은 1950년대부터 패셔니스타의 로망이었다.
1927년 프랑스 보베(Beauvais)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위베르 드 지방시는 어린 시절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초 자크 파트(Jacques Fath) 뤼시앵 를롱(Lucien Lelong) 로베르 피게(Robert Piguet)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의 디자이너로 일하며 몸에 밴 감각은 이후 자신의 브랜드의 토대가 된다.
1952년 지방시는 당시 피팅(Fitting)에만 사용되던 ‘순면의 얇은 스커트’와 ‘퍼프 블라우스’ ‘세퍼레이츠(Seperates·소재나 무늬가 다른 상하의 조합) 스타일’을 론칭했다. 2년 후 그는 ‘Givenchy Universite’라는 럭셔리 기성복(Ready to Wear) 라인을 발표하며 수석 디자이너가 된다.
1953년 지방시는 원했던 피팅 모델을 대신해 타이드업 티셔츠, 타이트한 바지, 샌들과 곤돌라 모자를 쓰고 등장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과 조우한다.
이 우연한 만남 이후 영화 역사상 명작으로 꼽히는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퍼니 페이스> 등에 출연하며 스크린을 주름잡던 영국계 미국인 배우 오드리 헵번이 디자이너 지방시의 대사 역할을 하게 된다. 40년이나 지속된 두 사람의 인연은 헵번에겐 가장 똑똑한 여자의 이미지를, 위베르 드 지방시에겐 디자이너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다. 지방시는 헵번과 함께 작업하며 좁은 힙 라인, 호리호리한 몸매, 백조 같은 목선 등 철저한 선의 완벽한 미를 창조해냈다.
1973년 지방시는 남성 패션 라인 ‘젠틀맨 지방시(Gentleman Givenchy)’를 론칭했다.
1988년 위베르 드 지방시는 거대 기업들의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21세기를 앞두고 업계의 리더들이 어떻게 비즈니스를 해야 할지 고심하던 시기에 ‘LVMH(Louis Vuitton Moet Hennessy)’와 손을 잡았다.
1995년 젊은 영국계 디자이너들이 위베르 드 지방시의 뒤를 잇기 시작한다.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1996년 1월)와 알렉산더 매퀸(Alexander McQueen·1996년 10월), 줄리앙 맥도날드(Julien Macdonald·2001년 3월)가 그들이다. 이들 모두 초기의 지방시처럼 패션계의 이단아였다. 1956년 당시 위베르 드 지방시는 자신의 컬렉션을 언론과 고객에게 동시에 공개한 최초의 디자이너였다.
2005년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가 지방시를 이끌며 첫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발표한다.
2008년 지방시는 아트디렉터 리카르도 티시와 재계약을 한다. 여성복 오트 쿠튀르와 기성복(Ready to Wear), 액세서리 컬렉션뿐만 아니라 남성복 라인과 남성 액세서리 컬렉션까지 그의 영역이 확장됐다.
Men’s Ready to Wear Collection F/W 2012~13 GIVENCHY BY RICCARDO TISCI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는 이번 F/W 시즌을 위해 ‘아메리칸 드림’을 상상했다. 어린 시절 성조기와 고대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Minotauros)의 남성적인 모습에 가졌던 애정은 샤프한 슈트와 그래픽 스포츠 웨어가 믹스된 컬렉션의 원천이 된다. 이미 지방시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곱 시즌을 보낸 그는 이번 쇼를 통해 우아한 실루엣과 럭셔리 스포츠웨어가 바탕이 된 시그니처 스타일로 정점을 찍었다.
촘촘한 울 또는 가죽 소재의 피코트(Pea coat·네이비 색상 울 코트)는 구조적인 트롱프뢰유(trompe l’oeil) 스타일로 새롭게 다가선다. 데님은 밝은 블루부터 인디고까지 다양한 컬러로 워싱 처리됐다. 1950년대 미국 작업복 스타일로 디자인된 다양한 블루 톤의 집업 재킷에는 성조기의 줄무늬를 연상시키는 아플리케 밴드 디테일이 더해졌다. 코트, 셔츠, 티셔츠, 점퍼 등은 목 주변에 크리스털, 흑요석을 더해 시선을 끈다. 갱스터 스타일의 트레이닝화는 1940년대 미국으로 건너온 이탈리아 이민자의 클래식한 구두를 연상시킨다. 크리스털, 흑요석 소재의 귀걸이와 블랙이나 옅은 골드 컬러의 코걸이가 모델들의 얼굴을 장식했다.
지방시 하이브리드 남성 슈즈
지방시가 옥스퍼드화의 특징을 살리면서 하이톱 트레이닝화의 장점과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겸비한 앵클 슈즈를 선보인다. 이탈리아 갱스터의 브로그(Brogue) 슈즈와 농구용 스니커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굿이어 웰트(Goodyear Welt) 기법, 가장자리에서 약간의 빈티지한 매력이 묻어나는 가죽 밑창, 스포티한 레이스업 장식과 클래식한 펀칭 장식이 독특하다.
지방시, 신세계 강남점에 국내 첫 남성 단독 매장 오픈
지난 8월, 지방시(Givenchy)가 한국 파트너인 신세계 인터내셔널과 함께 국내 최초로 남성 단독 매장을 오픈했다. 파리 생토노레의 지방시 부티크에서 영감을 받은 약 48㎡ 규모의 매장은 신세계 강남점 6층에 자리했다.
여타 지방시 글로벌 부티크들과 같이 새롭게 오픈한 매장은 박스 형태의 인테리어를 차용했다. 외부는 그을린 오크 나무를 사용하고 내부는 그레이 컬러로 연출한 2개의 커다란 박스가 도시적인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신규 매장에서는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가 제안하는 F/W 2012 남성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성찰과 성조기, 그리스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의 형상과 같이 어린 시절 티시의 관심사에서 영감을 얻은 이번 컬렉션은 선명한 슈트와 그래픽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스포츠웨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