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매무새가 돋보이는 계절이다. 부는 바람에 슈트 위 코트는 기본이요, 베스트와 머플러, 장갑 등 작은 소품까지 꼼꼼히 신경 쓰게 된다. 오로지 패셔너블한 매무새를 위해 한껏 차려입는 것과는 동떨어진 경우지만 어쩌면 그래서 겨울은 셔츠와 슈트, 코트, 구두 등의 코디네이션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런 이유로 패션전문가들은 “패션 트렌드에 둔감한 남자들도 겨울엔 저절로 트렌드를 따라간다”고 이야기한다. 또 하나, “슈트를 구입하는 남자들도 느는 시기지만 트렌드와 코디네이션을 놓고 좋은 옷에 눈독 들이는 남자들도 눈에 띄게 느는 시기”라고 덧붙인다. 남자, 왜 좋은 옷을 입어야 하는 걸까.
이탈리아 정통 슈트, 나폴리 스타일
최근 남자들에게 회자되는 슈트 스타일은 이탈리아의 나폴리 스타일. 재킷의 어깨 패드를 빼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된 어깨선이 남성 슈트의 정형화된 틀을 깼다. 셔츠를 입은 듯 자연스럽고 편안한 착용감이 나폴리 슈트의 특징이다. 외견상으로 슈트의 특징을 구분하면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라 바르카(La Barca)
바르카(Barca)란 영어의 보트(Boat)를 의미한다. 상의 왼쪽 주머니를 배의 밑면처럼 둥글게 처리해 입체감을 줬다. 핸드메이드의 상징으로 곡선에 걸 맞는 포켓스퀘어(Pocket square·가슴 주머니에 꽂는 장식 수건)도 돛의 모양이나 입체적인 느낌으로 장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둘째, 스트라파타(Strapata)
쓰리 버튼이지만 맨 윗 버튼이 라펠(재킷의 앞 몸판이 깃과 하나로 이어져 젖혀진 부분·Lapel)과 함께 돌아가 얼핏 투 버튼처럼 보이되 완전히 접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돌아가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셋째, 리얼 버튼 홀(Real Button Hole)
소매의 버튼이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여닫게 돼 있다. 슈트를 입는 이가 취향을 대로 여닫을 수 있다.
일례로 ‘체사레 아톨리니’, ‘키톤’, ‘이사이아’, ‘브리오니’ 등 명품 브랜드가 나폴리 스타일이다. 키톤의 안토니오 데 마테이스 CEO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슈트를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폴리에 데려오고 싶다. 일단 나폴리의 재킷을 입어보면 이것저것 넣을 수 있고 입고 잘 수도 있고 때론 담요 역할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나폴리 슈트는 그만큼 편안하다”고 나폴리 스타일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수년 전만 해도 패션전문가들이 연령대별 슈트 컨셉트를 논할 때 “40대 이상은 포멀한 순간에, 20~30대는 여가시간에도 클래식 슈트를 즐긴다”고 이야기했다. 40대 이상의 남자들은 일하는 동안 슈트를 입고 주말 등 여가시간에 캐주얼한 차림을 즐기지만 20~30대 남자들은 여가시간에도 슈트를 입고 멋 내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식화된 슈트 컨셉트가 변화를 보인 건 2000년대 중반 이후. 비즈니스 이외의 모임에도 드레스 코드가 어색하지 않고 지인과의 저녁식사에도 캐주얼보다 슈트 차림이 대중화되면서 인식이 전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키톤의 안토니오 데 마테이스 CEO는 “일하는 순간이나 여가를 즐기는 순간에도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을 땐 슈트를 입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클래식이 다소 돈이 많이 들어감에도 우리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좋은 슈트란 어떤 슈트일까. 산호 로고로 유명한 이사이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레오나르도 제노바는 “몸이 완벽한 편안함을 느끼도록 해주는 슈트가 좋은 슈트”라고 이야기한다. 제노바 디렉터는 “나이를 먹은 뒤 옷장을 열었을 때 스스로의 인생 흐름을 가늠해보고 싶다면 클래식 슈트가 최고의 투자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이 낳은 나폴리스타일 마에스트로 ‘나폴리330’
LG패션 양산공장의 ‘나폴리330’ 제조 공정
나폴리 스타일의 슈트를 구입하려면 명품 브랜드로 눈을 돌려야 하는 걸까. LG패션 마에스트로가 최근 나폴리 스타일을 생산하며 키톤, 체사레아톨리니, 이사이아 등 명품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1974년 반도 신사복에서 출발해 1986년 첫 선을 보인 마에스트로는 지난 30여 년간 정통 이탈리안 스타일의 남성복을 선보여 왔다. 지난 2005년 나폴리 출신의 유명 사르토(재단사·Sarto)인 프랑코(Franco)를 비롯한 장인들을 초청해 6년여 간 나폴리 스타일 개발을 위한 컨설팅을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라인이 ‘나폴리 330’이다.
나폴리 스타일을 만드는 세계 유수의 브랜드가 공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마에스트로도 자체생산을 위한 공장이 있다.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양산공장은 1985년 준공된 이래 이탈리아 코르넬리아니에서 비접착 기술을 도입하는 등 지속적으로 이탈리안 스타일에 대한 컨설팅을 받아 신사복을 제조해 왔다. 양산공장에는 약 400여 명의 숙련된 장인들이 마에스트로를 비롯한 LG패션의 신사복을 만들고 있다. 평생 봉제를 하며 살아온 이탈리아의 장인들과 같이 이들의 평균 근속연수 또한 20년이 넘는다.
프랑코를 비롯한 나폴리 출신 장인들은 양산공장을 컨설팅하며 그들이 가진 모든 기술과 노하우를 양산의 장인들에게 전수했다. 나폴리의 사르토들은 지난 6년간 1년에 2회 이상, 한 번 방문에 한 달이 넘는 기간을 양산공장에서 머물며 마에스트로의 나폴리 스타일을 완성해 갔다.
우선 한국 남성의 체형을 고려한 패턴을 완성했고 손바느질 방법부터 소재 고르는 법, 공정 라인 조정 등 세밀한 부분까지 나폴리 공방의 모습을 양산에 재현했다. 양산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품질관리를 책임지는 LG패션의 박영환 수석(53세)은 “컨설팅 과정에서 언어가 달라 직접적인 소통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들은 슈트가 단순히 팔기 위해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고객을 위한 작품임을 알게 해주었다”며 “기술뿐 아니라 나폴리의 자부심과 옷을 향한 그들의 남다른 열정을 배운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완성된 마에스트로 ‘나폴리330’은 이탈리언 슈트의 근간인 나폴리 슈트의 특징과 역사적 유산을 물려받았다. 어깨 부분의 편안한 주름(마니카 카파치아)을 만들고 배의 바닥 모양을 본 뜬 앞주머니(바르카) 등 나폴리 스타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을 담았다. 기존 공정에 비해 수작업이 30% 이상 늘었고 전체 공정 또한 250여 과정이 필요했던 일반 슈트에 비해 80여 가지가 늘어 330가지에 달하는 공정이 소요됐다. 마에스트로 나폴리 스타일의 이름이 ‘나폴리330’으로 지어진 이유다. 또한 추가 작업 소요로 일일 생산량이 600벌에 달하는 일반 제품에 비해 하루에 약 50벌만 한정적으로 만들어진다.
나폴리의 슈트는 입는 사람의 철학과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고 한다. 입는 사람의 어깨너비, 허리 높이, 종아리 길이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손을 주머니에 넣는지, 걸을 때 팔을 어떻게 움직이는 지 등 삶의 방식까지 고려해 슈트에 담아낸다. ‘나폴리330’은 마에스트로의 새로운 슈트이자 남자의 삶을 존중하는 가치가 담긴 슈트다.
■ 이탈리아 슈트 스타일
마에스트로 ‘나폴리330’
나폴리 스타일 나폴리 슈트는 주름이 있는 어깨와 오목한 어깨가 주요 특징이며 앞섶이 동그랗게 돌아 나간다. 또 심지가 매우 부드럽다.
로마 스타일 나폴리 슈트에 비해 앞섶에 각이 있고 어깨 각이 낮다. 어깨선이 오목하다.
피렌체 스타일 소매산이 낮고 라펠이 넓으며 어깨선이 부드럽다. 옆판이 완전히 분리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옆판과 앞판이 만나는 봉제선(암홀 아래선)이 주머니 쪽으로 사선이며 가슴 다트선이 없다.
밀라노 스타일 컨스트럭션이 견고하고 무거운 심지가 사용된다. 라펠의 끝 쪽이 더 곡선 처리됐다. 상대적으로 더 두꺼운 패드를 사용한다.
[안재형 기자 ssalo@mk.co.kr│자료 = LG패션 나폴리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