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의 오너 드라이브에 가방 속 태블릿 PC로 신문을 보고 한 손엔 늘 블랙베리가 들려 있는 멋진 비즈니스맨. 하지만 슈트 안에 베스트(Vest)를 입고 있지 않다면 그저 비즈니스맨일 뿐, 신사는 아니다.
배 나온 아저씨의 상징이었던 베스트가 멋쟁이들의 베스트(Best)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잠시 동안 남성 슈트를 구성하는 데 있어 불필요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이젠 신사와 그렇지 못한 남자를 구분 짓는 결정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생각해보면 베스트는 꼭 입어야 할 아이템은 아니다. 하지만 입고 나면 180도 달라지는 것이 바로 베스트다. 밋밋한 슈트를 멋스럽게 잡아주며 왠지 좀 더 신사답고 좀 더 기품 있고 남들보다 스타일리시하게 보이도록 한다. 베스트 하나만으로도 사람이 한순간에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남자의 품격을 높여주고 잘나 보이게 하는 마법 같은 아이템이다.
코트를 즐겨 입는 겨울이 되면 베스트의 활용도는 더욱 높아진다. 두꺼운 코트 안에 재킷이나 블레이저를 입으면 답답하고 옷맵시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코트 안에 재킷 대신 정장 베스트를 입으면 활동성도 높아지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코트를 벗어도 베스트 하나만으로 갖춰 입은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베스트는 소매가 없고 앞이 트였으며 몸에 맞도록 디자인된 옷이다. 사전을 들춰보니 영국에서는 웨이스트 코트(Waist Coat)라고 불렸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베스트는 미국에서 쓰는 말로 소매가 없는 동의(胴衣), 즉 조끼를 말한다. 남자의 베스트는 허리길이나 그보다 약간 긴 상의 안에 착용하고 여성복에서는 상의 안에 받쳐 입기도 하지만 겉옷으로 입는 보디스(Bodice·칼라와 소매가 없는 윗옷)와 같은 것이다.
베스트는 17세기 중엽 영국 왕 찰스 2세의 동의에서 시작돼 18세기에는 앞을 튼 쥐스토코르(Justaucorps), 즉 상체부에 꼭 맞는 긴 상의의 등장으로 꼭 필요한 아이템이 됐다. 이에 따라 화려한 수를 놓아 멋을 냈다. 프랑스어 질레(Gilet)도 베스트를 가리킨다. 그 후 프록코트나 모닝코트를 거쳐 현재의 신사복형으로 변하는 동안 옷이 세련되고 간편해졌다.
영국 브리티시룩의 전형인 베스트가 전 세계 남성들에게 사랑받는 아이템으로 떠오른 이유는 언제 어디서 입든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때문이다. 슈트 속에 입으면 뭔가 더 갖춰 입은 듯 하고 캐주얼룩에 입으면 베스트 하나만으로도 스타일리시 해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같은 한겨울에는 베스트 점퍼를 슈트 재킷 위에 걸쳐 입으면 따뜻하고 활동적인 비즈니스룩으로 전혀 손색없다.
베스트를 포멀하게 입는 방법은 간단하다. 클래식 스타일의 슈트에 같은 원단으로 만든 베스트를 걸치면 된다. 여기에 타이와 안경을 매치하면 고전 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느낌으로 포멀한 스타일링이 완성된다.
베스트를 캐주얼하기 입으려면 베이직한 티셔츠나 몸에 딱 맞는 솔리드 셔츠 위에 입기만 하면 된다. 또한 한겨울 가장 사랑받는 아이템, 니트 베스트를 멋있게 입으려면 너무 넉넉한 사이즈만 아니면 실패할 확률이 없다.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품이 큰 디자인보다는 몸에 피트되는 디자인을 고르면 멋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니트 베스트는 편안하고 포근해 기능적으로도 훌륭하지만 입는 사람의 인상까지 부드럽게 바꿔줄 수 있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듯 각 브랜드에선 여러 가지 베스트를 선보이고 있다. 포멀한 느낌을 연출하고 싶다면 알프레드 던힐 혹은 브리오니의 베스트들이 적당하다. 기본적인 컬러인 그레이나 블랙 등의 베스트는 베스트셀링 아이템이다. 고급 소재를 사용해 슈트의 품위까지 높여줄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들이 선보이고 있으며 블랙 팬츠와 매치하면 무심한 듯, 더욱 멋지게 연출할 수 있다. 돌체 앤 가바나 역시 이번 시즌 다양한 베스트를 선보이고 있다. 이 브랜드의 장점은 다채로운 컬러 베스트가 많은 남성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버튼 개수나 소재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슈트 디자인을 고려해 선택하면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너무 노멀한 디자인이 지루하다면 폴 스미스의 베스트도 예쁘다. 목선이나 포켓 등에 포인트로 프린트된 스트라이프 패턴들은 매우 감각적이며 재미있는 느낌을 준다. 레드, 옐로 등 원색의 컬러도 폴 스미스만의 고급스러움으로 표현되고 있다.
올 겨울에는 란스미어의 포근한 베스트 역시 하나쯤 가지고 싶은 아이템이다. 촌스럽고 늙어 보일 수 있는 니트 베스트를 캐주얼하고 고급스럽게 만든 예쁜 디자인들이 많다. 단색도 무난하지만 스트라이프 패턴 베스트는 한결 더 캐주얼하면서 멋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베스트를 언급할 때 올 겨울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있다. 바로 패딩 베스트다. 패딩 베스트는 늦가을 간절기부터 뼛속까지 시린 한겨울까지 오랫동안 다양한 스타일과 함께 착용할 수 있는 스마트한 아이템이다. 패딩 베스트는 젊은이들이나 입는 아이템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천만에! 최근 캐주얼룩이나 비즈니스룩으로 모두 무리 없이 연출할 수 있다. 보온성은 높이면서도 팔의 움직임이 자유로우며 활동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야광색부터 현란한 색깔의 패딩 베스트가 거리를 메우고 있다. 디자인 면에서는 너무 튀는 컬러감이나 디자인을 선택할 경우 스타일링 할 때 다소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또 쉽게 싫증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두루 스타일링 할 수 있고 오랫동안 착용할 수 있는 모던한 컬러감에 심플한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쇼핑 방법이다.
특히 패딩 베스트는 세련된 디테일과 다양한 길이감으로 출시되고 있어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체크 패턴의 패딩 베스트는 톤온톤의 퍼 디테일과 빅 포켓 디자인, 롱 길이감이 더욱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또한 겉감과 안감이 솔리드와 체크 패턴의 다른 소재로 디자인해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 패딩 베스트는 주목할 만한 아이템이다.
패딩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몽클레르다. 제품 가격이 기본 200만원은 훌쩍 넘는 이 명품브랜드의 패팅 아이템은 부피감이 적고 간결한 느낌과 고급 소재의 매칭으로 트렌드세터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가죽, 모피 등과 함께 트리밍 되어 고급스러워 보이는 패팅 베스트들이 이번 시즌 핫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귀족적인 아이템 베스트 현대적으로 소화하기
브리오니
브리오니
자, 그렇다면 베스트를 제대로 입는 방법은 무엇일까. 베스트까지 갖춘 스리피스 슈트를 제대로 입는 법에 대해 알아보자. 가장 먼저 스리피스 슈트를 입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자칫 잘못하면 지나치게 다리가 짧아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스타일일수록 몸에 맞게 입어야 한다. 자신의 실루엣을 찾는 최고의 단서는 바로 최적의 사이즈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베스트나 슈트를 넉넉하게 입는 성향이 있는데 아저씨처럼 보이는 지름길이다. 몸에 꼭 맞게 입는 것이야 말로 가장 스타일리시한 연출 방법 중 하나다.
둘째, 클래식한 베스트는 대게 고급스런 소재로 된 의상이기 때문에 더 품격 있는 맵시를 내고 싶다면 커프스 링크나 안경 같은 아이템을 함께 매치하면 고급스런 맛을 준다. 시계 역시 스틸보다 악어가죽으로 된 고급스런 오토매틱 시계가 훨씬 잘 어울린다. 혹시 이런 스타일이 너무 무겁다고 여겨지면 사선 스트라이프나 원색 컬러의 타이로 자칫 고루해 보일 수 있는 약점을 커버하는 것도 좋은 스타일링 방법이다.
다음은 슈즈의 선택이다. 컬러는 대게 블랙 슈즈를 신으면 무난하지만 경우에 따라 브라운 슈즈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슈즈의 형태다. 클래식한 스리피스와는 누가 뭐래도 윙팁이 찰떡궁합이다. 옥스퍼드 슈즈나 부츠보다 윙팁 형태의 구두는 훨씬 정중해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스리피스 슈트를 입는다는 것 자체가 ‘포멀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매치되는 액세서리 또한 격을 맞춰주는 게 좋다.
비즈니스맨에게 사랑받는 베스트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슬림 핏 베스트와 엉덩이를 덮는 긴 길이의 베스트다. 몸에 딱 같은 베스트는 셔츠, 정장 팬츠와 스타일링 하면 현대적이고 시크한 패션을 완성할 수 있다. 퇴근 후 파티 스케줄이 있다면 셔츠 넥의 단추를 두개쯤 풀어주거나 루즈하게 맨 넥타이, 댄디한 느낌의 보타이 등을 매치해 격식도 차리면서 여유로운 감성을 돋보이게 연출할 수 있다.
요즘엔 엉덩이를 덮는 길이의 재킷형 베스트도 유행이다. 클래식한 디자인에 현대적인 감성을 가미해 좀 더 멋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긴 길이의 베스트는 상체를 날씬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허리 라인에 자신감이 없는 남자라면 긴 길이의 베스트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칫 답답해 보일 것 같지만 의외로 훌륭하게 커버되고 갖춰 입은 듯한 느낌도 들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스타일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바야흐로 아저씨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슈트 안 베스트 스타일링이 유행의 최전선으로 자리를 잡았다. 브리티시 스타일의 유행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베스트 아이템의 경우에는 영국 정통 귀족들의 스타일임을 잊지 말자.
결국 이런 아이템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옷에 어울리는 인격과 교양 그리고 태도를 갖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시즌 자타가 공인하는 신사로 인정받고 싶다면 클래식한 베스트에 몸을 맡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