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끈 동여맨 꽁지머리에 목을 휘감은 하이넥이 강렬하다. 눈 주위를 빙 둘러 가린 검은 선글라스에 스타일마다 달라지는 색색의 장갑이 멋스럽다. 여행을 떠날 때면 수백 개의 반지를 챙긴다는 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세월의 더께를 숨기고 가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
“패션은 변화의 모든 것”이라며 28년 동안 ‘샤넬(Chanel)’의 수석디자이너로 군림해온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좀 더 풀어 말하면 ‘샤넬’과 ‘펜디’, 자신의 시그너처 브랜드 ‘칼 라거펠트’, ‘케이 바이 칼 라거펠트(K by Karl Lagerfeld)’의 디자이너이자 전 세계 유명 패션 매거진과 광고 사진을 전담해 촬영하는 사진작가다. 한 분야에서 성공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에 패션과 사진을 섭렵한 그를 두고 패션 전문가들은 20세기에 가장 축복받은 디자이너라 추앙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표면적인 표현은 20세기라 했지만 그의 대담한 표현과 지치지 않는 도전은 새로운 세기에도 늘 화제를 낳고 있다. 예를 들어 곡선이 돋보이는 코카콜라병에 핑크색 캡과 흰 바탕, 자신의 실루엣을 삽입한 콜라보레이션 작품은 병과 오프너 세트가 45유로에 팔릴 만큼 인기다.
60대 후반이던 2000년대 중반에는 1년 동안 42㎏을 감량하며 패션 피플의 환호를 이끌기도 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의 동기는 심오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직 스스로 즐겁게 살기 위해서…”라는 게 그의 답이자 열정이다. 최근 서울에서 국내 첫 사진전 ‘Work In Progress’(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 2012년 3월18일 까지)을 열며 인물과 누드, 정물, 풍경, 건축 등 30년 가까이 찍은 사진 400여 점을 공개했다. 라거펠트는 디자인 분야에도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새로운 리미티드 에디션을 공개했다.
라거펠트와 듀퐁의 만남
칼 라거펠트가 직접 드로잉한 ‘몽 듀퐁’ 스케치
만년필과 라이터로 유명한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S.T.듀퐁과 칼 라거펠트의 만남은 ‘몽 듀퐁(Mon Dupont)’으로 완성됐다. 라거펠트가 직접 드로잉한 네 가지 스케치를 바탕으로 레드 컬러+골드 피니싱의 프리스티지 라인과 블랙 컬러+팔라듐 피니싱의 시크 라인 등 총 두 가지 버전의 필기구와 라이터가 주인공이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진행된 론칭 행사장에 등장한 S.T.듀퐁 프랑스 본사의 알랑 크레베 사장은 “처음 칼 라거펠드를 찾아갔을 때 주머니에서 듀퐁 만년필을 꺼내더니 마니아임을 자처했다”며 “우아하고 클래식한 감성, 전통을 핵심으로 삼은 두 브랜드의 공통점을 공유하며 가까워 질 수 있었다”고 첫 만남의 소회를 이야기했다. S.T.듀퐁이 라커펠트에게 콜라보레이션을 의뢰한 후 스케치가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열흘. 크레베 사장은 “라거펠트가 직접 드로잉한 스케치는 굉장히 빨리 도착했지만 제품으로 완성하는 데는 6개월 이상이 소요됐다”며 황동을 절삭해 펜의 몸체를 완성하는 S.T.듀퐁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공법을 강조했다.
라거펠트가 고안한 부채꼴 모양의 바디는 바닥에 놓인 펜이 구르지 않게 고정시켜 주고 편안한 그립감이 돋보이는 기능적인 디자인. 특히 클립 부분에 카보숑(Cabochon) 커팅법의 아게이트(Agate) 스톤을 세팅해 감각적인 라거펠트의 감성을 반영했다.
■ 139년 역사 S.T.듀퐁의 새로운 컬렉션
총 6500만원인 천일야화 다이아몬드 컬렉션
S.T.듀퐁은 라거펠트와의 콜라보레이션 론칭에서 ‘몽 듀퐁(Mon Dupont)’ 컬렉션 외에 클래식함이 돋보이는 ‘엘리제(Elysee)’ 필기구, 페르시안 건축물과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천일야화 리미티드 에디션(1001Nights)’, S.T.듀퐁 라이터 탄생 ‘70주년 기념 라이터(70th Anniversary Lighter)’까지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또한 알랑 크레베 듀퐁 사장은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을 뮤즈로 한 여성용 핸드백 ‘오드리 리비에라’를 티징 영상으로 소개하며 2010년 출시된 여성용 필기구 ‘리베르떼’ 컬렉션과 ‘Mon Dupont’, 2012년 론칭 예정인 ‘오드리 리비에라’ 라인까지 여성 제품에 대한 라인업 강화를 강조했다.
[안재형 기자 ssalo@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