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한 슈트에 깔끔한 셔츠, 차분한 타이, 음… 그리고 커프링크 이 정도가 멋 내는 남자의 트렌드 아닐까요?”
남자에게 패션의 완성을 물어보면 열이면 열, 슈트와 셔츠, 타이, 구두 그 외 한두 가지 범주에 멈춰 선다. 과연 남자의 패션은 서너 가지가 전부일까. 멋 낼줄 아는 남자를 살펴보자. 흘깃 흘려보면 여느 남자와 다를 바 없지만 시선을 고정시키면 작은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별달리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지만 살짝 드러나는 포인트, 요즘 유행하는 에포틀리스 시크 룩(Effortless Chic look)이 묻어나는 품은 매끈한 지갑과 가지런한 손수건, 왼쪽 가슴의 포켓 스퀘어와 커프링크 아래 수줍게 자리한 시계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최근 비즈니스맨의 필수품으로 자리한 만년필이 새롭게 명함을 올렸다.
슈트 재킷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서명하는 장면은 이미 직장 초년생의 아련한 로망 중 하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TV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 만년필부터 정신분열증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영화 '뷰티풀 마인드')에게 동료 교수들이 존경의 마음을 담아 건네는 만년필까지.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만년필의 이미지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에지 있는 액세서리가 패션 포인트
만년필을 선택할 땐 그립존과 그립감을 잘 살펴야 한다.
비즈니스맨에게 만년필은 ‘최종병기’와 같다. 격전을 치른 협상 테이블, 두 수장이 마주앉아 안주머니에서 꺼내는 마지막 무기는 만년필이다. 가느다란 펜촉을 떠난 잉크는 그 자취가 채 마르기도 전에 양측의 환호와 악수를 끌어낸다. 이보다 확실한 병기가 또 있을까. 그렇다면 내게 맞는 만년필은 어떤 것일까.
만년필을 사용한다는 건 성격이 차분하고 꼼꼼하다는 방증이다. 볼펜과 비교하면 주기적으로 잉크를 채워야 하고 잉크가 굳어 펜촉이 막히지 않도록 세척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펜촉은 필체를 결정하는 가장 직접적인 부분. 굵기에 따라 EF(극세촉), F(세촉), M(중촉), B(태촉)로 나뉜다. 굵은 서체는 M, B촉을 사용하지만 가는 서체를 좋아하는 한국 남자들은 EF와 F촉을 선호한다. 만년필 전문가들은 보통 ‘필기는 EF, 서명은 F와 M’을 추천한다.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휘감아 사용하는 만년필은 잡았을 때의 느낌도 중요하다. 우선 그립존을 살펴야 한다. 손에 쥐었을 때 엄지와 검지, 중지가 맞닿는 부분이 그립존이다. 물론 세 손가락을 편히 움직일 수 있는 게 최고. 편안한 그립존은 뛰어난 그립감의 필수요건이다. 편하다고 꾹꾹 눌러 쓰는 건 하나만 알지 둘은 알지 못하는 초보자의 좋지않은 습관이다. 만년필의 생명은 펜촉. 힘을 주면 줄수록 펜촉의 마모가 심해지고 잉크가 나오는 홈(피드)이 벌어져 서체 굵기 조절이 쉽지 않다.
손가락과 손, 어깨의 힘을 빼고 펜촉이 종이결을 따라 움직이는 느낌을 즐길 줄 알아야 만년필을 오래 사용할 수 있다.
만년필을 구입하면 새 볼펜처럼 잉크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때 펜촉을 아래로 향하게 한 후 세워 놓으면 잉크가 펜촉을 충분히 적신다.(잉크가 관을 통해 펜촉으로 전달된다) 자주 쓰던 만년필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면 잉크를 깨끗이 제거하고 세척해줘야 한다. 굳은 잉크는 세척이나 제거가 쉽지 않다. 만년필을 보관할 땐 펜촉이 위를 향해야 한다. 잉크가 공기에 노출돼 굳더라도 펜촉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세척은 한 달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하다. 컨버터를 미지근한 물에 세척하되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닦고 부드러운 천이나 티슈로 물기를 제거한 후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놓아두면 자연스럽게 건조된다.
만년필 사용 시 지나치기 쉬운 팁 하나! 펜 뒤에 캡을 꽂아 쓰면 흠이 생기거나 캡의 안쪽을 마모시킬 수 있다. 고가의 만년필이라면 더더욱 안 될 습관이다. 만년필을 사용할 땐 캡을 벗겨 따로 세워둬야 한다.
만년필 쇼핑의 최적지 ‘BESEN’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비젠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자리한 비젠(BESEN)은 전 세계 만년필의 요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품 만년필 전문몰 ‘베스트펜(www.bestpen.co.kr)’이 만년필과 다이어리를 함께 취급하며 ‘비젠(www.besen.co.kr)’으로 변신했고 오프라인 매장까지 개장했다.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과 브랜드가 똑같은 혜택과 조건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역삼역에서 LG아트센터를 지나 도곡동 방향으로 약 100m 가량 내려가면 발견할 수 있는 비젠은 몽블랑, 그라폰 파버카스텔, 파버카스텔, 펠리칸, 라미, 로트링, 포르쉐 디자인, 온라인, 워터맨, 쉐퍼, 크로스, 피셔 스페이스펜, 까렌다쉬, 스위스 밀리터리, 파이롯트, 플래티넘, 세일러, 몬테그라파, 오로라, 비스콘티, 루비나또 등의 펜 브랜드와 오롬 시스템, 플랭클린 플래너, 파일로팩스, 미도리, 라이프, 몰스킨, 유니타스 매트릭스, 로디아 등 다이어리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주 고객층은 30대. 최근에는 20대의 방문이 늘고 있다. 비젠의 이지윤 실장은 “40대 이상의 만년필 마니아와 컬렉터들이 오랜 고객층이라면 최근엔 20대까지 고객층이 확대되며 전체적으로 고른 연령층이 매장을 찾는다”고 전했다. 이 실장이 꼽은 만년필의 인기 요인은 세 가지.
첫째, 서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서체 교정에 만년필을 이용하는 층이 늘었다.
둘째, 캘리그래피 작품이 TV광고 등 화두로 떠오르며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늘었다.
셋째,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트렌드가 만년필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남녀가 선호하는 만년필도 각각 특성이 다르다. 우선 여성은 가볍고 아담한 크기를 선호한다. 다이어리를 사용하며 작은 글씨로 정리하는 여성은 가는 펜촉(세필)을, 예쁜 손글씨를 원하는 여성은 납작한 모양의 캘리그래피 펜촉을 선호한다. 요즘 DIY 노트, 다이어리 꾸미기 등 다양한 취미가 유행하며 갖가지 색상의 병 잉크도 인기를 끌고 있다. 브랜드마다 잉크의 색상과 농도, 점성, 성분 등이 달라 같은 펜대와 잉크를 색깔별로 맞춰 사용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
남성은 장인정신에 기반한 우수한 품질과 고급스러움을 어필할 수 있는 만년필을 선호한다. 필기용, 서명용, 스케치용 등 목적에 따라 적합한 브랜드와 모델을 선택해 최대한 만년필의 가치를 향유하려 한다. 여성과 달리 늘 만년필을 갖고 다니며 추억을 기록하는 여유로움을 느끼고자 한다.
만년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는 역시 잉크와 종이. 만년필 애호가에게 이 두 가지는 실과 같은 존재다. 최근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가 만년필 잉크 판매량의 증가. 찾는 이들이 많으니 잉크 전문 브랜드도 소개되고 있다. 30여 가지가 넘는 잉크 컬러를 보유한 잉크 전문 브랜드 제이 허빈(J. Herbin)은 향기 나는 잉크와 매직 잉크 등 특수한 잉크를 선보이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독일의 잉크 전문 제조사 롤러&클링너(Rohrer & Klingner)는 독창적인 잉크 원료 배합 기술로 두 가지 잉크를 믹싱할 수 있어 고객이 색상을 조색해 사용할 수 있다. 일본에서 만년필 전용지 1위로 손꼽히는 라이프(LIFE) 노트는 만년필에 적합한 종이로 입소문이 나며 국내에서도 반응이 좋다. 만년필 전용으로 기획된 프리미엄 노트는 잉크가 번지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다양한 펜과 다이어리가 진열된 비젠 매장
■ 비젠이 꼽은 선호도 높은 브랜드비젠이 꼽은 선호도 높은 브랜드 ·몽블랑 - 만년필을 대표하는 명품. 인지도가 탁월하다. ·파카 - 대중적이면서 익숙한 필기구의 명가. ·워터맨 - 세계 최초의 만년필. 프랑스 제품답게 화려하고 모던하다. ·펠리칸 - 독일 정통 필기구의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클래식한 만년필 브랜드.
비젠이 꼽은 최근 인기 브랜드 ·라미 - 최근 가장 핫한 인기 브랜드. 모던한 디자인이 특징이며 중저가로 가격이 저렴해 젊은 층, 특히 만년필 초보자들에게 적합하다. ·그라폰 파버카스텔 - 몽블랑에 버금가는 명품 브랜드. 귀족 만년필인 그라폰은 최근 몽블랑을 대체하는 브랜드로 선호도가 높다. ·파이롯트 - 일본 만년필의 대표 주자. 파이롯트 만년필은 한글 필기에 적합한 세필촉으로 다이어리나 섬세한 노트 필기에 적합하다.
[안재형 기자 ssalo@mk.co.kr│사진 =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