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아래로 향하는 허리선이 걱정인 김 부장. 잃어버린 허리선을 당당히 되찾는 일은 단지 김 부장만의 고민이 아니다. 게다가 이젠 두꺼운 재킷으로 더 이상 가릴 수 없는 시즌이다. 남자의 자존심, 허리를 책임지는 최전방 아이템인 벨트는 그런 이유로 스타일링의 화룡정점이다.
완벽해 보이는 연예인이라고 콤플렉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어딘가 부족한 부분은 꼭 있게 마련이다. 그런 부분을 쉽게 눈치 채지 못하는 이유는 반짝반짝 튀어 오르는 그들의 작은 아이템들에 시선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감추고 싶은 부분을 감출 수 없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에 집중시키면 된다. 그것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가벼워지는 옷차림 속에서 당신의 비밀을 감춰주고 동시에 당신의 패션 센스를 멋지게 드러내 줄 소품으로 벨트만한 게 없다.
전체적인 조화의 촉매, 벨트
벨트에 관한 미술사적 스토리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쿠르베는 견고한 마티에르와 스케일이 큰 명쾌한 구성으로 19세기 후반 프랑스 젊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미술가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가죽 벨트를 한 남자, 화가의 초상>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능숙하게 사용한 명암, 얼굴과 손의 표현성, 비스듬한 시선 처리 등이 압권인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작품 속 주인공의 ‘손’이다. 한 손은 허리의 가죽 벨트를 꽉 잡고 있는 반면, 다른 한 손은 유연한 포즈로 얼굴을 받치고 있다. 두 손의 상반된 제스처는 작가의 열망과 그 실천을 상징하고 있다. 벨트를 잡고 있는 손은 손등에 혈관이 드러날 만큼 무한한 남성성이 느껴지지만, 얼굴에 가져간 가녀린 손은 여성스러움을 자아낸다.
남자의 허리, 이를 감싸는 벨트는 어찌 보면 강한 남성성을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벨트는 대표적인 남성 액세서리임과 동시에 격식을 갖춘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필수 아이템으로 빼놓을 수 없다. 또한 스타일이 멋진 남자를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 바로 벨트다. 벨트는 과하지 않게 멋을 낼 수 있는 대표적인 액세서리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옷을 잘 입는 셀러브리티를 꼽으라면 니컬슨 우스터를 가장 일순위로 꼽는다. 그는 뉴욕 니만 마커스 백화점의 남성복 부문 패션 디렉터다. 하는 일도 대단하지만 스타일도 화끈하다. 나이는 많지만 남성 패션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패션 잡지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그의 벨트 스타일링이 하나 있다. 화이트 셔츠에 은은한 민트색 팬츠를 매치하고 네온 핑크 벨트로 포인트를 준 스타일링이었다. 절대로 조악하지 않고 촌스럽지 않았으며 멋스러운 스타일링이었다.
우리나라 CEO 가운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스타일링도 매력적이다. 그는 흠잡을 것 하나 없는 딱 떨어진 비즈니스 룩을 즐겨 입는데 흔한 명품 브랜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신세계에서 운영하는 셀렉숍인 ‘분더숍’ 매장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즐겨 입는다. 해외에서 엄선된 브랜드, 새롭게 뜨는 디자이너들의 의상들만 선별해 수입하는 분더숍 단골손님이니, 스타일링 안목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최근 그는 재혼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스포크(Bespoke)’를 맞춤 스타일로 입었는데, 이 역시 정용진 부회장의 패션 감각을 보여주는 선택이라는 후문이다.
최근 한류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장근석 역시 벨트 스타일링을 눈여겨볼만한 연예인이다. 메트로폴리탄, 히피 스타일링으로 그만의 이미지를 구축한 장근석은 주로 스카프와 벨트로 스타일링의 포인트를 준다. 스카프와 벨트는 톤온톤으로 화려하게 매치하고, 퍼플, 네온 옐로 등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색상의 벨트를 과감하게 배치해 스타일링을 완성한다. 솔직히 액세서리는 슈트나 구두, 셔츠처럼 중심적으로 드러나는 의복 그 자체는 아니다. 액세서리에 대한 잘못된 통념 중 하나는 남성의 옷차림을 개성적으로 마무리하거나 튀어 보이게 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액세서리의 목적엔 개성표출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전체적인 룩이 조화를 이루도록 촉매 역할을 하는 데 있다.
벨트 선택의 기준은 가죽 퀄리티
S.T. 듀퐁
잠깐 벨트의 히스토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남성 패션의 황금시대였던 1920년대. 남자들은 슈트건 재킷이건 바지를 몸에 고정시키기 위해 항상 서스펜더를 착용했다. 사실 그때는 정장을 착용할 경우 재킷 속에 조끼를 입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벨트는 허리를 두둑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런데 상의와 하의가 한 벌로 이루어진 싱글 슈트가 점차 일반화되면서 서스펜더는 밀려나고 미국에서 개발된 벨트가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스포츠웨어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캐주얼에도 어울릴 만한 다양한 벨트가 남성 복식의 필수적인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어떤 종류의 벨트건 그 외피는 결이 곱고 부드러운 가죽이어야 한다는 것. 중요한 건 어느 것이 정장용이고 어느 것이 캐주얼용인지 구별하는 문제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애플 CEO 스티브 잡스의 룩에서 블랙 컬러의 캐주얼 벨트가 없었다면 멋져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슈트나 블레이저 차림에 어울리는 벨트와 청바지에 어울리는 벨트는 우선 버클 모양에서 차이가 난다. 정장용 벨트의 금속 버클은 가운데가 빈 직사각형이면서 벨트 고리가 있는 스타일로 일반적으로 그 폭이 1.5인치(약 3.8cm) 정도다.
금속은 골드나 실버 제품이 대표적이다. 벨트 뒷면에도 가죽이 사용되어야 하며 버클을 다 채웠을 때 벨트 끄트머리가 바지의 첫 번째 벨트 고리에 끼워질 만큼의 길이면 문제없다. 색상은 벨트 색이 구두의 가죽 색과 일치해야 한다. 검정색이나 브라운 벨트를 구입하면 안전하다. 이에 반해 캐주얼용 벨트는 버클이 하나의 판 모양으로 돼 있고 정장용보다 벨트 폭이 넓고 과감한 컬러가 많다. 벨트 버클이 지나치게 크거나 번쩍거리면 다른 사람의 시선이 오직 복부에만 집중될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지나치게 대중적인 벨트 대신 여전히 고풍스러운 서스펜더를 사용하는 남성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회는 다수와 소수의 즐거운 상호 관계를 통해 발전하는 법이니까.
올 시즌 트렌드는 다양한 컬러
살바토레 페라가모
수학도 기본 원리를 이해한 사람이 응용도 잘한다. 옷차림에도 이 논리는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벨트는 남성들에게도 꽤 익숙한 패션 소품이지만 벨트만큼 당신의 패션 센스를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것도 드물다. 수많은 이들이 남보다 멋져 보이고 싶은 마음에 종종 특정 브랜드 이니셜이나 로고 버클이 달린 벨트를 큰돈 들여 장만한다. 심지어 정품이 아닌 ‘짝퉁’ 벨트를 착용하기도 한다. 특히 정장 슈트 차림에 이러한 커다란 버클이 달린 벨트가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빅’ 버클은 종종 버튼을 채운 슈트 재킷에 필요 없는 ‘벌어짐’ 현상을 만들어낸다.
또한 상체와 하체를 분리돼 보이게 하는 분할 효과까지 안겨준다. 이러한 패션 코드는 매우 어색하며 남성복 패션 정석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위험한 스타일이다.
올 여름 벨트를 고르는 팁을 제안하자면 첫째, 벨트는 그저 단순하고 튀지 않는 것이 최고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서머 팬츠들의 다양한 컬러가 다양한 컬러의 벨트로 이어지고 있다. 올 시즌 다양한 색상의 위빙 가죽 벨트 (꼬임 형태로 만들어진 벨트)와 천이나 컨버스로 만든 고운 웹 벨트는 당신을 센스 있는 멋쟁이로 만들어 줄 것이다. 잘 고른 벨트 하나는 부담스러운 뱃살을 가려주는 좋은 방패가 된다. 초콜릿 복근과 거리가 먼 복부를 더 난감하게 만드는 벨트 착용 습관은 차라리 노 벨트만 못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둘째, 특별한 자리에 초대받아 턱시도를 입어야 한다면, 벨트는 버려두자. 턱시도와 벨트는 상극이다. 그러므로 바지에도 벨트를 끼우는 고리가 아예 없는 것이 정상이다. 대신에 커머번드(Cummerbund)라고 하는 일종의 밴드를 허리에 두른다.
셋째, 벨트는 정장과 캐주얼을 구별해서 사용한다. 정장용 벨트는 구두색과 유사하게, 캐주얼용 벨트는 상의 색과 맞추는 게 기본이다. 벨트 폭은 30~40㎜가 일반적이며, 넓을수록 캐주얼해 보인다. 너무 가는 벨트는 허리가 빈약해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바지에 달린 벨트 고리 폭의 80%를 채우는 폭이 바람직하다. 캐주얼이라고 해서 너무 느슨해지지 말자. 클래식한 분위기의 위빙 벨트부터 고급스러운 레더 질감이 살아있는 벨트까지 잘 선택하면 좀 더 멋스럽고 여유 있는 신사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결국 당신의 취향과 감각이 패션 포인트
몽블랑
대한민국 비즈니스맨들은 자랑스럽게도 다른 어느 나라 남성들보다 스마트하다.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대한민국 남성이지만, 스타일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어색한 면이 있다. 애초에 관심이나 감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옷 입기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남자의 스타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으며 과소평가되어서도 안 된다. 한도가 높은 신용카드를 가졌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옷이라도 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돈으로 옷을 살 수 있을지언정 스타일은 돈만으로 어찌할 수가 없다. 남성을 위한 옷이 패션 그 이상의 문화인 이유는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 입었는지 등 역사가 존재하고 그 역사로부터 유래하는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아주 잘 어울리는 벨트라고 권한다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 벨트는 결국 당신의 물건이 아니다. 액세서리의 역사와 활용법도 마찬가지다. 모든 선택에 있어 문화와 트렌드에 압도당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당신의 취향이고 의사 결정이다. 그러므로 가볍게, 그러나 진지하게 다시 한 번 거울 앞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링을 고민하고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