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여성으로부터 “혹시 무슨 향수 쓰세요?”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별 생각 없이 뿌린 향수 하나로 당신은 순식간에 세련된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다.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김 과장이 한 순간에 ‘매력남’이 될 수 있는 비결, 향수 한 병으로 가능하다.
남자의 스타일링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얼마나 신경을 썼느냐다. 진정한 멋쟁이는 보이는 것만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디 라인을 날렵하게 휘감은 란스미어 수트와 세련된 앞코가 눈길을 사로잡는 브리오니의 가죽 구두를 신고 있는 남자라도 불쾌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스타일링은 한마디로 실패작인 것이다. 공든 스타일링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것, 남자에게 있어 향기가 꼭 필요한 이유다.
남자의 자신감을 높인다
향수를 뿌리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상대로 하여금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라면 효과가 탁월하다. 최근 영국 리버풀대학과 스털링대학 공동연구팀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젊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절반은 향수를 뿌리게 하고 나머지 절반은 향기가 거의 없는 가짜향수를 뿌리게 했다. 향수를 뿌리기 전과 뿌리고 15분이 지났을 때 한 번, 그리고 이틀 뒤에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느끼는 자신감과 매력도를 조사했다. 뿌리기 전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15분 뒤 진짜 향수를 뿌린 남자는 자신의 매력도가 크게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반면 가짜 향수를 뿌린 사람은 오히려 매력도가 떨어졌다고 느꼈다는 것. 놀라운 사실은 그 차이가 이틀 뒤에 더 크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또한 여성들은 이 남성들의 비디오와 사진을 본 뒤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데도 향수를 뿌린 남자에게 더 호감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남성이 향수를 뿌린 뒤 스스로 느끼는 매력도와 자신감의 상승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져 이성에게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결론인 즉 향수가 사람의 자신감을 높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향수는 ‘보이지 않은 힘’으로 사람을 매혹시키고 자신감을 상승시킬 뿐 아니라 사람의 이미지에 날개를 달아준다. 또 아련한 기억 속으로 이끄는 신비한 힘이 있다. 향수는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언어인 셈이다. 이 때문에 모든 향수에는 저마다 스토리가 담겨 있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에는 모든 향수의 향을 담당하고 있는 전속 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가 있다. 엘레나는 에르메스의 향수 ‘윈 자르댕 쉬르 닐(Un Jardin sur le Nil, 나일의 정원이란 뜻)’을 조향할 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직접 나일강을 찾아갔다고 한다. 갈대숲과 고대 문명의 흔적들을 지나 원주민들이 사는 작은 섬에 도착한 엘레나는 마을 어귀에서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녹색 망고를 발견했다. 그 과일의 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엘레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윈 자르댕 쉬르 닐의 기본이 되는 향기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향수를 담고 있는 용기 역시 스토리가 있으며 대부분 명품 브랜드의 경우 아티스트와 함께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자들이 애용하는 향수 ‘불가리 맨’의 용기는 유명 디자인 스튜디오 ‘아뜰리에 오이’와 협업해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불가리 맨의 용기는 마치 거대한 바위가 빛을 향해 솟구쳐있는 듯한 직선과 역동적인 곡선의 교차를 통해 현대적인 인체공학적 디자인으로 작품화하여 완성한 것이다.
향수 선택과 사용할 때의 ‘법칙’
1. 아쿠아 디 파르마 ‘베르가모또 디 칼리브리아’ / 2. 다비도프 ‘썸머 다이브 맨’
그렇다면 봄을 맞이하는 비즈니스맨들은 어떤 향수를 고르면 좋을까. 최근 향수 트렌드는 ‘유니섹스’라고들 한다. 하지만 남자의 향기를 떠올릴 때 로맨틱한 꽃향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맞는 향수를 원한다면 향수의 원료가 되는 네 가지 키워드 그린(Green), 머스크(Musk), 진저(Ginger), 우디(Woody)를 꼭 기억하자.
첫 번째, 그린(Green)은 말 그대로 신선한 풀잎 향을 뜻한다. 자연 그대로의 내추럴한 향으로 상쾌하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은은한 그린 계열의 향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실내에서 보내는 오피스맨에게 잘 어울린다. 하지만 강하지 않은 향은 지속력이 짧다. 책상 한쪽에 두었다가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을 두고 자주 뿌려주면 센스 있는 남자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머스크(Musk)는 일반적으로 사향노루의 생식선에서 채취한 향을 뜻한다. 다른 원료에 비해 남성적이며 강한 인상을 준다. 특별한 날 머스크 베이스의 향수를 뿌리고 나간다면 아내 혹은 여자 친구의 눈길이 더욱 애타게 느껴질 것이다.
그 다음은 진저(Ginger). 생강은 강한 남성용 향수의 대표적 원료다. 프레시하면서도 강한 향기를 부여해 남성 특유의 섹시한 느낌을 더해 준다. 야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에게 잘 어울린다. 애프터 쉐이브처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마지막 성분인 우디(Woody)는 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향으로 향수의 주원료로 사용되기보다 진저나 그린 계열 향수와 조합을 이뤄 차분하면서도 은은하게 향을 지속시키는 보조 역할을 한다. 저녁식사로 이어지는 비즈니스 미팅이 많은 이들에게 세련되고 효과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봄에 사랑받는 향수들을 꼽자면…. 다비도프의 ‘아이스 프레쉬’를 추천한다. 프로즌 레몬껍질 탑노트가 지나고 나면 은은한 바질과 향나무의 우디 향이 남아 매력적인 향수다. 아쿠아 디 파르마의 ‘베르가모또 디 칼라브리아’도 매력적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대표과일인 베르가못의 톡 쏘는 탑노트가 지나면 은은한 바닐라향을 자아낸다. 좀 더 캐주얼한 향기를 원한다면 CK의 ‘이터너티 섬머 맨’도 강추한다. 이터너치 섬머 맨은 금귤과 플로랄 탑노트가 지나고 나면 티크 우드 향이 남아 부드러우면서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자신에게 맞는 향수를 골랐다면 이제는 때와 장소, 스타일에 맞게 향수를 사용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아두자. 보통 남성들의 경우 향수를 하나 정도 쓰고 다 쓰고 나면 새로운 향수를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 향을 맡게 되면 그 사람이 떠오르게 만들어 각인시키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향이 질리지 않고 남에게도 부담스럽지 않다면 나쁘진 않다. 하지만 향수도 이제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기 때문에 그날의 스타일과 상황에 맞게 선택해 센스 있게 사용해야 한다. 캐주얼한 복장이라면 가벼운 향수를, 정장이나 특별한 데이트 날에는 섹시하면서도 클래식한 향수를 사용하면 좋다.
다양한 향수를 사용하는 노하우를 기르기 위해서는 향수 선택 전, 연습이 필요하다. 한 번도 써보지 않았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브랜드의 향수도 어느 날 보석같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트렌드를 생각하고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갈 때 새로 나온 향수를 시향 하는 것도 간단한 연습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향수에도 잘 뿌리는 ‘법칙’도 존재한다. 향수로 샤워한 듯 강한 향취를 풍기는 남자들을 스칠 때면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그 뿐이던가. 데이트를 앞둔 그의 차안을 가득 매운 향수 냄새는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뿌리는 것이야 말로 잘 갖추어 입은 수트 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수트 소재가 얇아지듯 향도 가벼워져야 한다. 올 봄을 위해 코튼이나 시어커터 소재의 수트를 골라 두었다면 향수도 소재와 어울리도록 가벼운 것을 선택한다. 겨우내 뿌린 묵직한 향수는 넣어두고 산뜻한 향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블루 톤의 패키지를 눈여겨보는 것도 고르는 방법 중 하나. 봄이 되면 앞다퉈 출시되는 향수들은 산뜻한 향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외출 2시간 전 즈음 체온이 높은 곳부터 맥박이 뛰는 곳에 뿌려두면 자연스럽게 체취와 어우러진 베이스노트가 남아 세련된 잔향을 만들어 줄 것이다. 향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비비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
봄이 되면 몸에 꼭 맞는 수트와 포인트가 되는 파스텔 넥타이처럼, 당신만의 시그니처 향을 찾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향수 사용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사자성어 하나가 있다. 과유불급. 향수는 적당히 뿌리고 은은한 잔향을 즐겨야 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