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를 이끌어 갈 300명의 의원 중 벌써부터 주목을 받는 이들이 있다. 이번 총선 출마의 의미가 남다른 당선자들이다. 먼저 여야 대결의 상징성이 큰 지역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이 눈에 띈다.
고민정(광진을) 당선자, 배현진(송파을) 당선자, 이수진(동작을) 당선자
▶승리의 의미가 남다른 당선자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서울 광진을에서 당선된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고 전 대변인은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차기 대권 주자인 잠룡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낙마시켰다.
만일 고 전 대변인이 낙선했다면 이번 총선에서 대승한 민주당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수도 있다. 그만큼 고 전 대변인은 현 여당에 상징적인 인물이다. 여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맞붙은 광진을 선거는 그 결과가 총선 다음날 새벽 5시에 결정될 정도로 박빙이었다. 한때 표차가 400여 표차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입에서 국회의원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고민정 당선자는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일하는 민생국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고 당선자를 필두로 청와대 출신 출마자들 상당수가 이번 선거에 승리했다. 문재인 청와대 출신 총선 출마자들은 30명으로 이 중 19명이 당선됐다.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경기 성남·중원),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관악을), 한병도 전 정무수석(전북 익산을),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서울 양천을),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구로을),김영배 전 민정비서관(서울 성북갑), 진성준 전 정무기획비서관(서울 강서을), 민형배 전 사회정책비서관(광주 광산을), 신정훈 전 농어업비서관(전남 나주·화순) 등이 국회에 입성했다.
고 당선자에 견줄 만한 인물이 통합당에도 있다. 송파을에서 재수 끝에 승리한 배현진 당선자다. 두 사람은 아나운서 출신이란 공통분모가 있다.
배 당선자는 송파을에서 4선의 민주당 중진 최재성 후보를 이겼다. 배 당선의 이번 승리가 특히 남다른 것은 그를 정치로 이끈 홍준표 전 대표가 무소속으로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탈락된 홍 전 대표는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을에 출마해 승리했다. 홍 전 대표는 당내 잠룡들이 대부분 낙마한 상태에서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인식된다. 홍준표 키즈인 배 당선자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배 당선자는 “국민 대변인이 되겠다”면서 “미래통합당의 부족함을 깊이 느낀다. 겸손하게 채워가겠다”고 했다.
동작을에서 나경원 후보를 꺾은 이수진 전 판사의 승리도 남다르다. 같은 판사 출신이면서 미래통합당의 여성 대표 정치인인 나경원 의원을 꺾었는데, 이는 현 집권 여당이 추진 중인 법원 개혁 등 적폐 청산 움직임에 국민들이 여전히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전 판사와 함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의혹에 문제제기를 한 같은 판사 출신인 이탄희(용인정), 최기상(금천구) 등도 모두 지역구에서 승리했다.
국론 분열을 야기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김용민·김남국 변호사도 당선됐다. 이들 당선인들은 고위공직자수사처 등 검찰 개혁을 21대 국회 내 완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인 승리의 상징성이 여당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통합당에서는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미래통합당 당선인(송파갑)이 있다.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법조인들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김 당선인은 올 초 현 집권층이 주도하는 검찰 개혁을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칭하며 검찰을 나왔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검찰 개혁 의도가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김 당선인의 생각인데, 국회에서 이에 적극 맞서겠다는 포부를 내보이고 있다.
김 당선인은 대한민국 진영 간 갈등을 양분시켰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와 관련해서도 청와대와 여권의 위선적 행태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보수 통합 전 새로운보수당 1호 인재로 영입됐다. 창원지검, 서울중앙지검을 거쳤다.
경남 양산을에서 승리한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에게도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민주당 입장에서 험지인 이곳에서 생환해 당내 입지가 커졌고,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위상도 세웠기 때문이다. 양산을은 이번 총선에서 부산·경남(PK) 승리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라는 특성에다 문 대통령 사저가 있어 또 다른 상징성이 있었다. 김 당선자는 이번 총선에서 전체 PK 지역 선거도 이끌었다.
선거는 쉽지 않았다. 보수세가 강한 지역 특성에다 지역기반이 탄탄한 나동연 미래통합당 후보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선거 당일 개표 90%를 넘어서까지 몇 백 표 차이 접전을 벌일 정도로 박빙승부를 벌였다. 원주갑에서 당선된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눈길이 간다. 대표적인 친노그룹 인사로 9년의 정치 공백을 깨고 이번에 당선됐다. 이 전 지사의 상대 후보는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과 춘추관장 등을 지낸 통합당 박정하 후보였는데, 이로 인해 원주갑은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을 대리하는 격전지로 선거기간 내내 관심을 모았다. 보수세가 강한 지역 특성이어서 쉽지 않은 선거였지만, 이 당선인은 출마한 선거에서 모두 이기는 불패신화를 이어갔다.
탈북자 출신으로 미래통합당 후보로 나서 강남갑에서 승리한 태구민 당선자도 빼놓을 수 없다. 태 당선자는 주영 북한 공사 출신으로 2016년 한국으로 망명했는데,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통합당은 태 당선자를 당의 텃밭인 강남에 전략 공천했었다. 태영호가 본명으로, 백성을 구원한다는 뜻으로 구민(求民)이라 지었다. 태 당선자에 대해 외신들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례적으로 ‘민주주의, 강남 스타일’이란 사설을 통해 태 당선자의 스토리를 다루었다. 태 당선자는 당선 소감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겠다. 대한민국이 제 조국이 강남이 제 고향”이라고 밝혔다.
김웅(송파갑) 당선자, 김두관(양산을) 당선자, 이광재(원주갑) 당선자
▶파란을 일으켰다!
이번 총선 최대의 이변은 호남의 대표 정치인 박지원 민생당 의원의 낙선이다. 그것도 정치 초년병과의 대결에서다. 이변의 주인공은 전남 목포에서 박 의원에게 도전장을 내민 김원이 민주당 후보. 선거 출마를 위해 고향에 돌아온 지 5개월 만에 ‘정치 9단’ 박 의원을 물리쳤다. 그것도 6만2000여 표 차란 여유 있는 승리였다. 김 후보는 민주당 내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남자로 불린다.
성북구청장 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한 후 박병석 국회의원 비서관을 거쳐 2002년 김대중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행정관으로 일했다. 이후 신계륜, 김근태 의원의 보좌관을 거쳐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현 시장의 캠프에 참가했다. 2019년에는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남원·임실·순창에 출마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용호 후보도 이변의 주인공이다. 그는 4선에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 중진 이강래 후보를 이겼는데, 호남에서 민주당 소속이 아닌 유일한 당선인이다. 민주당은 광주·전남,전북의 28석 중 27석을 차지했다. 그만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는 뜻인데, 이용호 당선자는 이강래 후보를 약 3000표 차로 이겼다. 기자 출신인 이 당선인은 제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소속으로 당선돼 원내대변인, 정책위 의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이후 2018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인천 동구미추홀구을 역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윤상현 의원도 정치권에 파란을 일으켰다. 윤 당선자는 미래통합당 후보에서 공천 탈락되자 이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는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도 당 공천에서 배제된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었다. 특히 이번 승리가 눈길을 끄는 것은 민주당의 바람이 거센 가운데 보수세가 약한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는 점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2위 후보와의 표차가 171표차에 불과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번 총선 최대 접전지 중 한 곳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각 당에 따르면 21대 총선에서 물갈이된 현역 의원의 비율은 58%로 나타났다. 그만큼 새로운 인물이 국회에 진입했다는 이야기인데, 화제가 되는 새내기 의원들이 꽤 많다.
먼저 형제 의원이 탄생했다. 미래통합당의 서병수, 서범수 당선자가 주인공이다. 부산시장을 지낸 서병수 당선인은 부산 진갑에서 현 지역구 의원인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었다. 두 사람 다 소속 정당의 거물급 정치인이어서 부산 진갑은 지역 정가의 최대 관심 선거지역이었다. 서범수 당선자는 울산 울주 선거에서 이겨 국회에 입성했다. 서병수 당선자가 형으로 서범수 당선자보다 11살 많다. 서범수 당선자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고시 특채를 통해 경찰에 입문했다. 울산지방경찰청장, 경찰대학장 등을 지냈다.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양향자 후보는 천정배 민생당 후보와의 재대결에서 승리하며 화제를 모았다. 고졸로 삼성에 입사해 임원에 오른 양 후보는 4년 전 민주당의 영입 인재로 정치에 입문했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양 당선인은 국민의당 돌풍에 낙마했다. 이때의 아픔을 양 당선인은 리턴매치로 돌려주며 국회의원 배지를 거머쥐었다. 표차도 압도적이었으며, 지역의 유일한 여성 국회의원이란 타이틀도 달았다.
전남 화순 출신인 양 당선인은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한 뒤 설계팀 책임연구원, 수석연구원, 부장 등을 거쳐 2014년 상무로 승진했다.
전북 전주시병에 출마해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후보도 눈에 띈다. 그의 상대 후보가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인 정동영 민생당 후보였기 때문이다.
김 후보와 정 후보는 전주고와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왔다. 두 사람도 이번 선거가 리턴매치였다.
한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던 두 사람은 지난 총선에서 당을 달리해 출마했었고, 국민의당으로 출마한 정동영 후보가 이겼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김 당선인이 정 후보를 30%P 차로 여유 있게 승리했다.
핸드볼 여자 대표팀을 다룬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주인공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당선인도 화제의 인물에서 빼놓을 수 없다. 임 당선인은 한국 여자 핸드볼의 간판으로 그가 대표팀을 이끈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1996년(애틀랜타)과 2004년(아테네) 올림픽 때는 각각 은메달을 땄다. 척박한 운동 환경에서 따낸 임 당선인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져 짙은 감동을 줬다. 이런 그는 이번 총선에서 경기 광명갑 선거구 더불어민주당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 외부영입 15호 인사인 임 당선인은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감독,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상임 이사 등을 역임했다. 그는 정치 입문 동기로 “문재인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말이 자신의 철학과 같아서”라고 말한다.
인천 연수을에 출마해 현역 국회의원 2명을 꺾고 당선된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화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출신인 그는 정치 초년병이면서 출마 전까지 지역의 연고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경욱 후보와 이곳에 도전장을 내민 정의당 이정미 후보를 동시에 꺾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유세과정에서 국토교통부에서 30년을 근무하고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지낸 이력을 강조하며 교통·경제 전문가라는 점을 적극 홍보했다. 소방관 출신 국회의원도 탄생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더불어민주당이 영입한 오영환 당선인이다. 오 당선인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불출마한 의정부갑에 전략공천돼 강세창 미래통합당 후보를 꺾었다.
오 당선인은 2010년 서울 광진소방서 119구조대원으로 소방관 생활을 시작했으며, 중앙119구조본부에서 현장 대원으로 활동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일선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펴내기도 했다. 그의 아내는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김자인 선수다.
경남 거제에서 당선된 서일준 미래통합당 후보는 흙수저 신화를 이뤄냈다. 고향인 거제에서 9급 면서기로 공직에 입문한 후 금배지까지 달았다. 그의 선거 도전은 이번에 두 번째다. 2018년 1월 명예퇴직 후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후보로 그해 거제시장 선거에 나섰으나 낙선했다. 이를 국회의원 선거에서 설욕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1990년대생 국회의원 3명도 탄생했다. 류호정 정의당 당선인, 용혜인·전용기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이 주인공이다. 올해 28세인 류 당선인은 헌정 사상 ‘최연소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다.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은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만 26세에 경남 거제에 출마해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