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發 호재에 신안산선 착공 겹쳐 가격 탄력
소비 여력 커져 상권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
소리 없이 강하다.’ 최근 영등포 부동산 시장을 취재하다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모 자동차 브랜드의 광고 카피였던 이 문장이 영등포의 현 부동산 시장을 적절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영등포 일대 부동산 시장은 강남이나 잠실, 마포, 동작 등 부동산으로 ‘핫’하다는 곳만큼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다. 절대 가격으로 따지면 정부가 그렇게 잡고 싶어 하는 강남 일대 집값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어 영등포가 언제…’라는 반응이 절로 나온다. 소리 소문 없이 집값이 어느새 고공행진을 끊임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승세가 예상 밖이다.
이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KB부동산 리브온(Liiv ON)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직후 2017년 5월 15일부터 올해 11월 11일까지 서울 25개 자치구 중 집값 상승률 1위를 차지한 곳은 영등포구(28.7%)였다. 그 뒤를 양천구(25.6%) 동작구(25.0%) 성동구(24.6%) 마포구(24.5%) 송파구(24.4%) 강남구(23.6%) 용산구(22.7%) 강동구(22.9%) 서초구(18.6%) 등이 이었다. 이 기간 전체 서울 아파트값은 21% 올랐다. 단기로 봐도 마찬가지다. 영등포의 집값 강세 추세는 최근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영등포 부동산 시장의 강세가 현 정부 들어 뛰고 있는 서울 지역 전반적 집값 상승 맥락을 같이 하지만, 지역 내에서는 그 이상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등포 일대는 과거 강남 일대를 영등포의 동쪽이라고 부를 정도로 서울의 중심이었지만, 이 과거는 빛이 바랜지 오래였다. 하지만 재개발 등 각종 정비 사업이 지역 곳곳에서 진행되면서 생활 여건이 개선되고, 여기에 ‘교통망 개선’이란 특급 호재가 가미되면서 최근 이 일대는 새 기운이 곳곳에서 꿈틀대고 있다. 일례로 영등포의 상권 중심지인 영등포역 일대에 몰려 있는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 등이 최근 대대적인 리뉴얼로 분위기를 바꾸면서 소비층 확대에 나서고, 이 일대 낙후된 주변 도로 인근에는 트렌디한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다.
▶신안산선, 국회대로 지하화로 더 주목
지난 9월 말께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영등포역 앞 영중로를 새 단장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이 일대는 50여 년간 노점상이 난립하던 곳으로 영등포의 낙후된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이해관계도 많아 정리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이 일대는 깨끗하게 정비됐다. 도로폭도 넓어졌고, 동일 규격의 거리가게가 조성돼 한눈에 봐도 새로운 느낌을 준다. 이 일대는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타임스퀘어 등 대형 쇼핑센터가 몰려 있어 영등포의 상권 중심이지만 주변 환경이 노후화해 부조화의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영중로 정비 사업으로 새 도심의 면모를 띠게 됐다. 이 일대 미관을 해치는 전선 지중화, 영등포 고가 철거 등의 사업 결과가 향후 더해지면 이곳 분위기는 더욱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모습은 영등포를 눈여겨보는 이들이 지나칠 만한 대목이 아니다. 영등포의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등포는 지리적 입지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서울시가 2014년 발표한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 상 3대 도심(광화문 종로, 여의도 영등포, 강남)에 속하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영등포 구내 재개발 사업들이 탄력을 받으면서 주목이 본격화됐다. 최근 여기에 부동산에서 특급 호재로 치는 교통망이 더해지면서 더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지난 10월 말 영등포구는 KB부동산 리브온이 발표한 주간 KB주택시장동향(10월 28일 기준)에서 서울 25개구 가운데 아파트 매매값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전달에 신안산선 복선전철 착공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20년 넘게 경기 서부 지역의 숙원 사업이었던 신안산선은 경기 시흥에서 출발해 서울 여의도까지 44.7㎞를 연결하는 노선이다. 이 사업이 드디어 삽을 뜨자 이 노선이 지나가는 영등포 부동산 시장이 들썩인 것이다. 이 주 영등포구 변동률은 0.41%에 달했다. 같은 시기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15%의 변동률을 기록했다.
서남권의 핵심으로 키우겠다는 서울시의 전략에 고개를 갸우뚱했던 투자자들이 그 실체를 확인하자마자 뜨겁게 반응한 셈이다. 교통망이 개선되고 일대 환경이 정비되면 당연히 사람들은 몰리기 마련이다. 이러다 보니 향후 지역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져 이 일대 집값은 상승세를 멈출 줄 모른다. 올 연초 대비로 봐도 영등포는 서울 전체 지역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3.7%) 지역이다.
KB 리브온 측은 “신안산선 착공 소식이 호재가 된 것이 맞는 것 같다”면서 “여의도 지역 집값이 뛴 것도 한몫했지만 뉴타운 사업이 계속 추진되고 일대 정비 사업으로 달라진 모습들이 보이면서 향후 시장에 대한 기대심리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는 당산동, 양평동 일대 노후 단지들을 겨냥한 투자수요가 많다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교통망 호재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서울시가 추진 중인 국회대로 지하화 사업이다. 신월IC에서 국회의사당 총 7.6㎞에 지하 차도를 내는 이 사업은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이다. 크게 신월IC~목동운동장(4㎞), 목동운동장~국회의사당(3.6㎞) 2구간으로 나뉘는데, 지하화 사업과 동시에 공원 조성도 함께 이뤄진다. 첫 번째 구간 상부에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고, 2단계 구간은 기존 8차로를 6차로로 줄여 남는 공간과 기존 인도를 정비해 녹지 등 친환경 공간을 만들 예정이다. 2단계 구간이 지나가는 지상의 인도 폭이 상당해 차로를 줄이는 부분과 합쳐지면 꽤 넓은 친환경 공간 조성이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선유도 고가가 철거된다. 자연스레 도로 및 주변 정비가 되는 것이다. 영등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곳이 2단계 구간으로, 당산동 일대 아파트들이 계속 관심을 받는 이유다.
20년 된 30평 아파트들도 10억원대를 넘나들고 있고, 이곳에서 오랜만에 선보이는 내년 입주 예정 새 아파트 당산 센트럴 아이파크의 같은 평형 예상 시세는 10억여원 중반대를 점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지금은 전매제한에 걸려 거래를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 부동산에는 이 새 아파트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 일대 매물 거래는 대부분 9월까지 이뤄졌고 그 이후로는 나오는 물건을 찾기 힘들다. 2015년 지어진 브라운스톤 당산 32평이 지난 9월 8억9000만원에 실거래됐고, 2010년 입주한 당산반도유보라 아파트 56평이 8월에 13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이 아파트들은 국회대로 지하화 사업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다.
현재 국회대로 지하화 사업은 10% 정도 공정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부 공원화 사업은 현재 설계 공모 중이다.
이밖에 영등포 구내에는 굵직한 도심 재개발 사업들도 계획돼 있다. 밀가루 공장이 있던 대선제분 부지는 문화, 전시, 공연, 카페 등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며, 타임스퀘어 인근 GS주차장 부지에는 지상 20층 규모의 청년희망복합타운이 2022년까지 조성될 예정이다. 또 문래동 공공용지에는 제2 세종문화회관 건립이 확정돼 있다.
▶영등포 뉴타운 vs 신길 뉴타운
그동안 여의도를 제외하고 영등포 부동산 시장을 이끌어 왔던 것은 영등포동과 신길동에서 추진되고 있는 재정비촉진사업(과거 뉴타운 사업, 이하 뉴타운)이다. 영등포 뉴타운은 영등포동2가·5가·7가 일대를, 신길 뉴타운은 신길동 236번지 일대를 재정비하는 사업이다. 시작은 영등포동(2003년)이 빨랐지만 속도는 2006년 지정된 신길 사업이 훨씬 빠르다. 신길 뉴타운 사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업 구역에서 새 아파트들로 완공됐거나 올라가고 있어 일대를 돌아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신길은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새 아파트 선호 현상과 여의도와 인접한 지리적 입지 특성 때문에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꺾일 줄 모른다.
이 일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내년 입주를 앞둔 보라매SK뷰의 경우 30평대가 13억원대 중반에 매물이 나와 있다. 지난 7월 이 일대 대장 아파트 역할을 하는 2017년 입주한 래미안 에스티움 84㎡ 아파트가 11억원에 실거래된 것을 감안하면 불과 세 달 새 호가가 2억원 넘게 오른 것이다. 지난달 래미안 에스티움 20평대 저층이 10억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등포 뉴타운 아파트도 만만치 않다. 사업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이곳의 새 아파트 가격은 신길보다 오히려 강세다. 최근 거래된 2년 전 입주한 아크로타워스퀘어 35평의 경우 15억원에 실거래됐다. 한강이 보이는 고층 물건이다. 현재 한화건설이 바로 옆에 아파트를 짓고 있다. 이 같은 가격 강세는 입지면에서는 영등포 뉴타운이 신길을 앞서고 있는 측면이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영등포 뉴타운은 영등포 시장역이 지척에 있고, 여의도까지도 걸어서 갈 수 있다. 영등포의 중심상권인 백화점 등이 몰려 있는 영등포역 일대도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때문에 이곳에 대한 관심도 쉽게 식지 않고 있는데, 특히 1-13 구역의 사업시행인가가 곧 난다는 소식에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최근에 2달 만에 나와 있는 매물이 1억원가량 뛴 채 거래됐다. 1-12 구역은 조합설립 신청이 접수된 상태며 곧 인가가 날 것으로 알려졌다. 영등포동 재정비촉진지구는 국회대로 지하화 사업이 완공되면 수혜를 볼 수 있는 입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길 뉴타운도 영등포동에 비해 열세인 입지적 약점을 극복해 경쟁력을 더할 예정이다. 영등포 부동산 시장을 달구고 있는 신안산선이 신길 뉴타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신안산선은 신길 뉴타운의 주 지하철역인 신풍역(7호선)을 지나갈 예정인데, 이 노선이 완공되면 이곳 거주자들은 지하철을 갈아타는 번거로움 없이 여의도로 바로 이동할 수 있다. 현재 신풍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여의도로 이동하려면 2번의 환승을 거쳐야 한다. 아니면 버스를 이용해 5호선을 이용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영등포동 일대는 중심지형 재정비 사업으로, 신길동은 주거지형으로 개발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두 곳 모두 서남부권 중심업무 지구인 여의도의 배후 주거지로서의 역할이란 공통분모가 있지만 영등포동 일대는 “영등포구 지역발전을 위한 거점지”로서의 역할이 하나 더 부여돼 있다. 이와 관련해 영등포구청은 영등포동 재정비촉진사업에 대해 “지역적으로 인접한 여의도 업무 수요의 일부를 수용해 신흥업무단지를 조성하고 신개념 도심형 주거지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영등포동 일대 재개발 부지 상당수가 상업지가 많다는 점이 한몫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상업지가 많다는 것이 이곳 재개발 추진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재개발 지역 내 상가를 가진 많은 이들은 굳이 시간이 걸리는 재개발보다 현 상가를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하고 이것이 걸림돌이 되어 재개발 추진이 잘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영등포 뉴타운 추진이 신길에 비해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주거지형인 신길은 이해 당사자들 간 충돌이 심각하지 않아 재개발에 대한 합의가 빨리 이뤄져 사업 진행에 속도가 난 것이다. 이 같은 사업 특성 때문에 사업 지정 면적은 비슷하지만 신길 뉴타운은 2만734세대로, 영등포동은 3552세대의 주거단지로 구성돼 있다. 물론 재정비촉진지구에서 해제된 곳들이 있어서 이들 숫자는 사업이 끝난 후 다소 달라질 전망이다.
타임스퀘어 전경, 최근 리뉴얼된 타임스퀘어점 내부
▶상권도 소비 여력 커진 지역 특성 고려해 변모 중
영등포 내 부동산 시장 강세와 함께 상권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소비 여력이 커지는 것으로 여기는데, 이와 무관치 않은 흐름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것이 영등포 중심상권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가 최근 대대적으로 벌인 리뉴얼 작업이다.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은 10년 만에 단행한 리뉴얼에서 생활전문관을 확대했다. B관의 2~6층, 5개 층을 모두 생활전문관으로 새 단장했다. 주거의 질을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지만, 지역적으로 볼 때 서울 서남부권 일대의 소비 여력이 확대된 것을 고려한 전략도 깔려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지역 내 대규모 새 아파트 입주 요인이 계속 있고, 또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주거의 질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을 고려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타임스퀘어는 최근 리뉴얼 작업을 진행하면서 소위 ‘맛집’을 강화했다. 새로 생긴 음식점을 찾는 발길에 주말이면 재료가 마감 전에 동이 날 정도로 반응이 좋다. 타임스퀘어 내 식당가는 인근 음식점들보다 단가가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타임스퀘어 관계자는 “지역 환경이 개선되면서 고객층이 더 넓어지고 소비여력이 커진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역 내 상권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인근인 여의도에 현대백화점이 국내 최대 규모로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어 이들 간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현재 현대백화점은 여의도 대형복합시설 ‘파크원(Parc1)’ 내에 입점을 준비 중이다. 완공되면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게 된다. 현재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영업면적 8만6500㎡, 2만6200평)이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업계 관계자들은 여의도와 영등포를 찾는 수요층이 겹치지 않아 경쟁 구도는 맞지 않는다고 보지만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최근 유통가 트렌드 중 하나가 맛집을 통해 구매력 있는 소비층들을 끌어들이는 것인데, 이 현대백화점을 포함해 신세계나 타임스퀘어 등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의도에 들어서는 현대백화점이 맛집에 더 특화된 구조를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 간 경쟁 구도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맛집을 찾는 이들은 대개 거리나 가격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맥락에서 영등포역 일대 상권에서 맛집을 찾았던 이들이 지척에 있는 현대백화점 여의도점 맛집을 방문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백화점은 여의도점을 통해 영등포, 강서 지역과 함께 인근 마포·용산 고객까지 끌어오겠다는 전략을 짜고 있다. 타임스퀘어가 리뉴얼을 통해 맛집을 대폭 강화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의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상권은 결국 고객이 오래 머물러야 활성화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