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의 <여행생활자 집시맨>, JTBC의 <캠핑클럽> 등 캠핑카를 테마로 한 프로그램이 남긴 여운이 캠핑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색다른 문화를 낳고 있다.
경주시 산내면에 자리한 ‘화랑의 언덕’은 요즘 가장 핫한 경주 여행지 중 하나다. 하지만 불과 서너 달 전만 해도 이곳은 사진동호회나 들르던 숨겨진 명소에 불과했다. 알려지지 않았던 이곳이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건 순전히 가수 핑클 때문이다. 그녀들이 캠핑카를 몰고 화랑의 언덕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이곳 명상바위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로 주말엔 언덕에 오르는 길이 꽉 막힌다. 언덕에 오른다고 끝난 게 아니다. 명상바위까지 가려면 족히 1시간은 줄을 서야 한다. 언덕으로 향한 차량 중엔 캠핑카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MBN의 <여행생활자 집시맨>, JTBC의 <캠핑클럽> 등 캠핑카를 테마로 한 프로그램이 남긴 여운이 캠핑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색다른 문화를 낳고 있다.
▶나와 너, 가족을 위한 캠핑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김상조(49) 씨는 올 여름 현대차 스타렉스를 개조한 캠핑카를 구입했다. 김 씨는 “쉬는 날이 들쭉날쭉이라 따로 호텔 예약하고 여행에 나서는 게 번거롭기도 했고, 애완견 땡이를 받아주는 호텔이 많지도 않아 캠핑카를 구입하게 됐다”며 “<집시맨>을 보고 생각만 하다 <캠핑클럽>을 본 후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올 여름 강원도 7번 국도를 오가며 캠핑카에서 여름휴가를 즐겼다. 그가 캠핑카를 구매하는 데 지출한 돈은 약 5500만원. 김 씨는 “성수기에 준성수기까지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호텔, 펜션 비용이 전혀 들지 않으니 차량을 제외하고 여행 경비가 1/3로 줄었다”며 “앞으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캠핑카를 몰고 나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비단 김상조 씨뿐 아니라 레저 문화를 즐기려는 이들이 늘어나며 캠핑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60만 명이던 국내 캠핑 인구는 2016년 500만 명을 넘어섰고 최근엔 600만 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캠핑카 등록 대수도 늘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국내 캠핑카는 약 2만900대로 5년 전과 비교해 5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중 튜닝카 비중이 약 30% 정도로 추정된다.
국내 캠핑카 제조사 밴텍 디엔씨의 박상수 울산지사 대표는 “몇 년 전만 해도 50~60대가 주 고객층이었는데 지난해부터 30~40대 가장들의 문의와 구입이 늘고 있다”며 “캠핑을 즐기던 세대들이 결혼 후 아이들과 함께 나서면서 캠핑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와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캠핑관련 빅데이터 연구결과에도 이러한 문화가 반영됐다. 올 1월부터 8월까지 블로거, 인스타그램, 커뮤니티 등 약 23억 건의 소셜미디어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캠핑은 게임, 자전거, 골프 다음으로 인기 있는 여가생활이었다. 캠핑에서 언급되는 단어로는 ‘차박(차에서 숙박)’의 증가율(71%)이 가장 높았다. ‘캠핑카’(27%)와 ‘미니멀 캠핑’(17%), ‘캠프닉(캠핑+피크닉)’(13%)이 그 뒤를 이었다.
캠핑 신조어도 눈에 띈다. ‘불멍’은 ‘장작불을 보며 멍때리기’를 의미하는 신조어.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분석 결과 2016년부터 ‘불멍’의 언급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봄, 가을인 5월과 10월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였다. 한국관광공사는 “최근에는 화재위험 등을 이유로 장작과 숯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곳이 있어 캠핑장 예약 전에 불멍 체험이 가능한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 1월부터 8월까지 소셜미디어 빅데이터의 캠핑 연관어에는 ‘가족’과 ‘아빠’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가족 구성원 중 ‘아빠’의 언급량이 가장 많았는데, 게시된 글들을 추적해 보니 캠핑장에서 아이와 여가를 즐기는 아빠가 대부분이었다.
그런가하면 2014년 1월부터 올 6월까지 한국소비자원 1372 상담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캠핑장 이용 취소 때 발생하는 ‘위약금 분쟁’이 총 693건으로, 전체 상담 건수(843건)의 82%를 차지했다. 또한 캠핑 관련 주요 사고 유형으로 ‘화로나 버너 등 조리기구’ 때문에 발생하는 ‘화상·화재·중독 사고’(20.3%)가 가장 많았고, ‘텐트 로프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8.2%), ‘해먹에서 떨어지는 사고’(7.3%)순이었다.
문선옥 한국관광공사 관광빅데이터팀장은 “이번 분석을 통해 일상처럼 가볍게 떠나는 여행 트렌드가 캠핑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며 “즐거운 캠핑을 위해선 캠핑장 이용약관을 꼼꼼히 확인해 분쟁의 소지를 줄이고, 화재 등의 안전사고에 주의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 내년 2월부턴 전 차량 캠핑카로 개조 가능
캠핑과 캠핑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현재 11인승 이상의 승합차만 가능했던 캠핑카 튜닝(개조)이 내년 2월부터 모든 차종에 허용된다. 승용차는 물론 화물차도 소유자가 원한다면 합법적으로 캠핑카 개조가 가능해진다.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는 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동차 튜닝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그동안 캠핑카는 현행법상 승합차(11인승 이상)로 분류돼 승용차와 화물차는 캠핑카로 개조할 수 없었다. 화물차 위에 캠핑시설을 얹어 시판 중인 캠핑카도 현행법상 불법인 셈이다. 하지만 캠핑카와 캠핑카 튜닝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관련 규정을 정비하게 됐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사용 연한이 지난 소방차나 방역차 등 특수자동차도 화물차로 개조해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규정이 정비되면 9인승 카니발 등 밴 차량도 캠핑카로 개조할 수 있다. 현행법상 캠핑카 제작과 개조는 허가받은 전문 업체만 할 수 있다. 기존 구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개인이 개조하는 방법도 있지만 좌석을 드러내고 침대를 설치하는 등의 개조는 전문 업체나 자동차정비사업자만 할 수 있다. 이러한 규정은 자동차관리법 개정 후에도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내게 어울리는 캠핑카는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캠핑카 교체주기는 10년
차 연식·내부 소재 중고시세 반영
한 캠핑카 수입사 대표는 “종류도 다양하고 옵션도 많은 캠핑카를 제대로 선택하려면 본인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번 사면 웬만해선 바꾸지 않기 때문에 몇 명이 이용할 건지, 아이는 있는지, 차 안에서만 생활할 건지 등을 꼼꼼히 체크해야 예산에 맞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캠핑카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트럭이나 대형 밴을 개조해 차가 곧 생활공간인 모터홈(운전석이 있는 동력부와 침대, 주방이 일체형)과 자동차와 연결해 끌고 다니는 독립형 주거공간 카라반이 있다. 모터홈은 카라반보다 운전과 주차가 편하다. 김미숙 스페이스 캠핑카 대표는 “우리나라 지형에선 롱보디 캠핑카보단 숏보디 캠핑카가 편리하다”며 “모터홈은 국내에서 일상과 여행을 오갈 수 있는 도심형 캠핑카”라고 소개했다. 딱히 특수한 운전면허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7인승 승합차를 개조한 모터홈은 2종 보통 운전면허, 9인승은 1종 운전면허가 있으면 누구나 몰 수 있다. 적재 공간 등 내부를 아기자기하게 꾸며 볼거리가 많지만 공간이 넓지 않아 불편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차를 따로 구입한 후 개조를 의뢰해야하기 때문에 가격도 높다. 국내 모터홈 가격대는 대략 5000만원 이상. 수입 캠핑카는 배 이상 비용이 더 높다. 일례로 수입 캠핑카 중 위네바고의 ‘트랜드 21L’의 가격은 1억3200만원이다.
캠핑카로 개조한 승합차 트렁크
반면 카라반은 모터홈보다 내부공간이 넓다. 공간이 넓으니 편의시설도 제대로 갖추고 있다. 엔진이 없는 주거공간을 견인해 끌고 다니는 형식인데, 2인용 침대와 주방은 기본, 크기에 따라 침실, 거실, 화장실이 분리된 카라반도 있다. 차체 무게에 따라 크기가 다른데, 과거와 비교하면 가벼운 소재로 마감돼 일반 승용차로도 충분히 이동시킬 수 있다. 무게 750㎏ 이하의 카라반은 일반 운전면허로 이동이 가능하고, 750㎏이 초과하면 소형 견인차 면허가 필요하다. 카라밴의 단점은 역시 주차공간이다. 차량 외에 또 다른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캠핑에 나서지 않을 때 보관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모터홈과 비교하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데, 수백만원대부터 1억원이 넘는 모델까지 다양하다.
김미숙 스페이스 캠핑카 대표는 “캠핑카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라며 “전기, 기구 등의 편의 시설이 어떻게 설치됐는지 꼭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캠핑카를 구입하면 보통 평균 10년을 주기로 교체하게 되는데, 모터홈의 경우 개조에 쓰인 자재가 중국산인지 국산인지 가장 고급인 독일산인지도 확인해 봐야 한다”며 “중고차로 내놓을 땐 차의 연식이 우선이지만 집과 마찬가지로 인테리어 자재 등도 고려 대상”이라고 전했다.
캠핑카로 튜닝하고 싶은 차 1위 ‘카니발’
국내 직영 중고차 기업 K Car가 ‘캠핑카로 떠나는 가을여행’을 주제로 성인남녀 28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캠핑카로 튜닝하고 싶은 차’ 1위에 기아차의 카니발이 꼽혔다. 내년에 완전변경 모델이 출시될 예정인 카니발은 전체 응답자 중 36%의 선택을 받았다. 2위는 현대차 ‘그랜드 스타렉스’가 이름을 올렸다. 3위는 르노의 상용 밴 ‘마스터’가 차지했다. 마스터는 가격대비 탁월한 공간 활용성이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선호하는 캠핑카 종류’를 묻는 질문에는 이동수단인 자동차와 거주공간인 캠핑카가 결합된 형태의 ‘모터홈’이 66.5%의 선택을 받으며 1위에 올랐다. 응답자들은 “이것저것 준비할 필요 없이 바로 떠날 수 있어 좋다” “취사와 숙박을 한 번에 해결할 뿐만 아니라 생활공간이 잘 갖춰져 있어 편리하게 캠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등 모터홈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2위는 카라반이 꼽혔다. 카라반은 엔진이 없는 분리된 주거공간을 견인차로 연결해 끌고 다니는 형태다. 정인국 K카 대표는 “캠핑 인구 증가와 레저문화 확산에 따라 불과 몇 년 사이에 개인 소유의 캠핑카를 구매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특히 자동차 튜닝 규제가 완화됨에 따라 캠핑카 시장이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