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든 안방이든 들어가 본 집에는 다 (금고가) 하나씩 있더라. 오래 알고 지낸 고객들의 경우 장난삼아 내용물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강남지역에서만 10년간 활동한 한 보험사 재무설계사(FP)는 조심스레 부자들의 금고 속 비밀에 대해 털어놨다. 그 속에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화폐 외에 다양한 물건들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항상 퀘스천마크에 부쳐졌던 강남부자들의 금고 속을 들여다봤다.
CaseⅠ어둠 속 반짝반짝 빛나는 별
대치동에 사는 A씨의 금고 속은 항상 빛이 난다. 줄지어 늘어선 보석들이 저마다 반짝이는 자태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예물이라기에는 수량이 지나치게 많고 같은 종류의 보석도 많다.
그는 원래 보석을 좋아해 수집을 위해 구매하기도 하지만 투자목적으로 보유하기도 한다. 그가 투자목적으로 삼는 보석은 ‘다이아 1캐럿’. 그는 겨울에 다이아 가격이 내려가고 결혼시즌이 다가오면 일시적으로 가격이 오른다는 점을 활용해 1년 단위로 구입과 판매를 반복하며 짭짤한 수입을 거뒀다. 1캐럿 단위로 구매하는 이유는 ‘처분의 용이함’ 때문이다. 웨딩시즌 가장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다이아의 시즌별 시세차익은 최소 7~8%로 품귀현상이 일어날 경우 많게는 20%가 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다이아몬드 외에 가격이 높은 원석의 경우 미세물질이 함유된 저가품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1등급만 구매한다. 고가의 보석일수록 품질이 높은 원석에 대한 선호가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가의 보석들은 다이아처럼 정기적인 구입이나 판매가 어렵지만 거래가 성사되면 훨씬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도 있다.
한편 2단으로 구성된 A씨의 금고 아래편에는 두둑한 현금이 자리한다. 이는 A씨의 비상금이 아닌 보석판매금과 시세차익을 통해 거둔 수익금이다.
이 현금은 다음시즌 구입을 위한 종잣돈으로 쓰이며 5만원권이나 100달러짜리 뭉치로 보관된다.
CaseⅡ예술품 보관은 역시 금고가 제격
예술품은 대형그룹 회장들의 금고 속안에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며 그림이나 조각 등을 소유하는 자산가들이 늘어났다.
방배동에 사는 B씨의 개인금고에는 여러 예술작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대학시절 미술을 전공한 데다 현직 예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터라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화랑이나 전시회를 방문해 작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상 깊은 작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작품이 쌓이다 보니 보관이 문제였다. 그림 같은 경우 집안에 걸어두면 됐지만 공기나 습도에 민감한 소재로 탄생한 조각이나 판화 등의 작품들은 별도의 보관 장소가 필요했다. 급한대로 가정용 금고를 구매해 작품들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작품이 늘어나자 그는 아예 금고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금고가 예술작품 보관장소로 사용되는 경우는 흔하다. 한 은행권 PB는 “미술작품은 개인용 금고에 보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은행 대여 금고를 활용하는 고객들도 상당수”라며 “규모가 커서 집에 보관이 힘들거나 비밀스럽게 입수한 작품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고 밝혔다.
CaseⅢ황금으로 가득 채운 곳간
회계사 C는 근 10년간 금에 투자해 왔다. 한때 주식투자나 펀드에 손을 대 손실만 보던 차에 돌잔치에 참석할 때마다 오르는 금값을 보고 투자를 결심했다. 처음에는 금반지나 순금돼지를 구입하며 시작했다. 매달 400만~500만원씩 구매하다보니 장롱서랍은 보관 장소로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여가 지난 시점부터 가정용 금고를 구입했고 반지 등을 골드바 형태로 바꿨다. C씨는 작년 주택구입을 위해 2억원 정도를 매도한 이후 현재 10Kg 정도 보유하고 있다.
은행 대여금고는 판도라의 상자
각 은행 PB지점 안에는 고객들을 위한 비밀스러운 공간이 자리해 있다. 거래실적과 신용도가 좋은 고객들이 다양한 물품들을 보관할 수 있도록 빌려주는 대여금고를 구비해 놓고 있다.
대여금고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크기에 따라 5만~50만원의 보증금과 1년에 1만~5만원의 이용료를 내면 가능하다. 다만 VVIP고객들의 경우 이용료를 면제해주는 사례가 많고 절도사건이 많아지는 명절이나 휴가철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대여금고는 본인 외에 철저하게 열람이 불가능해 고객들을 관리하는 전담PB들도 내용물을 알 수 없다. 대여금고 이용고객이 사망했을 경우에도 모든 상속인의 동의하에 열람 및 처분이 가능하다.
이렇듯 베일 속에 가려진 대여금고의 비밀이 지난해 서울시에 의해 공개됐다. 체납자를 대상으로 은행 대여금고 503개를 압류해 세금 징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개방된 대여금고 속에는 집 문서부터 금괴, 황금돼지 등의 금 관련 제품과 다이아몬드 반지, 다이아몬드 귀걸이, 에메랄드 반지, 진주 등 보석류, 롤렉스 등 명품 시계, 각종 기념주화, 고서화, 미술품, 다량의 외환이 발견됐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자 체납자들은 분주해졌다. 당시 세금 1200만원을 납부자지 않은 연예인 D씨는 대여금고 압류 정황을 접하고 시로부터 공문을 받기도 전에 체납액 전액을 납부했다. 당시 D씨 대여금고에는 100만원권 수표 25장이 들어 있었다.
지방세 1억400만원을 체납한 사회지도층 인사 E씨 역시 대여금고 압류 직후 체납세액을 모두 납부하고 압류 해제를 요청했다.
이렇게 압류된 물품들은 체납자가 끝내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경우 공매절차에 넘어가 세액에 충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