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중부의 산업도시 다낭에서 고도 호이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수십 킬로미터나 뻗어 있는 평탄한 백사장과 나란히 간다. 일년 열두 달 따뜻한 이곳엔 중국에서 매일 전세기가 날아올 만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미 미국계 하얏트나 크라운플라자의 체인호텔이 들어섰고 몽고메리가 설계한 링스코스 등 골프장도 인근에 문을 열었다.
천혜의 자연조건과 역사유적을 갖춘 곳이라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이곳엔 얼마 전까지 개발 붐이 일었다. 그러나 국가 전체의 자금경색이 심해지면서 지금은 이미 문을 연 리조트와 골조만 세워진 건물들, 나대지 상태의 땅들이 혼재된 조화롭지 않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경제의 중심인 호치민시에도 침체의 파도는 밀려들었다. 서울의 명동격인 호치민시 중심부 땅값은 한때 세계 최고가를 호가했다지만 지금 인파는 그리 많지 않다. 그곳에서 조금만 걸어가도 임대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수시로 눈에 띈다. 새로 개발되는 외곽엔 완공된 채 주인을 기다리는 빌라들이 수두룩하다.
베트남 정부는 44개 지역에서 2400개 프로젝트 7만1000헥타르가 개발되면서 전국 부동산 시장이 공급과잉 상태를 빚어 부실화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찐딩중 베트남 건설부장관은 지난 11월 2일 주택 관련 대출의 절반 정도가 부도 상태라고 밝혔다. 건설부문 대출 총액은 1000조 베트남 동(약 48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된 것은 이 나라 경제의 절반가량을 장악하고 있는 국영기업들의 무분별한 확장에 나선 때문이란 게 대체적 견해다. 특히 손쉽게 돈을 벌 것으로 여긴 부동산 개발에 뛰어들면서 전국적으로 부동산 경기 과열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 부도를 낸 국영 조선회사 비나신의 경우 선박건조 외에 관광 리조트 등으로 사업을 벌이다 45억달러의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버블이 형성될 만큼 부동산값이 치솟으며 중가와 고가 주택 신축이 급증했으나 환율이 요동을 치고 글로벌 경기가 급격히 식으면서 자금이 돌지 않아 대부분의 사업이 묶였다. 건설경기가 급락하니 철강이나 시멘트 재고도 쌓이고 있다. 현재 베트남의 시멘트 재고는 257만톤에 달하고 있다.
IMF 자문 받아 구조조정 나서
체제 안정을 유지해야 하는 베트남 정부의 물가통제도 버블 붕괴에 한몫을 했다. 베트남에선 최근 몇 년간 살인적인 수준의 인플레이션으로 근로자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는 최근 2년여에 걸쳐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한편 대출을 통제하며 긴축에 나섰다.
그렇지만 국영기업 구조조정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IMF가 국영기업이 본류가 아닌 사업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고 베트남 정부 역시 이를 시행할 방침이다. 공안당국이 지난 8월 은행 거물인 응웬 둑 끼엔 아시아상업은행(ACB) 공동 창업자를 비리 혐의로 체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금융기관 부실이 문제이기 때문에 구조조정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때 140%까지 갔던 예대비율이 최근엔 105%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고통스런 졸라매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IMF는 베트남 정부에 2015년까지 국책은행의 예대비율은 95%선, 상업은행의 예대비율을 85%까지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긴축에 나서자 금융기관들은 대출 금리를 대폭 올렸다. 이 때문에 베트남 축산 농가나 메콩델타 일대의 새우가공 업체들은 금융비용이 급증해 도산할 지경이라며 정부에 대해 저금리 정책자금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소식은 있다. 재정이나 가계부문이 비교적 건실하며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어 베트남 경제가 정상궤도로 돌아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INTERVIEW 오경희 KIS베트남증권 대표펀드 시장 열려 구조조정 후 전망은 밝다
“베트남은 현재 한창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정부가 은행이나 국영기업들에 대해 방만하게 하던 사업들 가운데 핵심만 하고 나머지는 팔라고 한다. 은행 부실채권 처리가 관심이다. 부실채권을 처리하지 못해 은행들이 현금을 들고 있다. 외환사정은 괜찮은 편이다.”
한국투자증권 베트남 법인인 KIS베트남증권의 오경희 대표는 구조조정만 완료되면 베트남 증시가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환보유고는 늘어나고 있고 20~30%대에 달하던 인플레이션도 지금은 한 자리로 낮아졌다. 고금리 추세가 이어지다가 최근엔 이자율도 9% 선으로 안정됐다. 공무원들이 한국 자산관리공사에 가서 배우는 등 구조조정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정부의 부실채권 처리 방안만 확정되면 경제가 빠르게 정상화될 것이란 얘기다.
베트남 증시는 현재 100여 증권사가 난립해 중개를 하고 있지만 시장 자체는 아직 걸음마 단계란 게 그의 설명이다.
“오후 시장 여는 것을 올해 시작했을 정도다. 주문 후 사흘 뒤에나 결제가 체결될 정도로 낙후돼 있고 선물옵션 시장도 없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의 증권거래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어서 시스템이 빠르게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도 당일 매매가 되면서 거래량이 급증했는데 베트남도 그럴 것이란 얘기다.
이에 대비해 KIS는 온라인 증권의 강자가 된다는 전략을 세우고 HTS를 최고급으로 세팅했다. 75명 중 2명만 한국인일 정도로 완전 현지화를 했지만 직원들을 한국에 파견해 교육시키는 등 한국투자증권의 시스템을 그대로 끌고 간다는 구상이다. 70위권 회사를 인수해 지금은 25위권으로 끌어 올렸는데 이를 조만간 5위권 증권사로 키운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현재 상장사는 700여개다. 이 가운데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가 시가총액의 47%를 차지한다. 또 건설 부동산 부문이 30%이고 소비재나 가스회사 등도 강세다”라며 베트남 증시의 특성을 소개했다. 한국과 같은 제조 블루칩은 없다고 했다.
섹터 중에선 외국인이 선호하는 비나밀크가 소속된 소비재 부문이 유망하다고 했다. 인구가 많고 어려워도 소비는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동안 이익을 내기 보다는 장기 발전을 위한 투자에 주력했다”는 그는 올해는 9월까지 흑자를 유지해 시장상황만 안정되면 처음으로 흑자전환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특히 “내년 하반기에 처음으로 한국의 펀드와 같은 개방형 펀드가 출시될 예정”이라며 이에 따라 기관화 장세가 펼쳐지는 등 베트남 증시가 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