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정치에 올인
2012년은 북한이 설정한 ‘강성대국’ 원년이다. 북한은 지난 1998년부터 고 김정일의 핵심 통치구호로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내세워왔다.
지난해까지 북한은 한 해 정강정책을 드러내는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거듭 공언했다. 시간표대로라면 김일성 탄생 100년을 맞은 올해 북한은 진작에 “위대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했노라”고 대내외에 선전했어야 했다. 하지만 현재 북한에서 강성대국이란 말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호가 폐기된 셈이다.
강성대국이란 사실 대단한 개념이 아니다. 북한이 사회주의 ‘사상대국’ ‘군사대국’이 됐으니 이제 인민들이 먹거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수준으로 경제를 개발하자는 의미다. 다른 나라들이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이니 경제성장률 8% 유지니 하는 것과 비교하면 소박한 목표다. 하지만 이마저도 슬쩍 폐기할 수밖에 없는 게 북한의 현실이다.
먼저 먹거리 문제를 보자. 북한이 설정한 강성대국의 필요조건은 알곡 생산량 700만톤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허황된 꿈이었다. 최소 수요량인 500만톤도 생산하기 어려운 농업현실에서 아무리 농민들을 쥐어짜고 학생들을 동원해봐야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면 비료 확보가 가장 중요한데 북한은 이마저도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참여정부 때까지 연간 30만~50만톤을 남측으로부터 지원받은 북한은 MB정부 들어 잇따른 무력도발과 핵개발로 비료 지원을 받지 못했다. 농업생산성이 떨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
올해는 기상이변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국제기구와 통일부는 올해 봄 가뭄과 태풍 등으로 북한의 식량생산량이 예년보다 60만톤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알곡 기준 생산량은 460만톤(추정치)이었는데 올해는 400만톤에 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주택건설도 목표에 한참 미달했다. 북한은 강성대국 원년인 올해 태양절(4월 15일)에 평양에 살림집 10만호를 완공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계층을 위해 현대식 아파트를 선물해주려는 의도였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주민이 입주한 주택은 1만호도 안 된다.
시멘트와 중장비 부족으로 공사가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완공 시기는 연말이나 내년 초로 미뤄졌으며 그나마 건설규모도 10만호에 못 미칠 전망이다.
강성대국의 두 축인 식량과 주택 사정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운이 좋다. 지난해 말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모든 책임을 떠안고 갔기 때문이다. 김정은으로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된 셈이다.
춥고 배고픈 인민들에게 줄 선물이 없는 김정은은 집권 첫해 이미지 정치에 매달리고 있다. 부인 리설주와 함께 가정집을 방문해 설거지를 해주거나 놀이공원에 가서 인민들과 놀이기구를 타는 등 아버지 김정일과 다른 스킨십을 과시하는 것.
하지만 언론을 통해 선전하는 친서민 행보는 어디까지나 쇼일 뿐이다. 김정일 시대보다 더 가혹하게 탈북자와 가족들을 탄압하고 ‘신경제’를 하겠다면서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야말로 ‘김정은 1년’의 민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