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와 관련해서 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뿐이지 않겠나….”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정부 당국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북측이 수해복구 지원마저 거부해버림에 따라 이명박 정부에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카드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취재현장에서 만나는 대북 전문가들의 의견도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 ‘세월이 약’이길 기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지난해 9월 ‘강경파’ 현인택 고려대 교수 후임으로 류우익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통일부 장관에 취임했을 때만 해도 남북한 공히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다.
류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대북 유연화 정책을 펼칠 뜻을 밝히며 의욕적인 대화 제스처를 보였다.
같은 해 7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북 비핵화회담이 성사됐고 북·미 간 대화채널도 가동됐다. 그러나 그 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모든 것이 원위치로 돌아갔다. 당시 한국에서는 김정일 조문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가 조문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 뒤 북한은 “민족의 대국상 앞에 악행을 보인 이명박 정부와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내년에 들어설 새 정부는 얽히고설킨 남북관계를 풀어낼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정치 분야보다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경제협력 분야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일단 남북합의 없이도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인 5·24 조치 해제를 고려할 수 있다.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정부가 대북 투자금지와 교역중단을 선언한 5·24 조치는 사실 북한보다는 수많은 남북 경협기업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줬다.
정책목표와는 무관하게 이 조치의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은 보수·진보 측 전문가들로부터 공히 제기된다. 북한도 관영매체를 통해 심심찮게 5·24 조치의 해제를 주장하고 있다. 5·24 조치의 해제 여부를 남북관계 개선의지의 잣대로 삼겠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전략적’ 판단을 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남북한 정세와는 별개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정치논리로 인해 남북경협이 또 한 번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앞으로 엄청난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기업들이 경협에 나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관심을 보이고 한국에도 도움이 되는 지하지원 공동 탐사·개발을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방법도 현실성이 있다.
북한은 지난 7월 방북한 광물공사 측 인사에게 희토류 샘플 4종을 전달하며 공동개발 의사를 타진했다. 구체적인 탐사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에 세계적 수준의 희토류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07년 북한 지하자원 탐사 남북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최경수 북한자원연구소장은 “2012년 현재 북한 내 지하자원의 잠재가치는 한국보다 21배 많은 9조7000억달러에 달한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북한의 희토류 매장량을 세계 6위에 해당하는 2000만톤 정도로 추산했다.
지하자원 공동 탐사·개발은 북한으로선 잃을 게 없는 카드다. 남측 자본과 기술을 이용해 개발이익을 나누면 북한 경제개발의 종잣돈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