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1대로 시작해 반세기 만에 육·해·공을 잇는 세계적인 수송그룹을 이룩하다!
언뜻 듣기에는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한진그룹 창업주 故 조중훈 회장은 이런 불가능한 일을 이뤄낸 인물이다. 그는 1945년 트럭 1대로 시작해 세계 10대 항공사로 손꼽히는 대한항공과 세계 5대 선사인 한진해운, 그리고 한진택배와 한진고속 등을 설립하며 명실상부한 육·해·공을 잇는 글로벌 물류기업을 탄생시켰다.
재계에서는 조 창업주가 한진그룹이라는 글로벌 물류기업을 세울 수 있던 배경으로 한 우물 경영을 지목한다. 물류사업에 주력하면서 이와 관련된 부대산업만을 치밀하게 공략했기 때문에 한진그룹을 10대 그룹으로 키워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한진가의 혼사에서도 이런 세심함을 엿볼 수 있다. 조 회장은 자신의 자녀와 동생들의 혼인를 통해 관·재·학·법조계 등으로 폭넓고 다양한 가문과 사돈을 맺었다. 특히 연애결혼보다는 중매결혼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수송보국’을 기치로 내걸며, 트럭 1대로 세계 유일의 거대 물류기업을 이룩한 ‘수송제국’ 한진의 혼맥을 살펴봤다.
故 조중훈 회장과 4형제. 왼쪽부터 조정호 메리트금융그룹 회장, 故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3·4남을 통해 현대·삼성·LG와 연결
한진그룹을 세운 조중훈회장은 1920년 서울 미근동에서 직물 도매상을 하던 부친 조명희 씨와 모친 태천즙 여사 사이 4남4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김정일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4남1녀를 두었다.
조 창업주는 자녀를 통해 관계와 재계의 집안들과 주로 연결돼 있다. 재계 쪽에서는 롯데그룹의 사위인 NK그룹 최현열 회장과, LG그룹 창업주 故 구인회 회장의 자제인 구자학 아워홈그룹 회장(부인인 이숙희 여사를 통해 삼성그룹과도 연결)과 이어지며, 장남인 조양호 회장을 통해서는 학계와 관가, 법조계 등과 혼사를 맺고 있다.
조 창업주의 장녀인 조현숙 여사는 1968년 법조인이었던 이태희 당시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혼인했다. 이상목 전 흥아타이어 감사의 장남인 이태희 씨는 서울대 법대와 미국 하버드대 법학박사 출신의 엘리트 법조인이다. 현재 대한항공 법률고문인 이태희 씨는 1983년 KAL기 폭파 사건 당시 보상 문제와 법률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태희 씨와 조현숙 여사는 슬하에 주영·혜영·재훈 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조현숙 여사와는 세 살 터울로 1949년생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화제의 결혼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재철 교통부 차관의 장녀인 이명희 여사를 부인으로 맞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당시의 결혼을 놓고 주무부처인 교통부와 물류기업이 사돈을 맺었다는 점 때문에 화제가 됐다. 서울대 미대 출신인 이 여사는 조양호 회장과 중매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양호 회장과 이명희 여사는 슬하에 현아·원태·현민 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이중 막내딸인 현민 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했다. 장녀인 조현아 전무(대한항공 기내식기판 사업본부장)는 실력파 성형외과 의사로 알려진 박종주 강남 아이브성형외과 원장과 결혼했다.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전무는 김태호 충북대 교수의 자제인 김미연 씨와 가정을 꾸렸다. 김태호 교수의 부친은 김재춘 전 국회의원으로 제3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
대한항공과 진에어 등 그룹 내 커뮤니케이션 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막내딸 조현민 상무보는 미혼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조 상무보의 혼사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조 창업주의 차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유일하게 연애결혼했다. 조남호 회장의 부인은 김영혜 씨로 장인은 경기고 교장을 거친 김원규 전 교육감이다. 조남호 회장과 김영혜 씨 사이에는 원국·민희 씨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급작스러운 병사로 주변의 안타까움을 샀던 3남 故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은 최현열 N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은영 현 한진해운홀딩스 회장과 결혼했다. 한진가는 이 혼사를 통해 롯데그룹과 혼맥이 닿게 된다. 조수호 회장의 장모인 신정숙 여사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여동생이기 때문이다. 최현열 회장은 차녀인 최은경 여사를 통해 범 현대가문과도 연결된다.
故 정주영 회장의 막냇동생인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의 자제인 정몽익 KCC 사장과 최은경 여사가 결혼했기 때문이다. 조수호 회장과 최은영 회장은 슬하에 유경·유홍 씨 등 2녀를 두고 있다. 조 창업주의 혼사는 막내아들인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에 이르러 절정을 맞게 된다.
재계의 두 큰 기둥인 삼성가와 LG가를 모두 처가로 두게 되기 때문이다. 조정호 회장은 1987년 구자학 아워홈그룹 회장의 차녀인 구명진 씨와 결혼했다. 구자학 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故 구인회 회장의 3남으로 삼성그룹 故 이병철 회장의 차녀인 이숙희 여사와 결혼했다.
이숙희 여사는 최근 선대의 유산 상속 분쟁을 놓고 본가인 삼성그룹과 대립각을 펴고 있어 주목을 받았다. 조정호 회장은 슬하에 효재·원기·효리 씨 1남2녀를 두고 있다.
동생·조카들 통해 막강 혼맥 구축
조원태-김미연 씨 결혼식
한진 부암장
월남전 한진상사 시절의 조중훈 회장
한진가 혼맥의 또 다른 특징은 조 창업주의 동생과 조카들의 혼사 역시 화려하다는 점이다. 창업 이후 동생들과 조카들의 혼사가 진행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 창업주의 형인 故 조중렬 전 한진건설(구 한일개발) 고문은 최학희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지호·건호·인숙 씨 등 2남1녀를 두고 있다. 이 중 장손인 조지호 한양대 교수는 이병호 전 상공부 장관의 장녀인 이숙희 여사와 결혼했다. 차남인 조건호 씨는 재미동포 내과의사 출신인 윤주덕 씨의 자제인 윤영태 씨와 가정을 꾸렸다. 조인숙 여사는 의사인 문영호 씨와 결혼했는데, 문재관 전 제일은행 이사가 시아버지다.
조중훈회장은 4명의 여동생을 뒀는데, 이들 역시 명망가에게 시집갔다. 첫째 여동생인 조정옥 여사는 대진해운 대표와 동양화재(현 메리츠화재) 감사를 지낸 전윤진 씨와 결혼했다. 둘째 여동생인 조정원 여사는 재미교포 사업가인 박두진 씨와 결혼했으며, 셋째 여동생인 조도원 여사는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과 인하대 총장을 지낸 박태원 씨와 가정을 꾸렸다. 넷째 여동생인 조경숙 여사는 재미교포 외과의사인 박소희 씨와 결혼했다.
조 창업주 옆에서 조력자 역할을 했던 남동생들 역시 막강 혼맥을 자랑한다. 띠 동갑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상실 전 상공은행장의 3녀인 이영학 여사와 결혼해 진호·윤정·주은·주연 씨 등 1남3녀를 두었다. 장남인 진호 씨는 이종남 전 감사원장의 딸인 이경아 여사와, 장녀인 조윤정 여사는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장남인 이정훈 씨와 결혼했다. 막내딸인 조주연 씨는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와 가정을 꾸렸는데, 김 교수는 현재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대외전략기획관으로 재직 중이다.
서소문동 KAL빌딩을 최신 기법으로 건설하며 한진건설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던 조중식 전 한진건설 사장은 교육자 집안의 김복수 씨와 결혼해 슬하에 현호·명호·성호·장호 씨 등 4형제를 두고 있다. 이 중 장남인 조현호 씨는 지난 3월 미쓰비시 자동차를 수입하는 CXC모터스 대표로 재계 일선에 나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3세대 혼사는 이제부터
조중훈 회장과 제공호
조 창업주는 자녀들과 조카들을 통해 관계는 물론 법조계와 재계를 아우르는 방대하고 다양한 혼맥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재계를 이끌어온 현대·삼성·LG가를 직간접적으로 사돈으로 두고 있으며, 해외사업이 많은 만큼 관가와의 혼사도 눈길을 끈다. 특히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 가문과의 혼사는 물론, 현재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서 활동하는 조카사위 김태효 기획관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와 함께 조 창업주의 손자뻘인 3세대들의 혼사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딸을 시작으로 3세대 오너 일가들의 결혼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육·해·공을 망라하며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성장한 한진그룹이 앞으로 어떤 혼사를 맺게 될지 주목된다.
[서종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