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질 일에 발뺌하는 미꾸라지형 상사.’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과장급 이하 직장인 10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91%의 지지를 받은 최악의 꼴불견 상사 유형이다. 설문 결과를 좀 더 살펴보면 응답자 10명 중 9명이 ‘사내에 부하직원의 근무의욕을 떨어뜨리는 직장상사가 있다’고 답했다. 사원, 대리, 과장 등 직급에 따라 ‘사사건건 감시하는 CCTV형 상사’ ‘잔소리만 늘어놓는 훈계형 상사’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는 무개념 상사’ ‘보고서 제출 시 끌어안고 묵히는 청국장형 상사’ 등을 꼴불견으로 꼽았다.
그들을 대하는 직원들의 대처법은 어떨까. ‘가능한 한 신경 안 쓰려고 노력한다’는 의견이 55.2%로 가장 많았고, ‘겉으로는 친한 척 뒤돌아 뒷담화’ ‘다른 곳으로 이직하길 희망’ ‘대놓고 무시하거나 따돌림’ 등의 의견이 뒤를 이었다.
설문 대상을 일반적인 상사가 아니라 임원으로 한정짓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한 중견기업 인사 담당자는 “만약 꼴불견 상사가 임원이라면 직원들의 밥줄이 왔다갔다 할 만큼 심각한 문제”라며 “임원의 결정은 곧 부서의 존폐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5월, 각 기업의 1분기 보고가 끝나고 성과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기다. 별을 단 신임 임원에겐 첫 관문이 지난 시점. CEO 코칭 전문가들은 “신임 임원이라면 성과와 더불어 부하직원 관리에 나설 시점”이라고 귀띔한다. 한 헤드헌팅 업체 임원은 “임원 평가 항목 중 하나가 평판”이라며 “부하직원들과의 관계 설정에 미숙한 임원은 성과는커녕 목숨부지도 어렵다”고 못 박았다.
장혜선 커리어케어 상무는 “글로벌기업에서 임원급을 스카우트할 때 리더십, 업무 능력, 외국어, 도덕성, 인성, 조직에 대한 로열티, 술버릇까지 체크하며 평판 조회에 나선다. 다녔던 회사의 상사, 동료, 부하, 고객사까지 챙기는데 솔직한 답변이 돌아온다. 임원이 된 시점부터 스스로 평판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채찍과 당근의 줄다리기
글로벌 기업 전무로 근무했던 한 퇴직 임원은 “훌륭한 임원은 성과는 성과대로 내고 CEO,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부하직원에게 공정하게 채찍과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며 “정의는 내릴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완벽한 임원은 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만큼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특히 “부하직원들과의 소통과 운영에 있어 부장 시절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임원은 도태된다”고 덧붙였다.
경영 전문가들은 흔히 부장을 관리자, 임원을 리더로 규정한다. 관리자는 ‘Doing Things Right’ 해야 하고 리더는 ‘Doing the Right Things’ 해야 한다는 의미다. 관리자는 기획과 예산 내에서 일을 관리하지만 리더는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며 사람을 관리한다. 이렇듯 분명한 역할 구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단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부하직원 운용에 가장 선행돼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는 “임원은 연예인이 아니라 실적으로 먹고사는 경영자”라며 “인기가 있는 것과 인정받는 것은 다르다. 조직의 장이 인기를 의식하게 되면 그 조직은 위험하다. 리더로서 성공하려면 뭔가 해내고 싶은 야심은 보약이고 남들에게 칭찬받고 싶은 허영은 독약”이라고 말했다.
Coaching 1 양심에 털이 모락모락 어쩌라굽쇼?
한 외국계 기업의 A지사장은 고속승진으로 부러움을 샀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사내에서 내로라하는 상사들을 제치고 입사 5년 만에 지사장이 됐다. A지사장은 사람과의 소통에 능했다. 본사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부하직원들과도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자리를 함께 했다. 당연히 평판이 좋았다. 납품업체 관리도 솔선수범해 스스로 처리하니 담당부서 직원들도 일이 수월했다. 하지만 A지사장의 평판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납품업체 사장이 직접 메일을 작성해 본사 CEO에게 항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본사 감사 결과 A지사장이 납품업체로부터 매달 리베이트를 챙긴 정황이 포착됐다. 심지어 경력사원 모집 당시 헤드헌팅 업체에 리베이트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뽑은 경력사원을 심복처럼 부리기도 했다.
A지사장은 ‘도덕성 결여’를 이유로 시쳇말로 ‘짤렸다’. 그러곤 곧 업계에서도 퇴출됐다. 최근 업계에선 A지사장이 편의점을 개업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Coaching 2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굽쇼?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쩌겠어?” 한동안 중견기업 B상무의 부서원들이 안부 인사처럼 건네던 말이다. 2년 전 임원이 된 B상무의 사내 별명은 오른쪽과 왼쪽 얼굴이 다른 아수라 백작. 하지만 고위 임원들 눈에는 성실한 충신이었다. 그만큼 상사에게 살갑게 대했고 매년 실적도 좋았다. C부사장은 승진을 염두에 두고 그런 B상무의 면면을 챙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C부사장은 B상무에 대한 기대를 거뒀다. 그러곤 의식적으로 격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사장급 회의가 끝나고 늦은 시간까지 진행된 술자리에서 C부사장이 말문을 열었다.
“B상무가 승진 소리를 들었는지 기대하는 눈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힘들겠어요.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난감합니다. 실적이 월등해 실망이 대단할 텐데 구성원들의 원성이 대단하니 쉽게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른 건 다 평균보다 월등한데 부서원들의 이직률이 높더군요. 직원들을 개별적으로 면담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날마다 모욕적인 발언에 독불장군 스타일이라 견디기 힘들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에요. 이××, 저××, 시×이 표준어라니 말 다했지요.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요. 스타일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데 쉽지 않겠어요.”
Coaching 3 결정보다 고민하면 안되냐굽쇼?
국내 대기업의 D이사는 최근 임원 코칭을 받고 있다. 임원이 된 지 갓 1년이 된 시점에 인생이 정지된 듯한 상황을 마주한 후 스스로 임원 코칭을 요청했다. D이사는 임원이 된 후 직원들과 친화력이 돋보이는 팀장을 타부서에서 영입해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유약한 성격에 사람 사귀는 게 쉽지 않은 탓에 부하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그 덕에 한 달에 꼭 한 번은 직원들과 마주해 소주잔을 기울였다. 직원들이 작성한 사업계획서도 고(Go)와 스톱(Stop)을 결정할 때 고민을 거듭하다 팀장 의견에 무게를 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같은 패턴의 결정이 반복되다 보니 직원들의 눈과 귀가 팀장에게 모여들었다. 사내에서 ‘팀장의 결정이 곧 D이사의 사인으로 돌아온다’는 뒷담화를 들었을 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D이사는 그 길로 팀장을 원위치시키고 직원들과의 스킨십과 사업 결정을 스스로 챙기기 시작했다. 이번 일을 통해 가슴속에 꽁하게 응어리진 불안과 서운함, 자괴감은 임원 코칭 시간에 배설하듯 대화하며 풀고 있다. D이사는 요즘 직원 소통보다 결정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Coaching 4 형님 같은 임원이라굽쇼?
E이사는 임원이 되고 첫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팀원들과 돈독해진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좀 더 팀원들에게 다가가 고충을 들어주고 잘해보자며 격려했다.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여기저기서 ‘형님’이란 호칭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첫 프로젝트와는 반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직원들과 모여 원인을 분석할 때도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첫 프로젝트를 성공하며 얻게 된 대규모 프로젝트는 적자로 끝나고 말았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회사에선 E이사에게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자를 만한 팀원이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팀원들도 소식을 듣고 끝까지 지켜내자고 뭉쳤다.
결국 E이사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그리고 대신 직원들을 지켜달라고 읍소했다. 형님 같은 E이사가 회사를 떠난 후 수장을 잃은 팀은 해체돼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전혀 다른 업무의 부서로 배치된 팀원들도 하나 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Coaching 5 종교가 모든 걸 용서한다굽쇼?
중견기업의 창업공신인 F전무는 요즘 임원들 사이에서 공적이 됐다. 오죽하면 새로 영입하는 임원의 조건 중 하나가 “F전무와 다른…”으로 시작됐다. 정작 본인만 그 사실을 몰랐다. 창업멤버로 입사한 후 성공만을 향해 뛰던 F전무는 임원으로 승진하고서 삶의 정화를 위해 종교를 찾았다. 문제는 주말이면 종교에 빠져 도무지 연락이 안 된다는 것. 고객사와 골프 약속은 고사하고 바이어 접대도 약속이 주말이면 당당히 “못 하겠다”며 빠져나갔다. F전무는 사내에도 종교 동아리를 만들어 후원했다. 좀 더 많은 이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전도에 나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장을 비롯한 수뇌부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창업공신에게 나가달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올라왔다. 결국 F전무만 모르는 임원 영입 조건 하나가 추가됐다. “F전무와 같은 종교는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