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행복을 묻는다
인류는 행복이란 파랑새를 끊임없이 찾는 존재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얼마나 행복하고 또 진짜로 행복을 추구해 왔을까. 경제가 발전해 1인당 GDP 2만 달러 시대에 들어선 지금 한국인은 보릿고개가 있을 때보다 행복해졌을까. 미국 400대 부호들이 느끼는 행복이나 고작 소 몇 마리뿐인 아프리카 마사이족이 느끼는 행복은 다를 바 없다는 하랄드 빌렌브록의 얘기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Luxmen'은 창간 1주년을 맞아 돈과 행복 사이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 탐색해본다.
한국인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61.8점
우리나라 국민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한국심리학회는 최근 ‘2011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61.8점이라고 발표했다. 김명식 한국심리학회 총무이사(전주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6월 말에서 7월 초 전국 성인 남녀 1697명을 대상으로 행복지수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작년 63.2점에서 1.4점이 하락했다고 밝혔다. GDP가 올 상반기 2.2% 성장한 점만 놓고 본다면 최소 64.5점을 기록해야 정상일 텐데…. 한국인의 행복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사회 구성원을 뜯어보면 더 행복한 계층이 있고 덜 행복한 집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행복한 계층은 30대 여성으로 65.8점이었다. 반면 가장 불행한 집단은 60대 이상으로 57.5점이었다. 맞벌이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직장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30대 여성이 만족도가 높은 반면 은퇴 후 할 일이 줄어든 60대는 소외감 탓에 행복도가 떨어진다고 분석할 수 있다.
행복은 나이와도 상관이 있다. 한국인은 나이를 먹을수록 행복이 감소하는 특징을 보였다. 30대가 63.8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20대와 40대가 62.4점, 50대 61.7점, 60대 이상 58.5점을 나타냈다. 질풍노도 같은 20대를 보내고 30대가 되면 행복을 크게 느끼다가, 이후 인사문제와 자녀교육 부담에 시달리는 40대부터 행복도가 하락하는 패턴을 보인 셈이다.
배우자를 받아들이는 것도 행복에 영향을 준다. 기혼자의 행복지수가 62.4점인 반면 미혼자는 60.9점으로 결혼한 사람이 행복할 확률이 높았다. 자녀수도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예 없으면 불행하지만 숫자가 많아도 행복하지 않은 딜레마를 보이는 있다. 0명일 때는 59.8점으로 가장 낮았다가 1명일 때는 63.8점으로 치솟고 2명부터는 내리막길이다. 2명은 62.7점, 3명은 60점 수준이었다.
육체노동자보다는 정신노동자들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블루칼라가 58.7점, 화이트칼라가 65.2점이었다. 지역별 편차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미미했다. 서울이 63점으로 가장 높았고, 충청도 62.8점, 전라도 62.6점, 인천·경기 61.9점, 경북 61.8점, 경남 60.3점이었다. 한국심리학회 조사는 삶의 만족, 긍정적 정서, 부정적 정서 3가지 분야에서 9가지 지표로 설문하는 방식을 택했다.
왜 코스타리카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가.
한국심리학회의 행복지수 조사는 개인의 만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당신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아니면 얼마나 불행하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행복 점수를 달리한다. 그만큼 개개인의 행복에 충실한 지표인 셈인데 반론도 있다. 행복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만 본다는 것. 한 인간을 둘러싼 외적 변수들을 포함하면 객관적인 행복지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영국 싱크탱크인 신경제재단(NEF)은 행복지수에 외부 환경을 크게 고려한다. 2009년 신경제재단이 143개 국가를 대상으로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한국은 68위를 기록해 중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GDP 규모에 비해 분명 뒤처진 모습이다. 이에 따르면 행복은 경제 순이 아니었다. 중앙아메리카 소국인 코스타리카가 행복지수 76.1점으로 1위를 차지한 반면 미국은 114위였다.
이런 격차는 기대수명과 에너지 재생 수치 영향이 크다. 코스타리카는 평균 수명이 78.5세로 장수국에 속했고 에너지 99%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충당했다. 한국은 평균수명이 77.9세로 나이만 놓고 보면 상위권이었으나 삶의 만족도와 환경발자국에서는 중간 점수밖에 받지 못했다.
10위권에 들어간 나라들 중 상당수가 중남미권이었다. 2위는 도미니카공화국, 3위는 자메이카, 4위는 과테말라, 6위는 콜롬비아였다. 꼴찌는 16.6점을 받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였다. 선진국은 저조했다. 네덜란드가 행복지수 50.6점(43위)으로 선진국 중 가장 높았고 독일은 48.1점으로 51위, 프랑스는 43.9점으로 71위, 영국은 43.3점으로 74위를 차지했다. 반면 중국은 57.1점으로 20위, 인도는 53점으로 35위에 이름을 올렸다. 신경제재단은 이런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세계가 심각한 금융위기, 기후변화 악화, 원유 생산 한계 등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를 인도할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 고소비 생활방식이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를 초래하기 전에 복지형 저탄소 경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대적 행복과 절대적 행복
경제 규모와 행복 수준이 꼭 맞지 않는 까닭은 행복이 상대적이라는 데 있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당신은 두 가지 중 무조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1) 당신 월급이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오르는데 반해 다른 이들은 10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줄어든다.
2) 당신 월급이 5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오르지만 다른 이들은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늘어난다.
상식을 갖고 있다면 1번을 택할 것이다. 소득이 더 많이 늘더라도 다른 이들이 몇 곱절 불어난다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비스바스 디너 머리디언라이프코칭 사장은 이런 현상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미국 노숙자들이 인도 노숙자들 보다 열 배나 부유(?)한데 덜 행복한 까닭은 사회적 관계에 있다고 했다. 인도 노숙자들이 그 상황을 더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었다. 가정과 사회적 관계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었는데 미국 노숙자들은 대부분 배우자가 없거나 자식이 없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또 캘커타처럼 빈곤율이 높은 환경에서 살면 노숙자들이 덜 실패한 것으로 느끼게 하기에 그만큼 더 행복하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리처드 이스털린 남가주대 교수는 행복에 효용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경제가 성장해도 행복이 증가하는 현상을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명명했는데 리처드 레이어드 런던정경대 교수도 행복에 대해 비슷한 관점을 제시했다.
2차 대전 후 50년간 미국인 1인당 GDP는 세 배 가까이 늘었지만 얼마나 행복한가를 묻는 설문에서 매우 행복하다는 응답은 비슷했는데, 먹고살기에 급급한 나라들은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지만 소득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이 관계가 느슨해진다는 것. 지금 한국은 이 단계에 이른 느낌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 나와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이상덕 /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asiris27@mk.co.kr│사진 = 정기택 기자]
양극화, 또 다른 행복과 불행
한국전쟁 직후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한국인들은 요즘 왜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가.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 한국에도 적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지나친 경쟁에 따른 계층별 양극화’를 꼽는다.
한국인의 자화상
한국사회 갈등의 한 단면을 드러낸 무상급식 투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분석체계 개발’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인을 둘러싼 삶의 조건들을 다방면으로 평가했다. 연구원은 국가경쟁력 지표를 크게 ▲성장동력 ▲삶의 질 ▲환경 ▲인프라 등 네 가지로 나누고 총 15개 중분류, 50개 소분류 지표를 개발해 항목별로 순위를 매겼다.
지표의 데이터는 OECD와 유엔 세계은행 등의 2008년 자료를 활용했다.
이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우리나라의 ‘삶의 질’ 순위는 27위로 2000년도와 같은 순위를 유지했다. ‘분배’, ‘경제적 안전’ 등 대부분의 소분류 지표에서 하위권이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지출 비중으로 평가하는 ‘사회지출’에서는 31위를 기록해 비교 가능 국가 중에 가장 낮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삶의 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에 포함된 39개국 가운데 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겉으로 드러난 경제지표는 좋아졌지만 국민 개개인의 만족도는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질 순위는 사회적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상대적으로 시장 경제를 중시하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영국 등은 순위가 낮았다.
시장이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여의도 증권가 야경
시장 경제가 발달한 국가의 삶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지나친 경쟁’ 때문이다. 경쟁(競爭)은 둘 이상의 사람이나 집단이 무언가를 놓고 겨루는 것을 말한다. 경쟁은 보통 제한된 자원을 가진 환경에 공존하는 생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짐승들은 먹잇감과 짝짓기 대상 등을, 사람들은 부와 명예 등을 두고 경쟁한다.
경쟁은 시장경제체제의 핵심 운영원리 중 하나다. 열심히 한 사람은 조금 더 가져가고 조금 잘못한 사람은 손해를 보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다음에 조금 더 열심히 일할 유인을 갖도록 하기 때문이다. 기업 간 경쟁은 기업들이 가격·품질·디자인 등이 좀 더 우수한 제품을 만들게 함으로써 경제 체질을 개선시킨다.
하지만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는 환경 속에선 경쟁에서 뒤지는 개인이나 기업, 집단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제 구조적 원인 때문에 경쟁에서 낙오되는 개인이나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근로자, 남성-여성 등 계층 간 집단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는 경쟁의 결과이지만 개인 불행의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은 ‘경쟁공화국’이다. 출산·양육·대학입시·취업·결혼·내집마련 등 개인이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다. 하나라도 제대로 넘지 못하면 빈곤의 나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실제로 우리나라 중산층은 갈수록 하향분해되고 있다.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중산층이 많다는 얘기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년 간 1인당 소득은 3배 이상 증가했으나 중산층 비중(중위소득 50~150%)은 약 8% 포인트 감소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가구 비중도 지난 20년 간 증가했다. 중산층 가운데 적자가구 비중은 1990년 15.8%에서 2010년 23.3%로 높아졌으며 중산층 가게수지 흑자액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비중(흑자율)은 1990년 22%에서 2010년 17.9%로 낮아졌다. 중산층의 소득·지출 포트폴리오도 크게 바뀌었다. 부채상환 사교육비 등 꼭 써야하는 지출항목의 비중은 크게 늘고 영화관람비 등 꼭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항목은 줄었다. 대부분 가정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얘기다.
계층별 양극화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매달 마지막 날 밤 미국의 대형 할인점 월마트에서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진다. 밤 11시쯤 사람들이 몰려들어 분유와 우유, 빵, 달걀 등 기초적인 식품부터 장바구니에 담는다. 자정이 지나자마자 사람들은 전자결제카드를 들고 계산대에 줄을 선다. 정부가 저소득층에 지급한 푸드 스탬프 카드다. 매달 1일 보조금이 입금되는 즉시 아이들 분유를 사기 위해 부모들이 밤잠을 설치는 것이다.
미국엔 정부가 주는 푸드 스탬프로 연명하는 인구가 2010년 말 기준 4600만 명(총인구의 15.1%)에 달한다. 오랫동안 실업률이 9%를 웃돌면서 미국인 10명 중 한 명이 직장이 없는 상황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2010년 미국 가계의 한 해 평균소득은 전년 대비 2.3% 감소한 4만9445달러였다. 1999년 최고치와 비교하면 7.1%나 낮아진 수준이다. 미국의 가계 평균소득이 5만 달러를 밑돈 것은 1997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소득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빨라져 상위 5%(평균소득 18만810달러)의 소득은 전년 대비 1.2% 하락했으나 하위 5% 소득은 4% 하락해 빈부 차가 더 커졌다.빈곤층이 늘면서 건강보험 미가입자가 4990만명에 달해 20년래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전체 인구의 16.3%(전년도 16.1%)가 의료보험 없이 살고 있는 셈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어두운 단면이다. 미국인들은 과연 행복할까.
현세대 행복을 위한 복지 vs 미래세대를 위한 균형재정
취업박람회 ‘커리어 오디세이 페스티벌’
사회복지는 위기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사회 구성원들을 둘러싼 삶의 조건들이 악화됐을 때 구성원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주는 데 복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얘기다. 유명한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정책을 입안한 베버리지 보고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1930년대 대공황 때 탄생했다. 한국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복지 논쟁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초등학생 무상급식 범위를 두고 서울에서 ‘무상급식 투표’가 실시된 게 대표적 사례다. 복지는 점점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경제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유용한 경기부양 수단이기도 하다. 국가가 중산층 이하 계층에게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소비여력을 증대시켜 내수를 활성화하는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제도를 잘만 설계하면 성장동력을 잃은 한국 경제에 모멘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국가 재정건전성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세계 각국은 천문학적인 재정 투입으로 위기를 막아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급격히 늘어난 국가 ‘빚’은 각국 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유럽 등에 비해 재정 상태가 나은 편이라지만 방심하기엔 이르다. 우선 국가 빚의 증가속도가 너무 빠르다. 글로벌금융위기, 카드대란, 글로벌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내총생산(GDP)의 11%에 그쳤던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이 30% 중반 수준까지 치솟았다. 국가채무규모는 60조원에서 10년 만에 300조원으로 뛰어올랐다.
앞으로 큰돈 들어갈 일도 많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자연적인 정부 재정지출 증가분, 남북한 통일재원 등도 큰 변수다. 현세대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재정지출을 당장 확대할 것인가, 미래세대를 위해 재정 지출 여력을 남겨 놓을 것인가. 한국 경제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