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전망이 불투명하다. 유럽발 위기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고는 있지만 완전한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는 없는 상태다. 재스민 혁명으로 대변되는 민주화 시위, 핵 도발 등 중동의 이슈들도 긴장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은 경기가 한풀 꺾이는 분위기고, 미국에서는 실업률과 소비 양 측면에서 회복세가 보이긴 하지만 아직 안정을 말하기는 이른 것 같다. 이러한 가운데 관심은 세계 부동산 시장에 쏠린다. 2008년 미국 모기지 사태를 시작으로 세계 경제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사건의 중심에는 부동산 버블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의 향방을 진단하기 위해 세계 부동산 시장을 돌아봤다.
유럽 - 부동산도 양극화
독일 팔먼가튼 식물원을 정원 삼은 오피스빌딩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글로벌 경기를 위협하는 최대 복병인 유럽. 각종 금융망을 통해 전 세계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지금 유럽 위기는 곧 세계의 위기로 귀결된다.
유럽에서도 국가 별 희비가 엇갈린다. 독일과 스페인이 대표 사례다. 스페인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작금의 유럽 위기를 초래한 국가 중 한 곳이다. 반면 독일은 튼튼한 체력을 바탕으로 유로존의 버팀목이자 맹주 역할을 하고 있다. 갈 곳 잃은 유럽 자금들이 독일 부동산 시장으로 쏠리는 현상은 당연하다.
독일의 경제 중심지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트 도심 하우프트바헤 지하철역 주변. 몰려드는 인파로 하루 종일 북적댄다. 인근 쇼핑지구인 자일거리로 이동하는 이들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인 마인타우너스젠트럼, 북서부 노스베스트젠트럼 등지에도 쇼핑 인파가 몰린다.
임대료 또한 상승 추세다. BNP파리바 리얼에스테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독일 상업용 부동산에는 유럽 전역에서 총 126억2000만 유로가 몰렸다. 우리 돈으로 18조9300억원 선이다. 3분기까지만 계산해도 전년도 1년치 상업용 부동산 투자액 108억 유로를 훌쩍 뛰어넘었다. 연간으론 20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부동산 컨설팅업체 리디아이시카와 임모빌리언은 독일 전역에 있는 쇼핑센터는 400여 곳으로 10년 만에 70~80% 늘어난 것으로 집계했다.
주택시장 역시 활황세다. 프랑크푸르트 남부 팔먼가튼 인근 고급 주택가에는 인파가 몰리지만 좋은 매물 잡기가 쉽지 않다. 프랑크푸르트 외곽 모르펠더 가에서도 서민층을 위한 다가구주택이 짓자마자 팔려나가는 현상이 잇따른다.
주택 임대료도 오름 추세다. 유럽 쇼크가 빚어진 지난해에도 2%대 상승세를 기록했다. 올해 역시 지난해 수준의 상승세가 예견된다. 독일이 유럽 내에서도 ‘나홀로 상승세’를 타는 것은 탄탄한 경제력 덕분이다.
독일은 유로존 각국이 재정위기 폭풍을 맞은 가운데서도 지난해 성장률이 3% 안팎에 달할 것으로 추정돼 단연 ‘유럽의 우등생’으로 꼽힌다. 지난해 말 기준 실업률도 6%대로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다. 우수한 성적을 토대로 독일은 유럽 전역이 경제위기로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은 △독일 경제여건에 비해 그간 공급이 적었다는 점 △증권·금융과 달리 유로존 위기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 등에서 ‘안전자산’ 대접을 받고 있다.
반면 스페인은 올해도 암울하다. 발데루스, 세세냐 등 자족기능을 갖춘 신개발지구에 들어서면 빈집이 발에 밟힐 정도다. ‘공짜 아파트’ 분양 사례까지 나왔다. 공짜 아파트에 당첨되면 1년간 무료로 아파트를 제공하며 기한이 지나도 적은 돈만 내고 재임차할 수 있다. 8년간 임차해서 살면 매매가의 60%를 할인하고, 국가보조금까지 지원해 주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부동산 한파를 경험한 스페인은 당분간 암흑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현지에선 ‘20년 새 최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건설ㆍ부동산 산업은 스페인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1%를 차지하며 관광산업과 더불어 스페인을 먹여 살리는 버팀목이었지만 불과 수년 사이에 상황이 뒤바뀌었다.
집값도 분양가보다 많게는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은행들이 관리하는 미분양 주택들은 분양가의 20~50% 할인돼 팔린다. 휴양지로 인기 높은 무르시아주 등 남부 해변 지역 고가 주택들은 값이 절반 이하로 급락했다.
오피스 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업무 중심인 마드리드조차 오피스 매매가와 임대료가 최근 3~4년간 30~40% 급락하며 체면을 구겼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체인 그레마데스 길마르 관계자는 “개혁정책 시행 후 대도시와 해안가 주택 거래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며 “정부 개혁안이 추진돼도 현 침체 상황을 감안할 때 2014년은 돼야 부동산시장이 회복세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 2008년 모기지 악몽 잊어져
스페인 마드리드
힐튼 맨해튼
올해 회복 분위기가 강하게 감지되는 곳이 미국이다. 특히 2008년 세계 경제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금융위기의 진앙이 미국 모기지 사태인 점을 감안할 때 최근 부동산 경기 회복세는 주목할 만하다.
미국 주택경기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전역으로 호황이 퍼지진 않았지만 뉴욕과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 임대용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택 경기가 점차 살아나는 추세다.
1000만 달러가 넘는 맨해튼 고급주택들은 공급 부족으로 웃돈(프리미엄)이 붙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압류 매물은 시장에서 빠르게 소화되고 있고 주택 신규 압류도 점점 줄고 있다. 민간 부동산 조사기관인 리얼티트랙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미국 은행들이 압류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주택은 5만6124채로 전월 대비 17% 급감했다. 압류 건수 기준으로 2008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같은 주택시장 호황 조짐은 월스트리트에서도 포착된다. 이곳은 더 이상 금융가가 아닌 고급 주택가로 변신했다. 금융위기로 살림이 빠듯해진 대형 금융사들이 사옥을 매각하고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셋방살이’를 택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고급 주택 부족 현상과 맞물려 월스트리트 리모델링 사업을 이끌었다. 금융회사들이 나간 빌딩은 대부분 고급 임대 아파트로 리모델링됐다.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오피스 밀집지역은 오피스 시장 호황으로 임차료 상승과 함께 공급 부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하버드대, MIT 등 명문 대학과 사립학교가 몰려 있는 보스턴 주택시장 역시 주택 매수세가 조금씩 되살아나는 추세다. 특히 자녀 유학을 위해 보스턴에 들어온 외국인의 매수세가 뚜렷하다. 월 2000달러의 임차료를 내느니 20만 달러를 투자해 단독주택을 구입하면 향후 집값 반등 기회를 노릴 수 있다는 전략이다.
피터 미드 보스턴 시 재개발국장은 “지난해 1000가구의 신규 주택 착공 허가를 내줬다”며 “마지막으로 이 정도 규모를 허가한 것은 5년 전인 2006년이었다”고 말했다.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서도 오피스 시장 회복세가 감지된다. 맨해튼 내에서도 가장 번화한 도로인 파크 애비뉴를 가로막고 서 있는 햄슬리 빌딩은 전망이 좋아 금융회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라임 오피스’다. 놀랍게도 이 빌딩 8층은 통째로 비어 있다. 이유를 물으니 “더 크고 안정적인 입주자를 받기 위해 종전 임차인을 억지로 내보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해 6월 이 빌딩을 매입한 자산운용사 인베스코의 피터 파인버그 이사는 “9·11테러와 금융위기로 맨해튼을 떠났던 금융회사와 로펌들이 맨해튼으로 복귀하고 있다”면서 “우량 세입자를 받기 위해 일부러 한 층을 비워놨다”고 설명했다.
대형 임차인들이 줄 서 있어 잘게 나뉜 빈 사무실을 리모델링하는 작업도 한창이다.
이 빌딩은 최근 반년 새 가격이 5% 이상 뛰었다. 맨해튼 사무실 공실률이 빠르게 줄면서 임차료가 급증한 덕분이다. 부동산 중개업체 쿠시먼&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지난해 리스 계약을 마친 맨해튼 오피스 임대 면적은 총 3010만ft²(1ft²는 0.09㎡)로 전년 대비 16% 늘었다. 최근 10년래 최고 호조세다.
중국 - 부동산 거품빼기 진행 중
중국 부동산 시장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연 10%가 넘는 경제 성장세에 힘입어 폭주 기관차처럼 한계를 모르던 중국 집값에 드디어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 다름 아닌 정부 규제 때문이다.
중국 주택시장은 지난 1997년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위해 개인 간 주택 사용권 거래를 유도한 이후 상승 일변도를 고수해 왔다. 글로벌 부동산업체 존스 랑 라살에 따르면 2006년 6월 베이징 평균 주택시세는 ㎡당 8000위안 전후에서 2011년 2월 2만4794위안으로 5년 만에 3배 넘게 치솟았다.
이에 따라 ‘집을 사두면 무조건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론이 기정사실화 돼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상승폭이 도를 넘어설 지경에 이르면서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됐다. 소득수준에 비해 집값이 과도하게 뛴 것이다.
현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에서 4년제 대학을 나와 중소기업에 입사한 5년차 직장인의 월급은 대략 5500~6000위안 정도 된다. 우리 돈으로 100만원 전후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방3개짜리 아파트(150㎡)를 사려면 150~200만 위안 정도가 필요하다. 약 330개월치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고스란히 모아야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상하이나 베이징만큼은 아니더라도 중소도시 또한 사정은 비슷하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부터 주택 시장에 엄격한 규제 잣대를 들이대며 강력한 긴축정책에 돌입했다.
정부는 대도시를 대상으로 ‘구매제한령’을 시행하고 최근 1년 이상 납세·보험금 납입 증명서를 제출해야 주택대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주택 보유세인 방산세도 처음 도입했다.
공공주택인 보장성주택 또한 민간시장 위축에 한몫 했다. 보장성주택은 저가로 토지를 출양(공급)해 건립비용을 낮춘 뒤 주변보다 낮은 시세에 공급하는 ‘중국판 보금자리주택’이다. 정부는 오는 2015년까지 총 3500만 가구에 달하는 보장성주택 공급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작정하고 수요·공급 양 측면에서 숨통을 조이자 전국에서 미분양 주택이 쌓이며 ‘할인분양’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실제 상하이와 베이징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최초 분양가 대비 30% 전후 할인가에 판매되는 아파트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같았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빈집도 넘친다. 특히 인구 분산을 목적으로 대도시 외곽에 지어진 계획도시들이 희생양이 됐다. 수많은 신도시에 세워진 아파트들의 상당수는 입주민을 절반도 채 맞지 못하고 있다.
몸값도 하락세다. 베이징 부동산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베이징 신규주택 평균 분양가는 ㎡당 1만3173위안으로 전년 대비 11.3% 떨어졌다. 부동산 연구기관인 ‘중원자원관리중심’ 관계자는 “지난 4분기 분양물량은 도시 별로 전 분기 대비 20~25% 줄었다. 거래건수 또한 최대 35% 하락했다”고 전했다.
향후 전망도 그리 밝은 편은 아니다. 국무원 산하 발전연구센터 금융연구소는 지난 4일 “긴축정책을 유지하고 부동산 관련 대출규제 또한 완화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규제를 통한 시장안정을 올해 역시 도모한다는 게 중국 정부 입장이다.
신용평가기관 S&P도 보고서를 통해 “중국 부동산 시장이 연내 10% 추가로 떨어질 것”이라고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다만 엄청난 인구가 변수다.
13억명이 넘는 든든한 수요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예단은 금물이다. 특히 지난해 중국 도시화 비율이 49%에 머문 점을 감안하면 도시 기반 주택 수요는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도시화 비율은 국가 전체 인구 중 도시거주 비율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미국, 일본 등은 80%가 넘는다.
중국 사회과학원 관계자는 “주택시장 거품론은 5년 전부터 계속돼왔지만 중국 집값은 5년간 계속 상승했다”며 “중국의 낮은 도시화비율, 경제력 상승 등을 감안할 때 안정세 혹은 다시 상승 반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바이 - 바닥 가능성 주장 대두
두바이 스카이뷰
UAE의 두바이는 미국 발 금융위기의 최대 희생양 가운데 하나였다. ‘사막의 기적’이 일순간에 신기루가 됐으니 말이다.
한때 전 세계 크레인의 30%가 몰린다는 말이 있을 만큼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핵심 관심지였던 두바이는 현재 아부다비의 원조를 받아 가까스로 명맥을 지탱하는 처지가 됐다. 그렇다고 위기가 끝난 게 아니다.
올해에만 재정적자가 18억2000만 디르함(약 5711억원)에 달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위기의 모래바람은 주택과 오피스 시장 양쪽에 거세게 불어닥쳤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CBRE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 1~2%에 불과하던 전체 오피스 공실률은 현재 45%에 달한다.
오피스 임차료 또한 하락 추세다. 빈 사무실을 찾기조차 어려웠던 핵심권역(부르즈 칼리파, DIFC 주변) 오피스 임차료는 한때 ㎡당 월 6000디르함(약 190만원)에 달했지만 지금은 2000디르함(약 63만원)까지 주저앉았다.
주택시장 역시 암울하다. 한때 고가주택 천지였던 이곳엔 빈집이 넘친다. 올해 역시 1만 가구가 넘는 아파트가 공급될 예정이라 많게는 20% 가까이 추가 하락이 점쳐진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다행히 두바이 상업시설은 아파트, 오피스와 달리 호황이다. 두바이에서 요즘 돈 버는 곳은 쇼핑몰과 호텔, 에미레이트항공뿐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중동 민주화 사태 가운데 상대적으로 안전한 두바이가 주목 받으면서 호황에 불을 지폈다.
현장에서도 관광·상업시설에서 희망을 찾는다. 술탄 인베스트먼트의 왈리드 하렙 알 팔라히 사장은 “관광산업은 두바이 경제를 되살리는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2008년 이전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낀 게 사실이다. 현재 정상화를 위한 진통을 겪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두바이 정부도 떠나간 해외 자금을 다시 잡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최근에는 한화로 약 3억원 이상 부동산을 구매하면 3년짜리 비자를 내주고 있다. 종전까진 6개월마다 갱신을 해야 했다.
아카르개발의 술탄 모하드 하립 대표는 “2004년 1ft²(0.09㎡)당 250디르함이던 토지 분양가가 2007년에는 700디르함까지 치솟았다가 금융위기 후 현재 150디르함에 불과하다”며 “더 떨어질 데가 없으니 이제 오르지 않겠느냐는 바닥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