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는 서울의 강남과 같다. 부산광역시에는 부산시와 해운대시 두 개의 도시가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해운대는 특별하다.
세계 최대 백화점이라는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이 위치한 센텀시티, 80층이 넘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이국적인 마천루를 형성한 마린시티, 그리고 백사장을 따라 특급호텔이 즐비하게 늘어선 해운대 해수욕장에 이르는 이 지역은 서울 강남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서울 강남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초고가 외제차들도 심심치 않게 눈이 띈다. 화려한 백화점 명품점과 레스토랑에는 평일에도 고객들로 붐빈다.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해운대인지, 강남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오히려 “해운대에 있다 서울 강남에 와보니 답답한 지방에 온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새로운 스카이라인이 빛을 뿜는 해운대 인근은 쾌적한 부촌으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해운대 부자 중소기업 CEO가 다수
광안대교
신흥 부자들이 한 지역에 대거 모이다 보니 금융회사의 PB들도 해운대에 너나없이 몰려들고 있다. 은행권의 PB센터 강자인 신한은행, 하나은행뿐만 아니라 증권사 PB들도 하나 둘씩 이곳에 둥지를 틀고 고객잡기에 나서고 있다. 2010년 12월 대우증권 PB클래스가 센텀시티에 문을 연 데 이어 최근에는 초고액자산가(UHNW) 시장의 강자로 부상한 삼성증권이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에 SNI센터를 열고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들었다. 서울 강남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는 PB센터들이 이제 해운대에서 지방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양보 없는 고객 모시기에 들어간 것이다.
해운대에 진출한 PB들의 전략은 서울 강남 PB들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 큰 이유는 부자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자들이 집결해 있는 강남 부자들은 다양한 부류들이 뒤엉켜 있다. 우선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덕분에 부를 축적한 부자들이 꽤나 많다. 60대 이상으로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부자들은 대개 부동산으로 큰돈을 모은 경우다.
나이가 젊을수록 부동산 부자는 점점 줄어든다. 30대 초고액자산가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이들이 적지 않다. 2000년대 초반 닷컴열풍 이후 회사가 상장돼 주식으로 큰돈을 거머쥐게 된 창업 세대들이 바로 이런 부류다. 초기 창업 멤버인 이들은 30~40대의 젊은 층으로 부에 대한 자신감으로 넘쳐 있다.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의 고위 임원도 강남의 주요 거액 자산가 부류에 들어간다.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 등기임원의 2010년 연봉은 59억9000만원이다. 여기에 의사,변호사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들이 포진해 있다. 50대 이하의 젊은 층 가운데엔 부모에게 증여나 상속으로 부를 이전받은 이들이 꽤 된다. 주요 증권사,은행 조찬모임이나 세미나에 가보면 20~30대 젊은이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나이 지긋한 고객이 아들이나 딸의 손을 잡고 재테크 강연에 참석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삼성증권 강남 파이낸스센터의 고객을 나이별로 보면 60대 다음으로 많은 연령층은 70대가 아니라 50대다. 이들 50대들이 바로 전문직 종사자거나 부모로부터 부를 이전받은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부동산 자산보다는 금융자산 위주로 부가 형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해운대 부자들은 어떨까.
해운대 부자의 주류는 중소·중견기업 CEO들이다. 해운대 센텀시티와 마린시티에 즐비한 초고층 아파트에 부산과 울산 지역 중소기업 CEO들이 모여들고 있다. 최근 파라다이스호텔에 둥지를 튼 삼성증권 부산SNI센터 분석에 따르면 자산 100억원 이상 법인이 부산에만 832개, 울산에 324개. 경남까지 모두 합치면 1879개로 나타났다. 부산과 울산 지역은 자동차와 조선,해운,화학 등 우리나라 대표 업종의 핵심 대기업들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다. 이곳에는 이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특히 자동차,조선 등의 부품업체 경쟁력이 이전보다 크게 높아지면서 중소기업들의 경쟁력도 크게 높아졌고 이에 따라 성공한 CEO들도 적지 않다.
부산-울산 간 고속도로가 생겨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로 바뀌면서 울산 지역에 사업체를 둔 CEO들은 해운대에 거주지를 둘 만한 매력을 갖게 됐다. 특히나 해운대 지역에 신세계·롯데백화점이 들어서고 생활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중소기업 CEO들이 점점 더 많이 몰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해에 있는 중소기업도 해운대 부자들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다만 산업이 크게 발달해 있는 거제와 창원의 경우에는 해운대 부자들의 범주에 넣기에는 거리와 생활권이 꽤나 떨어져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PB센터들이 상당히 공을 들일 만한 지역으로 꼽고 있지만 초고액자산가들만을 위한 별도의 PB센터를 개설하기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분위기다.
해운대 부자를 상대로 한 PB센터의 두 번째 타깃은 의사를 중심으로 한 전문직종 종사자들이다. 해운대구에만 대략 780명의 전문직종 종사자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도권만큼은 아니지만 부동산 부자들도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부동산 관련 세금상담이나 증여·상속 등에 관한 세금상담에 관심이 많다.
고위험·고수익보다 보수적 성향 강해
해운대 위브 더 제니스
CEO와 전문직을 주축으로 한 부자들이 모이는 곳은 센텀시티와 최근 약 3400여 가구가 입주한 국내 최고층 아파트인 해운대 아이파크와 두산위브더제니스 등이 있는 마린시티다.
이들 부자를 위한 자산관리서비스는 주로 은행이 선점하고 있었다. 은행권 PB의 강자인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이 마린시티와 센텀시티를 중심으로 둥지를 틀고 진작부터 고액자산가를 위한 서비스를 해왔다. 사실 중소기업 CEO들은 사업상 대출 등의 관계로 오래 전부터 거래은행이 있고 이들과의 관계가 자산관리서비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2010년 말부터 증권사들이 은행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서울 강남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지방 공략에 나선 증권사들이 첫번째 격전장으로 삼은 것이다. 사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고액자산가들은 주로 은행권에 머물러 있었다. 씨티은행 신한은행 KB국민은행 등 주요 은행들이 고액자산가들을 대부분 유치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삼성증권 SNI센터, 대우증권 PB클래스,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등 대형증권사들이 초고액자산가를 위한 PB센터를 잇따라 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는 고령화와 저금리가 당연시되면서 시중금리로는 더 이상 자산관리가 힘들어지고, 부동산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증권사 가운데 첫 번째로 대우증권 PB클래스 센텀시티가 해운대 인근 고액자산가들을 겨냥해 2010년 12월 문을 열었다. 주식 위탁매매에서 자산관리서비스로 방향을 튼 대우증권이 서울 강남에 이어 두번째로 부산에 둥지를 틀고 발 빠르게 지방 부자를 위한 자산관리서비스에 나섰다. 센텀시티 PB클래스는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유명한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멀리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마린시티 마천루가 보이는 이곳에는 일찌감치 둥지를 튼 은행 PB센터와 대우증권이 고액자산가 시장을 놓고 일전을 벌이고 있다.
문을 연 지 약 10개월이 지난 센텀시티점의 위탁자산은 2100억원,고객은 대략 1000명 정도다. 초고액자산가들만을 상대하는 서울 강남의 PB센터와는 달리 이곳은 100억원 이상을 맡긴 고액자산가와 수천만원을 맡긴 직장인들이 혼재돼 있다. 증권사 PB 첫 지방점포인 데다 강남보다는 자산가 수가 적다 보니 초고액자산가만을 대상으로 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중점 관리대상인 초고액자산가는 역시 대부분 중소기업의 CEO들이다. 이창현 센터장은 “CEO 고객이 약 50명 정도인데 이들이 자산 비중의 대략 30~40%를 차지한다”며 “300~400억원을 맡긴 고객도 몇 명 있다”고 귀띔했다. 전체 고객은 나이별로 고루 분포돼 있지만 초고액만 놓고 보면 50대 이상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한복판에 위치한 파라다이스호텔 로비에 삼성증권의 초고액자산가를 위한 PB 거점인 SNI센터가 문을 열었다. 파라다이스호텔 로비에 센터를 세운 것은 해운대 인근의 고액자산가들이 파라다이스호텔이나 조선호텔의 피트니스센터를 주로 이용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 이들을 타깃으로 한 세미나 등 마케팅을 통해 고객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재문 SNI부산 지점장은 “서울과는 달리 지방의 고액자산가들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초기에 좋은 평가를 받으면 입소문을 빠르게 낼 수 있지만 반대로 잘못하면 썰물처럼 고객이 빠져나갈 수도 있어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를 한결같이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SNI부산은 삼성증권 내부 직원 뿐 아니라 은행에서 경험을 쌓은 PB 3명을 스카우트해 초기부터 공격적인 고객 확보에 나설 방침이다.
투자 포트폴리오 주식보다 채권
삼성증권 해운대 SNI 센터
해운대 지역에 PB센터가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고객의 성격이 다르다 보니 PB센터들의 전략은 서울 강남과는 다르다. 이재경 삼성증권 SNI센터 상무는 “지역 특성상 학맥이나 인맥 등이 서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면이 있다”며 “하지만 중소·중견기업 CEO를 직접 만나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오히려 고객과의 접점은 더 크다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해운대 지역에선 서울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비싼 외제차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지만 투자성향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서울 강남의 경우에는 금융자산의 대부분을 증권사에 맡긴 고객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증권사의 투자성향은 원금 보장이 안되는 주식이나 ELS 등 파생상품 투자 비중이 높다보니 은행에 비하면 상당히 공격적이다. 고객 입장에서도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쌓여 있어야 한다. 채권투자도 마찬가지다. 브라질 위기론이 나올 때에도 10%가 넘는 브라질 채권에 과감히 투자하는 고액 자산가들이 많았다. 자산관리서비스가 해운대보다는 조기에 정착된 만큼 고액자산가들이 참고할 만한 정보와 세미나 등이 수시로 열리고 있는 덕분이다.
이에 비하면 해운대 부자들의 투자성향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시중금리 + 알파’ 수준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다. 아무래도 경기변화나 금리변화에 따라 자산관리를 수시로 변경하면서 투자하는 것보다 가급적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중소기업 CEO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아무래도 고위험을 감내하고 높은 수익률을 원하기보다는 안정적인 리스크에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학연,지연 등 연결 고리가 강하기 때문에 약간의 수익률을 더 준다고 해서 고객이 이쪽저쪽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고위험 고수익 상품을 권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 이유로 투자 포트폴리오는 주식보다는 채권에 더 맞춰져 있다. 대우증권 이창현 센터장은 “중립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는 국내외 주식 40%, 주가연계증권(ELS) 20~30%, 채권 30%로 구성돼 있지만 주식보다는 채권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고 말했다. 리스크가 큰 주식보다는 리스크가 크지 않고 시중금리보다 금리를 조금 더 받을 수 있는 채권상품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특히 PB클래스 센텀시티점은 바로 앞 KDB산업은행과 근거리에 있어 산업은행과 협력해 고객 유치와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삼성증권도 초기에는 이런 분위기에 맞춰 투자전략을 조언하고 있다. 이재문 지점장은 “은행 중심의 사고를 가진 고객을 우선 타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채권이나 원금이 일정 부분 보장되는 ELS, 월지급식상품 등을 위주로 기본적인 포트폴리오를 권하고 있다”며 “보수적인 고액자산가들이 어느 정도 리스크에 익숙해지면서 은행 예금금리보다 플러스알파 수익을 낼 수 있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고액자산가 중에는 서울 강남 부자 뺨칠 정도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한 고액자산가는 100억원을 주식에 투자해 놓고 유럽 위기 이후 주가가 크게 하락하자 “기업의 실적만 괜찮으면 국가 위기는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며 뭉칫돈을 또 다시 투자하기도 했다. 해운대 지역의 보수적인 투자성향은 PB센터들이 다양한 정보와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면서 조금씩 바꿔 나갈 여지가 있다.
PB센터들은 일단 고객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알리기 위한 세미나를 열고 투자조언을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창현 센터장은 “센텀지점에 9명의 PB가 있긴 하지만 본사의 전문 인력과 연계해 부동산 컨설팅이나 세무 컨설팅을 해주면 반응이 좋다”며 “경기 동향 설명회 뿐 아니라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등 PB서비스를 하나둘씩 알려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대 PB 경쟁은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 올해부터 해운대 지역의 PB센터 경쟁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창현 센터장은 “위탁자산 목표는 1조원”이라며 “금융신상품에 대한 선호도나 관심이 서울에 비해 시차가 있고 보수적인 투자성향이 하나둘씩 바뀌어 나가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문 지점장은 “우량 중소기업이 즐비한 데다 전문직들도 한곳에 몰려 있어 향후 초고액자산가 시장이 크게 커질 여지가 충분하다”며 “향후 2~3년 내에 1조원 정도를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