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9월 국방과학연구소(ADD)는 건군 60주년을 맞아 우리가 만들어낸 ‘명품무기 10선’을 선정해 발표했다. 최근 국내에서 개발된 무기들로 K-9 자주포, K-21 보병 전투장갑차, K-2 전차, K-11 복합형 소총, 청상어(신형 경어뢰), 해성(함대함 유도무기), KT-1 기본훈련기, 신궁(휴대용 대공유도무기), 현무(지대지 유도탄), URC-700K 군위성통신체계가 포함됐다. 이들 무기는 하나같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인정받으며 21세기 한국군의 전투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기대주로 평가받았고 국민들은 세계 수준의 국산무기로 무장한 한국군의 능력을 믿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믿음은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2년여 만에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한국군의 능력이면 북한의 도발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국민들은 북한의 공격으로 초계함이 침몰하고 장병들과 민간인들이 죽고 다치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국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평소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국가안보에 대한 걱정을 서로 나누었고, 우리 군의 능력에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가진 ‘명품무기 10선’과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 상반된 두 가지 사례는 창군 이후 63년간 대한민국을 지켜온 군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명품무기 10선 VS 천안함·연평도 사건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우리나라는 1907년 대한제국군 해산 이후 처음으로 정식 군대를 갖게 됐다. 하지만 이렇다 할 산업이 없었던 당시 현실에서 한국군은 일제가 버리고 간 99식 소총과 미국이 지원한 미국제 M1 소총을 들고 나라를 지켜야 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한국군은 전투기도 전차도 한 대 없이 북한군의 남침을 몸으로 막아야 했다.
하지만 건군 이후 63년이 지난 지금 한국군의 화력은 눈부시다. 하늘은 동북아 최강을 자랑하는 F-15K 전투기가 지키고 있고 지상엔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K-2 전차가 위용을 자랑한다. 바다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 상륙함인 독도함이 포진해 있다.
지난 1980년대 F-5E/F와 KF-16의 조립생산으로 시작한 우리 전투기 기술은 이제 초음속 훈련기 T-50(블랙이글)을 개발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T-50은 마하1.5의 속도를 자랑하는 고등훈련기로 공대공 미사일과 유도무기 등을 장착하면 경공격기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블랙이글의 개발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2번째로 초음속 항공기를 생산하는 국가가 됐다.
바다엔 독도함이 있다. 지난 2005년 한진중공업에서 진수한 독도함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송·상륙함이다. 독도함은 헬기 7대, 전차 6대, 상륙돌격장갑차 7대, 트럭 10대, 상륙군 최대 720명을 작전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땅에서는 육군이 우리 전차를 앞세워 적진을 파고들 준비를 갖추고 있다. K-2 전차는 깊이 4.1m에서 포탑까지 물에 잠긴 상황에서도 기동이 가능하다. K-2는 미국 설계를 기본으로 한 K-1계열 전차들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터키에 4억 달러 규모로 수출되기도 했다. 이밖에 신궁은 근접한 적의 항공기와 헬기를 격추하는 데 쓰이는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로 90% 이상의 명중률을 자랑한다. 연평도에서 북한의 포격에 대응사격을 해 유명해진 K-9 자주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전력화된 52구경장 사거리 40㎞의 자주포다. 1000마력급 엔진, 자동변속기 및 항법장치, 자동사격통제장치 등을 갖췄다. 또 ‘북방을 지키는 신’이란 의미를 가진 현무 지대지유도탄은 180㎞ 사거리의 지대지 전술 유도무기로 적 후방의 전략적 요충지를 타격하는 전략무기다. K-11은 기존 소총에 20㎜ 구경의 공중폭발탄 발사기를 장착, 두 가지 탄환을 쏠 수 있는 복합소총이다. 엄폐물 뒤에 숨어 있는 적군의 머리 위에 폭발탄을 쏴 적을 제압하는 이 복합소총은 세계 각국에서 개발에 나섰지만 아직 상용화된 예는 없다.
주먹만 키우고 두뇌 소홀 대가
연평도에 배치된 K-9 자주포
이렇게 우리 손으로 만든 첨단무기들이 속속 배치되는 모습을 수십 년 간 지켜보았던 국민들에게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로 다가온다. ‘안보불감증’이라 할 만큼 국가안보에 관심이 없었던 국민들은 정부와 군을 상대로 ‘그토록 막강한 전력을 갖춘 군이 왜 북한의 기습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그 동안 한국군이 주먹(무기)에만 관심을 가진 나머지 두뇌(시스템)를 소홀히 한 대가라고 군사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즉, 전차와 장갑차처럼 눈에 보이는 무기 도입에 골몰한 나머지 북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자산이나 전시에 어떻게 싸울 것인지 계획하는 전쟁기획 등과 같은 시스템 개선은 소홀히 한 대가라는 것이다.
작년 10월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국방위)이 발간한 <천안함 이후 국방태세 개선 방향>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안보태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 완성된 국가 비상대비체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 당시에는 북한의 전면전이 가장 큰 위협이었기 때문에 국가안보태세는 북한의 대규모 전면전 도발에 대응하는 국가 총력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한반도에서 북한의 전면전 위협은 줄어들었고 우리 사회도 1970년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안보태세는 전면전 대응 외에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같은 돌발적인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천안함 사건 당시 정부는 아무런 비상사태도 발령하지 못했다. 천안함 사건 직후 안보관계장관회의가 네 번이나 소집됐지만, 정작 정부가 발령한 조치는 ‘공무원 정위치’, ‘골프 및 음주 금지’ 같은 것이 전부였다. 합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군사적 조치인 ‘진돗개 하나’는 “군사적 위기 징후가 명확치 않은 상태에서 예비군 소집, 검문소 설치 등이 수반되는 비상조치를 하게 될 경우 과도한 대응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된다”는 문제점 때문에 발령하지 못했다. 이러한 설명에서 드러나듯 우리나라의 군사적 비상조치는 징후가 명확한 군사적 교전상황만을 대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군사작전에서 융통성이 사라져 돌발적인 국지도발에 대응하기 어렵다.
군이 무기를 개발하고 도입하는 군사력 건설 부문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군사전문가는 “일선 부대에서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무기가 아닌 장군들이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신무기를 도입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우리나라의 군사력 건설에 우려를 표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우리가 이런 무기를 갖고 있다며 자랑하기 위해 무기를 도입하는 것은 약소국의 전력증강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일선 부대의 요구는 무시되고 장군들이 원하는 무기가 도입된다. 우리나라 군의 전력증강 역시 그렇게 이루어진 측면이 있다. 연안방어에 필요한 무기 대신 대형 수상함에 집중한 우리 해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되면 일선 지휘관들은 무기체계에 대한 관심보다 부대관리와 인사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는 군이 ‘전투형 군대’가 아닌 ‘행정 군대’로 바뀌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발상의 전환만이 살길
우리 바다를 지키는 독도함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겪은 군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혁에 착수하고 있다. 예비군 총동원에 따른 충격을 분산하기 위해 예비군 동원을 단계화하는 ‘부분동원제도’를 도입하고, 군정권(軍政權:군사행정에 관한 권한)과 군령권(軍令權:작전지휘권)을 일원화한 합동군사령부를 창설하고 합동군사령관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하지만 군이 추진하는 개혁이 제대로 진행될지에 대해 의문의 목소리도 높다. 지금까지 여러 번 추진된 국방개혁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현 정부의 국방개혁이 제대로 추진되겠느냐는 것. 이들은 1990년대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국방개혁과제에 포함됐던 육군 1·3야전군 사령부 통합이 십수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작년 11월 23일 북한 포격으로 연평도가 불타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국군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 진정한 강군으로 거듭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군이 한국전쟁식 대규모 전면전을 전제로 한 전통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보니 ‘다른 형태의 위기’를 떠올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위기의 재정립’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겹치면서 더더욱 예전의 전통적 사고에 매달리고, 결국 군의 시스템을 환경 변화에 무디게 만든다는 분석이다.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베트남전쟁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1968년 1월31일 베트남의 구정기간에 월맹군은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베트남으로 몰려간 군 수뇌부는 야전병원을 방문했다가 한 병사의 절규를 듣는다.
“우리에게 하늘을 나는 전차를 만들어 달라.”
군 수뇌부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세계 최초로 공격헬기를 개발한다. 그때까지 헬기는 수송용이라고만 생각했지 공격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런 고정관념이 베트남전에서 깨진 것이다.
한국군은 지난 63년 동안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해왔다. 그 과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국산 무기들이 외국에서 수입한 무기들을 대체했다. 국민들은 이런 한국군을 믿음직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은 우리 군에 ‘발상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협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유연한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그 어떤 국방개혁도 비전도 무기 도입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살피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국군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다. 국민들이 군을 걱정하는 최근의 세태는 한 번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