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내각의 안보라인의 특징은 미국 우선주의에 충성심이 강한 이들이라는 점이다.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위주로 대외 정책 노선을 정할 확률이 높다는 점인데, 국익이라는 관점은 역대 정부마다 우선시하던 것이라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세계의 경찰’ 역할을 줄이겠다는 기조는 뚜렷한 차이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외교 안보를 총괄할 이는 현 연방하원의원인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다. 왈츠 지명자는 중동과 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참전 용사 출신 정치인이다. 연방하원 군사위원회에서 활동해왔다. 국가안보보좌관은 모든 고위 국가 안보 기관 운영을 조정하며 대통령에게 사안을 보고하고 정책을 시행하는 역할을 하는 자리다.
외교를 실질적으로 책임질 국무장관 지명자는 마코 루비오 연방 상원의원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한때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고려했을 정도로 트럼프 당선인의 충성파 최측근이다.
루비오 지명자는 연방 상원의원이 된 뒤로 줄곧 중국과 이란 문제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쿠바계 이민 가정 출신으로, 강경 보수진영 정치 세력인 ‘티파티’에 힘입어 당선됐다.
미군을 지휘할 총 책임자인 국방장관에는 피트 헤그세스 폭스뉴스 진행자가 발탁됐다. 헤그세스 지명자의 군 최종 경력이 육군 소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 인사로 풀이된다. 게다가 40대이다.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뉴스에 몸을 담으면서 트럼프 당선인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수장에는 털시 개버드 전 하원의원이 지명됐다. 민주당 출신의 여성 정치인으로 태평양 섬나라인 미국령 사모아 출신이다.
현역 군인이기도 한 그는 2004∼2005년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경험이 있다. 군인답게 중동의 이슬람 테러리즘 뿐 아니라 북한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그는 평소 미국의 잦은 정권 교체가 북한과 같은 나라가 핵무기를 지속해서 개발하도록 이끌어왔다는 입장을 보이며, 트럼프 당선인이 처음 내각을 이끌었던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싱가포르)과 2019년 2월(베트남) 2차례에 걸쳐 김 위원장과 북미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중앙정보국(CIA)국장에는 존 랫클리프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지명됐다. 랫클리프 전 국장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텍사스 연방하원의원으로 일했고,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해에 DNI 국장으로 발탁됐다. 하원의원 시절 의회의 러시아 대선 개입설 조사와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충성심을 인정받았다. 다만 지나친 친 트럼프 행보로 DNI 국장 재임시절 중립성 논란 등을 불렀다.
한편 미국 국내 안보를 책임지는 국토안보부장관에는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가 낙점됐다. 트럼프 당선자의 핵심 공약인 불법 이민자 추방 등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지적이다. 놈 주지사 역시 트럼프 당선인의 대선 후보 시절 부통령 후보로도 거론됐던 ‘충성파’ 중 한 명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거부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새롭게 격화될 소지가 다분한 지정학 전장으로 단연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을 꼽을 수 있다. 대선 과정에서 수차례 대 중국 고율 관세 전략을 천명한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초부터 중국을 향한 각종 압박 정책을 펼 것이 자명한 상태에서, 양측이 직접적으로 맞붙고 있는 이곳만큼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현 남중국해 상황은 중국이 제어되지 않는 행동을 ‘마음껏’ 하고 있고, 국제사회와 주변국들은 손쓸 수단이 별로 없어 보고만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이래 해역 곳곳의 섬에 비행장을 짓는 등 자국의 영토화를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중국이 해군 에서나 볼 법한 군함을 해안경비대에 배치해 갈등을 빚는 주변국을 향해 군사적 압박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재집권 후에도 중국이 이처럼 남중국해에서 거리낌 없는 행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 새 정부가 해양 군사력의 핵심인 해군에 힘을 싣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초부터 미국의 해군력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우연찮게도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알려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의 조선업의 부활에 있어 세계 1위 수준의 기술을 가진 한국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며 손을 내밀었는데, 그 배경에는 미국의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막강했던 미 해군도 덩달아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파악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해군력 강화를 국정 우선 기조 중 하나로 삼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란 대선 캐치프레이즈와 딱 맞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 패권국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세계의 바닷길을 장악했기 때문인데, 이를 복원하겠다는 것은 MAGA 기조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트럼프 2기 정부의 미국 조선업 부활 움직임과 관련해 주목할 인물들이 있다. 바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왈츠 하원의원과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루비오 상원의원이다. 이들은 대선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향후 미국 안보의 핵심으로 조선업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두 사람은 지난 4월 의회에서 국가해양전략 지침이란 보고서를 냈는데, 주요 골자는 “중국과의 경쟁 관계에서 해군력이 중요하며 미국보다 230배 많은 조선능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해양 인프라 재건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 4월 의회에서 국가해양전략 지침이란 보고서를 냈는데, 주요 골자는 “중국과의 경쟁 관계에서 해군력이 중요하며 미국보다 230배 많은 조선능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해양 인프라 재건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두 사람의 정책 구상이 트럼프 당선인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 두 사람은 의회 내에서 대표적인 대중 강경파들이다.
이런 이들이 중국이 패권국을 꿈꾸며 펴고 있는 남중국해에서의 영역 확장을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중국이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주장을 계속 할수록 미·중 간 충돌 발화점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만 해협의 지정학적 불안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대만은 일국양제를 허용치 않겠다는 시진핑 국가 주석의 강한 의지하에 중국군의 무력 위협이 상시적으로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공포탄 정도였다. 트럼프 정부가 고율 관세 등으로 중국을 향한 대 강경책을 펼칠수록 중국의 대만을 향한 무력 시위 강도 또한 높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중국 내 불안한 경제 사정과 관련이 있다. 현재 중국은 내우외환이라고 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중국의 수출 길에 계속 타격을 주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중국은 대외 안보 정책으로 맞서는 카드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대만은 중국에게 매력적인 카드다.
트럼프 당선인이 바이든 정부 때처럼 대만을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로 여기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트럼프는 대만을 향해 우리처럼 합당한 안보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며 벌써부터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는 대만이 자국 GDP의 10%를 미국이 대만의 안보를 책임지는 대가로 원하고 있다.
또한 바이든 정부는 중국의 대만 침공이 단행될 경우 무조건적인 개입 원칙을 내세웠지만, 트럼프는 아직까지 이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한 적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 진행한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서 내놓은 대답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관세를 200% 올리겠다”고 했을 뿐이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대만을 향해 취하는 안보 모호성은 대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을 가중시킬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중국 당국이 미국이 개입을 주저하는 틈을 타서 기습과 같은 군사적 행동을 하는 전략을 펴는 것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만은 벌써부터 트럼프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바이든 정부에서 사실상 글로벌 황태자 격이었던 TSMC는 트럼프의 당선 직후 “중국에 7나노미터 이하의 첨단 인공지능(AI) 칩 출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TSMC가 사실상 반도체 최대 시장 중의 하나인 중국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대만 당국도 자국 GDP 10%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로이터에 따르면 대만은 신규 무기 거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트럼프 당선인이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생기는 동맹 간 틈을 벌써부터 비집고 있다.
11월 15일 페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주석은 “아시아 태평양에서의 협력은 지정학, 일방주의, 보호주의의 경향 증가와 같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면서 “무역, 투자, 기술 및 서비스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아시아 동맹의 주축인 우리의 윤석열 대통령과 약 2년 만에 정상회담을 가졌고, 이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남을 가졌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국제사회에서 가장 반기는 곳 중 하나가 이스라엘이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자국을 침공한 이후 보복을 이유로 강력한 무력 응징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든든한 우군을 얻은 듯한 분위기다.
실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이스라엘은 하마스뿐만 아니라 자국을 위협하는 또 다른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의 소탕을 위해 레바논 등 인접국을 폭격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스라엘의 이 같은 행보는 중동의 맹주 이란과의 직접적인 충돌로도 이어질 가능성도 높은데, 현실화되면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전쟁 못지않은 지정학적 불안요소가 될 수 있지만 이스라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차제에 중동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태세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 같은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작심을 한 것 같다. 주이스라엘 대사와 중동 특사에 친이스라엘 성향의 인사를 각각 임명하는 등 중동 전체의 역학관계를 전혀 고려치 않은 행보를 벌써부터 보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아예 취임 초에 이란을 직접 겨냥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트럼프가 이란의 원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행정명령을 작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첫 임기 때도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고 수백 건의 제재를 가하는 등 최대 압박 정책을 편 바 있는데, 2기 정부 때도 이 같은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일단 트럼프에 맞서기보다는 상황 관리에 주력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란이 부인하긴 했지만,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자리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아미르 사이드 이라바니 주 유엔 이란 대사와 회동을 했다는 소식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다만 트럼프의 새 안보라인 가운데는 여전히 이란에 대해 강경 노선을 취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어, 트럼프 당선인이 어떻게 최종 조율을 할지 관심이다.
북한의 참전으로 새 국면에 접어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으로 또 다른 변곡점에 섰다. 트럼프 당선인을 포함해 새 정부 주요 안보라인 인사들이 무기 등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원이 줄어든다면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유럽의 지원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전력 열세 국면에 놓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측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회의적인 이유는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왈츠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는 지난해 9월 우파 성향 매체인 폭스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속한 유럽 회원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지적하며 “미국이 홀로 부담을 계속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래서 트럼프 2기 내각은 조속한 종전을 이끌어내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재집권을 하게 되면 24시간 이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한 배경이기도 하다.
아직 구체적 방법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의 상태에서 종전을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안에 따르면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빼앗긴 영토를 우크라이나는 내줘야 한다. 영토의 완전한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부당하게 강요된 불공정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으로서도 현재의 상태에서 종전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가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의 영토 쿠르스크의 일부를 내줘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통치력과 관련해 치명적 내상이나 다름없다.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바이든 행정부가 장거리 전술 탄도 미사일인 에이태큼스의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하면서 전황이 더욱 요동치고 있다.
관련 소식이 전해진 직후 우크라이나가 실제 에이태큼스를 러시아 본토로 발사해 타격을 감행했고,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하며 핵무기 사용조건을 완화하는 핵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번 공격은 서방의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한 첫 사례다.
이같은 전황 격화에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바이든 행정부의 에이태큼스 사용 승인 결정 직후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아버지가 평화를 이룰 기회를 갖기 전에 군산복합체가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글을 썼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1호 (2024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