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산에 사는 김소윤(38·가명) 씨는 출퇴근 시간이면 지하철에서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가 사용하는 앱에는 현재 마음 상태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가 여러 개다. 숨을 고르게 정리하는 호흡법은 기본. 그는 “혼자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할 때 앱을 사용하는데,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앱을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며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 든든하다”고 전했다. 비단 김 씨뿐 아니라 팬데믹 이후 앱을 통해 마음 챙김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일각에선 100% 디지털화된 근무환경이 ‘상시 연결’ ‘상시 근로 상황’으로 이어지며 번아웃(Burnout·정신적 탈진)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한화손해보험 라이프플러스 펨테크연구소가 발표한 ‘2030 여성 정신건강 리포트’를 살펴보면 번아웃을 경험한 2030 여성의 비중이 2021년 63.4%에서 2023년 75.2%로 늘었다. 연관어 검색 결과 2030 여성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 중 상위권에 랭크된 3가지는 ‘자괴감’ ‘부담감’ ‘책임감’으로 나타났다. 이 중 자괴감은 주로 회사와 관련된 키워드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허탈감, 비교로 인한 열등감, 우울감 등이 원인이었다. 전체 직장인으로 범위를 넓혀도 조사 수치는 비슷하다. 취업 플랫폼 인크루트가 직장인 75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64.1%가 ‘최근 1년간 번아웃 증후군을 겪어본 적 있다’고 답했다. 직장인 3명 중 2명이 정신적 탈진을 경험한 것이다. 번아웃 직전 단계인 ‘토스트 아웃(Toast-Out)’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토스트처럼 다 타버리진 않았지만 노릇하게 구워진 상태를 비유한 표현이다.
이러한 상황에 기업들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대기업부터 소규모 기업까지 기업 복지 차원에서 심리 상담을 도입, 확대하고 있다. 최근 ‘더 행복하게, 더 가치있게’란 새로운 비전을 선포한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올해부터 임직원의 정신건강을 위해 사내 심리상담실 ‘마음챙김센터 휴(休)’를 확대해 운영 중이다. 포항제철소는 지난 2005년부터 임직원뿐 아니라 임직원의 가족, 협력사 직원까지 모두 이용이 가능한 사내 심리상담시설을 운영해왔다. 이곳에선 스트레스 관리를 통한 번아웃 예방, 긴급 심리상담, 트라우마 예방 교육, 뇌과학 활용 심리 검사 등이 진행된다. 올해부터는 맞춤형 상담을 제공하는 정신 건강 전문 서비스와 비대면 심리상담 ‘트로스트 앱’을 신설해 24시간 무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포스코 그룹의 급식과 수련원 등 복리후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포스웰(사단법인 제철복지회)도 임직원 비대면 심리상담과 명상·사운드테라피 등을 통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가상자산거래소를 운영하는 빗썸은 올 4월부터 구성원을 위한 사내복지 프로그램 ‘브라보 빗썸’을 운영하고 있다. 임직원들의 사전 선호도 조사를 통해 가장 호응이 높은 활동들로 구성된 맞춤형 사내 복지 프로그램이다. 임직원 개개인의 심리를 다루는 심리상담, 피지컬 케어 프로그램부터 요가, 필라테스 등을 함께 배우는 그룹 클래스, 팀워크에 도움을 주는 조직 단위 소셜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심리 상담 프로그램은 신청자의 직장생활과 대인관계 등 업무 관련 사항 외에도 개인정서, 가족관계, 성격 등 심리영역 전반에 대한 상담까지 영역을 확장해 실효성을 높였다.
하나증권이 도입한 ‘행복찾기 전문상담서비스’는 임직원들의 마음건강 케어를 위한 외부 위탁 프로그램이다. 비용은 회사가 전액 지원한다. 직무관련(직무스트레스·대인관계 등), 개인·정서(우울·불안·분노조절 등), 가정·자녀(부부관계·자녀양육 등), 재무·법률(자산관리·법률조언 등) 등 4가지 분야로 나눠 운영 중인데, 전문상담 매니저를 통해 사전예약 후 전국 800여 개의 상담센터, 3000여 명의 전문가에게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상담 내용은 회사에 통보되지 않고, 근로복지기본법 제83조에 따라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된다.
그렇다면 스스로 챙길 수 있는 가장 쉬운 마음 챙김에는 어떤 게 있을까. 앞서 언급한 휴대전화 앱이 가장 간편한 방법 중 하나다. 국내 시장에서 도 명상 관련 앱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시장조사기관 엑스퍼트 마켓리서치는 국내 명상 앱 시장 규모가 2028년에 2억6910만달러(약 35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16년 국내 처음으로 명상 앱 서비스를 시작한 ‘마보’는 기업과의 B2B 서비스로 사세를 확장했다. 현대차그룹, SK텔레콤, LG유플러스,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부터 병원, 공기업,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이 직원 복지 프로그램으로 마보의 앱 구독권을 지원했다. 온라인에서 명상 콘텐츠와 챌린지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마보는 올 들어 오프라인으로 명상 콘텐츠를 직접 배울 수 있는 ‘마보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휴마트컴퍼니의 모바일 정신건강 플랫폼 ‘트로스트’는 B2B서비스에 주목해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트로스트는 기업 고객 1인당 월 99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트로스트 케어’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가입하면 심리상담(채팅, 전화), 명상 프로그램, 인공지능(AI) 심리진단 등 앱 서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업계 최초로 데이터 기반의 AI솔루션을 접목해 앱과 문자 대화가 가능하다. 휴마트컴퍼니 측은 “가벼운 우울감이나 불안,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하는 사람부터 전문 심리 치료나 정신과 이용 경험이 있는 사람, 장기적으로 증상을 관리 중인 만성질환자까지, 누구나 앱에서 자신에게 맞는 솔루션을 찾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아토머스의 심리상담 브랜드 ‘마인드카페’는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2016년 익명의 정신건강 커뮤니티로 시작한 마인드카페는 AI기반의 심리검사와 개인·그룹 상담, 코칭, 정신건강 커뮤니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명상 앱 ‘코끼리’를 운영하는 마음수업을 인수하며 콘텐츠를 확장했다. 현재 이용자는 약 250만 명. 6곳의 직영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며 새로운 가맹점을 모집하고 있다.
AI기업 제네시스랩의 ‘닥터리슨’은 서울대병원의 정신의학과 전문의와 협력해 개발한 정신건강 자가 평가 앱이다. 우울증·조울증 등 주요 기분장애는 물론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적응장애 등 다양한 정신건강 질환에 대한 자가 평가를 지원한다. 일례로 간단한 글이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남기면 전문의가 설계한 AI가 내용을 분석해 결과를 내놓는다. 제네시스랩 측은 “닥터리슨을 통해 나온 모든 결과와 기록은 의료기록이 남지 않고, 익명으로 진행돼 비밀이 보장된다”고 전했다.
정신건강 관리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멘탈 헬스케어 스타트업 안드레이아는 생체데이터(심박수·HRV 등)와 실사용데이터(RWD), 생태순간평가(EMA) 등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정신건강 관리 서비스 ‘쏙닥쏙닥’을 운영하고 있다. 쏙닥쏙닥은 이용자가 느낀 감정을 음성 메모, 이모지 등의 방법으로 간단하게 기록해 감정 정리를 돕는다. 주기적으로 사용자의 건강기록과 감정을 분석한 멘탈 헬스케어 리포트도 제공한다. 특히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통해 비슷한 대상을 추천, 이용자가 대화를 통해 스트레스와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개인 맞춤형 웰니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가지랩’은 동명의 웰니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건강의 위험 신호를 파악하는 맞춤형 진단서비스와 건강 관련 콘텐츠가 강점이다. 다이어트부터 휴식, 수면, 정신건강까지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반려동물의 웰니스케어(Wellness Care)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펫테크 기업 너울정보가 선보인 ‘펫펄스’는 반려동물의 음성을 통해 감정을 인식하고 상태를 측정,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 융합기술(AloT) 기반 웨어러블 기기다. 총 110여 종의 반려견 음성을 AI로 분석, 90% 이상의 정확도로 행복, 슬픔, 불안, 분노, 안정 등 5가지 상태의 감정을 인식한다. 펫펄스는 이 기술로 CES 2021 혁신상을 받았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8호 (2024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