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가 밝았지만 역대급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로 주택 시장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분다. 아파트 매매 가격이 떨어지고 거래는 급감하면서 침체 양상을 보였던 주택 시장이 새해에는 반전할지 궁금해하는 수요자가 적잖다. 전문가들은 새해 주택 시장을 어떻게 바라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수요, 투자 수요 모두 꾸준한 서울은 금리 인하 기대감과 전월세 가격 상승이 맞물려 매매 가격도 상승세를 보일 거란 전망이 많았다. 고금리 장기화로 상반기까지는 주택 시장 관망세가 지속되겠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다 입주 물량 부족으로 전셋값도 지속해서 오르면서 집값을 밀어올릴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미분양 적체가 심한 지방의 경우 올해도 집값 회복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부동산 전문가 11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서울 집값 상승을 점친 전문가는 8명, 보합세를 예상한 전문가는 1명이었다. 하락을 예상한 전문가는 2명이었다.
구체적으로는 ‘1% 이상~3% 미만’의 완만한 상승을 전망한 전문가가 6명, ‘3% 이상~5% 미만’의 상승을 점친 전문가는 2명이었다. 하락론을 내세운 전문가 역시 ‘1% 이상~3% 미만’으로 완만하게 하락할 것으로 봤다. 정리하자면 올해 주택 매매가격은 5% 이상 큰폭으로 변동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올해 주택 시장은 상반기에는 보합세를 유지하다가, 하반기에는 상승세를 보이는 전형적인 ‘상저하고’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범위를 ‘전국’으로 넓혀 따져보면, 여전히 높은 금리와 경기 침체 상황을 감안할 때 매수 심리가 크게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집값이 ‘약보합’을 유지할 거란 의견을 낸 전문가가 6명이었다. 1~3%나마 상승을 예상한 전문가는 2명에 그쳤다. 1~3% 하락과 3~5% 하락을 점친 전문가는 각각 2명과 1명이었다.
서울·수도권에 한정돼 있긴 하지만 전문가들이 올해 집값 상승에 무게를 싣는 이유는 금리 인하 기대감 때문이다. 2023년 부동산 시장이 침체 양상을 보인 것은 고금리 여파가 컸다. 대출 금리가 연일 우상향곡선을 그리면서 내집마련에 나선 실수요자의 숨통을 조였다. 올해는 지난해보다는 분위기가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우선 그동안 집값에 크게 영향을 미친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졌다. 시기와 인하 폭을 두고는 아직 불확실성이 남았지만 적어도 그동안 고강도 긴축을 이어온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더 이상 올리지않을 것이란 게 시장 중론이다.
국내에서도 줄곧 오르기만 했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꺾이는 분위기다. 은행연합회는 지난해 12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를 3.84%로 산정했다. 전달(4%)보다 0.16%포인트 내렸다.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지난 9월부터 4개월 연속 상승했다가 이달 하락 전환했다. 같은 기간 잔액 기준 코픽스는 3.89%에서 3.87%로 0.02%포인트 하락했다. 신 잔액 기준 코픽스는 3.29%로 전월(3.35%) 대비 0.06%포인트 내렸다.
코픽스는 은행이 신규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부담하게 된 금리를 가중평균한 값이다. 코픽스가 떨어졌다는 건 주담대 부담도 줄어든 것인데 주택 보유 체력이 높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중은행의 변동형 대출금리도 지난 1월 16일부터 코픽스 인하 폭만큼 내렸다. 올 1월 15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대출금리는 각각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연 4.01~6.23% ▲전세자금대출 연 3.81~5.91% 수준이다.
집값을 끌어올릴 만한 또 다른 변수는 입주 물량이다.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감소하는 탓에 전셋값이 크게 오르고, 오른 전셋값이 집값을 밀어 올릴 것으로 보는 인식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한 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921가구로 추산됐다. 올해 집들이를 한 3만2975가구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서울뿐 아니라 2023년 12월 전국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 3만5475가구보다 1만가구 이상 감소한 2만4509가구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2024년 서울 지역 입주 물량 감소에 따라 전세 가격이 추가 상승할 경우 매매 가격에도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진단했다. 윤지해 부동산 R114 수석연구원은 “입주 물량이 감소한 탓에 전세 시장 물량은 이미 2022년 연말과 비교해도 반 토막 수준”이라며 “그간 신축 위주로 반영되던 물가 상승분이 2024년 기존 구축 단지로 빠르게 반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탓에 금리 인하 폭이 얼마나 커질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금리가 인하되더라도 매매시장으로 바로 유입되는 주택 유효수요는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점진적인 물가 둔화 흐름이 읽히고는 있지만 경기 둔화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고 금리가 올 상반기 내 빠르게 큰 폭으로 인하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진단했다.
집값 상승 요인으로 꼽히는 재건축 규제 완화의 경우 재건축 과정을 단축하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한데 4월 총선 전까지는 변수가 많다. 재건축 사업 규제 완화가 호재인 건 맞지만 당장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 있고 고금리가 지속되는 한, 바로 매매 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끌족의 성지’로 불리다가,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에서는 최근 재건축 규제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하락 거래가 확대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1월 1∼16일 노도강 지역에서 아파트 경매는 총 60건이 진행됐는데 이 중 6건만 낙찰됐다. 낙찰률이 10%에 그친 셈인데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아파트 낙찰률(30.3%)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감정가 대비 낙찰가를 나타내는 노도강 낙찰가율은 78.9%로, 이 역시 서울 전체 낙찰가율(86.4%)을 밑돌았다.
최근 정부가 잇달아 내놓은 재건축 규제 완화 조치도 아직은 시장 반등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 방침이 나온 ‘1·10 대책’ 이후 1월 17일 4억5000만원(15층)에 거래된 노원구 태강아파트 전용 49㎡는 지난해 12월 거래된 같은 평형, 같은 층 아파트 대비 약 2000만원 가격이 더 떨어졌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올해까지는 매수 관망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이 관망세를 반전시킬 만한 이벤트가 없으면 집값은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시기의 문제이지 실수요라면 지금이라도 내집 마련에 나서는 게 맞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당장 ‘올 상반기 중 사야 한다’는 의견을 낸 전문가가 6명, ‘올 하반기 중에는 사야 한다’는 의견이 2명, 내년에라도 매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2명이었다. 시기와 상관없이 자금 여력에 따라 구매는 필요하다는 의견도 1명에게서 나왔다. 무주택자나 갈아타기를 원하는 1주택 가구에 가장 많이 추천된 방법은 청약이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분양가가 책정되는 만큼 상승장에는 일반 매매보다 큰 시세 차익을 노려볼 수 있고, 반대로 하락장에는 상대적으로 손해가 덜해서다.
물론 청약은 하락기에나 상승기에나 전문가들이 매번 불패 전략으로 꼽는 내집마련 수단이다. 단 지난해까지 청약은 청약가점이 높거나 특별공급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에 한해 추천하는 방법이었는데, 지난해부터는 가점이 낮은 사람에게도 해볼 만한 전략이 됐다. 여전히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데다 전용 85㎡ 이하 물량에서 추첨제가 부활한 덕분이다.
정부가 청약 규제를 완화하면서 지난해 4월 1일부터 전국 분양 시장에서는 전용 85㎡ 이하는 60%, 85㎡ 초과는 100% 추첨제로 당첨자를 뽑고 있다. 비중은 적지만 강남·서초·송파·용산구 같은 투기과열지구에서도 추첨제가 부활했다. 그동안 가점이 낮아 청약에 엄두를 못 냈던 실수요자도 이제는 얼마든지 청약에 도전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요즘처럼 위축된 부동산 시장 심리에는 계약 포기 물량이나 무순위 청약, 이른바 ‘줍줍’ 청약이 심심찮게 시장에 나온다. 지난 1월 15일 고양시와 성남시에서는 ‘DMC한강자이더헤리티지’와 ‘산성역 자이푸르지오’ 무순위 청약이 각각 나왔는데 두 단지에 몰린 청약자 수만 28만3306명으로 30만명에 육박했다. 아직은 공사비, 분양가 등이 급등하기 전이었던 수년 전 가격으로 분양을 진행해 3억원 넘게 시세 차익이 기대돼서다. 청약통장이나 가점, 주택 보유 수 등과는 무관하게 전국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시장에서 가격 민감도가 커진 만큼 당분간 시세 차익이 큰 단지는 실수요자 관심이 뜨거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좀처럼 청약의 좁은 문을 뚫기 어렵다면 분양권이나 입주권을 매수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새 아파트를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분양받을 수 있기 때문에 향후 누릴 수 있는 시세차익을 한도로 웃돈을 얹어 거래한다. 분양 가격에 웃돈이 추가되기 때문에 매매 가격은 분양가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단점이다.신축 아파트를 마련할 자금 여건이 안 된다면 아예 준공
10년 이상을 넘긴 일반 아파트를 노려봄직하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최근 원자잿값, 공사비 급등 영향으로 분양가가 상승하면서 신축 아파트 분양가의 가격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새 아파트 프리미엄이 어느 정도 빠진, 준공 10년 이상 된 일반 아파트를 마련하는 것도 가성비를 챙기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한편에서는 사업 초기 단계 재건축 단지를 노려보라는 주문도 나온다. 정부가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은 안전진단을 우선 건너뛴 후 곧장 재건축 절차를 밟도록 하는 등 정비사업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는 덕분이다. 김제경 투미 부동산컨설팅 소장은 “ ‘운의 영역’으로 당첨되는 청약보다 차라리 투자할 돈이 있다면 재건축, 재개발 입주권을 눈여겨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관련해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서울 강남 3구를 비롯한 마포·용산·성동·광진·양천구’ 지역 아파트를 추천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재개발 투자도 괜찮은 선택지다.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는 “무주택자의 경우에는 토지거래허가제 여파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덜 오른 서울 내 주요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지역에서 매수를 노려보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정다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