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투자 침체기의 끝이 보이는 중이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도 이제는 금리 인상을 드디어 ‘중단’할 조짐이다. 이에 따라 내내 침체를 면치 못했던 주식시장에도 볕이 들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시장도 지난해와는 다른 호황이 펼쳐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섣부른 희망보다는 투자타이밍과 투자상품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 매일경제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대표 PB(프라이빗뱅커)에게 유효한 투자시점과 투자할 만한 상품, 절대하지 말아야 할 투자스타일과 상품 등에 대해 물었다. 5명의 PB들은 공통으로 투자타이밍은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 즈음으로 꼽았고, 지난해 대비 나아진 투자환경에도 불구하고 채권이나 금 등 ‘안전자산’을 반드시 포트폴리오상 넣어둬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아울러 주식 투자에서도 안전한 미국이나 한국의 ‘빅테크’ 주식이 올해 투자전략으로 유효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결국 2024년, 지난해보다 투자환경은 나아질 수 있지만 과감한 전략보다는 주위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게 좋다는 것이 결론이다.
김유나 KB국민은행 GOLD&WISE the FIRST센터 지점장은 올해의 재테크 키워드를 ‘경기 둔화’로 봤다. 글로벌 금융환경이 2000년대 이후 가장 ‘긴축적’이라고 평가한 김 지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아진 금리 수준에 비해 아직 글로벌 경기와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기 둔화’라는 방향성 자체는 명확하기 때문에 이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투자에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 지점장은 올해 가장 추천하는 재테크 상품으로 채권과 배당프리미엄 상품, 글로벌 성장주의 ‘믹스’를 꼽았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채권을 ‘균형적 차원’에서 유지하고, 배당프리미엄 상품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면서, 글로벌 성장주에 일부 돈을 묻어놓음으로써 변동성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그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모두 챙기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가장 추천하지 않는 재테크 방법에 대한 질문에는 “방송매체나 ‘~카더라’에 의존해서 감으로 하는 투자와 빚투”라고 답변했다. 지난해 좋지 않은 투자환경 속에 있던 투자자들이 올해 들떠 있을 수 있기에 하는 조언이다. 김 지점장은 “꾸준한 수익을 내려면 투자의 방향이 중요하고 리스크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면서 “금리 인하가 확실시된다고 해도, 현재 시장금리가 빠르게 하락했다면 장기채는 서두르면 안 되고 단기적으로 반등 시에 분할로 투자하는 시점을 분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설 타이밍으로는 미국에서도 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지고, 경기 하락 관련 지표들이 출렁이는 때라고 말했다. 김 지점장은 “단기적인 조정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면서 “굳이 시점을 논한다면 올해 1분기 이후를 생각해본다”고 밝혔다. 김 지점장은 “미국 팩트세트(Factset)의 어닝인사이트(Earnings Insight) 보고서에 의하면 2024년과 2025년 이익 증가율은 각각 12%, 11%로 예상한다”면서 “주식시장의 선행성을 감안하면 2024년에는 상승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상미 신한PWM패밀리오피스반포센터 PB팀장은 올해 ‘힘들지만 완만한 우상향’을 투자 키워드로 내세웠다. 중장기 방향성은 분명한 우상향이지만, 상승과정이 험난하다는 이야기인데, 그만큼 흥분하기보다는 리스크를 관리하며 주위를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반 팀장은 경제성장률 측면에서는 ‘완만한 둔화와 연착륙’을 점쳤고, 물가는 안정,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리스크가 있다고 내다봤다. 경기는 ‘둔화’가 예상되나 주식시장은 지난해 대비로는 양호할 것으로 봤고,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 역시 긍정적인 요소로 봤다.
반 팀장은 올해 가장 추천하는 재테크 상품으로 ‘반도체 주’와 금, 채권을 꼽았다. 반 팀장은 “올해 반도체 중심으로 수출 회복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2024년 수출은 반도체 업황 회복과 함께 메모리 가격 반등, 중국 경기 부양책, 2023년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로 회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AI(인공지능)였다. AI 서비스가 올해 ‘뉴 노멀’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고성능·고용량 D램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반 팀장은 “메모리 3사 중에서 올해 4분기 기준 HBM(고대역폭메모리) 선두업체는 SK하이닉스다. 엔비디아에 HBM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고 말하며 SK하이닉스를 추천했고,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HBM 점유율 만회를 위해 HBM 턴키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해당 솔루션이 성공한다면 향후 HBM 고객 기반을 크게 확대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금의 경우 헤지(Hedge)용으로 수요가 계속될 것으로 봤고, 매매차익 비과세가 유지되는 4%대 금리 채권 역시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봤다. 다만 시장금리 하향안정화 시에는 국고채나 AAA등급보다는 A등급 미만이나 하이일드 회사채 일부를 자산에 편입시키는 전략도 추천했다.
추천하지 않는 투자 스타일은 레버리지 투자였다. 반 팀장은 “레버리지는 추종하는 주가 혹은 지수의 3배까지 움직인다는 의미다. 그만큼 수익이 나면 크게 발생이 되지만 투자한 돈을 한 번에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 역시 투자시장 진입 시점은 “연방준비제도(Fed)는 최근 회의에서 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지만, 2024년에는 최대 3회의 금리 인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면서 “이럴 경우 투자자들에게 주식시장으로 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 주식시장 활성화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 팀장이 예상한 올해 목표 투자수익률은 7~10% 선이었다.
이준순 하나은행 Club1한남PB센터지점 PB부장은 올해 추천 재테크 상품으로 ‘나스닥100’ 그리고 환헤지형 선진국 회사채 2가지를 꼽았다. 이 부장은 “미국 기업들은 AI뿐만 아니라 바이오나 양자역학과 같은 소위 딥테크 분야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고 전제하면서 “금리의 높낮이에 따라서 변동성은 확대될 수 있으나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 증시의 하락은 오히려 매수 기회”라고 조언했다. 그런 차원에서 ‘나스닥100’에 포함된 종목들은 유망하다는 해석이다. 채권의 경우에는 금리 인하 기대와 현재 금리가 고점이라는 인식 속에서 매수심리가 살아 있다고 봤다. 이 부장은 “듀레이션을 다소 확대하고 캐리 메리트가 있는 환헤지형 선진국 회사채 투자를 권유한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관련 채권이나 주식투자는 ‘비추’했다. 이 부장은 “중국 기업들의 잠재력이나 중국의 내수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중국 기업들은 부채가 많고 재정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말하면서 “더군다나 정보가 부족하고 신용평가의 한계가 있는데 시진핑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도 너무 높다. 중국 정부의 기조가 시장 친화적인 적극적인 경기 부양 시그널이 나오기 전까지 중국 관련 주식이나 채권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부장 역시 시장에 진입할 타이밍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지만 금리의 높낮이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라고 말해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 시즌이 ‘크리티컬 포인트’라고 귀띔했다. 올해 목표수익률로 잡으면 좋은 숫자로는 5~7%를 제시했다. 이 부장은 “코로나19 혹은 2008년 금융위기 말처럼 자산가격이 엄청나게 하락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구간은 아니다”라면서도 “현재 정기예금 금리가 3.8%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정기예금에 1~3%포인트의 알파를 추구하는 수익률인 5~7%가 무난하다”고 봤다.
이원일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차장은 올해 재테크 키워드로 ‘저물가·저금리’를 꼽았다. 그렇기 때문에 2024년의 투자는 물가와 금리의 하락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의 비중은 적절히 가져가면서, 지정학적인 리스크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경기 침체 가능성, 그리고 물가 재상승에도 대비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2024년의 재테크 방법으로 적절한 현금성 자산 보유, 여전히 싸게 거래되는 우량 주식 매입 등을 꼽았다. 특히 ‘매그니피센트 7’이라고 불리는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 알파벳·아마존·엔비디아·메타·테슬라 등 빅테크가 유망하다고 조언했다. 이 차장은 “현재 비싸 보이지만 여전히 상승 모멘텀이 살아 있는 ‘매그니피센트 7’을 포함한 미국 빅테크와 턴어라운드가 예상되는 한국의 반도체 관련 종목들을 공격수로, 현재 싸게 거래되지만 우량한 바이오·헬스케어 관련 펀드와 ETF를 미드필더로 구성하여 포트폴리오를 단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으로는 선진국 국채와 우량 회사채를 추천했다. 투자 시장에 본격 진입할 시점으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작 시점을 들었다. 그는 “이 시점에 유망하지만 비싸지 않은 자산을 찾을 수 있다면, 투자를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이 차장이 제안하는 2024년 목표수익률은 6% 이상이었다. 그는 “세전 기준으로 주식 40%, 채권 40%, 예금 20%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고 할 때 가장 확실한 예금은 3% 후반, 채권은 자본 차익 고려 6% 전후, 주식은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로 8% 전후의 수익을 기대한다면 6%대 가까운 수익이 가능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2년 시장은 기대와 달리 고통스러웠고, 2023년 시장은 우려와 달리 견조했다”고 밝히면서 “우리는 시장을 예측해서 베팅하는 것이 아닌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여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훨씬 안정적이고 꾸준한 수익을 준다는 것을 오랫동안 경험해왔다”고 말했다.
김정열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WM전문위원 역시 낮은 경제성장률 예상치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 등의 이벤트가 있는 것은 호재라고 봤다. 그는 채권과 금 등 다른 PB들이 추천하는 상품 외에도 엔화와 인도 투자도 유망한 투자처로 꼽았다. 지난해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했기에, 올해도 추가적인 급격한 엔화 강세를 전망하지는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현재 가격적인 메리트가 충분하다. 향후 미국의 금리 인하 스케줄에 따라 점진적인 엔화절상이 예상된다”면서 “2024년 디플레이션 탈출에 대한 기대와 이에 따른 통화정책 정상화를 전망한다. 외화 환차익에 대한 비과세를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중국이 여전히 정치상황 등이 불안한 만큼, 이를 대체할 만한 투자처로 인도를 꼽기도 했다. 김 위원은 “중국을 대체할 글로벌 공급망 중심지이자 세계 최대의 인구를 보유한 인도는 올해 주요 신흥국 중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시장 친화적인 모디 정부의 재집권 확률이 높아 계속적인 주가 상승이 예상된다. 미국의 경기 연착륙 이후 달러 약세 전환 시 신흥국으로의 자금 유입에 따른 효과도 기대해볼 만하다”고 내다봤다.
비트코인도 올해 초부터 미국 현물 ETF 상장 등 호재가 많았지만 김 위원은 투자는 권하면서도,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경계했다. 김 위원은 “금리 인하라는 우호적인 환경,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이슈, 반감기 등 비트코인에 대해 긍정적인 요인들이 많다”면서도 “충분히 투자를 고려해볼 만하지만,전체 자산 중 일정 비중으로 투자하자”고 제안했다.
투자 진입 시점에 대한 질문엔 “금리 인하 전까지는 밸류에이션 부담이 있는 성장주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오른 가치주에 투자하고 금리 인하 이후에 다시 성장주에 투자하는 전략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다른 PB들과 마찬가지로 금리 인하를 투자 변곡점으로 본 것이다. 김 위원의 예상 목표수익률 전망은 5~7%였다.
[박인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