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또 신고가.’
최근 미국 인공지능(AI) 관련 대표 주식들은 사상 최고가 행진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반도체기업인 엔비디아와 AMD는 AI 칩 수요 증가와 반도체 업황의 개선 기대감에 힘입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이러한 상승세는 엔비디아와 AMD에 국한되지 않고, 대만의 TSMC와 같은 다른 반도체 관련 기업들에도 확산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1월 19일(현지 시각) 종가 기준 594.91달러까지 상승하며, 시가총액이 1조4700억달러에 육박했다. 이는 올해 들어 20% 이상 상승한 것으로, 지난 12개월 동안 약 180%의 상승률을 보였다. AMD 역시 최근 174.23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지난해 10월 이후 약 65% 상승했다. TSMC의 경우, 4분기 순이익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호실적을 발표하며 주가가 10% 가까이 폭등했다.
이러한 주가 상승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첫째, AI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칩 수요 증가가 주요 원인이다. 메타가 엔비디아의 칩을 대량 구매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주가 상승에 한몫했다. 둘째, 반도체 업계의 전반적인 성장세와 기업들의 긍정적인 실적 전망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주가의 과열에 대한 경계론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주가 수준이 기업 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맵시그널스의 알렉 영 최고투자전략가는 “이 주식들이 현재 자신들의 가치 이상으로 평가되고 있다”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또한 AMD와 엔비디아의 다가오는 실적 보고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AI 분야의 새로운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챗GPT’는 전세계적으로 생성형 AI 개발의 경쟁을 촉발했다. 지난해,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이 기술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러셀 3000지수’에 속한 주요 대기업들의 실적 발표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도이치뱅크는 지난 1월 16일 보고서를 통해 최근 기업들이 생성형 AI에 대한 ‘과대광고’ 현상이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022년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던 생성형 AI는 2023년 1분기에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1000건 가까이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오픈AI가 2022년 11월 30일 챗GPT를 처음 소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3개월 만에 이를 향후 사업에 활용겠다는 청사진이 지나치게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챗GPT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였던지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챗GPT는 무서울 정도로 좋은 성능을 지녔으며 상당히 강력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분기에는 그 횟수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3분기에는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생성형 AI 언급 횟수는 3500건에 이르렀지만, 4분기에는 2500건으로 감소했다. 도이치뱅크의 보고서는 이에 대해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실제 사용에 초점을 맞추며 기술에 대한 거품이 사라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라고 분석했다.
최근 미국의 주요 테크기업들이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하는 가운데, AI 분야에 대한 투자와 직원 유지는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CNN에 따르면 2024년이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기술기업 인력 5500명 이상의 직장인이 해고되었으며, 향후 빅테크 업계에 이러한 감원 바람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구체적으로 구글, 아마존, 디스코드, 유니티소프트웨어, 듀오링고 등 주요 기업들이 대규모 감원을 진행했다. 특히 지난해 테크기업의 총 해고 규모는 26만 2000명에 달했으며, 현재 종사자의 60%가 올해 직장 이동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감원 물결은 팬데믹 동안 디지털 서비스 수요 급증에 따른 과잉 채용의 정상화 과정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해고 사태의 이면에는 AI의 부상이 자리잡고 있다. 구글, 듀오링고, 체그, IBM, 드롭박스 등은 AI의 등장을 해고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특히, 구글과 아마존은 AI 스타트업에 투자를 확대하며 AI 분야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분야에 대한 투자와 직원 유지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I는 새로운 직업 창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전 세계 수억 개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삭스는 AI 도입으로 인한 대규모 일자리 소실을 예측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미국의 노동계와 정치인들은 대규모 해고와 그로 인한 불균형적 영향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 CNBC방송은 해고된 IT 인재 중 약 60%가 빅테크 업계로 이동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은 기술 분야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해고가 단순히 경제적 불확실성의 반영이 아니라, 기술 발전, 특히 AI 기술의 부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성형 AI 기술, 특히 챗GPT와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AI의 성장이 2023년에 본격화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2024년에는 이 기술의 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는 높은 비용 부담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규제 움직임 때문이다. 최근 시장분석기관 CCS인사이트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 기술에 대한 현실적인 규제가 2024년에 본격화되리라 전망된다. 보고서는 생성형 AI에 대한 거품이 빠질 것이라며, 실행에 필요한 비용 부담과 규제 증가로 인해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먼저 하나의 장애물은 바로 높은 비용이다. LLM을 학습 및 운영하기 위해서는 슈퍼컴퓨팅이 필요한데, 이와 관련한 비용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LLM 연산에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의 비용이 상당하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의 H100 칩은 개당 약 4000만원에달하며, 초거대 LLM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수천 개의 H100 칩이 필요하다. 또한, GPU는 전력 소모량도 많아 전력 비용 부담도 크다. 챗GPT를 구동하는 LLM GPT-4의 경우 하루 9억원가량의 운영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벤 우드 CCS 애널리스트는 “생성형 AI를 훈련하고 유지하는 데는 큰 비용이 든다”라며 “빅테크기업들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기업과 많은 개발자에게는 부담이 너무 크다”라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앞서 주지한 규제 이슈다. 현재 EU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는 AI 규제 도입 움직임을 보인다. CCS인사이트의 보고서는 “EU는 AI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처음 도입하겠지만, AI의 발전 속도 때문에 여러 차례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내년 말까지 확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예상했다. 다만 지속적인 규제 이슈가 주목받으면 해당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생성 AI 서비스의 확산과 더불어, 수익성이 있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코파일럿(Copilot)과 같은 대표적인 서비스는 워드, 엑셀 등의 MS 사무용 프로그램에 AI 기능을 통합하여 데이터를 요약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했다. MS는 지난해 11월에 대기업용 서비스를 월 30달러에, 최근에는 개인용 구독 서비스를 월 20달러에 출시하며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구글도 워크스페이스용 ‘듀엣AI’를 출시할 예정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생성형 AI 기술의 장기적인 가능성을 크게 평가하면서도, 구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초 2024년 AI의 수익성을 증명해야 하는 중요한 해로 지목하며 성공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유로 최근 2024년 첫 거래일에는 대형 기술주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이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챗GPT 기능의 적극적 도입으로 주가가 상승했지만, 과도한 평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WSJ는 AI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기업은 엔비디아를 제외하고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이에 더해, 어도비의 AI 이미지 생성 서비스 ‘파이어 플라이’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지만, 월가의 예상치보다 낮은 매출로 인해 실망감을 사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IT 기업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되고 있다.
스코샤캐피털의 소프트웨어 분석가 패트릭 콜빌은 “AI의 혜택이 예상보다 늦게 실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애플의 초기 투자자이자 벤처투자의 1세대 전설인 앨런 패트리코프가 최근 AI 관련 테마에 대해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AI와 관련된 기술 및 기업들이 고평가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이러한 현상이 과거의 경제 위기와 유사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그는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등 과거의 경제적 위기 상황들을 들어 현재 AI 시장의 상태를 분석했다. 그는 특히 닷컴버블을 최악의 사건으로 꼽으며, 이와 유사한 시장 과열 현상이 현재 AI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앨런은 “AI 분야의 가치 평가가 과대평가되었을 수 있으며, 투자자들은 이러한 거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라며 “AI 분야의 많은 기업이 높은 밸류에이션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 가치를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AI 분야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AI 플랫폼에 집중하기보다는 AI 도구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