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의사, 세무사 등 소위 전문직 시장에도 온라인 플랫폼 경보음이 커졌다. 전문직들이 장악하던 시장에 IT 기술로 무장한 플랫폼 스타트업이 속속 진출하면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법률 플랫폼 ‘로톡’의 로펌 시장 진입에 결사대응을 불사하면서 의료와 세무 등 다른 전문분야에서도 유사한 갈등이 수면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변호사 vs 로톡
가입 변호사 제재에 공정위 신고 맞불
포문은 법률 플랫폼 ‘로톡’이 열었다. 2014년 출범한 로톡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사례와 변호사를 찾고 상담 받을 수 있는 IT 서비스를 제공한다. 법률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고 수임료 투명화, 법률 서비스 시장의 정보 비대칭 문제 해결 등을 기치로 내걸었다.
로톡에는 올해 초 기준 4000명가량의 변호사가 가입해 있다. 전체 변호사 3만 명 시대에 상당한 비율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대한변호사협회는 로톡을 통한 거래액도 1000억원대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정이 이렇자 지난 5월 말 변협은 로톡 등 변호사 소개 플랫폼에 회원들의 가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 개정안, 그리고 변협 회칙인 ‘변호사윤리장전’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8월 4일부터 시행되는 변호사 광고 규정 개정안에 따라 수수료·광고료 등 경제적 대가를 받고 변호사를 소비자와 연결하거나 플랫폼에 광고를 의뢰한 변호사는 징계를 받는다. 정직 이상 처분이 내려지면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없게 된다.
변호사 단체에서 문제를 삼는 부분은 로톡의 수익 모델이다. 로톡은 중개 수수료를 없애는 대신 로톡 회원 변호사가 지불한 ‘광고비’로 돈을 번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 등 관련 단체는 로톡 등 IT 플랫폼이 추구하는 모델은 현행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 플랫폼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에 따라(변호사의 실력이나 평판과는 관계없이) 노출도를 높여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문제다. 비(非)변호사가 온라인 사무장 역할을 하고 거기에 변호사들이 종속되는 형태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A씨는 “홍보비를 많이 지출한 변호사가 사건 수임에 유리한 구조로 설계돼 시장 왜곡이 발생한다”면서 “법률 서비스 시장을 잘 모르는 일반인은 오로지 플랫폼이 이끄는 대로 변호사를 선택하게 되고 이는 실질적으로 법률 서비스를 소비하는 당사자의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일부 변호사는 이의를 제기한다. 조면식 법무법인 게이트 대표 변호사는 “로톡에 가입해서라도 영업을 해보려는 변호사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회비를 거둬 운영되는 이익단체인 대한변협이 회원인 변호사를 징계 수단으로 압박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톡은 변호사 60명과 함께 이번 사건을 “법률 소비자를 위한 혁신을 짓밟는 변협의 징계 규정은 위헌”이라고 규정하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또한 변협의 ‘변호사 윤리장전’ 개정안에 대해 공정거래법위반 협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며 대응에 나섰다. 공정위는 이례적으로 직접 로톡과 변협 간 갈등을 조사 중이다.
공정위 측은 변협이 변호사가 로톡 가입 시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한 내용이 사업자단체금지행위에 해당되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법 26조는 광고 활동, 영업일·영업시간, 영업의 종류·내용·방법, 영업소의 신설·이전 등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협회나 단체 소속 사업자의 광고 내용, 광고 횟수, 광고 매체 등을 부당하게 제한하거나 공동으로 결정하는 행위는 이를 위반한 사례에 해당한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 변협이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에 해당하는지, 로톡이 신고한 내용인 표시광고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 표시광고법은 개별 사업자가 각자의 상황 등에 따라 스스로 사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데, 대한변협의 규정 개정으로 변호사들의 자유로운 표시·광고가 제한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공정위가 내놓는 결론이 여타 전문업종과 온라인 플랫폼 간 갈등에 일종의 ‘판례’처럼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 성형 플랫폼 ‘강남언니’ ‘바비톡’
의료 광고 사전 심의 대상 확대 놓고 설전
로톡과 변협 간 비화된 갈등은 여타 전문업종으로 확대되고 있다.
‘강남언니(힐링페이퍼)’ ‘바비톡(케어랩스)’ 같은 성형·미용 정보 플랫폼과 의료계 간 갈등도 비슷한 맥락에 놓여있다.
강남언니와 바비톡은 모바일로 의료 정보를 제공하고 병원 예약과 상담을 연결해주면서 후기까지 관리한다. 이용자가 원하는 성형·미용 부위에 대해 상담을 신청하면 각 성형외과에서 견적을 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들 플랫폼은 모바일 정보 검색에 능숙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용자가 늘면서 시장 영향력도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바비톡은 가입자가 360만 명을 돌파하고 바비톡을 운영하는 케어랩스 매출은 전년 대비 46% 증가하는 등 성장 중이다. 2015년 서비스를 시작한 강남언니 역시 올 6월 기준 전국 750여 개 병원과 이용자 300만 명을 확보하고 있다.
강남언니와 바비톡은 병원 광고비를 받거나, 이용자가 병원에 상담 신청을 요구할 때마다 건당 대가를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린다. 의료계는 이런 방식이 의료법에서 금지하는 ‘환자 유인 행위’로 볼 여지가 있어 플랫폼들이 의료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본다.
그동안 대한의사협회,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지역 의사회 등은 각 회원 의사들에게 성형 정보 플랫폼 이용을 경고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해왔다. 의료 브로커들이 성형 정보 앱에서 활동하고 있고, 앱을 이용하는 병원 역시 불법 의료 행위 교사 또는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현재 의료법에 따라 의료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로 구성된 자율심의기구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 심의 대상을 ‘전년도 말 기준 직전 3개월간 일일 평균 이용자 수(DAU) 10만 명 이상’인 인터넷 매체 등으로 분류해 3만~4만 명 수준인 강남언니는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정부와 국회는 의사단체들의 심의 대상 확대 주장에 따라 법 개정 작업에 나섰다. 복지부는 ‘하루 10만 명 이상’을 ‘자율심의기구가 지정한 매체 등’으로 시행령을 고쳤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말 ‘모든 인터넷 매체’로 심의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을 내놓기도 했다.
플랫폼 업계는 모든 상품이 의료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사전 검수를 마친 합법 광고만 노출하고 있어 문제의 여지가 없다며 반발했다. 강남언니를 운영하는 힐링페이퍼 관계자는 “의료 광고 심의 대상 확대 필요성을 공감한다”면서도 “의협의 의료 광고 심의 기준이 아직은 모호하고 부정확한데, 이용자와 병원 모두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불법으로 몰아간다”고 토로했다. 예컨대 의료법(제45조)은 비급여 진료비용을 병원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의협 자율 심의 기준은 비급여 진료비용을 기재한 의료 광고를 금지하다 보니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쟁점으로 ‘진료 가격 공개’는 의료법 45조에 따라 비급여 진료비용을 병원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의협의 심의 기준에는 가격 기재가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논리로 불법 의료 광고로 분류해뒀다. 실제로 어떤 지점에서 소비자 혼란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진료비 할인 광고’에 대해서도 2008년 대법원 선고에선 ‘학생 대상 진료비 할인 의료 광고 합법’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의협에서는 특정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할인 광고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치료 전후 사진인 일명 ‘비포애프터’ 사진과 관련해서 복지부는 ▲동일조건 촬영 ▲경과기간 기재 ▲부작용 기재 등 조건만 준수하면 치료 전후 사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의협에서는 이에 대해서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일반인의 의료정보 이용에 대한 후기’도 의료법에서는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료 광고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인의 치료 경험을 적은 글은 의료광고가 아니라고 본다. 복지부 유권해석으로도 제3자가 의료인의 친절도 등 단순 의료기관 방문 경험을 게시하는 것을 의료 광고로 보기 힘들다고 봤다. 하지만 의협은 병원 측에 일반인 후기 삭제를 요구하는 한편 후기 전체를 불법 광고로 금지하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의협의 심의는 가격, 이용 후기, 치료 전후 사진 게재 등 합법적 광고를 금지해 소비자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무사회 vs 자비스
세무사법 위반 문제 제기
지난 3월 세무사회는 세무회계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를 세무사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세무사회는 자비스앤빌런즈가 세무사 자격증이 없음에도 과장된 환급금을 제시하고 불법적으로 세무 대리 업무를 했다고 주장했다. 세무사법 제22조는 세무사 자격이 없으면서 세무 대리를 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자비스앤빌런즈가 국세청 세금환급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며 수수료를 받는 행위가 이를 위반했다는 얘기다.
이에 자비스앤빌런즈는 “국세청 세금환급 대행 수수료는 세무 대리의 대가로서 수취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 서비스 이용료에 해당하며, 업무 자체도 지정된 세무사가 하기 때문에 위법소지가 없다”고 반박했다.
자비스는 100만 회원 수를 자랑하는 국내 1위 세무회계 플랫폼. 주로 자영업자, 아르바이트, 프리랜서 등 특수 노동자가 종합소득세 신고, 환급 등을 할 때 편리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비스 관계자는 “법률적 검토 등 여러 전문가의 의견과 함께 철저한 보안기술을 바탕으로 수임동의, 본인인증 등의 과정을 거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광고 또한 적법하게 진행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 검수 과정을 더욱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라며 “개인 대상 세무 서비스는 세무사 사무실 이용이 어려운 아르바이트, 배달·택배 기사, 플랫폼 근로자 등 일반인이 대상”이라며 “1인당 평균 10만원대 소액 환급금을 돌려주는 서비스로 기존 세무법인 시장에서 다루지 않은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대안은 없나
플랫폼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이처럼 플랫폼 기업과 의료계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스타트업 업계에선 사업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고 주장한다. 전통산업과 신산업 사이에 갈등이 나타날 때마다 기존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산업 이익단체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돼 신산업의 싹이 말라죽고 있다는 우려다.
이미 ‘타다’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타다’는 종전 ‘불친절, 불편, 위생 상태 불량’ 등 약점으로 지적되던 택시 시장에 플랫폼을 내세워 등장, 신선한 자극을 준 바 있다. 반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부족, 편법 진입 등 비판도 많이 받았다. 결국 국회가 나서 ‘타다 금지법’을 내놓으면서 해당 사업은 바로 정리됐다. 그럼에도 플랫폼 사업자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동시에 시장에 준 충격도 적잖았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을 표방하는 신산업으로 출현하는 기업들과 전통산업의 갈등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익집단을 끼고 있는 전통산업의 목소리는 늘 클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이를 조정하는 조정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선거 등을 앞두면 늘 이익단체 표심만을 대변하다가 신산업계가 죽는다”고 꼬집었다.
해결방식 또한 현재로선 법원의 판단에 결정을 맡기는 고소 고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다만 앞으로 두 업계를 조정하는 데 있어서 공정위의 로톡·변협 갈등의 결론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가 가장 연관성이 클 뿐만 아니라 갈등의 골이 가장 깊은 로톡·변협 갈등이 다른 업계에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과 전자상거래법 등 국내에 생소했던 온라인 플랫폼 규제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 기구 설립, 기술 공유 등 소통 채널을 확대하고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산업은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게 기본인데 표심을 의식하는 정치권은 신산업과 기존 산업의 갈등을 지켜보다가 비효율적인 기존 사업자 손을 들어주는 책임 회피를 지속하고 있다”며 “국민 전체가 발전된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신산업이 발전하는 방향에서 협상을 적극 중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직이든 플랫폼 사업자든 ‘고객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리걸테크산업협의회장은 “온라인 플랫폼은 비대면 디지털 경제 시대에 공급자와 소비자를 잇는 필수 요소다. 플랫폼은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시장의 파이를 키워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윈윈을 가져온다. 결국 전문직이든 IT 업체든 소비자의 효용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를 놓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