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라인-야후재팬 경영 통합 합의… ‘1억 명 플랫폼’, 이해진은 AI 손정의는 ‘큰 그림’… 구글과 맞짱뜬다
김병수 기자
입력 : 2019.11.26 11:32:48
수정 : 2019.11.26 13:56:29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미국과 중국이 주름잡고 있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패권에 맞서 인공지능(AI) 연합전선 구축을 공식화했다. 양사는 미국의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와 중국의 BATH(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에 맞서 검색부터 메신저, 온라인쇼핑, 금융 등에 이르는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용자 1억 명 규모의 거대 디지털 플랫폼이 탄생하는 것이다.
두 회사는 50 대 50의 지분율로 합작회사(JV)를 새로 세운 뒤, 이 회사가 Z홀딩스의 공동 최대 주주가 되도록 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Z홀딩스는 지주회사로 산하에 네이버의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야후재팬 등을 거느리게 된다. 올해 중 본계약을 거쳐 2020년 10월까지 통합 절차를 완료한다는 목표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대표와 가와베 겐타로 Z홀딩스 사장은 “아시아 최고 AI 기술 연합체이자 세계를 설레게 하는 최강의 원팀 ‘야후라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양 사는 통합이 마무리되는 대로 AI를 중심으로 중장기적으로 유망한 기술 개발 분야에 연간 1000억엔(약 1조700억원) 규모의 투자도 계획하고 있다. 양 측은 통합으로 간편결제 영역에서 출혈경쟁을 막을 수 있고, 결제와 뗄 수 없는 전자상거래와 시너지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배경은 무엇
두 회사가 밝힌 통합 배경은 “세계 인터넷 시장에서 미중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 기업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기업 규모를 비교해도 일본 기업과는 큰 격차가 벌어진 현실”이었다.
두 회사는 그간 일본 내 ‘페이(모바일 간편결제) 전쟁’ 등 자주 회자되던 라이벌이었다. 실제로 작년 말부터 올 상반기에 걸쳐 라인과 소프트뱅크는 일본 시장에서 간편 결제 라인페이와 페이페이에 마케팅비를 각각 수천억원 쏟아 부으며 피 터지는 경쟁을 펼쳤다. 그런데 협력을 넘어 피와 살을 나누는 경영 통합을 약속한 것이다. 네이버가 다른 상장 회사와 손잡고 JV를 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글로벌 IT 거인인 구글, 그리고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로 대표되는 중국계 정보기술(IT) 기업의 부상에 맞서 불필요한 경쟁을 중단하고, 일본 시장부터 평정하겠다는 게 이번 MOU의 단기 목표다. 실제 이번 통합은 모바일과 포털을 아우르는 압도적인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손 회장이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에게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라인 입장에서도 연합군이 필요하다”라고 밝히는 등 미국의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와 중국의 BATH(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에 대항할 파트너가 절실한 상황이다.
통합 법인은 당장 일본에선 포털·모바일메신저·전자상거래·간편결제·인터넷은행뿐만 아니라 모빌리티 같은 O2O(온·오프라인 연계) 사업을 망라하는 모든 인터넷·모바일 사업 영역의 강자로 부상한다. 야후재팬은 포털 이용자가 6743만 명이고, 보유한 다른 앱까지 합치면 사용자가 1억4000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라인이 보유한 일본 내 이용자 8200만 명, 해외 이용자 1억400만 명이 합쳐진다. 당장 온라인쇼핑과 모바일 간편결제 분야는 양 사가 가장 먼저 협력 사업을 펼칠 분야로 꼽힌다.
의류 온라인쇼핑몰인 조조(JOJO) 등을 산하에 둔 야후재팬의 온라인쇼핑몰 일간 거래액은 약 1조9400억엔(약 20조7400억원 ·2018년 기준)이다. 이는 일본 온라인 결제금액 기준 3위이다. 여기에 최근 젊은 층에 호응을 얻고 있는 ‘라인쇼핑’까지 합류하면 2위 사업자인 아마존재팬(거래액 약 29조4000억원)을 충분히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의 또 다른 이유는 인공지능(AI)이다. 두 기업의 결합으로 새로운 비즈니스에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플랫폼에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지난 7월 일본 도쿄에서 소프트뱅크 그룹이 기업을 상대로 연 행사에서 손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10조엔 규모 펀드의 투자처에 일본 기업이 포함돼 있지 않다며 “일본은 인공지능(AI) 후진국”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AI 투자처를 찾지 못한 손 회장은 AI 선도 투자를 해온 이해진 GIO의 손을 잡게 된 것이다. 네이버가 구상하고 있는 AI 기술 생태계 공략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네이버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AI 연구벨트’를 조성해 미중 기술 패권에 대항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AI가 경쟁력이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구글, 바이두 등 미중 거대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자체 생태계를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양 사는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통합으로 경영 자원을 집약하고 신규 사업에 투자하며 혁신 모델을 만들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가는 AI 테크 컴퍼니가 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라인과 야후를 합친 규모라야 미중의 경쟁 상대가 되고, 일본 시장에 투자하던 자원을 모두 AI 투자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최재홍 강릉원주대 교수는 “네이버는 일본 검색 시장에 돈을 쏟아 부었지만 성적표를 내지 못했다. 이번에 야후재팬과 같이한다는 것은 오랜 숙제를 푼 것과도 같다”며 “동남아에선 라인을 이길 만한 소셜 서비스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소프트뱅크의 네트워크로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 콘텐츠를 도입하는 등 시너지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경영통합 어떻게
경영통합으로 라인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 대 50 지분을 가진 합작회사(조인트벤처·사명 미정)가 되고, 이 합작회사는 Z홀딩스를 지배하는 공동 최대주주가 된다. Z홀딩스 밑에 다시 야후와 라인 신설법인을 두는 구조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라인 주식 전부를 취득하기 위해 공개매수에 나선다. 공개매수에서 라인 주식을 전부 취득하지 못하면, 주식병합을 이용해 라인을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전부 보유하는 회사로 만든 후 상장 폐지할 예정이다. 라인이 상장폐지된 후 새로 만들어지는 라인 운영회사는 소프트뱅크의 연결자회사가 된다(그림 참조).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사장(46)과 가와베 겐타로 Z홀딩스 사장(45) 등이 라인과 야후재팬 사업을 총괄하는 모회사(이하 총괄회사)의 공동대표를 맡는 방식이다. 이와 동시에 신중호 라인 공동대표(47)와 오자와 다카오 Z홀딩스 전무(47) 등 라인과 Z홀딩스에서 각각 3명의 시내이사를 임명하고 사외이사 4명 등 총 10명의 이사회 체제가 꾸려지게 된다. 양사 발표와 기자회견 내용 등을 뜯어보면 일단 통합 법인의 내부 의사 결정 과정이 대등한 관계로 이뤄진다는 점을 최대한 강조하고 또한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 출신 인사들의 의견 반영이 용이하도록 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사회 아래 만들어지는 프로덕트위원회와 이를 총괄하는 최고프로덕트임원(CPO)으로 내정된 신중호 라인 대표다. 위원회는 통합회사 전체 중요 제품과 서비스의 기획과 개발, 개시·폐지, 자금과 매출 예산, 인원의 배분 등을 결정한다. 5 대 5 동수인 위원회에서 의견이 갈릴 경우, 최종 결정권까지 CPO가 갖는다.
신 대표는 올해 4월부터 라인의 공동대표를 맡아왔다. 이 GIO의 오른팔로 꼽힐 뿐 아니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공동대표는 네이버가 지난 2008년 일본에서 검색서비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사업을 총괄하고 2011년에는 라인 개발을 주도, ‘라인의 아버지’로 불린다. 프로덕트위원회는 합작회사의 성장, 사업계획, 기획·개발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곳이다. 네이버가 회사의 미래를 그려나가겠다는 것이다.
▶남은 과제는
양사는 통합 후에 AI를 중심으로 중장기적으로 유망한 기술개발 분야에 연간 1000억엔 규모로 투자하는 등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로 불리는 세계 IT 공룡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미중 IT 거인들과 벌일 싸움은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구글은 연간 200억달러 이상을 연구 개발에 쓰고 이 가운데 AI 투자 비율이 적지 않다. 라인·야후재팬이 내세운 연간 1조원 투자로는 따라잡기 쉽지 않다. 주목할 부분은 소프트뱅크그룹의 비전펀드가 그동안 수많은 인공지능 스타트업에 100조원 안팎을 쏟아 부었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의 AI 기술을 가져와, 통합 법인 이용자 1억~2억 명에게 신규 상품으로 제공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성공적인 통합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양 측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통합 ZHD의 경영권 행사 방식과 관련해 향후 협상 과정에서 이견을 노출할 우려가 있다. 이후 경영 과정에서도 신산업 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를 포함해 구체적인 사업 방식을 놓고 의견을 달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 사는 통합 3년 후 경영 구조 등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경영 통합 과정에서 내부 마찰이나 불협화음 없이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간 협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늠자가 될 공산이 크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라인 입장에서 통합이 직원들의 의욕을 자극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만 거대 조직인 소프트뱅크 진영의 일부에 머물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라인 입장에서 경영 통합은 도박”이라며 “이데자와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일도 개인정보 과점화 이슈로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