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땅?’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 말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신이 약속한 땅’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유일신이 이집트의 노예로 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에서 해방되면 살기 좋은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한 대목에서 등장하는 관용구다.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위직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내국인 전용 카지노인 ‘강원랜드’다.
강원랜드가 이처럼 관피아(관료+마피아)들에게 최고의 재취업처로 각광받는 이유는 바로 높은 실적에서 기인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연봉과 성과급제도 때문이다.
강원랜드는 2010년 5695억원, 2011년 4896억원, 2012년 4049억원의 영업이익에 이어 지난해에도 388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관피아들은 그래서 유독 강원랜드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공석으로 비워진 대표이사를 포함해 사장단 7명 중 6명이 산업부 출신일 정도다.
그러나 강원랜드는 올해 산업부로부터 ‘방만경영 기관’으로 지정되며 체면을 구겼다. 강원랜드 내 카지노 운영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폐광지역 경제활성화란 명목으로 투자에 나섰지만, 단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공기업 중 최고 수준의 경영실적을 달성하고도 ‘마이너스의 손’이란 오명을 듣고 있는 강원랜드. 관피아를 위한 최고의 재취업 성지로 전락해버린 강원랜드의 슬픈 자화상을 살펴봤다.
투자하면 손해 보는 ‘마이너스 손’
강원랜드는 정부 산하 공기업 중 매년 엄청난 규모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우량 공공기관이다. 실제 최근 실적만 봐도 강원랜드가 얼마나 많은 이익을 냈는지 알 수 있다. 강원랜드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해마다 3800억~5700억원의 영업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3880억원의 영업이익을 남겼다.
그러나 강원랜드는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타공공기관평가위원회에서 방만경영 중점관리 기관으로 지정됐다. 계열사 투자과정에서의 손실, 그리고 직원들의 잇따른 근무 기강해이 사건 등으로 방만경영 기업이란 오명을 쓴 것이다.
특히 지난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이채익 새누리당 의원은 “강원랜드가 2009년 이후 현재까지 1300억원이 넘는 출자금을 계열사에 투자했는데도 하이원엔터테인먼트(이하 하이원), 상동테마파크, 하이원추추파크(구 스위치백리조트) 등 3개 자회사에서만 305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09년 강원랜드가 100% 출자해 설립한 하이원이 논란의 중심이 됐다. 하이원은 설립 이후 영업손실액이 2010년 62억원, 2011년 102억원, 2012년 99억원에 달하는 총 263억원의 손실을 기록해 설립 3년 만에 투자금의 41%를 날렸다. 반면 매출은 같은 기간 동안 57억원에 불과했다. 하이원은 강원랜드 옆 리조트를 포함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강원랜드의 계열사 손실은 이게 전부인 걸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강원랜드의 재무현황을 확인한 결과 계열사 투자손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았다.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랜드가 투자한 비상장법인 9개 중 8개가 올 3월 말 기준으로 모두 손실을 보고 있다.
강원도 태백의 오투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는 태백관광개발공사는 지난해 182억원을 당기순손실을 냈다. 강원랜드는 2012년 150억원을 들여 태백관광개발공사 지분 9.9%를 취득한 바 있다. 이 금액은 이미 장부상에는 ‘0원’으로 표시됐다.
강원랜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하이원엔터와 하이원상동테마파크(이하 하이원상동)도 각각 24억원, 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또 150억원을 투자했던 동강시스타는 2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장부평가액도 2분의 1로 줄었다.
이밖에도 문경레저타운(지분 27.27%)은 1분기에만 12억원, 삼척의 퍼블릭골프장인 블랙밸리 컨트리클럽은 9억원의 손해를 봤다. 강원랜드가 지분 29%를 사들이며 투자에 나섰던 대천리조트도 11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강원랜드 경영진들은 왜 적자 사업에 투자한 것일까. 정선남면지역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이하 폐광지역살리기위원회) 관계자들은 “강원랜드가 방만경영 기관으로 지정될 만큼 경영상황이 악화되고 신뢰를 잃은 것은 산업부를 비롯한 낙하산 인사들의 책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원랜드 내에서 복합테마단지 개발사업을 벌이는 하이원엔터테인먼트. 강원랜드 내에서 리조트도 운영한다.
투자 실패의 뒤에는 낙하산 임원들
이들은 강원랜드가 투자한 계열사들과 신규사업들이 모두 ‘폐광대체 산업지원’이란 목적으로 진행됐다고 입을 모았다. 폐광대체 산업지원은 석탄산업 사양화로 낙후된 폐광지역의 경제를 다시 진흥시키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사업들이 정작 폐광지역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한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문경레저타운과 동강시스타, 삼척의 블랙밸리 골프장이 과연 폐광지역 경제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내세우면서 정작 지역에서 외면 받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강원랜드 노조는 이 같은 투자실패에 대해 책임지는 경영인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 노조 관계자는 “강원랜드의 대표적인 투자실패 사례로 지적되는 태백 오투리조트의 경우 투자를 강행했던 당시 임원이 이후에 승진했다”며 “강원랜드 경영진과 이를 감독할 지역 국회의원, 정부기관들이 강원랜드를 관료들의 재취업 성지로 만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앞서 밝힌 것처럼 강원랜드는 태백관광개발단지에 150억원을 투자했지만, 장부가액은 이미 0원이다. 다시 말해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바로 이 태백관광개발단지가 문제의 오투리조트의 운영주체다.
강원랜드 이사회는 2012년 7월 태백시가 운영하는 오투리조트에 대해 기부금 형태로 150억원을 지원하는 안을 두고, 표결을 실시했다. 당시 오투리조트는 개장 1년 만인 2009년부터 266억원의 손실을 내며 사실상 파산을 앞두고 있었다. 이에 염동열 새누리당 의원(태백-영월-평창-정선)을 비롯한 지역 단체들이 강원랜드에 회생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강원랜드는 표결을 통해 이를 통과시켰다. 감사원은 올해 4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해 표결에 참석했던 관련 임원 9명에게 중징계를 내리고 산업부에 지시했다.
주목할 점은 이 표결에 참석했던 당시 김성원 전무다. 그는 올해 초 부사장으로 되레 승진했다.
강원랜드 노조 측은 이와 관련 “회사에 150억원이란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결정을 내린 경영진이 오히려 승진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정부로부터 내려오는 낙하산 임원들과 산업부-문광부를 중심으로 끈끈하게 운영되는 관피아들로 강원랜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고 반발했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 강원랜드. 해마다 1조원 이상의 매출액을 내고 있다.
전체 임원 중 75%가 관료 출신
결국 강원랜드 노조는 지난 5월부터 낙하산 저지 투쟁에 나서고 있다. 2000년 설립 이후 수많은 경영진들의 대부분이 관료 출신이 아니면 정치권 인사였다며 더 이상의 낙하산 인사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조 측은 이에 대한 자세한 자료도 공개했다. 노조 자료에 따르면 2000년 강원랜드 설립 이후 선임된 대표와 전무(현 부사장), 본부장, 상임감사 등 임원 28명 가운데 75%인 21명이 산업부와 문광부 출신 관료 또는 정치권과 연관이 있는 낙하산 인사였다. 대표이사인 사장급은 전체 7명 중 6명이 낙하산 인사였을 정도다.
1998년 강원랜드의 첫 번째 대표이사로 선임됐던 서병기 사장은 경기은행 지점장을 거쳐 산업부 산하의 전기안전공사 감사를 지냈다. 카지노는 물론 광산업과도 접점이 없었다. 이후 대표로 임명됐던 김광식(2대 대표이사), 오강현(3대 대표이사), 김진모(4대 대표이사) 사장은 모두 산업부 출신이었다. 2009년 함바비리로 인해 재임 중 구속됐던 최영 사장은 SH공사 대표 출신이었다.
대표이사뿐만이 아니다. 강원랜드의 경영을 좌우하는 핵심요직 중 서열 3위의 경영본부장 역시 관료 출신들이 도맡았다. 지금까지 총 8명의 경영본부장 중 산업부 출신은 5명이다. 강원랜드 설립 초기에 정치권을 통해 입성한 2명을 제외하면 산업부 퇴직 관료들이 꾸준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카지노본부장에는 문광부 출신이 영향력을 발휘했다. 총 7명의 카지노본부장 중 산업부 출신은 1명이었지만, 문광부 출신은 4명이나 카지노본부장에 영입됐다. 카지노허가권을 쥐고 있는 곳이 문광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반면 강원랜드 자체 승진을 통해 임원까지 올라선 경우는 2008년 11월 장욱 전 경영본부장 이후 단 한 명도 없다. 장 전 본부장도 단 6개월 만에 물러났다. 연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이 기피하는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대주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산자부와 정치권 때문으로 보인다.
하늘에서 본 강원랜드. 1998년 폐광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해 설립됐다.
대표이사 공석, 부사장만 공모?
주목할 부분은 현재 강원랜드의 상황이다. 강원랜드의 경영진은 현재 공석이다. 2010년 한나라당 강원지사 선거 공천에 나섰다가 낙선한 뒤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최흥집 전 사장은 지난 6월 있었던 강원지사 출마를 이유로 올해 2월 사임했다. 또한 국회사무처 국제국장과 법제실장을 지낸 김성원 전 부사장은 전무시절 진행했던 오투리조트 투자 건이 감사원에서 지적받으면서 지난 5월 사표를 낸 상태다. 대표이사와 부사장이 모두 공석인 셈이다.
그래서 강원랜드는 현재 경영진 공모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사장을 빼고 부사장만 선발하고 있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회사 내 한 직원은 이와 관련 “지방 선거도 끝났으니, 정부부처에서 또 한 명의 낙하산을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사장 공모를 하지 않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나마 진행 중인 부사장 공모 역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미 한차례 공모가 무산된 것을 놓고 특정 인물 밀어주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강원랜드 측은 “적당한 인물이 없어 공모절차가 무산됐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설립부터 현재까지 관피아의 재취업 성지로 평가받고 있는 강원랜드. 재계에서는 박 대통령의 ‘관피아 척결’ 의지가 강하게 피력된 지금이 강원랜드가 산업부와 문광부의 그늘을 벗어나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기 좋은 때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강원랜드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서류 공모 후 산업부의 역량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산업부의 태클을 넘어서야만 대표가 될 수 있다. 폐광지역 경제활성화를 목표로 설립된 강원랜드. 과연 강원랜드에 전문경영인 시대가 열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