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국내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 가운데 위기 극복의 가장 성공적 사례로 곧잘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수출 호황 등에 힘입어 확연히 회복세를 보이는 국내 경기 전반과 달리 주택시장은 미분양 적체와 주택매매 감소 등 극심한 침체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주택매매의 실종은 대출을 안고 주택을 구입 혹은 분양받은 이들로 하여금 대출상환을 어렵게 만들어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도 생활이 어려운, 이른바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와 달리 구매력을 갖춘 수요층들은 보금자리주택으로 몰려가거나 향후 시장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미분양의 근본적 해소나 주택시장의 분양 열기라는 단어는 이미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세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전세시장으로 대거 몰린 유동성이 약 2년 이상 전세가격 인상폭의 고공행진 패턴을 만들어내는 등 주택시장을 왜곡시키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목동 아파트 단지.
올해 들어 이미 두 차례 금리인상이 단행되기는 했지만 국내 경기 회복은 아직도 저금리 정책의 기조 위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시중의 유동성은 넘치고 대외적 변수로 인한 인플레 우려도 높아지면서 2011년 4월 800조원을 상회하는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을 사전에 대비하기 위한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금리인상이 가장 직접적 수단이랄 수 있다. 하지만 금리의 추가 인상은 기업과 기존 대출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켜 수출경쟁력 감소나 가계부실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정부로서도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불똥은 주택시장으로 떨어져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됨과 동시에 대출규제의 직접적 대상으로 주목을 끌게 됐다. 그 결과 비록 한시적 조치이기는 했지만 주택시장의 수요심리 회복에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던 DTI 규제완화 조치가 불과 7개월여 만인 지난 3월22일 ‘주택시장의 활성화 대책’을 통해 가계부채 건전화를 위한 대출 억제 수단으로 다시 부활되고 말았다.
차갑게 외면하고 있는 주택시장
주택매매 실종은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올해 들어 주택거래 건수가 조금씩 늘고 분양시장도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하자 주택시장 일각에선 주택시장의 회복이 가시화될 때까지 정부가 3월 말로 예정된 DTI 규제 부활조치를 연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3·22 대책을 통해 DTI규제의 부활이 분명해지자 수요심리가 식어버리면서 거래건수는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억제하되 주택시장의 활기는 되찾겠다는 정부대책 발표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분위기는 냉랭함 그 자체다. 정부가 3·22 대책을 발표하면서 거래 침체라는 역풍이 불어올 것을 예상하고 DTI 규제 부활에 덧붙여 취득세 인하와 분양가상한제 폐지를 보완책으로 내놓았지만 주택시장은 차갑게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의 자료에 따르면 3월 서울시내 주택 거래건수는 2236건으로 2월의 5212건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급격한 거래 감소는 세간의 가장 큰 주목을 받아온 DTI 규제 부활이라는 단일 재료에만 기인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보완책으로 포함된 취득세 인하와 분양가 상한제 폐지 추진 등이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책을 발표한 지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됐지만 주택시장에서는 거래를 위한 매도인과 매수인의 발걸음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마치 고장난 시계마냥 개점휴업의 분위기가 확연한 편이다.
단순히 주택거래만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택거래의 침체는 정비사업 현장에도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조합원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면 분양가를 올릴 수 있어 경제적 부담을 낮출 수 있으므로 분양 시기를 분양가 상한제 폐지 이후로 미루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주택건설 업체로서는 정책의 변화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마냥 손 놓고 기다린다는 것은 자칫 분양 시기를 놓쳐 사업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때문에 조합원들에게 조기분양을 권하고 있어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발표를 믿고 있는 조합원과 주택건설업체의 간극을 메운다는 것도 현재로선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그러다보니 조기에 관련 후속조치들이 매듭지어지지 않을 경우 그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부동산시장의 풍향계라고 할 수 있는 경매시장에서도 3·22 대책 발표의 여파가 적지 않다. 부동산경매정보 업체에 따르면 지난 3월 마지막 주 서울의 아파트 낙찰률은 36%로 그 전주 44.4%에 비해 8.4%포인트나 하락했다. 경매를 통해 낙찰받는 경우가 그만큼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매 건당 평균 응찰자 수도 같은 기간 서울은 6.4명에서 5.5명으로, 그밖에 경기도나 인천 등 수도권 모두 같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의 관심이 경매시장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의 대책이 규제 부활로 인식돼 향후 주택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출 문턱이 높아진 상태에서 수요자의 참여가 없는 주택시장은 더 이상 존재감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어설픈 정책 준비와 시장의 혼란
올 초 구반포 일대 부동산업소들의 썰렁한 모습. DTI 규제 부활로 더 위축될 듯하다.
이번 대책 발표에 대해 정부의 준비 소홀과 사후 대처 방법의 미흡함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주택시장이 필요 이상으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한 양상을 보이는 것도 정부의 졸속 발표 및 그 이후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등 책임 있는 정책 당국으로서의 모습을 보기 힘든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정부 나름대로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가계부채의 규모를 감안할 때 부실화 우려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주택시장의 활성화와 가계부채 증가 억제를 동시에 추구하는, 마치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것과 다름이 없게 돼버렸다.
정부도 나름대로 보완책이라고 들고 나오기는 했다. DTI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일부 대출비율을 높일 수 있는 항목(고정금리, 비거치식, 분할상환을 채택할 경우 각 5%씩 대출비율 상향)을 추가하고 취득세 인하를 통해 거래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하며 분양가 상한제 폐지 추진 등이 그것이다. 다만 이러한 보완책은 부처 간,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국회의 여당과 야당 간 협의와 공감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은 정부의 미완성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마치 당장이라도 시행 가능한 것처럼 주택시장에 비춰진 것은 가장 큰 실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취득세 감면조치의 채택은 지자체의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의 추경 여부에 대한 이견 노출을 비롯해 지자체의 반발까지 불러오고 있다. 지자체 세수 부족에 대해서는 전액 국고 보조까지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주택거래의 당사자도 아닌 일반 국민의 세금이 취득세 감소분의 보전에 쓰인다는 것은 또 다른 비판의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언제 확정될지 모르는 취득세 감면 기준을 3월22일자로 소급하겠다고 단정적으로 발표한 것도 입법 주체인 국회 입장 또는 야당의 의사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민간택지의 분양가 상한제 폐지 추진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09년 초 이미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야당의 반대로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사전 조율도 없이 이번 대책에 떡하니 포함시켜 놓은 것이다. 정치권의 불협화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야당에서는 공식적으로 분양가상한제 폐지 반대를 선언하고 있다. 이렇듯 거래 회복을 통한 주택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정부가 무엇을 고심한 것인지, 그 흔적들을 3·22 대책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툭툭 던지듯 내놓은 정책… 혼란과 혼선 가중
이촌동 렉스아파트
향후 주택시장에 대한 전망을 한다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주택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정확한 관점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더 이상의 주택정책은 없다고 공언까지 한 터에 전세시장의 고공행진 등을 비롯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툭툭 던지듯이 내놓는 정책이 오히려 주택시장에 혼란과 혼선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빚고 있다.
사실 DTI 규제가 대출 억제의 강한 효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적 시각도 적지 않다. DTI 규제가 완화된 경우에도 금융기관이 대출신청자별 개인신용평가 등을 통해 대출에 따른 위험요소를 골라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DTI의 최고한도를 적용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오히려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 우려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통해 보완되고 있기 때문에 대출부실화의 위험성을 너무 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울 정도다.
결국 DTI 규제의 환원이나 규제완화 등의 선택은 금융시장에서나 주택시장에서 본래적 의미의 기능을 떠나 수요층의 거래심리를 좌우하는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정부의 정책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3·22 대책은 주택시장의 회복이 아니라 가계대출 억제라는 주택시장 외적인 요인에 지나친 방점을 두었다는 질책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주택매매에 필요한 대출 등을 지나치게 규제하면 수요층이 외면한다. 그리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전·월세시장으로 옮아가 서민생활을 더욱 팍팍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하기 쉽다. 장차 인구 감소가 예상되고 있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 감소가 수년간 계속되고 있는 점도 또 다시 수급불균형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다.
주택정책은 경제논리로 풀어나가야 한다. DTI 규제의 필요성 여부도 시장경제의 원리라는 바탕 위에서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권마다 각종 부동산정책을 내놓고 국민들에게 호소한 바 있다. 하지만 매번 결과는 국민들에게 비싼 수업료를 부담시키고 있다. 이번 3·22 대책은 주택시장의 거래를 심각한 수준까지 위축시키고 DTI 규제 환원으로 인한 주택 거래의 기피 현상은 최근 조금 잠잠해지고 있는 전세시장을 다시 들끓게 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전·월세상한제’라는 가격통제수단을 가지고 주택시장을 재단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전세시장의 불안을 공권력과 제도로 억누르는 것은 치료를 외면하고 진통제만 계속 처방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주택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회복시키고 원활한 주택거래를 통해 시장 안정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본질적인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 미봉책만으로는 우리 주택시장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