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는 한국경제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와 같다. 일단 오일쇼크에 걸려들면,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효율이 낮은 한국으로서는 배겨낼 방도가 없다. 충격을 온몸에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1970~80년대 1·2차 오일쇼크는 세계 및 한국경제를 강타하는 ‘초대형 악재’였다.
1차 오일쇼크는 1973년 10월6일 발발한 4차 중동전이 발단이 됐다. 이스라엘이 이집트, 시리아와 맞붙자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중단을 요구하면서 25% 감산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 1973년 배럴당 3.1달러였던 국제유가는 1974~75년 배럴당 10.7달러까지 3배 이상 급등했다. 한국경제에는 치명타였다. 1973년 12.0%였던 경제성장률이 1974~75년에는 6.6%로 반토막이 났다. 같은 기간 동안 물가상승률은 3.2%에서 24.8%로 뛰었다.
2차 오일쇼크도 정치적 불안이 도화선 역할을 했다. 1978년 OPEC가 자원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14.5%의 원유가격 인상을 결정한 가운데 이란혁명의 영향으로 이란이 석유 수출을 전면 중단하면서 2차 오일쇼크가 촉발됐다. 1979년 배럴당 평균 17.3달러였던 국제원유가격이 1980년에는 28.6달러로 급등했다. 당시 한국은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바꿔놓은 상태였다. 1차 오일쇼크 때보다 훨씬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서울의 봄’과 ‘12·12사태’ 등 정치 불안까지 겹치면서 경제가 고꾸라졌다. 경제성장률은 1979년 6.8%에서 1980년 마이너스 1.5%로 가라앉았다. 물가상승률도 18.3%에서 28.7%로 수직상승했다.
비슷한 초기 상황… 아직까지 공급량엔 문제없어
전문가들은 최근 중동 상황도 1·2차 오일쇼크 못지않은 정치적 심각성을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최근 중동 상황은 ‘정치적 불안→원유 생산·수출 차질→국제유가 상승→세계적인 물가 상승 및 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과거 오일쇼크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시위열풍은 리비아뿐 아니라 예멘, 수단, 알제리, 이란, 바레인으로 확산된 상태다. 이란, 리비아, 알제리에서 원유 수출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국제 원유시장에 상당한 충격으로 작용할 것이란 설명이다.
국제유가는 지난 3월2일(현지시간)을 기해 미국 서부텍사스유(WTI)를 포함해 북해산 브렌트유, 두바이유 등 3대 유종이 모두 100달러대에 진입했다. 명실공히 ‘유가 100달러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102.2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은 것은 지난 2008년 9월30일 이후 2년5개월 만이다. 참고로 우리 정부가 지난해 12월 전망한 유가 수준은 배럴당 85달러(두바이유 기준)였다. 전망과 현실이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셈이다.
더 큰 걱정거리는 시민혁명의 불꽃이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원유 생산 비중이 높은 국가들로 번져가는 경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의 원유 생산 비중은 각각 9.53%와 2.93%에 달한다. 이들 국가의 원유 공급이 막히면 세계경제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만약 사우디아라비아로 민주화 시위가 번져나간다면 독재국가가 아닌 왕정국가로의 확산이라는 의미까지 지닌다.
미국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 3월8일 두바이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유가가 지난 2008년 여름처럼 (또다시) 140달러대로 치솟으면 일부 선진국에 더블딥(이중 경기 침체)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루비니 교수는 유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을 나라로 유로존 국가(유로화 사용 17개국)와 유럽 주변국, 일본, 미국 등을 꼽았다. 국제유가가 15~20% 오르면 유로존, 일본, 미국의 성장이 멈출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온갖 비관론에도 1·2차 오일쇼크와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에 주목하고 있다.
공통점보다 차이점에 주목
프랑스 거주 튀니지인들이 마르세유광장에 모여 ‘재스민혁명’을 지지하고 있다. / 리비아 한 시민이 페르시아어로 ‘취소’라고 쓰인 카다피 국가원수의 사진을 들고 있다.
우선 국제유가. 경제적인 관점에서 단기간에 급등한 국제유가는 발등의 불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로선 ‘아직 오일쇼크를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현재 원유 공급 차질을 걱정할 만큼 시위가 격화된 나라들은 대부분 원유 생산 비중이 낮은 국가들이다.
전 세계 원유 공급량에서 리비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에 불과하다. 이미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겪은 이집트와 튀니지의 원유 생산 비중은 각각 0.7%와 0.1% 수준이며 예멘(0.4%), 수단(0.6%), 바레인(0.1%)의 비중은 1% 미만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OPEC의 움직임이다. 현재 OPEC의 여유 생산 능력은 1일당 565만 배럴로 리비아(163만 배럴)의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OPEC를 중심으로 가격 안정을 위한 원유 증산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분위기도 있다. 사우디는 하루 400만 배럴까지 더 생산할 수 있는 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단순계산으로 사우디 단독으로도 리비아 사태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 셈이다. 1·2차 오일쇼크 때 OPEC 석유의 무기화에 앞장섰던 것과는 딴판인 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분석을 통해 비록 국제유가가 중동 사태로 많이 올랐지만 장기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KDI가 내놓은 핵심적인 근거도 주요 산유국의 공급 여력이다. 지난해 전 세계 원유생산 규모는 일평균 8732만 배럴로 OPEC 국가들의 잉여 생산능력이 일평균 500만 배럴을 상회한다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자료를 인용했다. KDI는 또 “유가가 높은 상승세를 유지하면서 원유 수요 증가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기름값이 올라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생산량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며 “세계 원유 생산 비중이 높은 사우디, 이라크, 이란, 알제리의 움직임이 핵심 관건”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동사태가 과거 1·2차 오일쇼크와 차별화되는 또 다른 점은 정치적인 파급 효과다. 중동지역의 대규모 시위 및 민주화 열풍은 한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미묘한 상황이다. 한국으로서는 북한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난해 12월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의 불꽃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이집트 독재정권의 몰락을 예상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튀니지 시민혁명 때 수많은 시민들이 재스민 꽃을 들고 나와 민주화를 외친 데서 유래된 ‘재스민 혁명’은 이집트로 전이돼 정권을 바꿨다.
리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집트 반체제 시위가 무바라크 대통령을 권좌에서 축출하는 순간까지도 상당수 전문가는 ‘리비아는 사정이 다르다’며 카다피 정권의 건재를 장담했다. 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리비아를 피해가지 않았다. 20여 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
OPEC 움직임, 북한 영향, 달러 움직임도 주목
중동의 ‘재스민 혁명’이 북한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일부 전문가는 북한도 글로벌 민주화 열풍의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재스민 혁명이 발생한 국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 폐쇄성, 젊은이가 많은 인구구조 및 경제적 어려움, 정보기술의 확산이라는 세 박자가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 국가는 한결 같이 정치적으로 폐쇄된 공간을 가졌다. 또 15~29세 사이의 젊은 층 인구 비중이 전체의 30% 이상으로 높고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를 중심으로 실업률도 높다. 다시 말해 먹고 사는 것이 충족되지 않고 위정자가 폐쇄적으로 국가를 운영해 불만이 차츰 누적되자 행동성 강한 젊은 층과 식자층을 중심으로 개혁 요구가 빗발치게 됐다는 얘기다. 여기에 정보기술(IT)은 독재정권의 실상을 널리 알리고 시민들 간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혁명의 강력한 불씨가 됐다. 이 세 가지 공통점 중에서 북한은 두 가지를 충족하고 있다. 독재정치가 오랫동안 지속됐고 경제가 젊은 층을 지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북한의 인구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북한 군인의 75% 이상이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인 배급제도 혜택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24세 미만의 젊은층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식량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부대를 벗어나 식량조달에 나서는 마인드를 가졌다. 국가가 식량을 책임져줄 것이라는 환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시민혁명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IT 분야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다. 휴대전화 보급은 33만 대 정도로 북한 전체 인구(2400만명 추정)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고 인터넷 보급률도 극히 낮다.
이석 KDI 박사는 “IT만 놓고 보면 휴대전화 등 보급이 미미해 아직까지 북한 주민들을 한꺼번에 묶을 수 있는 수준은 못 된다”며 “반면 북한 정권은 가장 강력한 통제력을 가졌기 때문에 가시적인 변화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언젠가 벌어질 수도 있는 변화의 씨앗이 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베른하르트 젤리거(Bernhard Seliger) 한스 자이델 재단(Hanns Seidel Stiftung) 박사는 “당장 급변 사태가 이뤄지긴 힘들 것”이라면서도 “평양의 경우 휴대전화를 통해 많은 정보가 오가고 있어(시간이 흐르면) 상당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1·2차 오일쇼크 때와 차별화되는 또 다른 점은 미국 달러화의 움직임이다. 올 들어 달러화는 대부분의 통화와 비교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의 무지막지한 양적 완화정책과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안하면 전 세계적인 달러 약세 현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최근 유가 급등과 리비아를 비롯해 중동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시민봉기를 고려 대상에 포함시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음에도 달러화가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이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값을 비교해보면 달러 값의 추락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지난 3월2일(현지시간)에는 온스당 1437.7달러에 거래를 마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종전 최고치는 지난해 12월7일 온스당 1432.5달러였는데 이날 금값은 장중 한때 온스당 1440.1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달러화의 움직임은 유가와 금값과는 정반대다. 달러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이른바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강세를 보여왔다. 일부 예외적인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유가와 금값 움직임과 비슷했다. 지난 1·2차 오일쇼크 때도 마찬가지였다. 글로벌 기축통화로서 위기에 강한 화폐가 달러화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류 다소비 국가인 미국경제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연 75억 배럴을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단순계산으로 배럴당 1달러만 가격이 올라도 75억 달러의 추가부담을 져야 하는 것이 미국경제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어떤 통화가 안전자산이냐가 혼란스러운 국면”이라며 “중동·오일리스크에 유럽보다는 미국이 더 취약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환율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