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해 가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진출을 확대해 가고 있으며,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이후부터는 아예 대북 정책의 목표를북한 김정일 정권의 생존에 집중시키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북•중간의 밀착관계는 특히 경제 분야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9년 북한의 대외무역을 검토해 보면 중국과의 무역이 전체의 절반을 넘고 있으며(52.6%), 북한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소비재, 식량, 원자재, 설비 등은 모두 중국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한 중국은 김일성에서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에 이르는 북한의 3대 세습 후계구축을 묵인하면서 이 기회를 이용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도 확대해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관계 유지에 위협적이었던 두 가지 요소
사실 그 동안의 북•중관계를 보면 양국관계는 혈맹이라는 수식어가 걸맞지 않을 정도로 소원한 상태가 유지돼 왔다. 한국전쟁 당시 긴밀한 군사적 동맹을 과시했던 중국과 북한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추진 이후 큰 틀에서 서로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서로 소원한 관계를 보이다가 1992년 한•중 수교를 기점으로 양국 간의 신뢰관계에 직접적인 손상을 입게 됐다. 더욱이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이 핵 개발과 외교적 고립화를 시도하면서 중국과 북한은 상호간의 반목과 불신을 좀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그 이후부터 최근까지 북•중 양국은 과거와같이 밀착된 상호관계를 복원하지 못한 채 애매모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그렇다고 해서 양국관계가 경색국면에 빠지거나 서로 대립하는 수준으로 후퇴한 것은 아니다. 양국관계가 불편한 상황에 놓여있어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기본적 경제지원이나 외교적 보호막은 지속적으로 수행돼 왔으며,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북•중 양국관계는 상당히 견고한 상태로 유지돼 왔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과의 관계 유지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했던 사건은 북한 핵 개발과 그 연장선상에서 시도된 두 차례의 핵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대북정책의 중심 기조로 삼고 있는 중국은 북한의 핵 실험을 자국의 대외 정책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반대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에 동의하고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을 적극적으로주최했으며, 또한 북한의 행동에 대한 자국의 불만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국제사회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행동을 부상하는 중국이 책임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한 것으로 인식하고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특히 북한이 어떤 안보 위협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북한의입장을 바탕으로 북한을 두둔하던 중국이 보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북한의 행동에 대한 제재 결의에 동의한 점은 상당히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사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중국에서는 북한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이 나오고 있으며, 그 논의는 전통주의적 시각에서 북한을 파악하는 완충지대론자와 북한을 새로운 수정주의적 시각에서 파악하는 부담론자로 구분할 수 있다. 완충지대론자들은 중국의 안보에대한 북한의 중요성이란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한국군으로부터 중국을 보호하는 것이며, 북한이 망할 경우 압록강,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군과 미군 및 한국군이 대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중국은 북한 정권의 생존을 위해 모든 지원을 제공해야 하며, 이는 중국의 안보상 변할 수 없는 요건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반면 부담론자들은 중국과 북한의 격차가 커짐에 따라 이제 북한은 중국의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부담이 되는 존재라는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보다는 대만수복에 군사력을 썼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간섭은 중국의 국익에 손해가돼왔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이들은 중국의 지속적인 원조에도 북한이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중국의 국익에 위해가 되는 행동을 일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중국의 대북한 정책을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붕괴 방지와 정치력 영향력 강화
중국은 북한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과 상반된 태도 및 입장을 드러내면서 국제사회에 상당히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6자 회담이 시작됐던 2003년부터 중국은 북한 핵 실험과 같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위해가 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6자 회담의 틀에서 북한 핵 폐기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는 데에는 그다지 과감한 대응을 시도하지 못했다. 또한 UN 안보리 결의안에 의한 대북 제재에 대해서도 중국은 한편으로는 대북 제재에 동의해 이를 가동시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원조와 지원을 지속함으로써 대북 제재의 실질적인 효과를 차단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한편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태도들이 과거에 비해서는 현격하게 진보한 모습이라고 평가하면서 중국의 대북 태도 변화를 너무 긍정적으로 평가한 나머지 향후 대북 정책 형성과정에서 중국이 책임 대국적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중국의 태도는 2009년 여름 이후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후진타오를 포함한 중국의 수뇌부는 2009년 여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책을 재검토하는 회의를 가졌으며 그 회의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즉 중국은 북한 정권에 대한 물질적·외교적 지원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지원하고 장기적으로는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결정은 자국의 발전단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즉 중국은 향후 발전단계를 지역 강대국에서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 지역을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시키기 위한 전략적 지역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또한 주변국들과 경제적 이익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이들 국가들과의 동반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대북 정책도 이러한 전략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정책의 효율성을 위해 중국은 우선 북한 핵 문제와 북한 문제를 분리하고 설사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외교적 타협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북한과의 경제 교류 및 공동 개발은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지금 북한과의 관계 강화를 시도하는가? 첫째는 북한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지난 20년 동안 경제 관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저하돼 왔으며, 핵 실험 이후부터 적용되는 UN의 경제 제재로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추세에 있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증대시키고 경제 지원을 지속함으로써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를 방지하고자 한다. 특히 최근 중국의 대북 경제 교류의 특징을 보면 북·중 무역의 급신장과 대중 의존도의 심화라는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일본과의 무역량이 현격하게 줄어듦에 따라 북·중 무역 및 남·북 무역의 비중을 높여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남·북 무역마저도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으로 현격하게 줄어들자 북한의 대중 경제 의존도는 급격하게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창지투(長吉圖) 프로젝트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 연장선상에서 개발되고 있는 북한의 나진·선봉의 경우라든지, 압록강 대교의 건설 등은 북한의 대중 경제 의존도를 높이는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의 경제 교류 강화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중국이 추구하는 또 하나의 목표는 북한의 개혁·개방이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시도해 보기를 바랐지만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북한에 이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경제가 점차 그 원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파탄에 의한 정치적 붕괴를 피하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이후 중국은 북한에게 노골적으로 중국의 정책을 따를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인위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중국 동북지방의 경제 발전 계획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경제 발전을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기대만큼 북한 반응은 미지수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 강화를 시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정일의 건강 악화가 공공연한 비밀이 돼버린 상황에서 북한은 김정일의 3남 김정은으로의 후계 구축이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나 외교적 의존도를 고려해 보았을 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은 중국의 동의나 적어도 묵인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2010년 10월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 이전에 김정일이 이례적으로 중국을 두 번이나 방문했다는 점과 그 방문이 북한의 후계를 위한 중국의 묵인 또는 동의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을 때 중국은 북한의 권력 이양기 동안에 자국의 북한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충분히 확대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의 동의 없이 북한이 제멋대로 실행하는 천안함 사건과 같은 모험적 군사 도발이 중국의 외교적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중국은 북한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시켜 좀 더 안정적인 한반도 상황을 구축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국력 신장을 들 수 있다.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의 개혁·개방 정책의 성공으로 국력이 상당히 신장됐으며,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 대한 자국의 경쟁력을 확인했다. 이러한 중국의 국력 신장은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상당한 자신감을 부여했으며, 중국은 북한의 상황 변화에 상관없이 북한을 이끌고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듯하다. 즉 중국은 자국의 국력 신장으로 적어도 북한의 급격한 붕괴는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북한에 대한 배타적인 영향력을 구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책임대국으로서의 역할이나 이미지 제고와 같은 순기능적인 측면보다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 강화와 같은 국제사회의 기대와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세계 최강 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이 세계의 최빈국이면서 동북아 지역안보에 위협요인으로 존재하는 북한을 지지하고 경제적·외교적 보호까지 제공한다는 점은 중국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최근 중국의 북한에 대한 관계 강화는 북한의 정권 붕괴를 미연에 방지하고,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며,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시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시도가 북한으로부터 기대했던 반응을 유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에 중국의 계산대로 북한이 움직여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자립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이용하든 한국의 영향력을 이용하든 간에 북한이 경제적으로 신장한다면 이는 곧 북한의 정치적 독립성을 구축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