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영 前 수아랩 대표| 나스닥 상장사 코그넥스에 2300억원에 인수된 국내 AI 스타트업 수아랩 “AI는 이제 막 걸음 뗀 산업, 첫째도 둘째도 훌륭한 인재가 중요해”
안재형 기자
입력 : 2019.11.28 15:29:51
수정 : 2019.11.28 15:30:07
송기영 전 수아랩 대표
2000년 대일외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인문계열에 진학했다. 이후 다시 수능을 보고 2004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에 입학, 2학년을 마치고 병역특례로 서울대 벤처기업 에스엔유프리시젼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머신비전을 접한 송 전 대표는 소집해제 이후에도 근무하며 머신비전에 AI를 접목하자는 생각을 굳혔다. 2012년 대학을 졸업하고 인텔에 입사했다. 1년 후 뜻이 맞는 5명이 모여 수아랩을 설립했다. 이번 코그넥스와의 인수 계약으로 송기영 전 대표는 창업 6년 만에 약 500억원(수아랩 지분 25.54% 보유)을 손에 쥐게 됐다.
지난 10월 17일 새벽 미국발 낭보에 국내 스타트업 시장이 들썩였다. 전 세계 머신비전 분야의 선두주자인 미국 나스닥 상장사 ‘코그넥스(Cognex)’가 한국의 AI(인공지능) 벤처기업 ‘수아랩(SUALAB)’을 인수한다는 소식이었다. 인수가는 1억9500만달러, 우리 돈으로 2300억원에 달했다. 코그넥스의 수아랩 인수는 국내 기술 분야 스타트업의 해외 M&A(인수·합병)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코그넥스 내부적으로도 이번 수아랩(지분 100%) 인수가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다.
수아랩은 인공지능·머신비전(Machine Vision, 기계가 사람 눈처럼 사물을 인식)·슈퍼 컴퓨팅 등 3가지 기술을 바탕으로 제조업 분야에 무인 검사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다. 쉽게 말해 제조 공장 현장 라인의 불량품을 자동으로 걸러내는 기술을 개발한다. 정상 제품과 불량품의 사진을 기계에 학습시키면 알아서 불량품을 골라내는 이미지 인식 소프트웨어 ‘수아킷(SuaKIT)’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사실 수아랩은 설립 초기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아 스톤브릿지벤처스, 소프트뱅크벤처스, 인터베스트 등 주요 벤처캐피털의 투자(누적 투자금 314억원)를 유치하며 인수 제안도 적지 않게 받았다. 현재 삼성전자, LG, 한화, SK 등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이 수아랩의 고객사다.
서울 서초동에 자리한 수아랩 사무실에서 만난 송기영 대표는 “이번 매각으로 전(前) 대표가 됐다”며 자신의 전 명함을 내밀었다. 앞으로 코그넥스에서 딥러닝 연구개발(R&D) 아시아 총괄담당을 맡게 될 송 전 대표는 “이제 막 첫걸음을 뗐을 뿐”이라며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스타트업의 성공비결을 소개했다.
외동딸 이름이 수아, AI기술과 인력풀 인정받아
▶우선 축하드립니다. 매각이 결정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라면.
▷계약을 맺을 땐 실감이 안 났어요.(웃음) 그 다음날엔가 신문에 기사가 나고 주변에서 축하 전화가 오면서 일이 진행됐구나 했습니다. 저 혼자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 구성원들 모두가 노력해서 온 거잖아요. 축하인사를 제가 독차지하는 것 같아서 좀… 또 구성원들 모두가 이번 계약에 찬성한 건 아니라서 미안함도 있고 고마움도 있고 앞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있습니다.
▶집에선 뭐라고 하던가요.
▷솔직히 많이 좋아하죠. 창업하고 6년 동안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구성원들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딸 이름이 ‘수아’라고 들었습니다.
▷딸 아이 이름을 땄어요. 올해 7살 됐습니다.
▶처음 창업할 땐 몇 분이 의기투합한 겁니까. 서울대 동문이 주축이 됐다고 하던데, 지금은 꽤 많은 인원이 연구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서울사무소 인원은 약 80명입니다. 처음 창업할 땐 2명이서 시작했고, 이후 초기 멤버들이 빠르게 채워졌는데, 그때 서울대 동문들이 많았습니다.
▶코그넥스의 수아랩 인수는 국내 기술 분야 스타트업의 해외 기업 M&A 중 최대 규모인데, 언제부터 이 일이 진행된 겁니까.
▷처음 M&A를 논할 땐 길면 1년, 짧아도 6개월은 걸린다고 들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보단 빨랐네요. 수아랩만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는 게 향후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연 코그넥스의 문화와 합을 이룰 수 있을지, 코그넥스가 진정성 있게 협업을 고려하는지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딜 규모와 상관없이 각자 사업을 바라보는 비전과 시너지를 확인한 이후에는 비교적 빠르게 진척됐어요. 3~4개월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제조업이 발전할수록 수아랩의 성장도 무궁무진
▶수아랩은 그동안 투자 경쟁이 치열할 만큼 투자사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스타트업이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수아랩의 강점을 꼽는다면.
▷AI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겠지요. 대부분 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예상하고 있고, 그래서 훌륭한 구성원이 모인 기업에 많은 투자를 합니다. 저희는 가장 빠르게 AI를 상용화할 수 있는 분야로 제조업을 선택했어요. 여기에 실제 매출도 내다보니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실제 딥러닝 분야에서 저희의 연구는 아시아 최대 규모예요. 알파고가 유행하기 전부터 AI에 매진하다보니 좋은 인력들이 모이게 됐습니다. 현재 80명의 구성원 중 2/3가 R&D인력입니다.
▶실제 투자사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여러 번 축하인사를 받고 있습니다.(웃음)
▶사실 머신비전 기술은 인간의 노동력과 비교해 비판의 시각도 있는데요.
▷가죽 산업을 예로 들면 실제로 가죽원장에서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비율이 60~65%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가죽은 버려지는 것이죠. 제대로 된 육안검사를 못하고 있어요. 자동화기기에도 이미 기존 검사방식이 적용돼 있는데, 이게 한계가 있거든요. 그걸 딥러닝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직접 작업을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조업이 발전하면 할수록 수아랩이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인데요.
▷4차 산업혁명이 뜨고 있는데, 아직은 걸음마 단계예요. 이 4차 산업혁명과 맞닿아 있는 게 인공지능이고 딥러닝이지요. 인공지능이 제조업에 들어가는 단계도 역시 걸음마 단계입니다. 앞으로 열릴 수 있는 시장이 무궁무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투자한 AI 기업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손 회장에게는 어느 정도 투자를 받은 겁니까.
▷구체적인 액수나 지분율을 공개하긴 어려운데요. 올 4월에 완료된 시리즈C 투자라운드에서 손정의 회장이 운영하는 소프트뱅크 벤처스아시아로부터 투자를 받았습니다.
▶기존 수아랩의 국내 대기업 고객사 외에 코그넥스가 해외 고객 확보도 보장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인수를 통해 수아랩은 코그넥스의 일원이 됐습니다. 각자가 보유한 역량을 보완해 더 좋은 퀄리티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아랩은 이미 해외시장에서의 성과가 높았습니다.
▷2017년에 중국 쑤저우에 현지법인을 세웠고, 올 3월에는 선전에 사무소를 세웠습니다. 중국도 제조업의 큰 시장이잖아요. 성과가 많았어요. 지난해 매출 중 약 30%가 중국의 매출이었습니다. 현재 중국 외에도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북미와 유럽에서 매출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과 중국을 제외하고 24개국에 진출해 있습니다.
AI 분야 국내 인재 영입도 기대
▶코그넥스가 100% 지분 인수를 하면서 창업주의 경영권을 보장했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대표님 활동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겁니까.
▷알려진 것과는 좀 다른데요. 코그넥스의 일원, 쉽게 말해 자회사가 된 상황에서 경영권 보장은 잘못 전달된 사안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이제 수아랩의 대표이사가 아니라 전 대표이사가 됐어요. 공식직함은 아직 결정되진 않았는데, 아시아 지역의 딥러닝 연구를 총괄할 예정입니다.
▶수아랩 내부에서의 인재 영입도 늘어날 것 같은데요.
▷아직 확정은 안됐지만 기대감은 높아졌습니다. 이번 인수요인엔 기술도 있지만 기술은 결국 사람이잖아요. 저희가 그동안 국내에서 좋은 인력을 충원했고, 앞으로 저희 기술을 확장시키려면 더 좋은 인력이 필요하겠죠. 저도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내 AI 인재들에겐 세계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생긴 격입니다.
▷최근에 이런 얘길 들었어요. 미국 실리콘밸리의 미국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분이 저희 소식을 국내 뉴스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소식통을 통해 듣게 됐고, 그곳에 있는 스타트업들도 저희의 사례에 고무돼 있다고. 이미 해외에선 우리의 AI 산업과 인력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국내 AI 수준을 평가하신다면.
▷언론을 통해 접하는 것과 주변 동료를 통해 체감할 수 있는 소식이 있는데, 언론에 나오는 수치는 굉장히 낮더군요.(웃음) 하지만 이 분야의 스타트업을 이끄는 동료들을 보면 대부분 성과를 잘 내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뷰노’ 같은 스타트업은 이미 전 세계 경쟁에서 상위권이고, 실제 제가 만나본 AI 스타트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기는 어떠했습니까.
▷전 오히려 우리나라여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저희 경쟁사 중에는 실리콘밸리의 기업도 있거든요. 솔직히 제조업의 본 시장은 아시아잖아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지가 메인이다 보니 오히려 실리콘밸리는 지리적으로 멀고 인프라가 덜 갖춰져 있어요. 저희가 하는 머신비전의 가장 큰 시장은 아시아거든요. 국내 대기업과 함께 일해서 경력을 쌓으면 얼마든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다른 분야의 스타트업은 정부의 규제를 지적하곤 하는데, 제조업은 그런 규제가 없어요. 완전히 자유롭게 기업들과 긴밀히 협업하며 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지요. 정부 지원이나 투자자들의 투자 측면에서도 어느 것 하나 아쉬울 게 없는, 저희가 이 사업을 하기엔 가장 좋은 시장이었습니다.
▶수아랩을 설립하면서 그런 점을 모두 고려했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처음에는 투자가 있는 것도 몰랐고 정부 지원이 있는지도 몰랐어요.(웃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했고 매진하다보니 길이 보이더군요.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은 겁니까.
▷창업 초기부터 팁스(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TIPS), 호스트팁스, 소프트웨어 고성장클럽 같은 정부 프로그램 지원을 많이 받았어요. 덕분에 초반부터 다른 분야에 눈 돌리지 않고 집중해 기술개발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장 힘이 됐던 건 이 프로그램들의 금전적인 지원이었습니다.
▶흔히 국내에서 스타트업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고들 합니다. 스타트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
▷저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정말 저희 구성원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이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에요. 성공비결을 말할 때 3가지를 내세우는데 첫째가 한 우물만 판 것, 둘째는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일관되게 밀고 왔던 것. 마지막은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자율적으로 스스로 몰입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 이 3가지 원칙을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