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호 삼표산업 대표는 매경럭스멘과의 인터뷰에서 “아파트 건축 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업계와 현장도 이 같은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이에 획일적 규격의 콘크리트 사용 일변도에서 벗어나 선진국처럼 성능 중심으로 제품 공급이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삼표산업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잘 와 닿지 않는 기업이다. 소비재를 파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일상의 쉼터이자 재테크 수단이기도 한 주택의 품질을 책임지는 기초 자재를 공급한다는 점에서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삼표는 이 분야에서 1위인 기업이다. 국내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각종 건축물을 지을 때 삼표의 레미콘·시멘트·골재 등을 사용한다. 최근 주택 건축 분야에서 마케팅의 주요 포인트 중 하나가 ‘명품 주거’인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이 말잔치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삼표 등 건설 자재 업체들이 만들어내는 기초 자재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콘크리트는 건물의 하중을 버티는 구조재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핵심 자재다.
하지만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이 같은 기류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진단. 이 대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콘크리트 제조 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걸림돌이 많다”면서 “우리 업계도 각종 규제가 기술 선진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대표가 예로 든 것이 콘크리트를 만들 때 사용하는 골재 규격. 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20㎜ 골재를 사용해 콘크리트를 만드는 산업 표준이 정착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우리는 지난 40~50년 동안 25㎜ 골재 사용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골재 규격은 건축물의 내구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선진국은 20㎜ 골재를 사용해 30메가파스칼(㎫) 강도를 구현해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25㎜ 골재를 사용해도 24㎫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작은 골재로 높은 내구성을 구현해내는 것이 기술력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이어 “작은 골재를 사용하면 타설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콘크리트의 유동성이 좋아져 철근 구조물 사이를 콘크리트가 빈틈없이 메워줄 수 있다”면서 “내구성이 높아진 건물의 수명은 70~80년 이상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일반 제품보다 표면이 고르게 굳어 건축물 표면 또한 유려하게 만들어낼 수 있어 특색 있는 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토대를 더 넓힐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 콘크리트 사용이 여전히 대세인 것은 시멘트 업계의 갑인 건설사들과 관련 부처 등이 변화에 대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콘크리트를 만들 때 들어가는 시멘트, 자갈, 혼화제 등의 배분 비율이 정해져 있는데 이를 벗어나 적정 강도를 구현해내면 불법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이런 가운데서도 어렵게 신기술을 개발해내면 건설사들은 원가 부담을 이유로 사용에 난색을 보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삼표는 업계에서는 드물게 최근 2년간 4종의 특수 콘크리트를 만들어 선보였다. 혼자서도 타설 가능한 자기충전 방식의 ‘블루콘 셀프(BLUECON SELF)’, 초기 압축 강도를 높여 타설 후 18시간 만에 거푸집 탈형이 가능한 ‘블루콘 스피드(BLUECON SPEED)’, 영하 5℃에서도 사용 가능한 ‘블루콘 윈터(BLUECON WINTER)’, 앞서 언급한 ‘블루콘 소프트(BLUECON SOFT)’ 등이다. 이 대표는 “블루콘 윈터의 경우도 현장의 문제점 개선을 위해서 만들어낸 제품”이라면서 “겨울철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가장 큰 문제가 굳기도 전에 얼어버리는 것인데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사실 이 대목에는 현장의 숨겨진 아픔이 들어 있다. 겨울철 콘크리트 타설 시 굳기 전 얼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갈탄을 피워 현장 온도를 높이는 관행이 있어 왔는데, 이와 관련된 사고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3~2017년) 겨울철(12∼2월) 발생한 질식 사고는 총 30건으로 이 중 9건(30%)이 갈탄난로를 사용하다가 일어났다. 그는 “우리 건설현장도 선진국형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성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삼표가 다양한 특수 콘크리트 개발에 사활을 거는 것은 이 같은 이유 외에도 그동안의 운영 방식, 즉 획일적 규격의 콘크리트를 대량으로 공급해 수익을 창출해내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기업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업종 특성상 회사 실적은 부동산 경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내년 건설 경기 전망은 극히 어렵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맞물려 건설 불황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까지 힘을 얻고 있다. 삼표로서는 마냥 전방산업인 건설 경기가 살아나기만을 기다리기엔 감내해야 할 위험 요소가 너무 크다. 그래서 대안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이 주택 품질에 대한 높아진 눈높이를 겨냥한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이 대표는 “이미 선진국들은 양보다는 질(성능)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돼 있다”면서 “기존 문법을 답습하기보다는 차별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경기 불황을 타개할 해법”이라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는 건축물을 지을 때 기둥, 바닥 등 각 부분의 특성에 맞는 콘크리트를 쓰고 있고, 이에 맞는 맞춤형 제품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이는 콘크리트 업계도 삼성의 반도체처럼 1년 단위로 기술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곧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했다.
▶콘크리트를 반도체와 비교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희 회장님의 지론입니다. 과거 산업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 업계도 빠르게 변하지 않으면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외관만 번지르르하게 지으면 뭐합니까. 내부를 제대로 만들려는 의지가 그리 높지 않은데요. 아직도 건설 현장은 대한민국 압축 성장 과정의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명품 아파트를 만들려면 속부터 꽉 채워야 합니다.
▶어떤 문제들이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이 업계를 둘러싼 환경규제만 생각하지만 기술 분야 단계에서조차 규제가 많습니다.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삼표가 특수 콘크리트 4종을 연달아 선보인 것은 이 업계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입니다.
▶2년 동안 4종의 특수 콘크리트를 만들었는데 업계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삼표는 업계에서 매출액 대비 R&D 비용을 가장 많이 쓰고 있습니다.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건축물을 더 튼튼하게 만들겠다는 방향성에서 기술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새 제품인 ‘블루콘 셀프’의 특징은 혼자서도 타설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전문 용어로 자기충전방식이라고 부릅니다. 과거 콘크리트 타설을 위해서는 몇 사람이 필요했지만 이 제품을 사용하면 혼자서도 타설이 가능합니다. 현장의 부족한 인력 문제에 대한 해법도 될 수 있습니다. ‘블루콘 스피드’는 타설 후 18시간 만에 거푸집 탈형이 가능합니다. 기존 제품은 2~3일 정도 걸립니다. 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비용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블루콘 윈터’는 추운 날씨에 특화된 제품이고, ‘블루콘 소프트’는 국내 최초로 일반 콘크리트(최대치수 25㎜)보다 입자가 작은 골재(최대치수 20㎜)를 사용했지만 높은 내구성을 시현해낸 제품입니다.
▶회사의 R&D 비용은 어느 수준입니까.
▷최근 3년간을 보면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약 0.4% 정도입니다. 동종 업계와 비교하면 3배 이상 많은 수치입니다. 삼표는 1993년 레미콘 업계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제품들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분위기는 나쁘지 않지만 역시 문제는 현장 적용입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선진국형으로 업계 구조가 바뀔 것으로 봅니다. 해외의 경우 특수 콘크리트 사용이 느는 추세입니다.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해외 건설 선진국에서는 블루콘 셀프와 같은 자기충전 콘크리트 시장 점유율이 30%를 웃돌고 있습니다. 일본·EU(유럽연합) 등에서는 블루콘 소프트처럼 20㎜ 크기의 고운 골재가 사용된 제품이 산업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혹시 특수 콘크리트가 사용된 사례가 있습니까.
▷블루콘 컬러·누드란 제품을 출시한 적이 있는데, 서울 강남에서 독특한 건물로 이름난 어반하이브, 부티크모나코 등에 적용됐습니다. 도시의 특색을 살리는 건물을 만드는 데 특수 콘크리트는 필수적입니다. 향후 7~8가지의 특수 콘크리트를 새롭게 선보일 계획에 있습니다.
▶삼표가 특수 콘크리트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급변하는 건설 환경에서 차별화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주 52시간 도입으로 건설 현장은 인력 수급에 애로를 겪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해법이 혼자서도 타설이 가능한 블루콘 셀프가 될 수 있습니다.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업계 선두 지위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건축 트렌드도 기존의 ‘성냥갑’처럼 찍어낸 획일적 형태가 아닌 다양하고 창의성을 더 발휘할 수 있는 흐름으로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명품 아파트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흐름인 것이죠.
▶변화를 얘기하시지만 업계를 향한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진 않습니다.
▷반환경적, 사회 혐오 시설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수십 년 전 레미콘 공장이 처음 들어섰을 때 그 주변은 도심 외곽으로 허허벌판이었습니다. 도시가 발전하면서 레미콘 공장 주변에 주택 등이 들어서고 주민 민원, 환경문제가 대두됐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인근 주민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풍납동, 성수동 공장의 이전 문제는 해결해야 될 숙제인데요.
▷회사는 현재 법과 절차를 존중해 관련 문제에 협조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지만, 문제는 대체 부지입니다. 도심에서 반기지 않는 시설이지만, 도심에서 멀어지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건축물의 내구성과 직결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은 한정된 시간 안에 이뤄져야 합니다. 공장에서 만들어낸 레미콘(굳지 않은 상태의 콘크리트)은 90분 이내에 건설현장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를 넘기면 레미콘이 굳기 시작하는데, 조금이라도 굳으면 쓸 수 없습니다. 레미콘 공장과 공사 현장의 거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외곽으로 갈 경우 도심에서 이뤄지는 각종 건설 공사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공기 지연은 물론이고, 레미콘 운송료 증가 등은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도 규제 문제와 연관돼 있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외관을 밀폐형으로 하는 도심형 공장이 허용돼 있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수동 공장의 경우 밀폐형으로 개선을 하면 주위와 조화롭게 공장을 꾸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상 그러지 못합니다. 대안 없이 나가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특수 콘크리트 사용으로 인해 아파트 분양가가 올라갈 가능성은 없습니까?
▷그런 측면은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기술을 더 발전시키면 단가를 낮출 수 있습니다.
▶회사의 성장과 연결되는 내년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내년 부동산 시장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 강화로 저희 시장의 가장 큰 수요처인 아파트 건설이 주춤했습니다. 정부가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시설 투자를 늘린다고 하지만 당장 이익과 연결되기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공사가 시작되어야 콘크리트가 투입되는데, 관련 시설 설계에만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특정 기능에 특화된 제품의 시장 공략에 계속 힘을 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차와의 사돈기업으로서 관심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오랫동안 회사에 재직한 경험상 사업상 특수 관계는 없습니다. 현대차 관련 사업에 삼표가 특혜를 받는다면 경쟁사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웃음). 그리고 대형 공사의 경우 한 회사가 물량을 전부 책임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향후 목표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특수 콘크리트 사용처를 많이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그 첫걸음으로 특수 콘트리트가 가용된 랜드마크적 성격을 가진 건물 공사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부터 저희 같은 건설 자재회사가 참여해야 하는데 역시 현실적 여건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명품 아파트, 랜드마크 건물을 보다 뛰어나게 지으려면 특수 콘크리트 사용은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건축 구조와 상관없는 콘크리트가 계속 쓰일 수밖에 없고 이는 건물의 수명을 단축시킬 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차그룹이 추진 중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사옥이 적당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