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Basics, 초심으로 돌아가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금융 감독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금융 감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높이고 금융감독원이 앞장서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9월 11일 취임식에서 금융감독원 임직원들에게 밝힌 취임 일성이다. 최 원장이 지난 1998년 금융감독원을 만들었던 산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감독원을 처음처럼 바로 세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원장 직속으로 ‘금융소비자 권익제고 자문위원회’를 발족시키고, 금감원 조직과 업무개혁을 위한 2개의 테스크포스팀을 가동시키는 등 강력한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최 원장은 금융감독원이 설립된 이후 첫 민간 출신 원장이자 문재인 정부 초대 금융감독원장이어서 그의 행보에 금융권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감원 산파에서 수장으로 돌아와 개혁 추진
최 원장의 금융감독원장 발탁은 당시 그의 직책이 서울 시향 대표였기 때문에 다소 의외인 인선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뜯어 보면 금융감독원장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경기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프랑스 릴대, 1986년 파리도핀대에서 각각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세부전공은 재무이며, 1987~1992년 한국경제사회연구원, 1992~1999년 조세연구원을 거쳐 1999년부터 2007년까지 금융연구원에서 일했다. 특히 금융연구원 부원장으로서 은행·보험 등 금융권 안팎에서 폭넓은 인맥을 구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금융연구원장도 역임했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월 경제위기 대응 컨트롤타워인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감독기구경영개선팀장을 맡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수장을 겸하는 금융감독원 설립 초기 조직 기능 재정립 업무를 관장했다. 당시 이헌재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에게 발탁됐다.
지난 1999년 금융연구원 부원장 시절에는 삼성생명 상장에 따른 차익을 계약자에게 돌려 줘야 하는 문제를 놓고 금감위 용역으로 수행한 연구에서 계약자 배당을 앞장서 주장했다. 부동산 시장 팽창기이자 참여정부 중반인 2006년에는 금융연구원장으로서 당시에는 금리 인상보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나 DTI(총부채상환비율)를 통한 시장안정책을 강조해 6·19 대책이나 8·2 대책 같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시장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에는 오랜 교분이 있던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하나금융연구소장으로 영입됐고, 2012년에는 하나금융지주 사장을 맡았다. 같은 해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금융지주의 전략통으로서 글로벌 전략과 재무, 인사 등을 진두지휘했다.
이 때문에 금융위 해체와 금융감독위원회 부활, 금융소비자보호처 신설 등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앞둔 상황에서 최흥식 내정자가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함께 조직개편과 위기관리 업무를 진두지휘할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원장은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관계는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현재의 법과 제도에서 (두 기관에) 권한이 위임된 것이 있다”며 “금융위가 가진 것과 금감원이 가진 것을 철두철미하게 지키고, 월권행위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의 경기고 1년 선배이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연세대 경영학과 후배다. 또 기업 구조조정 소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이동걸 신임 회장과는 금융정책 싱크탱크인 금융연구원장 전·후임자 사이이기도 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과 하나금융지주사장, 하나금융지주 고문 등을 역임하며 김승유 전 하나금융 지주 대표와도 인연이 깊다.
▶취임하자마자 금융개혁 본격행보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11일 취임하기가 무섭게 원장 직속 자문기구인 가칭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 설치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곧바로 9월 21일 ‘금융소비자 권익 제고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여는 등 금융개혁을 위한 본격 행보에 나섰다.
최 원장은 “금융현장에는 금융소비자보다 금융회사 우선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 잡고 있다”며 “이는 금융소비자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금융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며 강력한 개혁을 예고했다. 민간위원 10명으로 구성된 금융소비자 권익제고자문위원회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금융감독원은 금융혁신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자문위원회와 함께 금융감독·검사·제재 프로세스 혁신TF와 금감원 인사·조직문화혁신TF 등 2개의 TF팀을 운영한다.
최 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이 대형화 경쟁과 수익성 제고에 치중하면서 금융 본연의 역할에 소홀했다”며 “감독 당국이 견제와 균형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정부에서 금융감독원이 본연의 건전성 감독 기능과 소비자 보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최 원장은 ‘민원·분쟁 조기경보시스템’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민원유발상품, 불완전판매 유형 등의 민원유발 정보를 분석하고 감독과 검사에 연계해 소비자 피해확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최 원장은 “시장에 앞서 금융감독원이 먼저 혁신하고, 업무처리에 있어서 금융수요자를 위한 것인지 신중히 따져서 국민모두가 혜택을 고루 향유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소비자는 정보의 열위로 금융회사보다 약자일 수밖에 없고 권익이 침해되기 쉽다”며 “금감원이 소비자를 보호하고 필요한 경우 피해구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에서도 “금융회사의 위법 부당영업에 대해 철저히 검사해 엄중히 제재하겠다”며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금융소비자들의 권익을 제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 김승유 전 회장과 가까운 사이여서 하나금융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우리말에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매지 말라고 했다. 철두철미하게 지키겠다”고 못 박았다.
▶10월까지 국민 눈높이 내부 개혁안 마련
최 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보고에서 “금융감독원이 감독기구로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내부 쇄신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행전전문가인 위원장을 비롯해 외부인사가 절반 이상 참여하는 인사·조직문화혁신위원회를 가동하여 쇄신안을 마련 중에 있으며, 10월 말까지 국민의 엄중한 눈높이에 부합하는 최종안을 만들어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18년 만에 본 금융감독원은 초심을 많이 잃었다. 설립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금융사고와 불합리한 거래관행이 계속되고 있는데 감독당국이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설계자가 수장으로 돌아와 금감원을 질타한 것이다.
최 원장은 금감원에 대해 자기검열 책임과 비판적 사고를 주문했다. ‘자기만족’이 되면 조직은 이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금융감독’을 실천하면서 월권행위도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최 원장의 결단에 따라 금감원 내부의 혁신은 물론 대대적인 조직개편도 예상된다.
최 원장은 취임 후 부원장과 부원장보 등 임원들로부터 일괄 사표를 제출받은 후 재신임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고, 수석부원장을 비롯해 부원장 3명도 전원 바뀔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일 감사원이 발표한 금융감독원 기관운영 감사 결과에 대해 채용 서류전형을 폐지하는 등 강도 높은 내부개혁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감사원으로부터 일부 간부 직원들이 중징계 요구를 받은 직원 채용 업무를 전면적으로 개편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채용 전 과정을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하고, 서류전형은 폐지한다. 면접위원에도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차명 거래 등이 지적된 임직원 주식 투자와 관련해선 주식 투자가 금지되는 직원 범위를 기존의 공시 업무 등에서 대폭 확대하고, 투자 신고의무를 위반한 경우 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노동조합과 협의하기로 했다. 최 원장은 취임사에서 “기존의 권역별 감독을 벗어나 기능별 기술별 감독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혀 대대적인 조직개편도 예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