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김과장>에 출연한 데 이어 <집밥 백선생3>의 고정멤버로 발탁돼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남상미(33). 15년 전 여고생 시절 한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발탁돼 ‘얼짱’, ‘XX리아걸’로 유명했지만 이제 주목받는 중견 여자 연기자의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지난 2015년 결혼해 이제 17개월 된 딸의 엄마가 된 남상미는 아이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는 “배우로서 변하지 않고, 대중에게 행복한 기운을 불어넣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강조했다. 남상미의 학생 때 꿈은 파일럿, 건축가, 경찰 등이었다.
남상미는 “지금은 배우라는 직업을 좋아해서 과거의 꿈을 못 이룬 데 대한 미련은 없다. 배우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가진 채 살았어도 나는 뭐든 즐기면서 씩씩하게 잘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지금이 좋으니 후회는 없다”고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얼짱으로 유명해졌지만 결코 얼굴만 믿고 연기를 소홀히 한 게 아니다. “고등학생 때 유명해졌고, 대학 진학을 위해 연기 학원에 다녀야 했는데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학원에는 자신의 꿈을 위해 오디션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온 제가 그들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걸 알게 됐죠.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든 연기자로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죽어라 연습했어요.”
하지만 그는 “얼짱이라는 수식어는 앞으로도 그냥 쭉 따라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어쨌든 공식적으로 예쁘다는 걸 인정받은 것이니 좋다”며 “과거 경험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일이니 좋았던 시간”이란다.
남상미는 최근 끝난 드라마 <김과장>에 참여하기 전에는 “회사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일종의 로망도 있었다. 실제 한 회사의 사무실에 가서 촬영을 했는데 첫 녹화에 들어가기 전 “배우가 아닌 회사원도 재미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에 맞서 싸우는 평범한 직원의 이야기를 그린 이 드라마에 참여하면서 기대는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즐거운 일보다 가슴 답답하고 슬픈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많은 회사의 실상은 극 중 그려진 가족 같은 경리부와 달라도 많이 다르다. 회사 생활의 경험이 없는 그는 “현실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거의 없을 테니 안타까운 일”이라고 아쉬워했다.
▶따뜻한 메시지 전하는 드라마에 끌려
액션과 장르물 도전 기회 미뤄
남상미는 구조조정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책상을 빼 화장실 앞에 가져다 놓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에서는 더 심하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눈이 커진 그는 “남궁민 오라버니가 자살하려는 이에게 다가가 ‘당신이 뭘 잘못했느냐’고 소리치는 장면에서 눈물을 찔끔 흘리는 것만 방송에 나왔는데 현장에서는 펑펑 울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우리 드라마가 비현실적인 부분도 많이 있었겠지만 시청자들을 위로해 줄 수 있어 다행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남상미는 오래전부터 “액션이나 장르물에 도전하고 싶다”고 수차례 이야기한 바 있다. 좀처럼 기회는 없었다. 결혼과 출산 후 2년여 만에 복귀할 때 그토록 기다리던 액션이 있는 장르물 출연 제안이 들어왔으나 <김과장>의 따뜻한 메시지에 끌려 생각을 접었다.
“언제나 좋은 타이밍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내가 정의감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은 <김과장>의 하경을 통해 힘든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행복한 무언가를 대리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력은 ‘허당’이지만 요리에 푹 빠져
최근 요리의 매력에 푹 빠진 남상미. 고정 멤버로 tvN <집밥 백선생3>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기막힌 타이밍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결혼하고 시부모님과 살았는데 최근에 독립했어요. <집밥 백선생>에 출연하게 된 타이밍이 좋죠. 어머님이 밥도 해주시고 본인이 더 잘하신다며 ‘네 집 살림 생기면 하라’고 설거지까지 다 하셨어요. 이제 독립했으니 제가 해야 하잖아요? 밥을 해야 할 타이밍에 프로그램 제안이 왔고 참여하게 된 거예요. 사실 요리를 엄청 못하는데 늘고 있어 좋아요. 10회 만에 바뀐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이번에 드라마 끝나고 어머님께 바로 요리를 해드렸죠. 아직 ‘맛나다’는 말씀은 못 들었지만요(웃음).”
이 정도면 최고의 시어머니다. 남상미는 “저희 엄마가 시어머니를 만나 보시고는 무척 좋아하셨다. 나도 이런 분 밑에서 보고 배우고 듣고 한 신랑에게 확신이 생겼고, 더 좋아졌던 기억이 있다”고 웃었다. 그는 개인 사업을 하는 동갑내기 남편과 싸움을 한 적이 없단다. 데이트할 시간이 없었기에 드라마 대사를 맞춰주는 것으로 사랑을 키워나갔다.아무리 바빠도 “투정 없이 다 받아주는 남자”라고 자랑한다. 남상미는 <김과장> 촬영할 때도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짬을 내 아이와 함께 놀이공원에 다녀오는 등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 했다. 그래서일까. 딸이 엄마만 찾는 것도 아니고, 그리 보채지도 않는단다.
“음…. 제 딸이 엄마가 배우인 걸 아나 봐요. 엄마한테 붙어있기만 한 아이들은 헤어질 때 눈물바다인데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잘 다녀오란 듯 ‘빠빠이’도 잘 해주고요. 이번에 힘들었다면 다음 작품 할 때 고민이 됐을 것 같은데 다음에도 괜찮을 것 같네요.”
▶서른쯤 찾아온 슬럼프 기적같이 해소
그는 “사실 한국의 여배우들에게 들어오는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걸 도전하려고, 이전에 하지 않았던 역할을 하자고 찾으면 그런 역할은 거의 없다. 20대 때 연기를 하면서 ‘비슷한 캐릭터를 맡아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서른을 앞두고 드라마 <빛과 그림자>를 끝낸 그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더 보여줄 수 있는 게 없는 건가?’라는 고민에 잠도 못 잘 정도였다.
소속사 대표는 단막극 출연을 제의했고, 남상미는 그렇게 단만극 <기적 같은 기적>의 차가운 의사를 연기하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 단막극의 제목처럼 정말 ‘기적같이’ 고민과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자신의 길이 확실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남상미는 계속 또 달리게 됐다. <김과장>도 오랜만에 행복한 기분을 전해준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의 멜로 라인이 없는 게 정말 좋았다는 그는 “시청률이 주춤하면 흔히 끌고 가는 게 남녀의 멜로이지 않나? 많은 작품 속에서 그런 러브라인에 에너지를 쏟았는데 이 작품은 그러지 않고도 여자 주인공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걸 보여준 작품 같다”고 행복해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제작진과 작가에게 남상미가 회사의 이야기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는데, 끝까지 받아들여졌다. 그는 “끝까지 회사의 이야기로 구도를 잡고 가주셔서 정말 좋았다”며 제작진의 뚝심이 통한 드라마라고 공을 돌렸다. 남상미는 그동안 다양한 작품으로 시청자와 관객을 찾았다. 오랜 연기활동에도 불구하고 “사실 연기적인 자신감은 아직도 없는 것 같다”면서 “그래서 더 노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기적인 자신감은 아마 ‘연기의 신’들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한 작품의 어떤 역할을 하기로 한 이상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역이야!’라는 생각을 하고 참여하죠. <김과장> 하경 역할에 대해 남편한테 ‘자기는 하경이를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했으면 누가 어울렸을 것 같아?’라고 물었더니 선뜻 답을 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러면 된 것이죠. 혼자 그렇게 나를 쓰다듬어 줬죠.”
남상미는 “<김과장>을 통해 좋은 앨범을 하나 남겼으니, 이제는 가족들과도 또 다른 추억의 좋은 사진첩을 만들 것”이라며 “가족과 누린 행복한 에너지를 다음 작품, 배역에서 담아내 대중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바랐다. 인터뷰 내내 생긋 웃으며 밝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가 화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화낸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한참을 고민하더니 “없는 것 같은데 남편에게 물어봐야겠다”는 답이 돌아와 웃음을 안겼다. “좋은 게 좋은 것”, “그럴 수도 있지”라고 잘 넘어가고, 본인의 가장 큰 장점이 “잘 잊는 편이라는 것”이라고 웃었다.
[진현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