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고은(25)을 처음 만난 건 4년 전, 영화 <은교> 홍보를 위한 인터뷰 때였다. 노시인의 문학적 세계를 동경한 소녀의 열망과 싱그러운 소녀의 젊음에 매혹된 노시인의 마음, 스승을 존경하면서도 인간의 기본 심리인 질투심에 눈먼 제자의 욕망 등 동상이몽 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는 원작 소설보다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으나 신인배우 김고은을 주목하게 했다.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신인은 단숨에 화제의 인물이 됐다.
사무실 문을 열고 영화홍보사 직원, 매니저와 함께 터덜터덜 걸어 들어온 김고은은 쭈뼛거렸다. 전라 노출 질문에 시달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는 관련 질문에 응당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쉽게,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김고은의 정신력이 무척이나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김고은은 이후 이미지가 세고 강한 역할의 연기만 해왔다. 동생을 데려간 살인마를 쫓는 <몬스터>의 복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무공을 쌓은 <협녀: 칼의 기억>의 홍이, 태어나 버려진 뒤 뒷골목에서 범죄자로 길러진 <차이나 타운>의 일영 등 기본적으로 몸을 혹사시켜야 하는 역할들 투성이었다. <협녀: 칼의 기억>의 홍보를 위해 만났던 그는 “제대로 연기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그렇게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승마와 스키, 무용 등을 배웠고, 몸 쓰는 것도 그리 어렵게 느끼지 않았단다. 다만 처음 본 이들이 ‘김고은은 몸치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항상 보여주려고 했고, “그게 대역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늘려줬다”라는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단편영화 2편 찍고 은교에 발탁
김고은이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솔직히 몇몇은 <은교> 속 그 이미지를 지우기 위한 발버둥이라고 깎아내리지만 그의 의도는 다르다. 차근차근 배우의 길을 걷는 동료들을 향한 미안함의 다른 표현이라고나 할까?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그는 최근 영화 <검은 사제들>, <간신>으로 각각 여성영화인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따내며 이름을 알린 박소담, 이유영 등과 동기다. 이들이 단편영화와 독립영화를 찍고 수백 번의 오디션을 볼 때 이미 김고은은 ‘프로’가 됐다. 스스로가 붙인 수식어는 아니지만, 어느새 그는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로 세계에 속해 있었다.
“차근차근 올라오는 친구들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신인들은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과 똑같은데 그 일을 해내고 나온 거잖아요. 많은 사람이 대부분 그런 경로를 택해요. 전 <은교>에 참여하기 전 단편영화 2편 정도밖에 못 찍었어요. 사실 과거에는 독립영화를 열심히 하는 게 20대 계획이었는데, 그런 과정이 없는 상태에서 프로라고 불리게 된 거죠. 프로로서 갖춰야 하는 걸 못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이 세계에서 일을 하니 저를 내던지려고 했던 것 같아요.”
데뷔작 <은교>의 오디션도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아니었을까. 그는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정지우 감독이 담아내려고 했던 소녀의 이미지가 들어맞았다. <은교> 스태프 중 한예종 출신이 있었던 게 인연이었다. 그 스태프의 얘기를 들은 소속사 대표가 김고은을 소개했는데 운이 좋아 정지우 감독을 직접 만나게 됐다. 1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눈 뒤 정 감독은 김고은에게 다음 날 짧은 독백을 준비해오라고 했다. 감독과 둘이 만난 전날과는 달리 많은 영화 관계자가 참여한 오디션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정식으로 오디션을 봤고, 또 그렇게 절대 떨쳐낼 수 없는 수식어 중 하나인 은교가 김고은의 품 안에 들어왔다.
김고은은 “<은교>의 여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고생을 조금은 할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게 내가 됐다”며 “이 모든 게 이틀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회상했다.
“무지한 상태로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배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또 있을까 싶어요. 그 결과물로 칭찬을 받고 주목도 받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런 현장이었기 때문에 제가 주목을 받았던 것 같아요. 다른 일반 현장이었으면 저는 절대 배려도 받을 수 없고, 연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이것저것 열심히 한 면도 있죠. 다른 영화들의 엄청난 감정선을 경험하기도 했는데 안 해봤더라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 겪고 나니까 두려움이라는 걸 극복하게 된 것 같아 좋아요.”
김고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해준 <은교>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평생 잊지 못할 이름이다. 김고은은 최근 스포츠계 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영화 <4등>을 들고 온 정 감독의 신작도 이미 관람했고, 정 감독의 특별전에도 참석했다. 고마운 마음을 표할 줄 아는 게 당연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그러지 않은 이가 많은 연예계이기에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악플 억울하지만 신경 쓰지 않아요
통통 튀는 독특한 성격을 가졌을 뿐이지 인성은 괜찮아 보이는데 김고은은 최근 들어 악플에 시달리는 일이 많아졌다. 찌라시에는 안 좋은 이야기가 돌고 돈다. 김고은은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정말 그게 가장 속상했어요.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게 배우로서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연기할 때 자세나 선배들을 대하는 태도를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 반대의 이야기가 들리니 억울하고 혼란스럽더라고요. 선배들을 찾아가 직접적으로 ‘이런 얘기가 들려서 속상하다. 잘못한 게 있으면 꾸짖어 달라’고까지 했죠. 하지만 똑같이 하시는 말이 ‘그런 루머 안 듣는 사람 없다.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김고은은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한번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그날 제 컨디션에 따라 내가 신발이 안 벗겨져서 인상을 쓰면 ‘신발을 벗어던졌다’고 한다 하더라고요.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저와 함께 일한 스태프들이 저를 좋게 얘기해주고 믿어주며, 내 편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태도, 예의범절 이야기를 하며 김고은은 과거 이야기도 했다.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계원예술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제대로 연기를 하게 됐다. 한국의 예절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는 “어떻게 존대해야 하는지 몰라 혼난 적이 많다”고 기억했다.
“정말 모르는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언젠가 선배가 혼을 낼 때가 있었어요. 저는 사람이 대화할 때 눈을 쳐다보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눈 똑바로 쳐다본다고 더 혼이 났어요. 또 자리에 앉아 있었을 때 선배가 들어오는데 일어나지 않아서 혼나기도 했고요. 혼나면 잘 해보겠다는 뜻에서 미소 지으며 대답하면 또 혼나더라고요. 그렇게 깨우친 게 많아요. 그래도 ‘혼날 일이 있으니까 혼나는 거겠지’라는 생각으로 수긍하게 됐죠. 학교가 엄했다고요? 1학년 때만 그랬던 걸 강조하고 싶네요(웃음).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잘 다닌 것 같아요. 촬영 현장에서 그랬다면, 어휴~ 생각하기도 싫어요.”
▶‘센’ 역할 하던 김고은의 또다른 변신
한동안 센 역할만 하던 김고은은 최근 또 다른 변신을 했다.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과 영화 <계춘할망>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모습을 보인 것 자체도 좋긴 하지만 “두 작품 모두 할머니가 좋아했다”며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김고은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와 함께 산다. 벌써 6년이 됐다. 하지만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볼 만한 영화에는 출연한 적이 없었다. 선혈이 낭자하고, 강렬한 인물군을 맡았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김고은의 첫 TV 출연작 <치즈 인 더 트랩>은 할머니가 빼놓지 않고 안방에서 봤던 작품이다. “교통사고가 나는 장면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엄청 걱정하시더라고요. ‘할머니, 연기야 연기. 너무 걱정하지 마요’라고 했는데도 슬퍼하시더라고요. 너무 좋아하시고 실제처럼 몰입하셨던 기억이 나요.”
투정 부리듯 얘기했지만 에피소드를 전하는 김고은의 입꼬리는 계속 올라가 있었다. 행복감과 자부심이 온전히 전해졌다. 오매불망 손녀바보 할머니와 12년 만에 집에 돌아온 손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계춘할망>도 할머니와 함께 볼 수 있어 좋다는 그는 영화 보면서 눈물을 쏟아내겠지만 할머니를 시사회에 처음으로 초대한 것 자체가 큰 행복이란다.
“외국에 살 때 1년에 한번씩 한국에 와서 할머니를 만나는데 연중행사였죠. 할머니는 제게 너무 큰 사람이거든요. 멋진 여성상이었어요. 제가 성인이 되어서 본받아야 할 것 같은 분이셨죠.”
‘독립영화를 열심히 하겠다’는 김고은의 20대 목표는 약간 수정됐지만 방향은 같다. ‘연기의 기복을 없애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저는 이런 감정으로 연기했어요’라고 얘기해도 관객이 그 자체를 느끼지 못하면 소용없잖아요. 관객이 제 연기에 설득을 많이 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연기라면 다 좋아요. 대학생 때 연극, 뮤지컬을 한 적도 많았거든요. 무대 위에서 행복했기 때문에 좋은 기억이죠.”
하지만 김고은은 “노래는 아직은 취미로 남겨두고 싶다”고 조건을 달았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하고 수준급 실력(가수 신승훈과 함께 노래를 한 적도 있고, <계춘할망> 엔딩크레딧 노래도 불렀다)을 겸비한 그는 노래 부르는 모습은 나중에 대중에게 제대로 선보이고 싶단다.
“영화를 5년 동안 했는데 드라마 한 편의 힘이 크다는 걸 실감했다”는 그는 “예전에는 길을 다닐 때 수더분하게 하고 다녀도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확신에 차서 알아본다”고 웃는다. 한예종 동문이자 같은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배우 김동욱과는 열애설도 났다. 더 유명해진 결과인 듯하다. 열애설에 대한 김고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손만 스쳐도 싫어하는 사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