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석 유안타증권 대표이사 | 간판 새로 달고 제2의 도약 노리는 유안타증권(전 동양증권)…중국시장 선점해 신화 다시 쓴다
입력 : 2014.10.31 17:44:53
“투자자들과 직원들 모두 마음고생도 심했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로운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경영 정상화를 위해 힘껏 달리겠습니다.”
1962년 일국증권으로 설립해 1985년 사명 변경을 거쳐 50년 넘게 증권업계를 주름잡았던 동양증권이 지난 10월 1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만계 회사인 유안타증권에 인수된 동양증권은 이제 새로운 간판을 걸고 긴 출항을 위해 닻을 다시 올렸다. 이른바 ‘동양사태’가 터지고 그룹 일부 계열사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불완전 판매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투자자 이탈과 대규모 자금 인출 등 내홍에 시달린 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유안타증권은 우선협상자 선정(2월)부터 대주주 변경 승인(5월)까지 매각작업을 일사천리로 무사히 매듭지으면서도 ‘동양’이라는 명칭을 버리지 않았었다. 이번 비전선포식을 통해 동양그룹 사태로 훼손된 ‘고객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해 10월 사태가 터진 직후 동양증권의 존립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떨어질 때로 떨어진 신뢰도와 증권업 불황까지 맞물려 구조조정 속에 많은 직원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회사가 공중분해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낸 장본인이 바로 서명석 유안타증권 대표다. 지난해 11월 서 대표는 사장으로 취임하며 쓰러져가는 회사를 일으킬 구원투수로 등판해 기업회생을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법정관리인과 회생법원을 찾아 회사의 상황을 설명하고 신속한 매각만이 채권자 등 이해 관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득해 공감을 얻어냈다.
“회생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당시에는 힘에 부쳤습니다. 수천 명의 직원들이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막막했죠. 결국 자립 생존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국내 대형 증권사에 인수를 타진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재무 리스크가 높아지며 동양증권은 한때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모두가 손을 놓고 있을 때 극적으로 손을 내민 곳은 타이완 유안타증권이었다. 인수 의사를 확인한 서 대표는 바로 다음날 비행기에 오른다. 그러나 그가 본사를 방문했을 때 주요 경영진을 만나는 자리에서 호의적인 눈빛을 보내는 임원은 별로 없었다.
“당시 국내 여론을 파악한 경영진들의 회사경영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자존심에 금이 갈 정도로 노골적이었죠. 저와 함께 대표로 있는 황웨이청 각자대표 정도가 호의적이었을 뿐 다른 임원들은 인수 자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여론을 돌리기 위해 서명석 대표는 프레젠테이션에 사력을 다했다. 며칠 동안 직원들과 밤을 새우며 브리핑 자료를 만들고 철저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고객 예탁자산의 지속적인 이탈, 신용등급 하락, 대규모 영업적자가 발생하고 있던 터라 신속한 매각과 자본 확충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요지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브리핑에 익숙한 리서치센터장 출신의 서 대표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회사 상황을 가감 없이 전하는 한편 유안타증권이 글로벌 금융사로 발전하기 위한 한국 진출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회사를 살리고자 한마음으로 뭉친 직원들의 심정도 전했죠. 특히 당시 전 직원의 임금 삭감을 통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이 크게 어필한 것 같아요. 대부분 노동조합이 강한 목소리를 내는 타이완기업 경영진들로서는 꽤나 인상적이고 이색적인 상황일 수 있거든요.”
부활의 신호탄 쏜 유안타 후강퉁에 승부를
우여곡절 끝에 올해 3월 인수합병이 완료되며 상황은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쳤다. 지난해 말 2300명이 넘던 직원 중 올 초 약 600명을 내보냈다.
지난해 116개였던 지점 수는 현재 78개로 줄었다.
유안타증권으로 대주주가 변경되고 자금이 유입되자 국내 3개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을 일제히 3단계씩 (BBB- → A-)올렸다. 덕분에 법인·기관투자자를 상대로 한 영업도 재개됐다. 지점 영업이 살아나자 IB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동안 떨어진 신용등급 탓에 일선 직원들의 영업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중요한 인재가 회사를 떠난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최근 떠난 직원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고 중국에 특화돼 있는 업계의 베테랑들이 유안타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영업 정상화의 토대가 어느 정도 마련된 상황에서 서 대표는 유안타증권의 강점을 살려 중화권 진출에 집중할 방침이다. 유안타증권은 금융그룹 유안타파이낸셜홀딩스의 계열사로 대만 내에서 위탁영업 부문에서 1위 채권인수와 기업공개(IPO)에서는 2위를 달리고 있는 기업이다. 자기자본 규모는 3조2000억원으로 한국의 대형 증권사와 비슷한 수준이다. 서 대표는 유안타그룹이 대만과 홍콩, 중국 등에 다져 놓은 탄탄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중화권 시장공략에 나선다는 전략을 세웠다.
“유안타로 새로 시작하며 바뀐 또 하나가 회의 방식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한국·타이완·홍콩·상하이에서 동시에 비디오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유안타의 강점은 중화권의 정보에 대해 어느 증권사보다 밝다는 점입니다. 동양증권이 가졌던 CMA나 IB분야의 강점을 이어가되 해외 금융상품 도입을 통해 국내시장 점유율을 늘려 나갈 계획입니다.”
최근 동양증권은 위안화 환율에 투자하는 원금보장형 DLB(기타파생결합사채)를 출시했다. 중국 채권시장에도 발 빠르게 뛰어들었다. 위안화 적격외국인투자자(RQFII) 한도를 가지고 있는 홍콩 자산운용사의 펀드를 상품화한 중국본토채권형 사모펀드를 설정해 지난 8월 초 국내 고객들에게 선보였다. 목표 수익률을 조기 달성하면 국내 안전자산으로 전환되는 것이 특징이다. 원/위안화 환율을 헤지해 중국 본토채권의 금리를 그대로 누리는 상품으로 중국을 눈여겨본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이 상품출시를 시작으로 중국 본토 및 홍콩에서 운용하는 다양한 중국 관련 펀드를 국내에 소개하겠다는 복안이다.
서 대표는 유안타가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국기업의 국내 기업공개(IPO)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황웨이청 유안타증권 각자대표와 IPO담당자들이 정기적으로 중국 현지를 방문해 대상기업들을 적극적으로 물색해 접촉하고 있다.
중화권 공략을 위해서는 새롭게 출범한 사장 직속의 ‘후강퉁 태스크포스(TF)’가 핵심 역할을 맡는다. 후강퉁은 중국과 홍콩 간 주식 직접거래를 허용하는 정책으로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유안타증권은 국내에서 유일한 대만계 증권사가 된 만큼 후강퉁 특수에서 어떤 회사보다 우위에 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개인 주식거래뿐 아니라 투자은행(IB)을 비롯한 모든 사업부문에서 본사와의 시너지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후강통은 유안타증권 출범과 함께 상당한 호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범중화권 메리트를 지닌 유안타가 후강퉁에서 선두로 치고 나가지 못하면 큰일 아닙니까?(웃음) 거의 매일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전략을 논의하고 전투적으로 준비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중국·대만 기업 IPO나 인수·합병(M&A) 등 중화권 투자 자본 유치도 활발하게 추진해 나갈 생각입니다.”
후강퉁 선점에 사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서 대표는 인수합병(M&A)을 위해 한국을 찾는 범중화권 자본의 창구역할을 하겠다는 중장기적 목표도 털어놨다. 다음은 서명석 대표와의 일문일답
오랜 기간 지켜온 사명변경이 의미하는 바가 클 것 같다.
긴 시간 자부심으로 지켜온 동양증권이라는 간판을 내리게 된 것은 큰 유감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어떠한 사명이 우리에게 적합할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결과 아시아 금융시장 전역을 아우르고 있는 ‘유안타’라는 브랜드 네임이 최선이라는 우리 직원들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기에 힘들게 내린 결정이다. 지난 과오를 씻고 국내 금융시장을 넘어 범중화권 금융시장을 잘 아는 증권사, 더 나아가 아시아 최고의 금융회사로 성장하겠다는 선언으로 봐줬으면 한다.
비전 선포식에서 대표를 포함해 전체 직원들이 모두 죄인으로 살고 있다는 자기고백이 인상적이었다.
50여 년간 쌓아 왔던 고객들과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졌고 동양그룹의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최악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왔던 우리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몇몇 직원들은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수습하고 고객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아직 동양사태에 대한 뒤처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이고 고객들의 당사에 대한 이미지도 아직까지는 유보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일수록 겸허하게 회사의 내실을 다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양사태 피해자 보상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불완전판매 배상 문제는 최근 감독당국의 분쟁조정 결과가 나온 만큼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원활히 처리될 것이다. 한 가지 말씀 드릴 점은 동양계열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조직적이거나 고의적인 사기행위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외국계 증권사가 M&A를 통해 국내시장에 뛰어든 첫 번째 사례다. 인수 배경은 무엇인가?
타이완 유안타증권은 동양증권의 리테일 분야의 폭넓은 영업망과 자산관리영업에 강점을 갖췄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시아의 선도적인 증권회사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타이완 유안타증권으로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이 아직 진출하지 못한 아시아 지역에 해외거점을 보유하고 있는 점도 큰 매력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외국계 금융사들의 성적이 신통치 않은 상황에서 유안타증권은 어떤 전략으로 나설 생각인가.
후강퉁, RQFII 등으로 중국 자본시장이 더욱 개방되면서 투자자들의 범중화권에 대한 투자 기회는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국내에서 범중화권 금융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든지 유안타증권을 가장 먼저 떠올리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상해, 홍콩 등에 있는 리서치 인프라를 통해 현지 시장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 자료를 가장 빠르게 국내 투자자들에게 공급할 예정이다. 이미 국내 주식시장에서 인정받은 인공지능 종목 추천 서비스인 ‘MY tRadar’를 해외주식 투자 HTS를 통해 준비 중이다. IB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자금조달을 희망하는 국내기업과 범중화권 자본을 연계하고 한국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범중화권 기업에게 IPO, M&A 자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과 범중화권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기존의 IB 명성에 더해 해외 거래에 강한 IB로 재건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실적이 상당히 악화된 상태인데 재무 리스크는 어느 정도나 개선됐나?
지난 2014년 6월 유안타금융그룹으로 편입된 직후, 국내 3개 신용평가사들은 당사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3단계씩 상향(BBB- → A-)했다. 그만큼 재무건전성 높은 타이완 유안타증권으로 대주주가 변경된 것에 대해 시장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는 영업력을 최대한 빠르게 회복하여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떨어진 영업력을 회복하는 것이 급해 보인다. 향후 영업 전략은 어떻게 가져갈 예정인가?
유안타금융그룹으로 편입된 이후 위탁 점유율과 예탁자산 규모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신용등급 상향으로 법인영업과 IB영업, ELS 발행 등이 신속하게 재개되면서 영업력도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범중화권 투자상품이 차별화 포인트가 되겠지만 지점 영업망은 여전히 건재하고 저금리 기조 하에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금융상품을 제공한다면 영업력은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각자대표로 선임된 황웨이청과 임무 분담은 어떻게 하고 있나?
대외적으로는 황웨이청 사장과 각자대표 체제이나 회사 전반에 대해 함께 논의하면서 업무를 보고 있다. 각자대표이사 체제에 공동대표이사 체제의 장점이 가미된 형태라고 보면 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포인트를 발견하기도 하고 확신을 얻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들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상당기간 이러한 체제는 계속 유지해 나갈 생각이다.
영업 정상화를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나?
현재의 영업실적 추이를 고려하고 그간 크게 줄여온 비용을 감안할 때 조만간 영업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쯤 흑자전환을 목표로 뛰고 있다. 현재, 금융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고 무엇보다 임직원들이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와 주식시장 환경에 따라 시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빠른 시간 안에 다시금 업계를 선도하는 증권사로 발돋움하리라 믿고 있다.
서명석 대표 1986년 일국증권에서 동양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한 직후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줄곧 자리를 지켜온 명실상부 동양증권맨이다. 차곡차곡 커리어를 다지며 랩운용팀장과 투자전략팀장 등 요직을 거쳐 지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리서치센터장을 지냈다. 지난해 11월 동양증권 사장에 오른 후 황웨이청과 함께 한국 유안타증권 각자대표로 추대됐다.
서 대표는 ‘최초 리서치센터장 출신 사장’이란 타이틀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리서치센터를 거쳐 외국계 증권사 사장이나 자산운용사 사장 등에 오른 경우는 있어도 국내 증권사 사장자리를 꿰찬 사례는 전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