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앙 토나레 바쉐론 콘스탄틴 아시아 총괄 매니징 디렉터 | “경제가 어려울수록 변하지 않는 가치가 빛을 발한다”
입력 : 2014.08.05 08:58:08
짧게 다듬은 곱슬머리에 쌍꺼풀 짙은 눈,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왠지 강인해 보였다. 악수를 나눈 손이 운동선수처럼 두툼하고 딱딱해 옆에 있는 관계자에게 물으니 아니나 다를까, 전 스위스 수상스키 챔피언 출신이란 답이 돌아왔다. 줄리앙 토나레 바쉐론 콘스탄틴 아시아 총괄 매니징 디렉터가 방한했다. 지난 7월 13일과 14일 양일간 서울 신사동의 ‘313 아트 프로젝트’에서 스트라이킹 워치를 주제로 ‘시간의 소리’ 전시회를 개최한 그는 “바쉐론 콘스탄틴은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파인 워치 메이킹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 깊은 메종이 선보이는 최고급 시계를 통해 인류의 독창성과 장인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 3대 명품시계로 손꼽히는 바쉐론 콘스탄틴은 최근 국내에 2개의 부티크를 오픈하며 서울에서만 3개의 부티크를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인터뷰는 밤 9시경 전시회장 2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그는 “한국은 가장 모범적인 시장”이라며 시계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확신했다.
한 도시 3개 부티크 운영, 한국뿐<시간의 소리> 전시회는 스위스와 홍콩, 대만을 거쳐 한국에서 진행됐습니다. 전 세계 네번째 전시회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 전시회는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스트라이킹(Striking) 워치의 빈티지 제품들과 신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예요. 지난해 홍콩에서 개최된 ‘워치스 앤 원더스’ 박람회에서 처음 공개됐는데 서울 전시회는 그 축약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네 번째 전시회를 갖는 건 그만큼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이죠.
바쉐론 콘스탄틴의 전 세계 매출 중 한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궁금한데요.
정확한 숫자는 비밀입니다.(웃음) 바쉐론 콘스탄틴은 브랜드 설립 초기부터 중국시장에 진출했어요. 중국의 많은 황제들이 우리 브랜드를 애용했죠. 아시아 고객들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호합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무려 260년의 역사와 헤리티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연히 아시아마켓이 중요할 수밖에 없지요. 그중 한국시장은 우리의 키 마켓 중 하나입니다. 지난 6월 말에 오픈한 갤러리아 명품관 부티크를 합하면 현재 서울에서만 총 3개의 부티크(롯데 에비뉴엘 명품관, 현대 본점, 갤러리아 명품관)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 도시에 3개 이상의 부티크가 있는 건 한국뿐이죠. 리테일 비즈니스가 강세를 띠고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바쉐론 콘스탄틴이 한국시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방증입니다.
불황에도 한국의 수입시계시장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어떻게 보십니까.
손목시계뿐만 아니라 수많은 명품 브랜드에서 중국인 고객의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내국인 고객층도 탄탄하지만 중국인 관광객들의 소비가 균형을 맞추고 있어요. 저희 입장에선 굉장히 모범적인 시장이죠. 중국인들은 가까운 여행지로 특히 한국과 태국을 선호하는데 이들의 높은 구매력이 한국 수입시계시장 성장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한국 고객들은 시계에 대한 감식안이 뛰어납니다. 이번 전시회에도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고객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단순히 값비싼 고급 브랜드를 선호하는 게 아니라 예술적 가치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쉐론 콘스탄틴은 한국시장에서 별다른 기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장기적인 성장을 추구합니다. 갑작스레 인기를 얻고 성장하는 걸 경계하죠. 천천히 장기적으로, 그러나 꾸준하게 성장하며 브랜드를 뿌리내리는 것이 바쉐론 콘스탄틴의 전략입니다. 아, 사실 세월호 참사라는 가슴 아픈 사건 이후 잠시 매출이 주춤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기를 제외하면 론칭 이래 큰 기복 없이 조금씩 성장해 오고 있습니다.
역사와 기술력이 반드시 정비례하는 건 아닌데요. 바쉐론 콘스탄틴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기술력, 디자인, 클래식한 브랜드 이미지까지 다양한 장점이 있는데, 무엇보다 브랜드의 헤리티지(유산)를 꼽을 수 있습니다. 헤리티지를 보유한 브랜드와 역사가 깊은 브랜드는 분명 차이가 있어요. 우리는 단순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가 아닙니다. 역사를 보존해 온 방대한 아카이브(Archive)가 있지요. 브랜드가 보유한 박물관에선 설립 초기부터 보관해온 서류와 서신, 200년도 더 된 빈티지 시계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장인들의 기술도 그대로 전승됐는데, 계승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들이지요.
200년이 넘는 유산을 보관하고 있는 건 설립 당시부터 브랜드의 정책적 판단입니까.
사실 운이 좋았죠.(웃음) 2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유실이나 훼손 없이 브랜드의 유산을 지킬 수 있었던 건 분명 행운입니다. 그런 면에서 바쉐린 콘스탄틴은 정말 흥미로운 브랜드입니다. 아직 우리도 우리 브랜드의 유산을 전부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옥션이나 전 세계 수집가들에게 빈티지 제품을 구입해 아카이브를 보강하고 있어요.
중립국이란 위치가 도움이 됐을 법한데요.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아마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전쟁이나 분쟁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에 귀중한 헤리티지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미닛 리피터 ‘패트리모니 컨템퍼러리 울트라-씬 칼리버 1731’
중국이 선언한 건 부패와의 전쟁이지 명품과의 전쟁이 아니다시계 산업은 오랫동안 스위스의 주요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그 기세가 예전만 못하다고 합니다. 일선에서 느끼는 시장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저는 스위스 시계산업의 성장세에 대해 낙관하고 있어요. 우선 명품 시계를 구매하는 중국인 고객들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구매패턴과 명품에 대한 인식도 나날이 성숙해지고 있지요.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에 명품의 성숙기가 도래할 겁니다. 오늘날 전 세계는 한 번 쓰고 버리는 공산품의 천국이 됐지만 그럴수록 영혼을 담아 직접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제품에 대한 가치 또한 높아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올 바젤월드에선 시계 업계의 화두 중 하나가 중국의 ‘부패와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는 브랜드도 여럿이었는데요.
분명히 영향력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이 선포한 건 부패·뇌물과의 전쟁이지 고가의 선물이나 명품과의 전쟁이 아니에요.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고 이 전통은 아마 미래에도 쉽게 변하지 않겠지요.
중국의 고가품에 대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 고객들의 명품에 대한 인식 변화와 중국 내외에서 증가하고 있는 구매력을 감안하면 그 성장성은 아직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스위스의 시계산업은 장밋빛 전망만 가득한 것 같습니다.
분명 걸림돌이 있습니다.(웃음) 브랜드마다 다르겠지만 ‘자연스러운 도태(Natural Exit)’가 존재하고 있어요. 경제적인 이유든 철 지난 유행 때문이든, 어떤 산업이건 쇠퇴하는 때가 오기 마련이죠. 그럴 때 오히려 성장하는 브랜드가 있는 반면, 가장 약한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곤 합니다. 산업이 어렵거나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쉽게 유행을 타거나 한 번 쓰고 버릴 제품보다 오래도록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제품에 투자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죠.
(왼쪽)제네바 홀마크를 지닌 24개의 바쉐론 콘스탄틴 인하우스 칼리버가 전시된 쇼케이스 , (오른쪽)스위스 워치메이커의 시연 모습
스마트 워치는 테크놀로지일 뿐이다IT업계에선 웨어러블 기기에 대한 전망이 분분한데요. 스마트 워치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습니까. 대응 전략이라면.
개인적으로 웨어러블 워치는 아주 환상적인 제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구매할 의사가 있어요. 하지만 그에 대한 대응 전략은 없습니다. 일명 스마트 워치와 우리 시계는 본질적으로 시장이 다른 제품이죠. 스마트 워치는 편리한 테크놀로지이지만, 우리 시계는 소유자와 정서적인 교감이 가능한 오브제(Objet)에 가깝습니다. 스마트 워치가 줄 수 없는 가치와 만족감을 선사하죠.
바쉐론 콘스탄틴의 경쟁자를 꼽는다면.
경쟁자라기보다 바쉐론 콘스탄틴처럼 제네바에 근거를 두고 있고 오랜 역사와 헤리티지, 기술력을 동시에 갖춘 브랜드 중 하나가 파텍필립입니다. 두 브랜드 모두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비슷한 철학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흔히 시계에 열광하는 이들은 남자라고 합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우선 남자들은 선천적으로 기계를 좋아합니다. 제 어린 아들도 벌써부터 자동차나 비행기를 좋아하거든요.(웃음) 시계는 아주 작은 물체지만 그 안에 과학과 물리학의 총체가 응축되어 있는 메카닉의 진수죠. 또 하나는 남자들의 거의 유일한 액세서리가 시계예요. 저 또한 결혼반지와 시계를 제외하곤 그 어떤 액세서리도 하지 않습니다. 시계를 보면 그 남자의 취향과 스타일을 알 수 있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닙니다.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1755년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시계 생산이 중단되지 않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 브랜드다. 무브먼트 개발(모든 무브먼트는 제네바 인증을 받는다)부터 모든 제작과정이 자체적으로 진행된다. 1880년에 상표 등록한 말테 크로스(Malte Cross)가 브랜드의 상징이 됐다. 1906년 제네바 케드릴 지구에 오픈한 최초의 부티크는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이어오고 있다. 1996년 리치몬트 그룹에 합류한 이후 세계 3대 시계 브랜드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